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위엄 백자 쌍용준 5 - 15세기 후반 스타트

2015. 12. 20. 21:05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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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의 위엄 백자 쌍용준 5 - 15세기 후반 스타트

 

 

4. 조선시대 龍樽의 전개

 

1)조선전기, 15-16세기의 청화용준
   왕실과 중앙관청에서 쓸 백자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일은 사옹원 분원 임무였다. 그중에서도 연향(宴享)에 대비하여 특별히 새로운 용준이 필요할 때 왕실 소속 도화서 화원을 광주 분원 번조소(燔造所)에 파견해 청화로 그린 용준을 제작하는 것가장 중요한 임무였을 것이다. 대형 용준은 단순히 일회용이라기보다 사정에 따라 몇 년, 또는 그 이상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최상급의 의기(儀器)이기 때문에 제작 수량도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대형 용준의 수량이 적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 1-1 <백자청화 용준> 부분 명 선덕(1426-1435)

높이 52.0cm 이데미츠미술관 

 

 


   대형 용준은 조선 건국후 15세기 중기에 편찬한 예서에서 규정한 형식을 기준으로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예서에 기록된 두 가지 형식은 『세종실록』오례의(1451년)에 실린 도면과 유사한 중국 선덕연간(宣德, 1426-1435)의 청화용준(그림 1-1) 계통과 동국대학교박물관소장<백자 철화송죽문 준>(1489년, 국보176호)의 형태와 거의 유사하고 『국조오례의서례』(1474년)의 도면과 같은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림 1-2 <유점사동종> 부분 15세기 높이 67.0cm 국립춘천박물관
그림 1-3 <백자청화용병> 부분 15세기 높이 25.0cm 호암미술관

 


 

   조선전기에 제작된 백자 오조용준실체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조용의 모습은 15세기 제작으로 알려진 <금강산 유점사 동종(銅鐘)>에 새겨진 부조의 사례를 포함해 몇 점의 동종에 그 모습이 나타나있다. <유점사 동종>에 새긴 오조용의 대체적인 자세와 세부 표현(그림 1-2)은 호암미술관 소장 <백자 청화운용문 병>(그림 1-3)에 보이는 얼굴과 박산형 이마, 뿔, 뒷머리, 발가락은 물론 발꿈치에서 솟아 머리 뒤로 나온 서기(瑞氣)와 뭉게구름의 형태 등의 모습과 대부분 유사해 동일한 유형으로 판단되며, 단 이 병의 운용문의 발가락이 삼조(三爪)인 것만 다르다. 

   물론 특수성을 갖는 불교 장엄구에 적용된 오조용와 명 황제가 전용하는 오조용의 의미는 각각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조오례의서례』에 실린 도면에서 보는 오조용의 존재와 광주 우산리 9호 요지에서 출토된 용준 조각에 남은 발가락의 부분으로 추정한 전체 모습은 오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조선 15세기 후기부터 발가락 다섯 개를 그린 청화 용준이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세종실록』「오례의」에 실린 도면 및 형태와 용의 그림이 유사한 일본 이데미스(出光)미술관 소장의 <백자 청화용준>이 높이 52㎝이며, 동국대박물관 소장의 <백자 청화송죽문 준>이 높이 48.7㎝ 그리고 확인된 최초의 용준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분청 상감용준>이 높이 49.2㎝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세종, 세조 이후 태평성대가 이어지던 15, 16세기에 60-50㎝에 이르는 대형 준에 오조의 쌍룡을 그려 넣는 일이 관례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 1618년 광해군이 지적하고 대책을 논의하면서 ‘임진년 왜란을 겪으면서 모두 없어졌다’고 하는 내용의 조선전기 용준의 실체를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그림 2-1 <백자청화용준> 16세기 높이34.5cm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그림 2-2 (도2-1)의 부분


 

 

   현재 조선전기로 추정하는 용준은 오사카의 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된 사조(四爪)의 용준 한 점만이 알려져 있다. 규모도 대형이 아닌 높이 34.5㎝에 불과한 <백자 청화용준>(그림 2-1)이지만 이 용준은 숙련된 성형 기술과 완전한 표면정리 상태로 보아 최고 수준의 제작 체계를 거친 작품으로 보인다. 

