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형태 - 정리
[그림의 형태 1] 두루마리 그림 '권卷'
옛 그림은 흔히 어렵다고 합니다. 그림 자체의 감상뿐만 아닙니다. 그림의 이해와 감상을 돕는 용어들도 낯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용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면 어떨까요. 옛 그림에 훨씬 친근하게 다가가게 해줄 도구가 되는 용어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소개 순서는 그림의 형식, 그림의 종류, 낙관과 한문시와 같이 그림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먹과 붓을 사용해 표현하는 주요 기법, 그림 설명에 자주 나오는 그림 스타일, 조선시대 후기의 주요 화파, 자주 등장하는 미술사 책 등 입니다.
옛 그림이 그려져 있는 형태는 여럿입니다. 그 중에는 옆으로 길기도 하고 위아래로 긴 것도 있습니다. 이런 형태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릅니다.
먼저 옆으로 긴 그림은 말아서 보관하여 흔히 '두루마리 그림'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권축(卷軸) 또는 권(卷)이라고도 합니다. 요즘은 권(卷)이라는 한자말이 서책을 세는 단위나 순서를 이르지만, 원래는 '말려 있는 글'을 칭하는 한자였습니다. 권(卷)자 아래쪽의 卩(병부절)이 무릎을 구부린 모양, 즉 '둥글게 말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두루마리 그림을 뜻하게 된 것입니다. 두루마리 그림은 옆으로 길다는 의미에서 횡축(橫軸), 횡권(橫卷)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두루마리 그림은 여러 장의 종이를 길게 잇대어 그림을 그리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두루마리 형식은 고대부터 사용된 것인데, 고대 중국에는 서사(書事), 즉 글 쓰는 일의 재료가 되는 것이 종이가 아니라 아직 나무였던 시기에 시작됐습니다.
나무나 대나무를 좁고 길게 자르고 다듬어 그 위에 글씨를 썼는데 이를 목간(木簡) 또는 죽간(竹簡)이라고 합니다. 죽간과 목간은 위쪽에 구멍을 뚫어 실로 꿰어 둘둘 말아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이는 동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글씨나 그림을 나일강가에서 나는 갈대 파피루스를 엮어 그 위에 그렸지요. 이 역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뒤에 둘둘 말아 보관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양피지에 그림이나 글씨를 썼는데 이것도 보관할 때에는 둘둘 말아 두었지요.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그린 두루마리 그림 가운데 오늘날까지 전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의 옛 두루마리 그림 가운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시대 초기의 대화가 안견(安堅)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입니다. 여기에는 안견의 그림 이외에 안견을 후원했던 당시 안평 대군의 글씨 그리고 이 그림을 보고 시를 적었던 당대의 유명한 학자 20여명의 시도 함께 표구되어 있습니다. 또 시의 분량이 많아 현재는 2개의 두루마리로 나뉘어져 표구된 상태입니다.
![](http://www.koreanart21.com/system/webzine/viewPhotoFile.php?key=MzE5MSxpMTM3Njk2MjYxOTU5Mi5qcGcsOTAw)
안견 <몽유도원도> 견본담채 1447(세종 29년) 38.7x106.5㎝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
이 그림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서는 임진왜란 무렵의 기록을 토대로 <몽유도원도>가 횡피식(橫披式) 족자일 뿐 두루마리그림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긴 두루마리 그림은 무엇일까요? 조선시대 후기에 활동한 화가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이 그린 그림입니다. 정수영은 1796년에 친구들과 한강과 임진강 일대를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주변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묘사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한임강 명승도(漢臨江名勝圖)>로 길이가 15미터가 넘습니다(무려 1575.6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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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 <한임강명승도> 부분 지본담채 24.8x1575.6cm 국립중앙박물관
두 번째로 긴 그림은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인데, 길이가 856.7cm에 이릅니다. 그 다음은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이 그린 <촉잔도(蜀棧圖)>로 길이가 818cm입니다.
