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묘지명들

2016. 1. 22. 22:37글씨쓰기


북위 묘지명들

수군작 2007.10.02 18:52

      

   묘지명(墓誌銘)은 죽은 사람의 성명과 자호(字號), 본관과 가계, 출생과 사망 년도, 일생의 활동과 행적, 가족과 후손, 장지(葬地) 등을 돌에 새겨 죽은 자를 매장할 때 관(棺)과 함께 무덤에 함께 매장한 금석문의 한 종류이다.

중국에서도 한나라 때 탑비를 세우는 풍속이 크게 발달했는데, 한나라 말기인 서기 205년 조조(曺操)가 후장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비를 세우는 일을 금하는 명령을 내려 지상에 비를 세우는 것을 억제했다. 그러자 탑비에 대신하여 소형의 묘비를 만들어 무덤 속에 매장한 풍습이 성행했다. 묘지명은 이에 따라 유행하였다.

 

   중국에서 묘지명이 정형화되고, 그 제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남북조 시대의 북위(北魏) 때였다. 이 때의 묘지명이 가장 많이 수습되어 있는데 모두 400점 가량이다. 북위의 묘지명은 대부분이 왕족의 것이라 한다. 이후 수 당대까지 약 600년간 특히 묘지명이 발달하였으며, 묘지명 풍습을 당시 귀족문화의 산물로 이해하고 있다.

 

六朝에 精刻된 수많은 墓地銘이 있다. 書體는 楷의 규범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 그 대표적인 銘으로 元楨墓誌 北魏 太和 20년(496)과 元羽墓地銘 北魏 景明 2년(501) , 司馬昞墓地銘 正光 元年(520), 元倪墓地銘 正光 4年(523) 河南 洛陽出土와 張玄墓地銘 北魏 普泰 元年(531) 이를 혹 張黑女墓誌라고도 한다. 그 중에서도 張玄墓地銘은 그 글이 매우 高簡하고 法이 있으므로 書跡이 超妙入神하여 바로 세상에 전하는 북위 해서 묘지명의 제일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隋의 開皇 6年(586)에 새겨진 것으로 董美人墓地銘 開皇 17年(597)이 隋의 묘지 書로 유명한 것이다. 小楷整正하고 淸楚하여 마치 美人을 보는 듯 느낌이다. 仁壽 2年(602) 啓法寺碑와 仁壽 3年(603) 새겨진 것으로 蘇孝慈墓地銘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는 장현묘지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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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작

2007.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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