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위엄 백자 쌍용준 10 - 18세기의 모습 (3)

2015. 12. 23. 18:30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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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의 위엄 백자 쌍용준 10 - 18세기의 모습 (3)

 

 

      몸통이 커지고 살집이 붙은 용 표현의 등장

 

 

   나머지 두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청화 쌍용준 ③> (그림 2-2)과 국립고궁박물관의 <청화 쌍용준 ④> (그림 2-3)이다. 이 두 점은 앞서의 용준과 달리 얼굴 전면에 옅은 담청을 칠한 뒤 국화 반점을 찍은 것이 눈에 띤다. 앞발 무릎에서 올라 온 상서로운 서기(瑞氣) 역시 가지가 셋에서 둘로, 둘에서 하나로 줄었다. 검형의 연판문 띠 밑에 여의두와 화판문 띠는 보다 더 장식화되고 있다.

 

 
(그림 2-2) <백자청화 쌍용준 ③> 17-18세기 높이 53.9㎝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2-3) <백자청화 쌍용준 ④> 17-18세기 높이 57.7㎝ 국립고궁박물관


 

 

   첫번째 유형의 용준이 역삼각형의 몸통에 허리와 저부가 늘씬하고 밑으로 벌어져 전반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해 두 번째 유형은 어깨에서 배, 허리에 이르는 몸통이 둥글게 팽창해 비대해진 형태에 상대적으로 짧고 왜소한 저부가 이를 받치는 형상이다. 

   몸통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면적이 늘어났는데 여기에 살찐 용을 꽉 차게 그렸다. 또 아랫부분이 왜소해지면서 검형의 연판문 띠도 짧아지는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밑으로 가면서 조금씩 벌어져 안정감을 보이던 하부의 측면선 역시 거의 수직에 가깝게 변하고 있다. 입체와 평면 조형에 있어 이러한 변화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일반적인 용준의 형태 변화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전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림 3-1) <백자청화 쌍용준 ③>(그림 2-2) 부분

 


 

   이미 지적한 것 같이 두 번째 유형의 쌍용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특징은 작은 삼각형 앞니이다.(도3-1참조) 이 삼각형 앞니는 앞 시기는 물론 이후 시기에도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것으로 두 번째 유형에만 나타나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경덕진 백자의 용 그림 가운데 이러한 형태의 삼각형 앞니를 그린 것이 가정년간(1522-1566)에 처음 나타나고 있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황적유 용문관> (그림 3-2)에 그려진 황색 용의 자태는 첫번째 유형의 용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 3-2) <황적유 용문관> 명 가정연간(1522-1566)

높이 37.0㎝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그러나 여의두형의 큰 돼지코를 비롯한 용 얼굴의 인상, 꼬리의 화려한 장식, 아랫부분에 보이는 파도와 수석 등은 조선중기의 용 그림과 차이가 커 관련성을 거론하기 어렵다. 단지 앞니만은 똑같은 작은 삼각형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삼각형의 작은 앞니를 보이는 용 다음으로 머리 갈기에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된다. 이제까지 보아온 용의 머리 갈기는 전부 앞으로 빗어 올린 모습이었다. 따라서 전방을 향해 용트림하는 자세에 비추어보면 사실상 머리 갈기의 방향은 정반대였다. 

 

 

 


(그림 4-1) <백자청화 쌍용준 ⑤>

18세기 높이 52.4㎝, 국립광주박물관

 


   그런데 이제부터는 머리 갈기가 양쪽으로 나뉘면서 뒤로 휘날리는 모습으로 나타나 용의 모습이 전반적으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준다. 대표적인 작품은 국립광주박물관의 <백자청화 쌍용준 ⑤> (그림 4-1)이다. 이 용준의 준의 형태는 국립고궁박물관의 <청화 쌍용준 ④> (그림 2-3)와 유사하지만 여의두문과 검형 연판문은 물론 등지느러미와 가시 및 몸 비늘과 얼굴의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림 4-2) <숙종 명릉산릉도감 의궤(肅宗明陵山陵都監儀軌, 1721)> 찬궁동면부(欑宮東面部) <청룡도> 국립중앙박물관
(그림 4-3) <청화녹채 용문반>청 강희연간(1662-1722) 높이 32.0㎝, 제네바 바우어 컬렉션 

            

 

 

   이 용을 자세히 보면 양쪽으로 갈라진 머리 사이로 뒷목이 또렷이 보이는데 이러한 표현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肅宗明陵山陵都監儀軌, 1721)> 찬궁동면부(欑宮東面部)의 <청룡도> (그림 4-2)의 머리 갈기와 뒷목 표현과 거의 유사하다. 또 청의 강희연간(1662-1722)에 제작된 <청화녹채 용문반(靑畵綠彩龍文盤)> (그림4-3)에서도 같은 모습이 확인된다. 

   이 시기의 중국 용의 표현은 두 갈래의 머리 갈기가 나온 후 완전히 뒤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변하는데, 그 변화 과정이 조선 용준의 경우와 매우 유사해 앞으로 경덕진 백자와 관련해 광범위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15.12.23 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