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문학

      차와 문학| 우리 茶 이야기

문형섭 | 조회 67 |추천 0 | 2001.11.12. 19:18 

   박희준 선생님이 지으신 '차한잔'이라는 책속에 있는 글들입니다.1월 - 12월까지 달별로 그에 맞는 행사나 차에 어울리는 것등이 쓰여져 있습니다.. 

    * 1월의 차 * 눈을 보며 차를 마시는 그 즐거움 ---

   1월의 차 때에 맞추어 차를 마신다는 것은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차를 마신다는 일은 그냥 더운 물에 찻잎 넣어 우려마시면 되는 그런 쉬운 일이지만, 정말 맛있는 차 한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주위환경과 어울리는 차 한 잔, 그리고 권하는 사람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차 한잔을 우려내기란 차에 웬만큼 정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 《대관다론(大觀茶論)》이란 다서(茶書)에서 차를 따는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차 만들기에 좋은 날씨를 만나면 축하한다고 하였습니다. 차만들기가 그러할진대 차마시기에 좋은 때를 만나면 우리 선조들은 그 흥을 시로 표현하거나 좋은 사람과 마주하여 정담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동다송(東茶頌)》에 일부 전하는 《동다기(東茶記)》에서, 아침에 꽃이 피기 시작하고, 뜬 구름이 비 개인 하늘에 곱게 떠 있고, 낮잠에서 갓 깨어났을 때, 맑은 달이 푸른 시냇가에 휘영청 비추일 때 차마시기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자연과 어울린 차 한 잔,실로 멋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멋스러운 차생활은 사계절의 구분이 명확한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 여러 가지 차생활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차생활을 여러 문헌과 차시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오늘날의 차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차 한잔을 마시면서 넉넉했던 우리 선조들의 마음에 깃들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 생각됩니다.

    혹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기는 명나라 전예형(田藝衡)의《자천소품(煮泉小品)》에 보입니다. 전예형은 추운 겨울철에 솔방울을 가득 쌓아두고 차를 끓이면 더욱 그 고상함이 갖추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 기는 작은 솔방울이 불속에서 벌어지면서 뿜어낼 솔내음 속에, 솔방울 하나하나를 던지면서 화력을 조절하였을 옛 사람의 슬기로움이 배어나오는 듯한 맑은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렇게 끓인 차는 과연 어떤 맛이 났을까요? 일찍이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는 솔방울로 차를 끓이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고개 위 구름은 한가로와 흩어지지 않는데 시냇물은 어찌 그리 바삐도 달리는가 차를 달아니 차는 더욱 향기로와라. 진각국사는 솔방울로 달인 차가 여느 차보다 더욱 향기롭다고 하였습니다.다산 정약용도 차부뚜막에서 솔방울로 차를 끓인 시를 남겨 놓고 있는 것을 보면 솔방울로 차를 끓인다는 이야기는 차의 은근한 멋을 아는 여러 선조들이 즐겨하떤 찻물 끓이던 풍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겨울의 차생활 가운데 더욱 시정이 넘치는 일은 아마도 천지에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며 그 눈으로 차를 마신다든가, 눈이 온 뒤 적막함 속에서 화로에 불을 일구어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는 일이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중국 허차서(許次序)의 《다소(茶疏)》에서는 큰 비나 눈이 올 때엔 차를 마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만, 하늘과 땅을 온통 은빛으로 바꾸는 흰눈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일이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그 눈을 한 웅큼 떠서 화로에 녹여 김이 오르고 솔바람 소리가 밀려올 때,다관에서 푸른 차잎사귀가 마치 봄바람에 나부끼는 깃발과 같이 피어 오르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차와 선(禪)이 하나가 되는 시선일미(詩禪一味)의 경지가 아닐까요, 초의(艸衣) 스님의 절친한 차벗이었던 홍현주(洪顯周)의 누이 유한당 홍씨(幽閑堂 洪氏)는 눈을 보며 차를 끓이는 즐거움을 다음과 같은 시로 남겨 놓고 있습니다.

