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박물관 개관80주년 - 조선백자전

2015. 12. 19. 01:48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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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박물관 개관80주년 - 조선백자전

 

 

 

전 시 명 : 이대박물관 개관 80주년 - 조선백자전
전시기간 : 2015.5.27.-2016.1.30.
전시장소 : 서울 이화여대박물관

 

 

 



 

   요즘 사회가 그런 것처럼 대학도 격랑처럼 몰려오는 시류에 마구 흔들리고 있다고 전한다. 실적에 대한 압박과 구조 조정과 같은 찬바람 이는 단어들이 일반 사회와 다를 바 없이 거론된다는 전언이다. 돈이 되는 사일이나 업적이 되는 프로젝트에 치중할 뿐 그 외에는 오불관언이라는 말도 있다. 형편이 형편인 만큼 수십 개 되는 전국의 대학박물관 가운데 활동다운 활동을 보이는 곳은 실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 역시 안을 들여다보면 활동 중이란 팻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박물관은 깊은 산속의 뻐꾸기 소리가 들릴 것처럼 한산해 그저 숨만 쉬고 있다고 해야 하는 쪽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장 자료의 수준이나 그간의 기획 내용으로 봐서는 안타까움이 앞서는 곳도 있는데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됐는지 크게 봐서는 불편하기만 한 마음뿐이다.  

 

 

   화여대박물관이 개관 80주년특별전으로 열고 있는 ‘조선백자’전이런 사정 가운데 응당 괄목상대해야 할 전시가 아닐 수 없다. 특징이 없는 대학박물관 중에서도 이대박물관은 일찍부터 도자기 수집과 연구로 특화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다분히 김활란 총장 시대에 어려운 재정여건 속에서도 도자기 수집에 힘을 기울인 비전이 계승된 것이다. 

전시는 조선시대 백자에 담긴 주요한 상징적 의미를 학술적으로 재정리해보는 의도로 꾸며졌다. 그 외에도 개관 80주년을 축하한다는 뜻에서 국내 주요 대학, 사립 박물관들이 대표작이 찬초 출품해줘 하이라이트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는 성공적인 전시라 할 수 있다. 

비슷한 것들을 늘어놓고 1, 2, 3등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다분히 속물(俗物)적 취향일 수 있다. 그렇기는 해도 이 전시에는 백자 각 장르의 1등이 될 만한 것들이 모두 모였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혹시 모르겠다. 박물관에 밤이 찾아와 모두가 돌아가고 텅 빈 전시장에 아무도 없으면 홀 한복판으로 도자기들이 나와서 이렇게 제 자랑을 펼치지 않을 런지도. 

 

 

 


백자양각청채 송호문 지통 조선 높이 16.7cm 


 

 

   내 이름은 지통(硯滴)이외다. 덩치로는 깜냥이 안 되오 만은 조선시대 백자 가운데 버라이어티로 말하자면 문방구(文房具)를 따라올 만한 것이 없소이다. 일본의 이토 이쿠타로(伊藤郁太郞)이란 유명한 연구가도 ‘조선 백자 가운데 다른 나라와 달리 특별히 발전한 게 문방구‘라 한 것처럼 이쪽이 조선 백자를 대표한다 할 수 있을 것이오. 내 말을 해서 좀 뭣하기는 하지만 그런 문방구 중에는 내가 덩치가 큰 편이올시다. 

 

 

 



백자 철화매죽묵문시명 호 17세기 높이 3.53cm 

 

 


   좋은 말씀입니다. 도자기는 대개 부엌세간 치부를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문아(文雅)한 선비들도 도자기를 즐겼지요. 나는 항아리이기는 하지만 보통 항아리가 아니올 습니다. 선비들이 시회(詩會)를 즐기면서 나를 곁에 두고 함께 풍류를 누렸습니다. 그래서 내 몸에는 월사 이정구(李廷龜 1564-1635) 대감이 술자리에 읊은 시가 한 수 적혀 있습니다. 얼마나 알아들으실지 모르지만 내용은 이렇습니다.     

 

 

  
守口能天吐     말은 삼가지만 능히 천하를 드러내고
隋時任濁淸     때에 따라 탁하고 맑음을 따르네 
中處足容物     몸이 비어 족히 만물을 담을 만하고
質白見天性     질이 희니 천성이 드러나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문인 도자기의 대표급은 충분이 되고도 남습니다. 

 

 



백자 철화운룡문 호

17세기 높이 45.8cm 보물 645호 


 

 

   문인 도자기의 대표라 하심은 틀린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백자철화운룡문호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도 좋지만 역시 문양하면 용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조선에서 왕은 사대부 가운데서  으뜸으로 쳤고 군자 중의 왕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왕이 납신 궁중 연회에 쓰인 항아리입니다. 서열을 따지자면 사대부보다는 급이 하나 위라고 할 수 있지요. 

 

 

 

 

      


백자 청화운룡문 호

18세기전반 높이 47.2cm 삼성미술관 리움 


 

 

   철화운룡문호님의 말씀은 백번 지당(至當)합니다. 조선은 왕과 선비가 동락(同樂)했다고 하지만 역시 왕은 왕이지요. 그런데 철화문님께서 하나 오해하고 계신 것이 있는 듯합니다. 철화란 임진왜란으로 인해 청화(코발트 안료)를 구하지 못한 시기에 부득이 썼던 것이기에 위란지절(危亂之節)를 이겨낸 공로는 십분 있더라도 말하자면 청화에는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소개가 늦어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는 백자청화운룡문 호라고 합니다.      

 

 

 


    

 
백자 철화포도문 호

18세기 높이 53.5cm 국보 107호

 


 

 

   제공(諸公)께서 하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 얘기에 앞서 무엇보다 먼 길을 마다않고 저희 잔치에 친히 왕림해주신 일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는 이 집을 대표하는 백자 철화포도문 호입니다. 이 자리는 즐겁고 유쾌한 잔치의 자리입니다. 어찌 등급이나 우열을 놓고 구론(口論)을 벌이겠습니까. 돌이켜 보건대 조선 백자는 위로는 군왕에서 아래는 민간의 백성까지 모두 제각기의 필요와 소용(所用)에 따라 만들어졌고 쓰여 왔습니다. 

 


   개중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철화도 있고 청화도 있으며 또 무문(舞文)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다양한 저희 모습을 둘러보면서 백자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게 될 수 있는 여러 공들이 지니신 크나큰 위덕(威德)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다시 풍악이 울리고 있습니다. 작은 마음일랑 접어두시고 그저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실제 한 밤중에 이런 얘기는 했을지 어땠을지는 알 수 없으나 전시장에 가보면 이와 비슷한 느낌은 충분히 맛볼 수 있다.(y)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5.12.19 0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