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준의 문향] 24, 25, 26, 27 / 긴내 김태준

2016. 1. 1. 01:47잡주머니

 

[김태준의 문향] 24, 25, 26, 27 /  긴내 김태준

 

行雲流水 2010.04.15 20:42

 

      

 [김태준의 문향] <24> 상촌 신흠의 군자·소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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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촌 신흠(象村申欽ㆍ1566-1628)은 조선조 중기의 뛰어난 문인학자로, 월사 이정구(月沙 李庭龜)ㆍ계곡 장유(谿谷 張維)ㆍ택당 이식(澤堂 李植)과 함께 문장사가(文章四家)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다. 벼슬이 영의정에 오른 정치가이면서, 상수학(象數學)과 유ㆍ불ㆍ도를 넘나드는 회통사상(會通思想)으로 심학(心學)을 종합한 철학자였다. 상촌이 52살 때 유배지에서 썼다는 저술 가운데 <구정록(求正錄>은 옥사(獄事)로 쫓겨나고 유배당한 10년 동안의 가난과 고통 속에서 쓴 산문집으로, 특히 심학(心學)과 노장(老壯) 사상으로 현실 정치사회를 비판하는 글들이 격조 높다.

   "사물의 이치를 두루 궁구(窮究)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나의 마음에 대해서는 스스로 깨달아 이를[了達] 수 있으니, 마음을 깨달아 이르는 것이 바로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모습이고,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며, 알 수 있는 것은 그 처음이고, 알 수 없는 것은 그 마지막이며,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바깥이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안이다. 속마음이 바르고 안의 행실을 닦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면, 군자(君子)의 도가 어지간히 성취되었다고 할 만하다." (<국역 상촌선생집>51권, <구정록>)

조선 전기와 후기가 교차하는 시대를 살며, 이 글은 심학으로 이룩되는 학문 방법과 반성적 자세를 논했다. 7살의 어린 나이로 양친을 잃고 고군분투하며, 스스로 터득한 삶과 학문의 반성적 지혜들이 이 글들에 갈무리되어 있다. 벼슬에서 쫓겨나 오랜 동안 전원에 살면서 현실 생활을 정리한 글이라고 하며, 사물을 두루 살펴 심학의 이치로 군자의 도를 밝혀 주었다.

 


   이렇게 사물의 찌꺼기인 문자를 벗어나, 사물 그 자체에서 이치를 깨닫기를 촉구하는 뜻은 <잡저(雜著)><야언(野言)>등 여러 글에서도 군자/소인론으로 이어졌다.

  "자기의 허물만 보고 남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군자이고,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의 허물은 보지 않는 이는 소인이다. 몸을 참으로 성실하게 살핀다면 자기의 허물이 날마다 앞에 나타날 것인데, 어느 겨를에 남의 허물을 살피겠는가? 남의 허물을 살피는 사람은 자기 몸을 성실하게 살피지 않는 자이다. 자기 허물은 용서하고 남의 허물만 알며, 자기 허물은 묵과하고 남의 허물만 들추어낸다면 이야말로 큰 허물이다." (<검신편(檢身篇)>)

"시골 마을에서 오막살이 하면서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다니는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친구를 구할 적엔 먼저 그 사람됨이 괜찮은가를 살펴, 어질면 사귀고 그렇지 않으면 사귀지 않는다. 그런데 하물며 한 나라가 나라 사람이 모두 추하게 여기는 자를 관리로 앉혀 놓고 웅대한 계획을 세우게 하다니." (<사습편(士習篇)>)

17세기 초반 조선 주자학의 황금기를 나무랐던 상촌의 시대비판은 지금 우리의 소인 문명에도 통렬한 꾸짖음이다.

 

 

 

 [김태준의 문향] <25> 천하 명기 황진이의 시조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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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黃眞伊, 1522-1566?)라면 천하 명기(名妓)로 전설적 이름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사를 대표하는 여류 시조 작가로 평가가 높은 인물이다. 용모와 재주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성질이 고결(高潔하며, 스스로 "박연폭포(朴淵瀑布)와 서화담(徐花潭)과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자부했다는 기품 또한 높았다.

신분이 비록 기생이었지만 글공부를 좋아했고, 덕이 있는 선비들과 널리 사귀며 산수 사이에 놀기를 좋아하여 일찍이 여성으로 금강산에 올랐다. 죽천 이덕형(竹泉李德泂,1566-1623)이 갑진(甲辰, 1604)년에 암행어사로 송도에 가서 보고 들은 황진이의 명성도 높아 <송도기이(松都記異)>에는 '선녀'이며 '천재'로 칭송했다.

