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상징의 숲] (7회) 위대한 명화, 책거리 / 월간 미술

2016. 1. 28. 05:08美學 이야기




      

민화, 상징의 숲 - 월간미술 연재 (9)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2014.10.30 15:51


월간미술  제 7회 

위대한 명화, 책거리



   사랑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식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 아버지의 무뚝뚝한 사랑,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중생에 대한 무한 사랑, 연인들의 뜨거운 사랑......그러나 부부의 사랑만큼 소중하고 위대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흔히 친구라고 하지만 부부의 사랑을 고되고 고된 세속에서 오히려 승화시킨다면 더 위대한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서로 처음 만나 결혼한다는 것은 죽음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일이야 말로 이 우주의 어느 힘도 방해할 수 없는 인간에 주어진 특권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에도 수많은 차원의 사랑 행위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관음보살의 중생에 대한 사랑을 가장 고귀한 것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녀의 사랑 특히 부부간의 사랑이야 말로 성격이 다른 고귀한 것이 아닐까요? 사랑이란 단지 육체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사랑이 함께 할 때 숭고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사랑도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하여야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기적이라 말합니다. 부부의 사랑이 원만할 때 그 밖의 모든 사랑도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묘약(妙藥)’이란 어느 경우나 해당될 것입니다. 사랑은 그 어느 고통이나 죽음까지도 영화(靈化)시킬 수 있는 영약(靈藥)입니다. 약사여래의 약 항아리가 보주로 변하는 까닭을 이제야 압니다. 평생 걸려 보주라는 것을 처음으로 그 성립과정을 밝히고 그 진실을 파악하고 나니 세계조형의 비밀들이 모두 풀립니다. 강의할 때 항상 보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물론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보주를 진실로 파악했다면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얼굴색이 달라져야 합니다. 보주란 바로 사랑의 묘약이기도 하지요. 사랑으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고 사랑으로 풀어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은 만물생성의 근원입니다. 즉 대모지신(大母地神)의 마음 작용입니다. 위대한 어머니[大母], 대지의 신[地神]은 하나입니다. 땅은 사랑의 표상이요, 만물의 어머니요, 만물생성의 근원입니다. 사람의 남녀는 사랑하여 자녀들이 탄생합니다. 여성이 아기를 잉태하여 탄생케 하는 체험이 있어야 다른 차원의 존재로 탈바꿈합니다. 이른 바 모성애가 생기고 부부의 사랑도 더욱 깊어지겠지요. 동양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과 양()이 조화롭게 만나 만물을 생성케 하는 우주 생성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만물이 음부에서 탄생, 즉 화생(化生)하지만, 조형적으로는 그 대신 단지 배꼽에서 만물이 생기도록 한 것입니다. 사랑하여 생긴 씨알들은 이어서 자손을 퍼뜨려 번창하게 합니다. 씨앗이 보주로 승화하듯이 씨알도 보주로 승화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 됩니다. 서경(書經) 태서(泰誓), 惟天地 萬物父母 惟人 萬物之靈, 즉 하늘과 땅은 만물의 부모요,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 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 가운데 인간이 가장 영적(靈的)으로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영(spirit), (soul), (flesh)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부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고, 정신적 부분인 , , , 육신적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일하게도 인간은 영적(靈的) 부분을 가지고 있음으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며 눈에 안 보이는 영의 부분을 가지고 있는 유일하고도 귀한, 또한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부분은 눈에 안보이지만 영의 부분을 가지고 있음으로서, 물질이나, 동물과도 다른 본질을 가졌다는 의미도 됩니다. 즉 영적 부분이란 굉장히 독특한 부분입니다. 즉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로서 창조주와 이 영적 부분으로 함께하는, 소통하는 부분을 가진 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것보다 사람이 가장 소중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분은 너무 소중한 귀한, 무한한 잠재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임을 확신합니다. 또한 만물의 영장이란 -세상에 주어진 모든 것, 영혼이 없는 물질, 동식물을 생육하며 번성하며 정복하며 다스리는 권세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각한다면 남녀의 사랑은 참으로 고귀한 것입니다. 언제 인간이 우주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으나 인간은 자손을 번창시켜 지구상에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만물의 영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인간은 고귀한 역사를 만들어왔으며, 수많은 고귀한 조형예술품을 지구상에 남겼습니다.