    " 처음 벼루를 열자/  밤은 시를 재촉하네/  북두칠성은 하늘에 걸리고/  달은 더디 나온다/  등을 달고 한가롭게 앉은/  높이 솟은 누대 위 눈을 보며/  차를 달이는 그 즐거움 나는 안다네 " 

눈을 보며 차를 달이는 즐거움은 어떤 즐거움이었기에 유한당 홍씨는 추위를 무릅쓰고 높이 솟은 누대 위에서 차를 달여 마셨을까요. 한참 동안 갈아야 되는 벼루의 효능을 잊은 지 오래된 우리로서는 아마도 유한당 홍씨의 차는 맑은 차향기와 투명한 대지의 기운이 하나가 된 그런 찻자리에 어울린 한잔의 차였다고 짐작할 수밖엔 없지요. 눈을 보며 차를 마시는 즐거움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즐겨하시던 맑은 일은 눈을 녹여 차를 끓이던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렸을 적에는 눈이 내리면 혀를 한껏 내밀고 눈을 입속에 집어 넣거나, 손바닥으로 눈을 받아 먹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오늘날에는 잊혀졌지만 우리 어렸을 적에 눈을 보며 즐거워하던 그 마음은 차를 마시던 옛 어른들도 같으셨던 모양입니다.

   중국의 정위(丁謂)라는 다인은 눈오는 날 눈으로 차를 끓이는 것을 즐겨하여 귀중한 차를 아끼고 아껴 서랍 혹에 깊이 넣어 두고서 눈오는 날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이 내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첫눈은 늘 반갑다고 어느 시인은 말하였습니다.이렇게 볼 때 눈은 차의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운 밤 손님 이 오면 차로 술을 대신하여 대접한다는 옛 싯구 한야객래다당주(寒夜客來茶當酒)가 있습니다. 반가운 눈오는 날 오래 보지 못하던 친구와 차 한잔을,찻잔으로 손을 녹여가며 뜨거운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훈훈하여집니다.

   눈 녹인 물로 차를 끓인 기록을 남긴 최초의 사람은 송나라의 도곡(陶穀)입니다. 그는 눈 녹인 물로 덩어리 차를 끓여 마셨습니다. 그가 남긴이 기록이 후대에 두고두고 차의 맑고 운치 있는 옛 이야기로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어릴 때 우리가 혓바닥으로, 손바닥으로 받던 눈을 우리 선조들은 입이 좁은 매병에 담았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담은 물을 땅 속에 묻어 두고 귀한 차를 마실 때 조금씩 나누어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입이 좁은 매병을 대지의 정기를 담은 눈을 받으려고 내놓았을 옛 다인들.매화가지 내린 눈을 조심스럽게 병에 옮겨 놓던 옛 다인들. 참으로 성에 낀유리창 너머에 보이는 그리운 얼굴들입니다.-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2월의 차 * 매화 향기 어리는 이른 봄날의 차 - ---

  2월의 차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는 2월입니다. 바야흐로 이른 봄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계절이지요. 이 달에는 입춘과 우수의 절기가 들어 있고, 차례를 지내는 설날이 있습니다. 정말 한 해의 시작은 입춘부터라고 할 수 있지요.해를 넘기면서 차는 맛을 잃어 싱싱한 햇차가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이렇듯 햇차가 그리워지는 계절에 우리 선조들의 차생활은 어떠하였는지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규경(李圭景)의《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演文長箋散考)》에는 매화꽃이 바야흐로 피려고 할 때 찻물이 끓기 시작한다는 차 기록이 나옵니다. 매화꽃과 차가 어울리는 이야기는 여러 문헌에서 나오는데, 차를 마시면서 매화를 감상하는 이외에 매화로 차를 달여 마신 기록도 보입니다.