이인문(李寅文)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견본채색 43.8x856.0cm 국립중앙박물관
[그림의 형태 2] 족자 그림 '축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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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崔北) <주자 초상(朱子 肖像)> 견본채색 운곡서원
족자 그림은 가로가 세로보다 훨씬 긴 형식의 그림입니다. 고대 중국의 궁중에서는 높은 벽을 장식하기 위해서 벽화를 대신하여 좁고 긴 그림을 높은 곳에 매다는 이런 방식이 유용했을 것입니다.
서화를 표구하여 벽에 걸고 감상을 하기에 좋아 중국 북송시대에 크게 유행하였지요.
달리 괘축(掛軸)이라고도 이르며, 티벳 지역에서 불교 도상을 벽에 건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청대 후반이 되면 극단적으로 좁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행하여 조선에서도 19세기 후반 이후에 장승업을 중심으로 많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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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의 아래부분에는 환봉이라고 하는 '족자축'을 댑니다. 두루마리하여 보관할 때 천이 이 축을 중심으로 말려지게 되고, 족자가 걸려질 때는 아래쪽에 무게를 주어 균형있게 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합니다. 족자축은 나무를 둥근 기둥모양으로 깎아서 사용하지요. 윗부분에는 둥근 나무 기둥을 반으로 갈라 붙이는데 아래쪽의 족자축이 둥근 모양인 것에 대하여 이 윗부분의 나무는 '반달'축이라고 부릅니다. 아래는 '보름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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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493호 <오재순 초상> 151.7x89cm (전체 208.5x99.8cm) 삼성미술관리움
현재 족자 형태의 표구 방식은 사실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전통 방식이 아닙니다.
전통 방식은 안타깝게도 계승되지 않았고 일제시대를 통해 정착된 일본식 표구방식이 현재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그림의 형태 3] 병풍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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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병풍
16세기초 지본수묵 각 98.3x49.9cm 다이간지(大願寺)
조선 초기의 병풍 모습을 보여준다.
병풍(屛風)은 원래 바람을 막는 가리개를 뜻합니다. 가구에서 시작되어 장식용 그림이 그려지거나 붙여지면서 점차 독립적인 그림 표구의 한 형식으로 발전한 것이지요. 장식적 기능을 가진 만큼 병풍의 원형은 좌우 두 틀의 한 쌍이 기본형입니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한 틀만 제작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됐습니다.
한 틀의 규모는 6폭에서 8폭, 10폭, 또는 12폭까지 있으며 2폭으로만 된 것도 있습니다. '평생도팔곡병' 등으로 이름지어진 작품을 본 적이 있으시지요? 병풍의 규모를 나타내는 단위로는 폭 이외에 곡(曲)과 선(扇)이란 말도 쓰입니다.
'곡'이라는 말은 구부러진 곳이므로 병풍이 접히는 곳에 초점을 맞춘 말입니다. 즉 접힌 횟수를 가리키기 때문에 8폭 병풍은 이치상 7곡 병풍으로 불러야 되지만 관행적으로 '8곡 병풍'으로 부릅니다. 선은 일본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 폭과 마찬가지로 병풍의 그림 개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병풍은 크기에 따라 대병(大屛), 중병(中屛), 소병(小屛)으로 나눕니다. 대병은 높이가 6자 이상을 말하며 중병은 5자 내외 그리고 소병은 2자에서 4자까지를 가리킵니다. 특히 2자 내지 3자 크기로 된 2폭짜리 가리개는 침병(枕屛) 또는 머리맡 병풍, 머리 병풍이라고 합니다.