도 1




   다루고자 하는 그림은 색조도 은은하고 색의 대비가 아름답고 구성도 나무랄 데가 없이 완벽합니다. 이것은 사대부의 그림도 아니요, 우리가 흔히 민화라고 부르는 양식도 아닌 전혀 새로운 개념의 그림입니다. 이제부터 그림에 숨겨진 상징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합니다.(1)





도2


   그림에서 보는 평상을 침구로 삼고 베게와 갈색 요와 검은 색 이불이 중첩되어 있으며 그 위에 여인의 저고리와 치마가 축 늘어지지 않고 생기 있게 걸쳐 있습니다. 그런데 치마저고리는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끝자락은 바람에 날리는 듯한데, 이것은 보살의 그림에서 천의가 날리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과 같아서, 사람은 없지만 벗어놓아도 사람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를 표현한 것입니다.(2) 저고리에는 하얀 동정과 자주색 깃이 있는데 저고리에는 이른 바 영기문이 가득합니다. 꽃잎모양은 길고 날카로운데 중첩하여 피어나는 듯 영기꽃의 확산 개념 강력하게 나타냈습니다. 원래 저고리에는 그런 무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현실의 세계가 아닌 영화된 세계이므로 저고리에 역동적인 영기문을 그려 넣을 수 있습니다. 줄기에서는 면으로 된 제1영기싹이 돋아나고 끝에서 힘차게 발산하는 끝이 뾰족한 입들이 촘촘히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영기꽃입니다.(3) 줄기는 역시 영기문으로 제1영기싹 영기문을 면으로 표현했으므로 영기문이 틀림없습니다. 노리개가 길게 늘어져 있는데 역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노리개입니다.





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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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평상의 다리를 보면 과장된 영기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평상에서 사랑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특히 평상의 밑부분과 다리와 과장하여 크게 굴곡진 영기문으로 되어 있고 다리 끝은 제1영기싹 모양으로 매듭짓고 있습니다.(4) 평상 뒤쪽에는 평상 위에 바늘, , 골무, 가위, , 헝겊 따위의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인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 반짇고리가 있는 것을 보면 안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반짇고리 안에 오색실로 감싼 가위가 있고 반짇고리에 걸쳐 검은 색의 긴 자가 걸쳐 있습니다. 두 개의 크게 붕긋한 모양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5) 그 너머로 평상 밑에는 책갑이 촛대 옆의 책갑과 비교해 보면, 책갑이 네 개쯤 쌓여있는 듯 합니다. 책거리에는 항상 그릇들이 예외 없이 나타납니다. 접시도 만병의 성격을 갖습니다. 접시 안에는 은행 씨앗이 수북하게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니 만병임이 틀림없습니다.




도5





도6




    촛대영기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디마디마다 보주가 있어서 위로 옆으로 대가 생겨나는 모양입니다.(6) 그러다가 둥근 보주 위에 연꽃모양이 있는데 불교미술 조형에서 가장 중요한 씨방을 감싼 연꽃잎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끝에서 3영기싹 활짝 펼쳐집니다. 그리고 양쪽으로는 긴 제3영기싹이 탄력 있게 뻗어 올라가고 그 위에 역시 접시모양의 만병이 화생합니다. 등잔도 그릇이므로 만병입니다. 만병 안에는 초를 고정시키는 장치가 있는데 그 표면에도 제2, 3영기싹 영기문이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촛불이 꺼져 있지만 원래 연속적인 영기화생이 이루어지다가 빛이 화생합니다. 장치에 굵은 초가 꽂혀 있고 촛불은 분위기로 보아 꺼져 있습니다. 이처럼 촛대도 갖가지 영기문으로 만들었는데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그런 촛대를 볼 수 있습니다. 빛을 내는 도구이니 마땅히 영화시켜야 합니다.






도7


   책갑을 가까이 볼까요?(7) 맨 위의 책갑에는 아무 영기문도 없습니다. 그 다음 책갑의 측면에는 중앙에 제1영기싹을 붕긋붕긋하게 만든 조형을 네 개 모여서 순환하고 있습니다. 곡선으로 된 태극 같기도 합니다. 주변에는 단편적인 영기문들이 있습니다. 무슨 책이 길래 이렇게 강력한 영기가 발산할까요? 중앙의 영기문은 불화에서 보면 여래의 정수리에서 솟아나오는 영기문입니다. 그 다음 맨 밑의 책갑 측면에는 육각수문이 연접하여 있습니다. 만물생성의 근원인 물을 상징합니다. 귀갑문(龜甲文)이라고 쓰면 올바르지 않으니 일본 사람들이 잘못 이름 지은 것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도 8