   명대의 주권(朱權)은 그의《다보(茶譜)》에서 잔을 먼저 데워서 가루차를 내는 법을 설 명한 뒤에, 다음과 같이 매화차에 관한 기록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과일로 대신하여 차를 내지만, 매화나 계수나무꽃, 그리고 말리(茉莉)꽃이 더 좋다. 이 꽃봉오리 여러 개를 찻잔에 넣은 다음 조금 지나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찻잔이 입술에 가 닿지 않아도 향기가 코에 넘친다. 이 기록은 비교적 이른 시기의 꽃차에 관한 기록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계수나무꽃과 말리꽃으로 만든 꽃차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차와 꽃의 만남은 운치 있는 일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산업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수나무가 많은 중국의 계림에서 나는 계수나무꽃차나, 우리가 흔히 쟈스민차라고 하는 말리꽃차는 이런 오랜 전통 속에서 개발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당 최규용(錦堂 崔圭用)은 주권과 같은 매화차를 내십니다. 이른 봄 범어사에서 피는 매화 한 가지를 조심스레 옮겨와, 매화 봉오리 하나를 더운 김이 오르는 찻잔에 넣고서 조금 기다리면, 매화꽃과 차가 어울린 한 잔의 차가 됩니다. 이런 풍류스런 차를 마시면, 문득 가슴 속에서 매화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차와 꽃의 어울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견해도 일찍부터 있어 왔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이의산(李義山)은 꽃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것은 살풍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다서에서 차에 다른 향기로운 과일이나 꽃을 넣는 것을 무척 꺼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차는 새로운 차가 좋고, 먹은 오래 묵은 먹이 좋다고 합니다. 해를 넘긴 덩이차는 불에 구워서 말린 다음 가루를 내어 마신다는 기록이 채양(蔡讓)의 《다록(茶錄)》에 보입니다. 묵은 잎차를 정갈한 한지 위에 올려놓고 은근한 불에 살짝 불기운을 쪼여 차맛을 기르는 방법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서도 보입니다만, 《고반여사(考槃餘事)》의 차를 저장하는 법에의하면 차를 만든 다음에도 하지와 추분, 동지 등 모두 다섯 번에 걸쳐 차를 불에 쪼여 보관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를 보관하기 용이하지 않던 시기에 생긴 차 보관법입니다. 냉장법과 진공포장 등 차의 보관이 쉬워진 오늘날에 이와같은 방법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개봉한지 오래된 차를 정갈한 한지에 올려 놓고 불에 쪼여 말린 뒤 우려서 마시면 종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차맛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화와 어울리는 꽃은 수선화와 동백꽃입니다. 중국인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수선을 방안에 들여 놓고 수선화가 피기를 기다립니다. 수선화는 금잔옥대(金盞玉臺)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즉 금으로 만든 잔과 옥으로 만든 잔받침과 같은 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강희안(姜希顔)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 보면 우리 선조들도 그와 같은 멋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중국의 차 가운데에도 수선차(水仙茶)가 있습니다. 이 차 이름을 처음 들으면 쟈스민차와 같은 꽃차 같지만 꽃차가 아니고, 수선이라는 차나무 품종으로 만든 것입니다. 수선차는 무척 향기로우며, 그 맛이 진하여 여러번 우려내도 그 맛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나오는 우수한 차이지요.2월의 차생활 가운데 수선화와 더불어 차실에 어울리는 꽃으로는 동백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민요의 하나인 《동백꽃타령》에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가세 가세 동백꽃을 따러 가세 /   빨간 동백 따다가는 /  고운 님 방에 꽃아 놓고  /  하얀 동백 따다가는  /  부모님 방에 꽃아 놓으세  " 

   이런 민요 이외에 차를 사랑한 많은 우리 선조들은 동백꽃을 노래하였습니다. 산다(山茶)라고 노래되는 꽃이 바로 동백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차실에 가장 어울리는 꽃을 무궁화와 동백꽃이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차실에 무궁화를 꽂기 좋아하는 것이 무척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만, 동백꽃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 무궁화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무궁화와 동백꽃이 잎 밑에서 숨어 피어나면서 쉽게 지는 모습에서 잠시 이승에 스치다가는 바람과 같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빨간 동백 한송이 고운 님 방에 꽂아 놓고 매화 향기 어리는 차를 마십니다. 매화 향기, 차 향기 어린 작은 찻잔 안에 봄이 눈 틔우고 있습니다.-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3월의 차 *  - 대지의 잠을 깨우는 차 한 잔 -----

