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6>독일에서 찾은 용의 기운

2016. 1. 20. 14:05美學 이야기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6>독일에서 찾은 용의 기운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여래 감싸던 무량보주 성모 마리아도 감싸다

 

입력 : 2015-07-31 00:10 | 수정 : 2015-09-16 16:07

 

 

 

   "용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는가’라는 물음을 보주에도 다시 던진다. 조각 작품에서는 보주를 보석으로 나타내므로 구멍이 없다. 하지만 회화 작품에서는 구멍에서 무엇인가 나오는 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주는 만물생성의 근원이므로 그 광경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 것인가. 

 


 


 

 

 

   괘불(掛佛)부터 살펴보려 한다. 계룡산 신원사에는 길이 11.2m, 폭 6.9m의 큰 불화가 있다. 괘불이라고 부르는 이런 큰 불화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1664년 작품노사나불탱으로 괘불로는 꽤 이른 시기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괘불이 제작되기 시작해 중요한 불사(佛事) 때 대웅전 앞에 드높이 달아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떨었다.

괘불에 그려진 거대한 부처님은 조형언어로 설법하고 계신데 중생은 알아듣지도 읽어내지도 못한다. 이 괘불에서는 석가여래가 직접 설법하지 않고 노사나불이란 보신불(報身佛)로 나타나 설법한다. 

흔히 여래나 보살이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고 한다①. 동양의 미술사학자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보관도 서양의 미술사학자들은 그렇게 설명한다.  

 


   하지만 신원사 괘불은 물론 모든 불화의 보관은 보관이 아니다. 자세히 채색 분석하면 보주의 구멍에서 무수한 보주가 줄줄이 이어 생겨나는 극적인 광경을 볼 것이다(②, 부분 확대한 ③). 여래의 얼굴에서 사방으로 제1영기싹 다발이 나오고 다시 제1영기싹이 연이어 돋아나는 것을 보주가 줄줄이 나오는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간중간 큰 꽃 같은 것이 보인다. 이것도 꽃이 아니라 중앙의 보주가 무한히 확산하는 모습이다. 꽃잎처럼 표현했지만 그 작은 꽃잎 같은 것에 반드시 작은 흰 점을 찍었다. 구멍에서 나오는 작은 보주다. 중앙에는 보주도 있지만 제1영기싹도 있어서 두 가지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큰 꽃 같은 모양도 무량보주다. 그 사방에서 제1영기싹에 이어 보주가 나오기도 하고, 바로 보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연이은 잘디잔 보주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줄 같다. 실제로 작은 작품에서는 줄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연이은 보주로 읽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부분 확대한 것을 보면 분명히 보인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영락장식(瓔珞裝飾), 즉 구슬 장신구라 부르지만 결코 장신구가 아니다. 

   여래의 본질을 깨달으면 보관이란 갖가지 영기문, 특히 제1영기싹들과 보주들이 여래의 머리에서 발산하는 장엄한 광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래가 무슨 호화스런 보관을 쓰겠으며, 온몸을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겠는가. 모두가 온몸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영기문이다. 식물 모양 영기문도 많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크고 작은 무량한 보주의 엄청난 확산이다. 온몸 전체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을 이 글에서는 보여 주지 못하니 상상하기 바란다. 

어느 교수가 독일 여행을 하다가 필자에게 사진을 보냈다. 독일 뮌헨의 작은 박물관에서 찍었다는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④. 크기가 30×40㎝ 정도인 17세기 작품으로 온통 보주가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광배는 갖가지 형태와 색의 큰 보주를 둘렀는데 보주들에서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광배 윗부분에서는 화려한 보석들로 이루어진 세 군집의 보주가 세 방향으로 발산하고 있다. 마리아의 머리는 가운데 보라색 큰 보주를 중심으로 수많은 흰색 보주로 가득 찼으며, 양쪽 어깨에서도 흰색 보주들이 내려온다. 

