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9) 경상북도 김천시 최경수 화백의 ‘항소재’

2016. 1. 20. 03:15美學 이야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

(9) 경상북도 김천시 최경수 화백의 ‘항소재’

 

     2015/09/21 08:38 등록   (2015/09/21 08:39 수정)
 

 

경상북도 김천시 최경수화백의 작업실, 항소재.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항소재는 "항상 소박한 집"이라는 뜻이며 소는 희다라는 뜻의(素)도 담고 있다. 곧 캔버스를 뜻한다. 늦여름에 뉘엿해진 햇살이 마당을 평온하게 감싸고, 짙은 풀냄새와 맑은 먹내음, 시각을 청각으로 표현하고자 하면 '골든베르크 변주곡'의 고요한 평화로움이 베어나오는 풍경이다. 마당에 널부러져 먹을 말리고 있는 그의 연작 '하늘소리' 가 풍경에 특별한 가치를 덧한다.

                                                             ⓒ 최경수 _ 하늘소리

 


   작가는 먹으로 막사발을 주로 그린다. 그가 작업하는 예술의 기조는 "염원"과 "하늘소리"이다. 지금은 보물이 되어 쉽게 만나기 어려운 '이도다완' 조선시대 서민들의 밥그릇도 되고 술주발도 되었던 막사발. 아무렇게나 흙으로 빚어 서민들의 생활의 주가 되었던 막사발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섬세한 기교도 없는 그저 대충 빚어 툭 던져놓은것 같은 막사발. 도공의 지문이 묻어날것 같은 막사발에서 '인생'과 '평생'을 생각한다.

 


                                                            ⓒ 최경수 _ 하늘소리

 

 

   막사발에 담긴 정한수 하늘에 비는 염원. 작가 자신의 염원이기도 하고 결코 녹록치 않은 세월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처절한 염원도 담은 막사발이다.



                                                                ⓒ 최경수 _ 하늘소리

 

 


   작가는 연작 '하늘소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침묵하는 검은 하늘과 정지된 듯 조용히 움직이는 형상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나는 이를 Acadia라고 일컬으며 이렇게 전한다. 화폭을 낮게 응시하는 최초의 순간, 그러나 다음 순간 화면에 다가서면 검은 하늘은 더이상의 암흑처럼 어둡지만은 않고, 나를 삼킬 듯 하던 검은 하늘은 투명해지면서 깊은 심연과 그속에서 나는 우뚝 선 채 당당해진다.

그 다음 느껴지는 것은 무한한 장엄함으로 시야에 들어오던 광경이 어느새 나를 포용해버리는 일체감의 카타르시스다. 거기서는 나에게서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객체로서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천천히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그속에서 하나가 되는 나의 마음이 표현되는 작품이다.

 



                                                             ⓒ 최경수 _ 하늘소리

 



                                                             ⓒ 최경수 _ 하늘소리

 



                                                           ⓒ 최경수 _ 하늘소리

 



                                                               ⓒ 최경수 _ 하늘소리

 



                                                             ⓒ 최경수 _ 하늘소리

 



                                                              ⓒ 최경수 _ 하늘소리

 




 

 


   천정을 향해 열병식을 하듯 도열한 이 화판들을 보며 나는 팔만대장경을 떠올린다. 작품의 화두, 인생의 화두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수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파괴하고, 추스렸을 것이다. 무한한 예술의 여정길에 유한한 인생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그 미약함을 극복하고 깨우침이 있는 작품 한점을 낳기 위해 작가는 평생을 수련과 싸워야 한다.

진리에 가닿기 위한 기나긴 투쟁.
그 혼이 스며들어 작품은 비로소 작가만의 독창적인 아우라를 낳게 된다.


 


사람에게 지치면 사람 대신 자연을 만나면 된다

구름과 바람과 하늘에게 물어보면 된다


   나는 이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인간관계, 우리는 관계를 통해 이곳에 왔고 그 관계에 의한 삶을 살게 된다. 관계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관계가 고통의 극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가끔은 모든 관계를 끊고 자연에 묻히는 것도 좋은 해법이다.

모든 생명의 탄생이자, 죽음의 종말도 결국은 자연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복잡미묘한 인간사에 벗어나 하늘과 바람에게 몸을 맡겨보자. 인생이 고해(苦海)라지만, 그것도 결국은 나로부터 비롯되어 내가 정리하여야 할 평생의 업이다.

 

 


   작금의 현대미술은 정체모를 '잡탕'같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가 잠식한 세상.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작품에 대한 고뇌보다 '작품가'를 위한 로비에 더 뛰어나야 하는 자본주의 미술세계.

더 새롭고 기발한 무엇을 위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뇌의 철학보다, 유행의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신기술'촉각을 세워야 하는 현대미술.

미니멀리즘과 팝아트가 떼돈을 벌면서 상업미술이 판을 치는 작금의 시대에 최경수는 묵묵히 자신만의 작업을 한다. 먹으로 가닿는 하늘의 소리, 시대와 개인의 염원, 막사발에 담은 한줌의 '희망'으로 노동에 가까운 아날로그식 작업을 한다.

글로벌 시대에도 가장 경쟁력 있는 말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에서 비롯된 그의 작풍이 앞으로도 더욱 빛을 발하리라 기대되는 이유이다.

 



최경수 崔敬壽 Choi Kyung Soo

경북대/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개인전 20회
 

<글 : 수필가 윤혜영
geo0511@hanmail.net  >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