   겨우내 잠들었던 만물이 대지의 새로운 기운과 함께 기지개를 켜는 3월입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어진다는 그 경칩과 낮과 밤의 길이가 꼭맞아 떨어지는 춘분이 이 달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시절을 꽃피는 아침, 달뜨는 저녁 즉 화조월석(花朝月夕)이라고 합니다. 이 시기는 음력으로  2월과 8월 보름입니다. 음력으로 2월과 8월에는 낮과 밤이 꼭 반반씩 되는 춘분과 추분이 있고, 가득차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보름달이 있기 때문입니다.차를 우려낼 때, 더운 물을 반쯤 넣은 다음 차를 넣고 다시 더운 물을 넣는 중투법(中投法)이 봄날에 어울리는 차내는 법입니다. 이렇게 차를 내면서 차 정신의 하나인 중용의 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시절에 할 수 있는일이지요. 봄비에 푸르러지는 버드나무와 꽃샘바람 이기고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봄날 아침의 차 한 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보름달과 함께 찾아온 반가운 차벗과 함께 마시는 봄날 저녁의 차 한 잔.조선 시대 시인인 신종호(申宗鎬)는 이런 봄날이 가는 것을 아쉬워 하며 차를 마시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 차 마시기를 그치자   /  비로소 잠이 깨는데  /  집밖에서 자주빛 옥생황소리 들려오네.  /제비는 아직 오지 않고  /   꾀꼬리 또한 날아갔는데  /  뜰에 가득 꽃비가 소리 없이 내리네. " 

   우리 선조들은 이 때를 맞으면 무엇인가 묵은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냉이, 달래, 씀바귀 등 우리 입맛을 새롭게 하는 봄나물이 그 좋은 예지요. 차의 옛 글자가 씀바귀 도(도)자였다는 것은 차도 처음에는 싱싱한 봄나물의 하나였다는 좋은 증거가 됩니다. 곽박(郭樸)이 지은 《이아주(爾雅注)》에는 겨울에 나는 차싹으로 국을 끓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 옛날에 차가 기호음료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먹거리의 하나로 출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칩은 만물을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고 합니다. 어쩌면 차나무가 대지의 기운을 깨우는지도 모르지요. 차나무도 이 때를 전후하여 작고 작은 움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이 움으로 차를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이 여러 차문헌과 차시에 보입니다.

   《선화북원공다록(宣化北苑貢茶錄)》에 보면 백차(白茶)와 승설차(勝雪茶)는 경칩 이전에 만들기 시작하여 열흘 동안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는, 말을 탄 날랜 병사들이 음력 2월이 넘기 전에 서울로 날랐기 때문에 가장 먼저 진상되는 차라는 듯의 두강(頭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합니다.《북원별록(北苑別錄)》에도 경칩 때 만들어 처음으로 움이 틈으로 해마다 그 3일 전에 차판을 벌이는데 그 이유는 윤년에는 기후가 조금 늦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경칩을 전후하여 이른 시기에 차를 따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 점점 청명과 곡우 또는 입하를 전후한 시기로 바꾸어지게 되지만, 고려시대와 초기 조선시대에는 좋은 차를 얻기 위하여 이 시기에 차를 만드는 것이 사뭇 성행하였나 봅니다.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나오는 유다(孺茶)라든가 조아차(早芽茶) 등이 경칩보다 이른 시기에 만든 차이지요.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보내준 차에 감사하여 서거정(徐居亭)이 쓴 시에는, 경칩을 전후하여 김시습이 만들었던 차의 모습과 그 차를 마시던 서거정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 부분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  ......봄천둥 울지 않고  /  벌레는 아직 깨지 않았는데  /  산의 차나무는 움터서  /  새싹을 이루었네 / ......경주의 눈빛 종이로 봉지를 만들고  /  그 위에 초서로 두서너 글자를 적어 봉하였네  /  봉함을 여니 하나하나 봉황의 혀  /  살짝 불에 쪼여 곱게 가니  /  옥가루가 날리네  / 서둘러 아이 불러   /  다리 부러진 남비를 씻어  /  눈물로 담담하게 차를 달이며 /  생강도 곁들이네 ......"
 