 

 

   신원사 여래상의 줄줄이 이어져 내려오는 보주들의 전개와 같지 않은가. 아기 예수도 머리와 온몸이 보주에 파묻힐 지경이다. 마리아상 배후의 식물 모양 영기문은 고구려 벽화 영기문과 같다. 프레임 내부는 흰색 보주로 둘러서 마리아 모자상의 ‘보주화생’을 보여 준다. 

넓은 테두리의 네 귀와 각각의 중간에 우리의 무량보주처럼 꽃 같은 무늬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놀랍다. 꽃으로 보이나 무량보주를 압축해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조형이다. 회를 달리하여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다. 나아가 그 무량보주에서 발산하는 덩굴 모양 영기문이 우리의 영기문 전개와 똑같지 않은가.


   서양의 기독교미술 역시 동양의 불교미술에서 보이는 영기문의 전개 원리와 똑같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⑤. 그런데 동서양의 학자들은 보주를 화려한 값비싼 보석으로 알고 있으니 이 동서양의 두 작품을 전혀 올바르게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두 작품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불화와 성화가 그러하니 새로운 해석은 세계의 조형을 올바로 밝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필자는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BC 99~BC 55)의 철학적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흥미 있게 읽었다. 그는 에피쿠로스(BC 341~BC 270)의 철학을 미묘한 점에 이르기까지 시로 재현하려 하였다. 그는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졌으며, 더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조각들이 빈 공간을 떠다니는 것이라고 믿은 원자론자였다. 이 서사시는 매우 난해하여 만일 보주를 밝히지 못했다면 정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린 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란 책은 30대 후반의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가 남부 독일의 구석진 수도원의 서가에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하여 필사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당시로는 가장 위험한 사상인 무신론이 숨어 있는 이 책의 극적인 발견이 기독교 교리에 의해 인간의 사상과 자유가 속박당한 암흑의 중세를 마감하고, 재생의 르네상스 태동의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근대의 탄생’은 원래 제목이 ‘일탈’(Swerve)이었다. 책의 발견과 필사가 시대를 뜻밖의 방향으로 일탈하게 만들어 르네상스가 태어났다는 의미다. 무릇 일탈하지 않으면 위대한 시대는 오지 않는다.



   에피쿠로스원자를 입자라고 부르며 설명했다. 신원사 괘불의 보주에서 보는 작은 입자의 전개가 요즈음 물리학에서 밝힌 원자의 구성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여래와 보살이 보주의 집적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알아낸 필자는 원자의 구조는 물론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걸이의 무량보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⑥. 바로 핵의 구조와 같지 않은가. 왕이나 왕비 역시 신적인 존재였으므로 역시 모두가 보주의 집적이었던 것이다. 가야 지방에서 출토된 금제 용 아기보주도 마찬가지였다⑦. 세계는 하나였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서울신문






서울신문- 세계의 조형예술, 용으로 (36)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2015.08.16 16:37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6) 보주=세포=원자=입자



   우리는 용의 입에서 무엇이 나오는가, 라고 물었던 물음을 보주에게 다시 던져야 한다. 조각품에서는 보석으로 나타내므로 구멍이 없지만, 반드시 구멍이 있어서 무엇인가 나와야 하는데 회화작품에서만은 그 표현이 마음껏 가능하다. 보주만물생성의 근원이므로 그 광경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 것인가.


   그런데 둥근 보주의 작은 구멍에서 용에서처럼 양쪽으로 발산하는 영기문을 찾기는 어렵다. 고구려 벽화에서는 오직 한 예가 있으나 거기에서는 보주가 육각형 혹은 육면체로 표현되어 있으나 연꽃에서 그런 모양의 보주가 화생하여, 연꽃 양쪽으로 덩굴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으므로 보주에서 직접 발산하고 있음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보주에서 직접 발산하는 조형을 찾아보았으나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다. 그러면 과연 없을까! 있다. 그러나 오랜 추적 끝에 고려불화와 고려 금속공예에서 찾아내었으나 다음 회에 설명 드린다.


