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병인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로 조선 천주교회 제4대 교구장인 베르뇌(Berneux) 주교를 비롯해 프랑스 선교사 9명과 남종삼(南鍾三) 등 8,000여 명의 평신도가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때 박해를 피해 중국으로 피신한 리델(Ridel) 신부가 중국 톈진에 들어와 있던 프랑스 극동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이로 인해 그해 11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일어났다.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는 강화성을 점령한 뒤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자에 대한 처벌과 통상을 요구했다. 한 달간 강화성을 점령한 프랑스군들은 외규장각에 소장된 문화재를 약탈하기 위해 자료수집위원회까지 구성해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책과 유물의 목록까지 만들어 철저하게 약탈을 자행하였다.
- ▲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본천하여지도. 오길순 제공.
이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전적과 의궤 등은 1867년 해군성이 왕립도서관(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형식으로 넘겼다. 현재 프랑스국립도서관 지도부에 소장되어 있는 지도 가운데 ‘…b.chi.Tian xia yu di tu(天下輿地圖)’라는 제목의 지도가 소장되어 있는데, 재불 학자 이진명(李鎭明) 교수에 의해 이 지도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당한 것임이 밝혀졌다.
프랑스국립도서관 홈페이지 서지정보에는 이 지도가 1594년 왕반(Pan, Wang)이 제작한 것으로 나와 있으나, 실제 이 지도는 중국인 왕반(王泮)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제작된 지도임이 밝혀졌다. 지도 오른쪽 하단에 있는 설명주기 뒷부분에는 이 지도가 중국에서 제작된 ‘천하여지도(天下與地圖)’를 참조하여 조선과 일본, 유구의 지도를 그려 넣은 것이라는 조선 사람의 발문이 적혀 있다.
이 지도는 제목이 없어 부르는 명칭이 갖가지인데, 이 지도에 대한 논문을 쓴 한영우(韓永愚) 교수는 ‘한국본여지도(韓國本輿地圖)’, 이진명 교수는 ‘한국본 동아시아 지도’, 이와 유사한 지도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조선본천하여지도(朝鮮本天下輿地圖)’, 중국 문물출판사가 발간한 <중국고대지도집(명대)>에는 ‘왕반지여지도모회증보본(王泮識輿地圖摹繪增補本)’이라고 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본천하여지도’라 적는다. 지도는 가로 195cm, 세로 185cm의 큰 규격으로, 견지에 채색으로 필사되었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일본 교토시의 묘심사(妙心寺)와 궁내청(宮內廳)에 있는 1526년에 제작된 ‘혼일역대국도강리지도(混一歷代國都疆理之圖)’와 매우 흡사하다. 발문의 위치도 비슷하나 유구가 크게 그려지고 일본이 그려진 점이 다를 뿐이다.
지도 오른쪽 하단에는 오른쪽으로부터 중국의 행정구역 개요와 왕반의 지문, 조선인의 발문이 차례로 적혀 있고, 상단에는 명대 동북지방의 최고 군정기구인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가 관할하는 지명이 나열되어 있다. 왕반의 지문과 조선인의 발문에 따르면, 이 지도는 왕반이 지(識)를 쓰고 그의 벗 백군가(白君可)가 8폭 목판으로 간행한 여지도를 조선에 들여와 대명관제(大明官制)와 일통지(一統志), 중국의 행정구역 등을 참고하여 일부 지명을 수정해 필사한 뒤 조선과 일본, 유구 등을 그려 넣어 한 폭의 지도로 만든 것이다.
왕반, ‘마치 별을 뿌려 놓은 듯하다’ 감회 밝혀
한영우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 지도의 제작연대는 우리나라의 지명을 비정하여 1637~1644년 사이로 보았다. 또한 조선인 발문 서두에 ‘천하지도 한 본이 우리나라에 있었는데, 난리를 겪은 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天下輿地圖一本 舊行于國中 經變之後 不復見矣)’는 내용으로 보아 이 지도는 1636년 병자호란을 겪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지도가 그려진 범위는 북으로 몽고, 남으로 안남(安南),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황하의 발원인 성숙해(星宿海)로, 중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조선이 크게 그려졌다. 해안선과 하천은 사실에 가깝게 묘사되었고, 예의 황하는 황색으로 채색되었고, 바다는 마름모꼴의 능형(菱形)무늬로 묘사되었다. 또 조선 8도와 중국의 13성(省)의 군현(郡縣) 명에는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하여 행정구역을 구분하였다.
한반도의 모습은 조선 전기의 전국지도 계통으로, 특히 하천의 묘사가 매우 정확하다. 모든 산은 진녹색인 반면 백두산만 우뚝하게 흰색으로 그렸고, 그곳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이 발원한다. 백두산 남쪽으로는 크고 작은 산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 가운데 채색되지 않은 산에는 장백산(長白山)이라 쓰여 있다. 평안도 양덕(陽德)에서부터는 백두대간이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조선에서 제작한 지도답게 수도는 경도(京都)라 표기하고, 전국의 군현명 약 360개가 표기되었다. 또 지도에는 영토와 관련된 섬들이 모두 그려져 있는데, 두만강 하구에는 녹둔도(鹿屯島)가 있고, 동해에는 우산도와 울릉도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우산도의 ‘우(于)’자는 잘못 써서 ‘정(丁)’자가 되고 말았다. 압록강 하구에는 신도(薪島)가 있고, 서해안에는 백령도가 보이지 않고 대청(大靑)과 소청(小靑)만 황해도 서쪽에 그려져 있다.
일본의 모습도 그 당시로서는 꽤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대마도는 일본에 바싹 붙여 그려져 있고, 북해도를 호칭하는 이도(夷島)가 제 위치에 그려져 있다. 경도(京都)를 왜경(倭京)이라 표기하고, 에도막부(江戶幕府)의 소재지인 에도(江戶)가 표기되어 있다. 일본의 남쪽 먼 곳에는 산이 그려진 커다란 섬 두 개가 그려져 있다. 윗섬은 소유구(小琉球), 아랫섬은 유구국(琉球國)이라고 쓰여 있다. 유구를 이렇게 크게 묘사한 것은 조선과 중국의 밀접한 관계 때문일 것이다.
왕반의 발문에 따르면 중국의 행정 명칭은 양도(兩都, 북경과 남경) 13성(省)과 도성(都省)에 소속된 부(府) 152개·주(州) 240개·현(縣) 1,107개·위(衛) 493개·소(所) 2,854개, 그밖에 선위(宣慰)·선무(宣撫)·초토(招討)·안무(安撫)·장관(長官) 등 관청 218개가 표기되어 있다. 발문 끝에는 ‘마치 별을 뿌려 놓은 듯하다’고 지도를 본 감회를 밝히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천하여지도’와 같은 원도를 사용했거나 같은 계열의 지도로 판단되는 ‘조선본천하여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이 지도는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확산하기 위하여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601호로 지정되었다. 이 지도는 1402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더불어 조선의 동아시아 지도로 높이 평가되지만, 모두 국외에 소장되어 있어 못내 아쉽다.
필자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