   이 시에서 봄천둥이 울지 않았다는 것은 춘분이 아직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시의 제목은 《잠상인이 보내준 작설차를 고맙게 여기며》입니다. 눈빛 종이에는 아마도 작설차라는 글씨가 멋진 매월당의 솜씨로 적혀 있었을 것입니다.서거정은 그 차를 가루로 내어 고운 가루차를 만들고 눈을 녹여 생강의 매운 맛을 더하여 차를 끓였습니다. 차의 순수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로서는 생강을 가미한 차를 용납하지 못하겠지만, 차에 다른 향기나 다른 맛을 내는 풍속은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차를 마시는 하나의 풍속이 되었다는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용납못할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즐기는 현미차는 숭늉에다가 차를 우려낸 듯한 맛이 나서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지요. 그리고 요사이 중국에서는 인삼과 차를 더하여 우리와 다른 인삼차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숭늉과 인삼의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차의 개발에 더욱 주력하여 차를 처음접하는 사람들에게 별 부담을 주지 않고 차를 접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저는 때때로 별미로 가루로 된 인삼차를 더운 물에 부어 가루차와 같은방법으로 마시기도 합니다. 그 차를 차벗들과 나누어 마시면 독특한 그 맛에 차벗들은 감탄하기도 하고 차맛을 해치는 일이라고 꼬집기도 하지요. 그러나 차를 하나의 봄나물로 먹던 시기나 약으로 먹었던 옛일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에겐 기호식품인 차 하나에, 차 마시는 것은 꼭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너무 얽매여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맛에 대한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요즘은 시도때도 없이 각종 과일과 채소를 맛볼 수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새것이 나오면 먼저 조상님께 올린 다음에야 비로소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다달이 나라에서 새맛을 조상에게 올리는 일을 일러 천신(薦新)이라고 하였습니다.고려 때에는 천신하는 품목으로 2월에 얼음이 바쳐졌는데, 조선시대에는 품목이 더 늘어 생합, 낙지, 얼음, 전복, 그리고 작설차 등이 바쳐졌습니다.차마시기가 성하였던 고려시대에도 보이지 않던 천신 품목인 작설차가 조선시대에 바쳐졌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3월이 끝날 무렵에는 어디서 누군가 햇차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햇차를 만나거든 먼저 조상님과 웃어른에게 대접하도록 하지요. 그러고도 남은 차 있으면 꽃피는 아침에 마시지요.마음 속에 봄천둥이 칩니다. 어디선가 소리 없이 꽃비가 내리고 있을겁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4월의 차 * 4월의 차 - 차 한 잔과 진달래 꽃빛 마음 나누며 -----

   온 산에 진달래꽃이 불붙는 4월입니다.그 진달래로 우리 선조들은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오미자 우린 진홍색물에 진달래를 넣어 진달래 화채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이 진달래가 피면 요즘 차 마시는 벗들도 옛 어른을 본받아 산으로 나가 화전을 부치면서 마십니다. 그 가운데 어떤 차벗들은 제비꽃을 찻잔에 띄웁니다. 제비꽃을 띄운 차 한 잔을 마주하면 마치 겨울날 찻잔에 매화꽃을 띄우는 것과 같은 매력이 있지요.제비꽃은 여러모로 우리 건강에 이로운 야생식물로, 특히 소화기와 위장계통의 질환에 좋다고 합니다. 투명한 연분홍색 진달래꽃이 어울린 화전과 자주색 제비꽃이 한 이 동동 떠있는 차 한잔이 어울린 그 찻자리는 생각만 하여도 즐겁습니다.