   전면에는 훈련된 화원의 공필(工筆)로 사조의 용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전체 몸짓과 얼굴 모습, 여의두형의 돼지 코, 꼭 다문 입과 송곳니, 머리 갈기와 수염과 촉수, 윤곽이 또렷하고 힘 있는 뭉게구름 등에서 앞서 본 15세기의 용 그림과 대체로 유사한 반면, 전에 없던 네모난 앞니 두개와 국화꽃 같은 얼굴 반점이 나타나 15세기와는 다른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다.(그림 2-2) 

   그리고 조선전기 청화백자에 보이는 대표적 종속문인 변형연판문과 버들잎 모양의 연판문이 어깨와 굽 주위에 둘러져 있다. 이처럼 사조용 한 마리를 그린 중・소형 용준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적 요소들은 조선전기의 대형 쌍용준을 표준 모델로 한 위계 질서를 고려하면서 한 단계 낮춘 중형의 한 마리 용 그림으로 번안된 결과로 볼 수 있다.

 

 

2)조선후기, 17세기의 청화용준

   임진・정유 양란 이후 시급한 국토재건의 와중에서도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대형 쌍용준의 확보는 시급한 문제였다. 광해군 10년(1618) 연향에 쓰는 화준(畵樽, 용준)이 난리 때 모두 없어져 임시방편으로 가화(假畵)를 사용하였는데 사옹원은 그 원인이 회청 채료를 수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말의 의미는 화준(연향용 용준) 제작의 3대 조건 가운데 대형 백준은 항상 제작 가능하고 왕실 화원의 파견도 문제되지 않지만 오직 그림 그릴 청화 안료가 없어 용준 등을 제작하지 못하는 사옹원의 난처한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 볼 수 있다. 청화안료 무역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온 사옹원은 그 다음 해 광해군 11년(1619)에 비로소 청화안료를 구입하였기 때문에 왕실을 위한 쌍용준 제작도 지체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때 새로운 쌍용준 제작의 모델은 1474년 간행된 『국조오례의 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 실린 도면을 기준으로 하고 민간에서 구해 사옹원이 보관해 온 16세기 용준이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1) 법도와 정통의 계승을 중요시하는 왕실에서 왕을 상징하는 용준의 형태를 전격적으로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현재 남아 전하는 조선후기의 용준으로 쌍용을 그린 대형 준 십 수 점은 조선전기의 조형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 3-1 <백자철화용준>

17세기 전기 높이 41.5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러나 이제까지 17세기 청화용준의 존재 가능성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왜란 이후 조선말기까지 300년 동안 제작된 대형 쌍용준은 수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기준으로 삼을만한 분명한 편년자료가 없어 그 실체 파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청화 용준의 실정이 미미한 반면 17세기 약 백여 년 동안 제작한 철화 용준의 경우는 현존하는 작품이 매우 풍부하고 제작시기에 대한 윤곽이 비교적 명확하며 또한 형식 변화가 쉽게 눈에 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끌면서 ‘17세기는 철화용준의 시대’라는 인식을 높게 했다. 아마 이러한 철화용준에 대한 인식이 17세기를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청화용준의 존재가 18세기로 물러나지 않았나 하는 우려 또한 없지 않다. 

 

 


그림 3-2 <백자철화용준>

17세기후기 높이 35.8cm 호암미술관

 


 

   그러나 철화용준은 청화용준에 비해 규모도 작고 제작 솜씨도 다소 미진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그림 3-1,2) 철화용준은 사조 또는 삼조의 용을 한 마리 그린 것이 대부분이며 그림 자체도 정통 화법을 교육받은 왕실소속 화원의 솜씨라기보다 분원소속의 화공 솜씨로 보인다. 이러한 철화용준의 제작 전반에 걸친 요소들과 최상의 위치인 청화 쌍용준의 경우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17세기 용준의 실상이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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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광해군 10년(1618) 윤3월4일 기사로, 사옹원은 왜란 이후 화준이 남아있지 않다는 내용과 함께 前현감 박우남이 바친 화준을 사옹원에 보관한다고 보고하자 왕은 없어진 화준의 뚜껑 제작을 논의・처리하라고 명하고 있다. 『광해군일기』,권127, 10년 윤4월 3일 계유조 참조.   

 

 

 

 

글/사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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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0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