병풍 그림은 각각의 낱폭이 별도로 표구된 것과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된 것 두 가지 형식이 있습니다. 이런 구분은 병풍 제작의 기술적인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처음에는 낱폭 그림이 모여 병풍을 구성했는데, 이후에 꺾이는 부분의 연결 방식을 기술적으로 개선할 수 있어 병풍 전체에 큰 그림 하나를 표구하는 일이 가능하게 됐지요. 이처럼 전체가 하나로 연결된 그림이 그려진 병풍을 연폭(連幅) 병풍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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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 유숙(蕙山 劉淑, 1827∼1873) <매화도> 병풍 112x378cm 보물1199호
병풍 중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고 흰 종이만을 바른 소병(素屛)도 있습니다. 이는 궁중의 특별한 행사에 사용되던 병풍이었는데, 이후 민간에 전해져 제사 등에 쓰였다고 전합니다. 병풍에 관련된 기록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668년에 신라에서 일본에 병풍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병풍 형식을 특히 선호했습니다. 18세기 후반에는 화원들이 주문자의 집을 찾아다니며 병풍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유행했다는 기록도 전해지네요.
[그림의 형태 4] 부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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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鄭敾) <해인사도(海印寺圖)> 선면
지본담채 22.9x67.5cm 국립중앙박물관
부채는 손에 쥐고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더위를 피하는 도구입니다. 여기에 장식용으로 그림이 그려지면서 부채그림 형식이 나타났지요.
부채는 동양이나 서양에서 모두 기원전부터 사용된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의 부채는 새의 깃털 등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부채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판판하고 둥글게 생긴 부채, 또 하나는 휴대하기 편하게 접어 사용하는 접부채입니다.
둥근 부채는 왕이나 귀족의 행차 또는 의식 때 사용되었던, 자루가 긴 일산(日傘)에서 생겨난 형태라고 볼 수 있으며 흔히 단선(團扇)이라고 부릅니다.
접부채는 쥘부채 또는 접선(摺扇)라고 일컫습니다. 부채의 역사를 보면 둥근 부채가 먼저이고 이후에 접부채가 나옵니다. 접부채의 시작에 대해서는 나무판을 얇게 켜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형태가 일본에서 처음 발명됐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부채그림 가운데 단선에 그림을 그린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채 그림은 대개 접부채에 그려진 것이지요.
일본 헤이안시대에는 접부채에 그려진 그림이 중국에 수출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부채그림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초기의 성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 부채 그림의 실물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부채 그림은 17세기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왕족화가 이요가 부채에 그렸던 산수화가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후 18세기에 들면 윤두서, 정선, 강세황, 김홍도 등 많은 화가들이 부채 그림을 그려 현재에도 다수 전해지고 있지요.
[그림의 형태 5] 화첩과 편화
여러 그림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을 화첩(畵帖)이라고 부르지요. 화첩의 첩(帖)자는 표제, 즉 제목을 뜻합니다.
기계식 제본이 소개되기 전에 책은 손으로 묶어 만들었죠. 묶여진 책의 표지에는 좁고 긴 비단 같은 것을 붙이고 거기에 제목을 적어 놓는데 이것이 바로 '첩'인 것입니다.
따라서 원래 화첩이란 말은 '그림을 묶은 책에 제목을 달은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점차 그림을 묶어 놓은 책자라는 의미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제목 없이 그냥 그림만 한데 묶어 놓은 것도 화첩이라고 부르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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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가을경매에서 34억에 낙찰된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 二先生 眞蹟帖)> 전14면
화첩에는 처음부터 묶여진 종이 책에 그림을 하나씩 그려넣은 것이 있는가 하면 따로 그려진 여러 장의 그림을 모아서 나중에 한데 묶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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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nart21.com/system/webzine/viewPhotoFile.php?key=MzI5MSxpMTM4MDU0NDM2MzQyNC5qcGcsOTAw)
심사정(沈師正) <산수도, 파초도(山水圖, 芭蕉圖)>
지본담채 각 42.3x32.8cm 개인 소장
위의 두 그림은 현재는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그림이지만 한 화첩에서 나온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화첩에서 떨어져 나온 낱장 그림을 편화(片畵)라고 합니다.
또 화첩으로 엮여질 만한 크기의 그림이 혼자 돌아다니는 경우에도 이 편화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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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에서 발췌 정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