   요즈음 차를 따는 차벗들은 새로 나온 찻잎으로 마치 파전처럼 전을 부치기도 하지요. 그 맛 또한 차의 독특한 향기가 어울려 일품입니다.청명과 곡우의 절기가 들어있고, 중양절의 하나인 삼월 삼짇날, 그리고 한식 등의 크고 작은 세시 명절이 들어 있는 이 4월은 그만큼 축복받은 계절입니다. 이 축복받은 달에 신라 때 충담사는 경주 남산의 삼화령 미륵 부처님께 차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번 중양절마다 부처님께 차를 올리던 충담사는 우리나라 사원다례(寺院茶禮)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도이 삼월 삼짇날이 되면 충담사를 기리는 모임이 경주의 차동호인을 중심으로 삼화령에서 치러지고 있습니다.조선시대 여류시인인 영수합 서씨(令壽閤 徐氏)는 이 삼월 삼짇날 답청(踏靑)가는 준비를 하면서 차도구를 준비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 여러 해 동안 은근한 불로  /   작은 화로에 차를 끓였으니  /  신기하고 영묘한 공덕이   /  조금은 틀림없이 있을터요  /  차 한 잔을 마신 뒤  /  거문고를 어루만지니  /  밝은 달님이 나와서  /  누군가를 부른다네  /  봄날 차반의 푸른잔에  /  옥로차를 올리노라니  /  오래된 벽에 그을음이 앉아  /  얼룩진 그림이 되었네  /  잔에 가득찬 것이   /  어찌 술이어야만 하리  /  답청가는 내일은 차호(茶壺)를 가져가리 "

   여기서 답청은 삼월 삼짇날을 멋스럽게 부르는 말로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엄격하게 제한된 시대에도 이 날만은 바깥 출입이 자유로웠습니다. 답청가는 날은 남자들은 곡수연(曲水筵)이라 하여 물이 굽이치는 곳에 술잔을 띄워놓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여성들은 물을 길러 교외로 나가기도 하였습니다.그 때 영수합 서씨는 차 마실 준비를 한 것이겠지요. 영수합 서씨가 남긴이 한편의 시는 그 동안 남성 위주의 차생활로 꾸며진 우리나라의 차문화에 여성도 일익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다신계의 《다신계 절목》에는청명과 한식 때부터 차모임을 시작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곡우날 어린 차를 덖어 차 한 근을 만들고, 입하 전에 늦차를 따서 떡차 두 근을 만들어 청명 한식 때 지은 시와 함께 정약용의 아들 유산에게 부쳤습니다.초의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는 입하 전후가 차 따기가 좋은 때라고 하였지만,옛 차서에는 한식과 곡우를 전후하여 차를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중국의 차산지와 우리나라의 차산지가 기온차가 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식 때 보다 먼저 만들어지는 차를 화전차(火前茶)라고 하고, 곡우를 전후하여 만들어지는 차를 우전차(雨前茶), 우후차(雨後茶)라고 합니다.

    장원(張源)의《다록》에는 곡우를 전후하여 차를 따는 시기에 다음과 같은 등급을 두고 있습니다. 차 따는 철은 그 때가 중요하다. 너무 이르면 맛이 오롯하지 못하고, 늦으면 신령스런 기운이 사라진다. 곡우날 닷새 전이 으뜸이고, 닷새 뒤는 그에 버금가며, 또 닷새 뒤가 그 다음이다. 문헌에 따라 차를 따는 시기에 관한 견해가 엇갈리지만, 경상도에서 불려진 차민요는 차를 따는 시기와 함께 차를 따는 여인의 마음을 소박하게 전해줍니다. 