도 9


   

   방바닥에는 가죽으로 만든 운혜(雲鞋) 신발이 고급스러워 상류사회의 방이 틀림없습니다.(8, 9) 그런데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고 황겁히 벗어놓은 상태입니다. 바로 옆에는 벼루가 있는데 일월벼루이고 먹에는 十長春이라 금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연적은 물론 복숭아 모양일 테지만 붕긋붕긋 부풀게 하여 여니 복숭아 연적과 형태가 다릅니다. 즉 만병에 물 혹은 대생명력이 가득 차서 터질 듯하다. 연적을 영화시킨 것입니다.(10)



도 10




   이처럼 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 책거리라고는 하지만 너무 비중이 작아 책거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책거리의 범주에 드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진리의 말을 적은 서책들이 두 곳에 책갑으로 쌓여져 있으며, 그 글을 읽고 마음의 수행을 쌓고 연적에서 물을 따라 벼루에 먹을 갈아 글을 쓰고 편지도 쓰는 선비의 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된 촛대는 글을 읽을 때도 필요하고 마나님이 바느질을 할 때도 필요하여 공용의 촛대입니다. 선비의 방인가 하면 마님이 쓰는 안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도 11



   봉투 역시 혼란스럽게 두 개 엇갈려 있습니다.(11) 피봉(皮封)에는 솜씨 좋은 글씨가 있어서 이 그림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 집 주인은 승지를 지낸 씨임을 알 수 있다. 굳이 해독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발신(發信) : □□□ 平倅 上書; 수신(受信) : 朴 承旨 宅 侍下人 開坼. 지명에 ()자가 들어가는 고을의 守令(수령:)이 박 승지에게 올린 서간입니다. 승지는 조선 시대에 승정원에 딸려 왕명의 출납을 맡아보던 정삼품의 당상관이므로 이 그림은 혹 박승지의 청으로 그려진 그림인지도 모릅니다. 사랑방인지 안방인지 확인할 수 없도록 그린 묘한 그림입니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화가가 그런 효과를 노렸다면 참으로 고차원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남자의 옷은 왜 없을까. 생각할수록 혼란만 일어나는데 그것은 어찌 보면 매우 중요한 점입니다. 만일 남녀의 옷이 모두 있다면 너무 노골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거리라는 범주에 드는 그림에 남녀의 영화된 행위가 첨가되어 화면을 압도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을 적은 서책이 만물생성의 근원이고, 물이 가득 든 연적 역시 만병의 성격을 띠어 만물의 근원이며, 여기에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만물이 생성된다는 형이상학적 조형들과 상징마치 현실처럼 조화롭게 표현되었습니다. 이 그림에는 분명히 인간이 등장하고 있으나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재에서 다룬 그림들이 모두 영화된 세계를 다룬 것이므로 이 남녀의 행위 역시 영화된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 그림에서는 은유적으로 격조 있게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은 민화가 아닙니다. 승지가 궁중화원에게 부탁하여 그려 받은 좋은 그림이기보다는 훌륭한 그림입니다. 어쩌면 한국회화사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위대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이 책거리와 비슷한 작품을 온양민속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그림 한 폭에 병풍을 그려 넣었는데 병풍 그림이 표범 가죽입니다. 흔히 호피(虎皮)라고 하는데 표피(豹皮)라고 해야 합니다. 민화 책을 보면 호랑이와 표범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데 엄연히 구별해야 합니다. 그 병풍 앞에 용으로 머리를 장식한 횟대가 있고 그 위에 여인의 옷가지가 여러 벌 걸쳐 있습니다. 모두 선단에 털이 달려있고 특히 검은 남바위가 걸쳐 있는 것을 보니 밖은 매우 추운 겨울날씨인가 봅니다. 바닥에는 책갑들이 있는데 古文眞寶라고 쓰여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여러 가지 만병이 있습니다. 화로도 있고 영기꽃(모란이 아닙니다.)을 꽂아둔 만병도 있으며 요강도 있습니다. 요강도 만병입니다! 책갑 위에는 복숭아 모양 연적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 병풍 뒤에서 사랑의 행위 이루어지고, 진리의 책갑, 만병들,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만물생성의 근원들이 영화된 세계 펼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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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강우방 교수님의 글 중에서 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