도 1. 신원사 괘불, 얼굴 부분


  먼저 자세한 묘사가 가능한 괘불을 살펴보려 한다. 계룡산 신원사(新元寺)에는 길이 11.2미터, 6.9미터 되는 큰 불화가 있다. 괘불이라고 하는 이런 큰 괘불은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노사나불탱(盧舍那佛幀)>으로 1664년 작품이어서 괘불탱으로는 꽤 이른 시기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괘불이 제작되어 중요한 불사(佛事)때 대웅전 앞에 드높이 달아서 야단법석(野壇法席)을 떨었던 것이다. 실제로 괘불은 그 그림에 그린 거대한 부처님이 조형언어로 설법하고 계신데 중생은 알아듣지도 읽어내지도 못한다. 필자는 하나의 불화를 읽는 것은 한 권의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화의 조형언어를 해독하지 못하므로 필자가 대신 읽어주는 격이 되었다. 그래서 때때로 필자가 불화에 대하여 강연할 때는 설법을 듣는 것 같다고 말한다. 노사나불이란 석가여래가 직접 설법하지 않고 노사나불이란 보신불(報身佛)로 나타나 설법한다.


도 2-1. 신원사 괘불의 여래 얼굴에서 발산하는 영기문






도 2-2. 부분 확대


   모든 사람들은 여래나 보살의 머리에 寶冠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1) 동양의 미술사학자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기독교미술의 보관도 서양의 미술사학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신원사 괘불뿐만 아니라 모든 불화의 모든 보관은 보관이 아니다. 자세히 그려보고 채색분석해 보면, 보주의 구멍에서 무수한 보주가 줄줄이 이어서 생겨나는 극적인 광경을 볼 것이다.(2-1, 2-2) 여래의 얼굴에서 사방으로 제1영기싹 다발이 나오고 거기에서 제1영기싹이 연이어 돋아나는 것을, 보주가 줄줄이 연이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간 중간에 큰 꽃 같은 것이 있지요? 그것은 꽃이 아니라 중앙의 보주가 무한히 확산하는 형국인데 꽃잎 같이 표현했지만 그 작은 꽃잎 같은 것에 반드시 작은 흰 점을 찍었다. 구멍에서 나오는 작은 보주다. 중앙에는 보주도 있지만 제1영기싹도 있어서 두 가지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큰 꽃 같은 모양도 무량보주. 그 사방에서 제1영기싹이 나오고 연이어 보주가 나오기도 하고, 바로 보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연이은 잘디잔 보주들이 멀리서 보면 마치 줄 같이 보인다. 실제로 작은 작품에서는 줄로 표현하는데 연이은 보주로 읽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부분 확대한 것을 보면 분명히 보인다.


흔히 사람들을 이 부분들을 보면서 영락장식(瓔珞裝飾), 즉 구술 장신구라 부르지만, 결코 장신구가 아니다. 여래의 본질을 알면 보관은 갖가지 영기문 특히 제1영기싹들과 보주들이 여래의 머리에서 발산하는 장엄한 관경이다. 여래가 머리에 무슨 호화스런 보관을 쓰겠으며, 온 몸에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하겠는가! 모두가 온 몸에서 발산하는 강력한 영기문이다. 식물모양 영기문도 많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크고 작은 무량한 보주들의 엄청난 확산이다. 온몸 전체의 옷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은 이 글에서는 보여드리지 못하니 상상하시기 바란다. 이런 큰 불화에서 자세한 조형들을 보다가 이른 바 불교조각상 뒤에 거는 작은 후불탱(後佛幀)에서는 그렇게 자세하지는 않으나 능히 짐작하여 그 단순화된 조형을 가늠할 수 있다.