   " 백설 덮인 상상봉에  /  싹을 내는 차나무는  /  강풍에도 겁이 없다.  /  곡우에는 땅김나고  /  우수 경칩 봄기운에  /  강남 제비 봄소식이  /  한 잎 두 잎 따는 손이  /  님의 생각 잃을까요. "

   한식을 금화(禁火)라고도 합니다. 그 뜻은 불을 쓰는 것을 금한다는 뜻이지요. 한식 전에 딴다고 하여 화전차라는 명칭이 생긴 것입니다. 시기에 따라 찻잎의 등급이 아주 큰 차이를 가집니다. 하루하루 찻잎이 자라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지요.한식 때 성묘가는 일이 큰 일 중의 하나입니다. 이웃 중국에서는 청명을 조상의 묘를 단정하는 민족소묘절(民族掃墓節)이라 정하고, 차인들은 봄을 맞이하는 영춘다회일(迎春茶會日)이라 하여 차의 명절로 지내고 있습니다.완연한 봄기운이 산에 들에 가득한 때에 가족들과 조상들이 계신 산소에 가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보고, 마음 맞는 벗들과 함께 진달래꽃 화전을 부치면서 차 한 잔을 마시다가, 찻잔 속에 어린 먼 산 진달래꽃빛과 햇빛 속에 발그스레진 진달래꽃빛 얼굴을 보는 것도, 이 4월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즐거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 4월에는 이웃나라에서도 차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행사가 있습니다.일본에서는 일본 다도의 큰 별인 천리휴(千利休)를 기념하는 제(음력 2월 28일)를 올리고, 대만에서는 유가의 차예절을 정리한 주희(朱憙)의 제일(음력 3월 9일)인데 대만의 차동호인들은 차례일(茶禮日)로 정하여 기념합니다.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날아오는 제비 한 쌍이 하늘을 가로질러 납니다. 저녁 놀 같은 진달래 꽃길로 차구를 울러멘 충담사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묵은 것 훌훌 털고 나도 그 길로 접어듭니다. 산에 들에 진달래꽃 그늘에서 차벗들을 만나면 자주빛 제비꽃 한 송이 동동 더 있는 차 한 잔을 권해 보지요. 그 찻잔을 건네받은 차벗도 진달래꽃빛 얼굴이 될 것입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5월의 차 * 뻐꾸기 울음 들리는 푸른 차 한잔 - ---

   5월의 차 비가 오고 나면 붉은 꽃은 여위어만 가고 푸른 잎이 살찌어는 5월입니다.햇볕이 바른 날 기온이 올라가면서 비풍이 불어 올 때,하늘에 가득 날리는 버드나무 꽃은 봄 속의 또 다른 눈의 나라를 생각나게 합니다.한식과 같은 세시풍속이 있는 지난 4월이 돌아가신 조상님의 달이라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성년의 날이 있는 이 5월은 산 사람을 위한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싹과 같은 어린이, 고향의 느티나무와 같은 어버이,그리고 청산에 자라는 푸른 소나무와 같이 성년을 맞이한 늠름한 젊은이들을 위한 날들이 있는 5월.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차 한잔을 나눌수 있는 그런 뜻 깊은 날이 이 5월에 들어 있읍니다. 예전에는 관례(冠禮)라 하여 성대한 성인식이 치러졌는데, 오늘날에는 성인식이 형식도 사라지고 그 의미도 퇴색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뜻 깊은 어른들께서 성인식을 부활시키고 술대신 차로써 성인식을 치르는 것을 본 적이 있읍니다. 차의 마음을 전하는 뜻이겠지요 이렇듯 5월의 차생활은 화합의 기운이 넘칩니다.이 5월에는 입하와 소만의 절기가 들어있고, 불교의 명절인 석탄일이 있읍니다. 위도가 중국의 차산지보다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입하를 전후하여 차따기가 좋습니다.