황진이에게 헌사된 이른 칭송에도 불구하고 남아 전하는 문학작품이라고는 시조집 <청구영언>과<해동가요>에 오른 시조 4수와 한시(漢詩) 2수가 고작이다. 그러나 물론 일당백으로 이 시편들이 모두 천추에 빛날 천품(天稟)이어서, 이것만으로 바로 우리 시조사의 한 남상(濫觴)이며, 역사이며 교과서이다.



   일찍이 현대 시조의 아버지라 할 가람 이병기(伽藍李秉岐,1891-1968) 선생이 시조 작가로서 자기의 스승은 이름이 좀 길다며, 황진이의 다음 시조 한 수를 두세 번 읊었다는 일화도 있다.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든가/ 이시라 하드면 가랴마는 제굿하야/ 보내고 가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가람은 스스로 시조 가운데 이 작품 한 수만큼 형식과 기교와 구성을 모두 갖춘 것을 못 보았다고 하고, 그 다음으로 송강 정철(松江鄭徹,1536-1593)에게서는 기개(氣槪)를 보았다고 했다(동아일보, 1938. 1. 29)

실제로 우리 시가의 3대 작가라 할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孤山尹善道)와 노계 박인로(蘆溪朴仁老) 등이 모두 황진이의 뒷시대에 나왔으며, 이들에게서는 황진이의 시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날 밤이어든 구뷔 구뷔 펴리라. (황진이)

내 마음 버혀 내어 저 달을 맹글고져/ 구만리 장천(長天)에 번듯이 걸려있어/ 고운 님 계신 곳에다 비취어나 보리라. (정철)

잔 들고 멀리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운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 (윤선도)

외오 두고두고 그리워하던 그대/ 다만 믿어 오기 고운 그 맘이러니/ 이제야 보는 얼굴도 맘과 다름없구나. (이병기)

황진이 시조의 <님>의 정서만으로도 <고은님>과 <그리던 그대><고은 맘>으로 정송강과 윤고산을 거쳐 가람과 만해(卍海)의 '님'에 이른 우리 시의 심상(心象)의 전통을 볼 수 있다.

 

 

 

[김태준의 문향] <26> 이율곡의 '학교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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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 이이(栗谷 李珥ㆍ1536-84)는 16세기 후반 이퇴계(李退溪)와 함께 조선 사상계의 두 거장이면서, 임진왜란 전 폭풍전야의 조선의 사회 모순에 끊임없이 대안을 토로하고 몸소 활동했던 문신이며, 철학가이며 교육가였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끈 유학사상에서 가장 두드러져 있지만, 특히 성인(聖人)의 도를 편 <성학집요(聖學輯要)>와 교육사상을 요약한 <학교모범(學校模範)> 등 교육관련 저서에서 실제적이고 주목할 업적들이 적지 않다. 그 중 <학교모범>에서는 풍습이 경박해지고 양심이 마비되어 가는 사회를 비판하고, 뜻 세우기[立志]로부터 독서와 학교생활에 이르는 16가지 구체적 덕목을 논하여 정의사회 구현의 꿈을 펼쳐 보였다. 여기에 <의를 지키는 일[守義]>의 한 대목을 보인다.


   "배우는 자는 무엇보다도 의(義)와 이(利)의 분별을 밝게 하여야 한다. 의란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도둑의 무리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으랴? 선을 행하면서 이름을 구하는 자는 또한 이(利)의 마음이니, 군자는 그것을 구멍을 파는 도둑보다도 더 심하게 보거늘, 하물며 불선(不善)을 행하면서 이득을 보겠다는 자이랴? 배우는 자는 털끝만큼의 이욕이라도 가슴 가운데 머물러 두게 해서는 안 된다. 옛사람은 부모를 위해서 노무(勞務)에 종사해서 품팔이와 쌀을 짊어지기도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개결(介潔)하여 이(利)의 더러움에 물드는 일이 없었건만, 오늘날의 선비는 온종일 성현(聖賢)의 글을 읽고도 오히려 이익을 버리지 못하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국역 율곡집>I <학교모범>)


   '의'란 마땅하다는 뜻이며, <의를 지키는 일>을 강조하는 것은 "의가 곧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성학집요>Ⅱ). 교육을 말하면서 강조하는 '의'는 옮음, 곧 정의(正義)'이며, 의리(義理)이며, 또한 '의미'의 뜻이 있다. 이것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인격의 바탕이며, 따라서 사람을 키우는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그 자체로서 목적이다. <행장>에 따르면, 율곡은 "한결같이 성인(聖人)을 표준으로 삼아, '경(敬)'과 '의'를 아울러 힘써서, 가르침 없이 스스로 학문을 이루었다"고 했다.