도 3-1. 마리아 상Residenz-schatzkammer, Muenchen, 17세기, 약 높이 30센티미터


수   강생인 어느 교수가 독일 여행을 하다가 필자에게 줄 사진을 찍어서 보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독일 뮌헨의 어느 작은 박물관에서 찍어서 보낸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 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3-1) 17세기의 작품은 크기가 약 30x40센티미터라고 했는데 온통 보주가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 주변 광배에는 갖가지 형태와 색의 큰 보주들이 둘렸으며 보주들에서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광배의 윗부분에서는 화려한 보주들로 이루어진 세 군집의 보주가 세 방향으로 발산하고 있다. 마리아의 머리에는 중앙에 보라색 큰 보주를 중심으로 수많은 흰 보주로 가득 찼으며, 양쪽 어께 부분에서 내려오는 것도 모두 흰 보주들이며, 신원사 괘불의 여래상에서 본, 줄줄이 이어져서 내려오는 보주들의 전개와 같지 않은가! 아기 예수도 머리와 온몸에 수많은 보주에 파 뭍일 정도다. 마리아상 배후에는 식물모양 영기문이 고구려 벽화 영기문과 같다. 프레임 내부에는 흰 보주들로 둘려서 마리아 모자상의 <보주화생>을 보여준다.


도 3-2. 사진 틀의 영기문의 전개



도 3-3. 영기문의 단순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넓은 테두리의 네 귀와 각각 중간에 우리나라의 무량보주와 같은 꽃 같은 무늬가 자리 잡고 있다. 꽃으로 보이나 무량보주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조형이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회를 달리 하여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주제다. 그리고 그 무량보주에서 발산하는 덩굴모양 영기문이 우리나라 영기문 전개와 똑같지 않은가! 서양의 기독교미술 역시 동양의 불교미술에서 보이는 여래와 보살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의 전개 원리와 똑 같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3-2, 3-3) 그런데 동서양의 학자들은 보주를 화려한 값비싼 보석으로 알고 있으니 동서양의 두 작품을 전혀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두 작품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고 모든 佛畵聖畵가 그러하니 이 새로운 해석은 세계의 조형을 올바로 밝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서양에서도 성녀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보주의 집적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기독교 성경 필사본에 그려진 조형으로 그 진실을 더욱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   런 조형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즈음, 작년에 필자는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기원전 99~기원전 55)가 쓴 철학적 서사시인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흥미 있게 정독했다. 그는 에피쿠로스(기원전 341~기원전 270)의 철학을 미묘한 점에 이르기까지 시()로 재현시키려 하였다. 그는 사물은 원자로 이루어졌으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조각(atoms, 그리스어: atomos, 나눌 수 없는)들이 빈 공간(khaos)을 떠다니는 것이라고 믿은 원자론자(atomist)였다. 이 서사시는 매우 난해하나 만일 보주를 밝히지 못했다면 정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고 아는 사람은 드물다. 1417, 근대의 탄생(그린 블랫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이란 책은, 1417년 겨울, 30대 후반의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가 우여곡절 끝에 남부 독일의 구석진 한 수도원의 서가에서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하여 필사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이 사본은 당시로써는 가장 위험한 사상인 무신론’(無神論)이 숨어 있는 장시(長詩), 저자는 이 책의 극적인 발견이 기독교의 교리에 의해서 인간의 사상과 자유가 속박 당했던 암흑의 중세를 마감하고, ‘재생의 르네상스 태동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근대의 탄생의 제목은 원래 ’Swerve‘(일탈)이었다. 즉 책의 발견과 필사는 시대를 뜻밖의 방향으로 일탈(swerve)하게 만들어 르네상스가 태어났다는 의미였다. 무릇 일탈하지 않으면 위대한 시대는 오지 않는다.


도 4-1. 원자의 구성




도 4-2.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



   에피쿠로스는 원자를 입자라고 부르며 설명했으므로 신원사 괘불의 보주들에서 보는 작은 입자의 전개가 요즈음 물리학에서 밝힌 원자의 구성 원리(4-1, 4-2)와 매우 흡사하다. 여래와 보살이 보주의 집적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밝혀낸 필자는, 원자의 구조는 물론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걸이무량보주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5) 바로 핵의 구조와 같지 않은가! 왕이나 왕비 역시 신적(神的) 존재였으므로 모두가 역시 보주의 집적이었던 것이다. 가야 지방에서 출토된 금제 용 아기와 보주도 마찬가지였다.(6-1, 6-2) 세계는 하나다.



도 5. 무령왕릉, 금제누금목걸이 세부



도. 6-1.  합천 玉田, M호묘 출토 옥룡, 6세기, 2 (1)






도. 6-2.  합천 玉田, M호묘 출토 옥룡, 6세기,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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