이 접시에 담긴 이야기 - <청백자 나뭇잎무늬 반>

2015. 12. 18. 05:34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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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접시에 담긴 이야기 - <청백자 나뭇잎무늬 반>

 

 

          


<청백자 나뭇잎무늬 반(靑白磁釉裏紅雙葉紋盤)>
높이 1.4cm, 입지름 16.4cm, 바닥지름 14.4cm, 신안18994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전시된 타원형의 아름다운 백자접시. <청백자유리홍쌍엽문반>이라고 하는 한자 이름은 청백자에 유리홍*이라는 기법의 나뭇잎무늬가 그려진 받침 혹은 접시라는 뜻입니다. 
 
   이 무늬는 무슨 의미일까요? 글씨는 뭐라고 써 있는 것일까요?

백자 접시 안에 그려진 것은 두 장의 나뭇잎,
적갈색으로 물들고 군데군데 녹색이 남아 있는 낙엽의 모양입니다.
대칭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나뭇잎 문양 위에 적갈색으로 다섯 글자씩 씌어 있습니다.
이는 오언절구 형식의 시 중 두 마디인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流水何太急(유수하태급) 흐르는 물은 저리도 급한가,
 深宮盡日閑(심궁진일한) 깊은 궁궐의 하루는 지루하기만 하네.

 

   이 시의 화자는 궁궐 안 어느 곳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궁궐 뜰의 시냇물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紅葉良媒(홍엽량매)” 즉, 단풍잎에 시를 써서 결혼의 중매 구실을 하게 일이라는 고사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청쇄고의』 등의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다소 황당하지만 드라마틱합니다.

당(唐)나라 희종(禧宗)때 (서기 870년대) 우우(于祐)라는 선비가 장안(지금의 서안)을 걷다 한 개울을 지나치면서 떠내려 오는 단풍잎을 운명처럼 발견! 거기에는 다음의 시가 써 있었습니다.

 

 

 流水何太急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 급한가          
 深宮盡日閑    깊은 궁궐의 하루는 지루하기만 하네.  
 殷勤謝紅葉    은근히 단풍잎에 부탁하여   
 好去到人間    내 마음을 세상에 전해 볼까   

 

   그 냇물은 황제의 궁을 통과하여 흐르는 것이었으므로, 구중궁궐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는 궁녀가 적은 글이었음을 짐작하게 되었겠지요.
우우는 이 나뭇잎을 집으로 가져와 보고 또 보면서 상상 속 궁녀에게 남모를 연모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외롭구나,  젊고 아름답고 사랑을 받기만 기다리고 있구나 등등.
한 번도 본적 없는 궁녀를 마음속으로 그리워만하던 우우는 결국 상류로 올라가 나뭇잎에 다음과 같이 답장을 적어 띄워 보내기에 이릅니다.

 

 

 曾聞葉上題紅怨    일찍이 낙엽 위에 애끓는 정념을 지었다고 들었는데,
 葉上題詩寄阿誰    낙엽 위에 시를 지어 누구에게 부쳤단 말인가?

 

   궁녀가 썼다는 시는 그저 답답함과 막연한 그리움 정도가 느껴지는 반면, 우우가 적은 답장은 왠지 애타는 마음을 담은 듯이 느껴지네요.

이후 우우는 과거시험에 번번이 낙방하고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황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삼천 궁녀를 쫓아내며 각자 혼인해서 살도록 했답니다.
우우가 신세지고 있던 집에 우연히도 궁녀 가운데 한 사람인 한씨 부인이 머물게 되었고, 우우는 미모에 재력도 있던 한씨 부인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얼마 후 한씨 부인이 우우의 책상에서 시가 씌어 있는 바로 그 낙엽을 발견하고 “이것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요?” 묻자, 우우가 사실대로 말했답니다. 그러자 한씨 부인이 대나무 상자에서 우우가 쓴 시가 있는 단풍잎을 꺼내 보여 서로 놀라움과 감격을 나누었겠지요... 이후는 해피엔딩.

 

   이 이야기를 그린듯 보이는 민화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 민화대련은 2011년에 있었던 마이아트 옥션 경매에 나왔던 작품입니다. 왼쪽 그림을 보면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개울물을 내려다보는 여인. 그리고 개울물 위에는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그려져 있습니다. 쌍으로 된 오른쪽 그림은 짝을 만난 이후가 아닐까요? 각자 손에 단풍잎 하나씩을 들고 있었더라면 더 확실했을 듯 합니다.

 

 

 

 

 

 

   이 도자에 ‘신안’이라는 번호가 따라다니는 것은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유물이기 때문임을 짐작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이것은 1323년 경 중국 장시성 “경덕진요”라고 불리는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이러한 모양의 접시는 매우 희귀합니다.

 

 

 

 

 

 

   신안해저유물은 청에서 일본으로 가다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된 배에 실려 있던 것들이지요. 해저유물 중에서 이 접시의 다른 쌍이 발견되지는 않았으나, 최초에 오언절구의 나머지 두 줄이 있는 접시도 분명히 함께 만들었을 겁니다.
또 하나의 접시를 발견하여 한 쌍이 맞추어진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 유리홍
도자기 유약밑 밑그림의 일종.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시작된 것으로 청화(靑華)자기식과 같은 기법이다. 구리 계통의 채료를 쓰며 홍색으로 발색된다.  송 ∙ 명대에서는 진사(辰砂)라 하였다.

 

-참고할 책
『국립중앙박물관 명품선집 18 신안선과 도자기길』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15.12.17.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