 


   여기서 율곡이 '의'와 함께 '이(利)'를 말하는 데 주목할 일이다. <어록>에 따르면 "'의'와 '이'는 본디 하나였고, 옛날에는 선(善)을 행하면 복이 되었으며, 선은 이롭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뒷시대에 악을 행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이롭지 못한 세상이 되면서 의와 이가 나누어졌다"고 했다.

지금 세상은 정치가는 물론, 서울의 선출직 교육감과 백여 명 교장들이 사리(私利)를 탐하여 구속 혹은 입건되고,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지방 교육감은 사리를 위한 것이 아닌데도 고발당하는 현실이다. 더구나 학생들은 오늘도 '수단[利]'을 위해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실에서, 율곡 선생의 500년 전의 가르침이 '정의'를 세우는 우리 시대의 <학교모범>으로 새삼 절절한 까닭이다.

 

 

[김태준의 문향] <27> 정철의 '관동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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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93)은 임진왜란 앞뒤 시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한국 시가문학사를 빛낸 대표적 문인이다.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사미인곡(思美人曲>'등 4편의 가사(歌辭)와 단가[時調] 74수를 남긴 조선조 제일의 시인으로, 임억령·김인후·기대승의 성산가단(星山歌壇)에서 배우고, 호남가단(湖南歌壇)의 중심이 된 문인이다. 특히 그의 국문 시가는 우리말의 구사와 조어에서 뛰어나서 "악보(樂譜) 가운데 으뜸 노래[絶調]로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에 비견되고(홍만종;<순오지(旬五志)>), 혹은 "동방의 <이소(離騷)>"(김춘택;<북헌집(北軒集)>) 로 굴원(屈原)에 비견된 평가를 받았다.

특히 '관동별곡' 은 송강이 45살 되던 해(1580)에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관동팔경을 구경하고 쓴 기행가사로, 294구로 쓴 장가이다.



"소향로 대향로봉 눈 아래 굽어보며/ 정양사 뒤 진헐대에 다시 올라 앉아보니

금강산  참 모습이 여기서는 다 뵈는구나. /어와 조물주가 야단스럽기도 야단스럽구나

날거든 뛰지 말거나 섰거든 솟지 말거나 / 부용을 꽂아놓은 듯 백옥을 묶어놓은 듯

동해를 박차는 듯 북극성을 괴고 있는 듯/ 높을시고 망고대 외로울 사 혈망봉이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아뢰려고/ 천만 겁 지나도록 굽힐 줄 모르는가

아아 너로구나 너 같은 것이 또 있는가." (<관동별곡> 일부, 풀어쓰기)



   금강산의 정맥(正脈)에 자리 잡아 볕 바른 곳 정양사(正陽寺)는 내금강의 40여 개 봉우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최고 전망으로 이름난 곳. 이 절 뒤 진헐대에 올라 앉아 금강산을 내려다보며 읊어낸 송강의 노래는 "이태백(李太白)이 다시 나서 고쳐 의론하더라도 여산(廬山)이 여기보다 낫단 말은 못하리라"고 했다. 겸제 정선(謙齋鄭敾, 1676-1759)이 1734년에 그렸다는 '금강전도'(국보 제217호)는 그림의 왼쪽에 무성한 숲이 어우러진 정양사와 진헐대를 배치하여 '관동별곡'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림 위에 붙인 제화시(題畵詩)에는 "만 이천 봉 개골산을 누가 참모습 그릴 건가?… 몇 송이 연꽃 해맑은 자태 드러내고 솔과 잣나무 숲에 절간은 가려있네"라 하였다.(유준영;<금강전도>해설 참조)

송강의 이 기행가사 또한 그보다 25년 앞서 나온 백광홍(白光弘,1522-56)의 '관서별곡'에서 영향을 받았고, 우리말을 맘대로 주물러서 구사한 솜씨는 그가 젊어서부터 익힌 호남가단의 시적 전통에 이어져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훈민가 제16')나, "한 잔 먹세거녀, 또 한 잔 먹세거녀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거녀..."('장진주사(將進酒詞)') 등 시조에서 더욱 빛났다.

보덕굴 벼랑 밑으로 이영로 박사를 따라 천연기념물 제232호 금강국수나무꽃을 찾던 내금강 기행을 떠올리며, 내외금강 길이 다시 열릴 날을 손꼽는다.

 

 

http://blog.daum.net/gbbae56/1180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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