   아침 안개 속에서 꽃비 맞으면 다원에 올라 이슬 가득한 찻잎을 흔들어 깨우면서 찻잎을 따다보면, 해가 뜨는 것도 잊은 채 찻잎을 따다보면, 먼산에서 뻐꾸기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 뻐꾸기 울음도 잊은 채 차를 땁니다. 차를 따면서 무아(無我)의 삼매경(三昧境)에 든다는 옛 어른의 말씀이 실감나지요.차를 따는 것이 그러할 뿐 아니라, 차를 만드는 일도 또한 사념을 떨쳐야 합니다. 솥의 온도가 조금 높다던가 낮으면 차의 참맛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조심조심하여 차를 덖다보면 차의 푸른기운이 사라지면서 차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제가 처음 차를 만들때, 그 향기는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냄새가 마치 잔디를 깎을 때 나는 풀냄새와 비슷하다면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그 향기가 나면 차를 차솥에서 들어내어 밀가루 반죽을 하듯 비빕니다. 비비기 시작할 때는 손에 힘을 들이지 않고 덩어리를 만들어 가다가, 덩어리가 만들어지면 힘을 조금씩 주어가며 비비지요. 손에 근끈한 진액이 묻어 나오고 잎이 마르기 시작할 때,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면서 그동안 차를 너무 쉽게 마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날 것입니다.초의 스님은 장원의 <다록>을 <만보전서(萬寶全書)>에 <다신전(茶神傳)>이란 이름으로 옮기면서, 차를 만들 때는 정성스럽게, 저장할 때는 건조하게,차를 낼 때는 청결하게 한다고 하였읍니다. 이른바 정성스럽게, 건조하게 그리고 청결하게 한다는 차의 위생은 1595년을 전후하여 만들어진 장원의 다도정신인데, 이 정신이 우리나라의 초의 스님 이전에 이미 1600년대에 있었다면 많은 분들이 놀라실 것입니다. 장원이 말하는 다도정신과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다도와는 엄격한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는 그 차이점보다는초의 스님이 무리없이 수용한 그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장원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조선 중기 기인 중의 한 사람인 허균(許筠)(1569-1618)의 <한정록(閑情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읍니다. 차를 딸 때는 정성스럽게, 차를 보관할 때는 건조하게, 차를 끓일 때는 청결하게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장원의 다록에 나오는 기록과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이 허균의 기록은 우리 차문화를 조명하는데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장원이나 허균이 전대 선배들의 차 문헌을 참고하여 자신들의 이론으로 끌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차를 잘 보관하여 청결하게 차를 우려낸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명심하여야 할 차의 규범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햇차 맛보기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원에 오자마자 찻잎을 따서 끓는 물에 풍덩 담가서 마시거나, 푸른 찻잎을 다관에 담고 더운 물을 넣어우려 마십니다. 조금 떫고 풋내가 나는 그 차맛은 한두번 즐기기에는 가지고 있는 제 품성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그 향기와 빛 그리고 맛을 잃고 만다는 것은 검소함과 덕있는 차생왈을 강조하는 차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중국에서는 입하 때가 되면 칠가죽(七家粥)과 칠가차(七家茶)를 먹습니다.여기서의 칠가는 일곱 집이라는 뜻이지요. 이 풍속은 우리가 정월 대보름때, 오곡밥을 여러 집에서 먹는 풍속과 비슷합니다. 칠가차란 일곱 집에서 각각 잘 만들어진 차를 가져와서 한 주전자에 넣어 차를 우려 여러 사람을 불러서 즐겁게 나누어 마시는 차를 말합니다. 칠가죽도 이와같은 방법으로 나누어 먹는 풍속이지요. 요즘과 같이 반목이 많은 시절에 칠가차와 칠가죽은 진정한 화합이라는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여러가지 차를 혼합하여 우려내는 차는 차의 본래 맛을 잃게 하지만, 자신의 아상(我像)을 없애고 하나가 된다는 것과 그것을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는 풍속에 담긴 뜻은 우리가 배울만 하다고 생각됩니다.요즘음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하십니다.`차가 좋아서 차를마시다가, 차를 마십네 하는 사람들이 싫어 차를 마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이 말을 들으면 우울해집니다. 차 마시는 여러 어른들께서도 각각 차를 가져오셔서 차 한 주전자 끓여서 나누어 주시는 것도 이 5월에 할수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이 5월에 어울리는 다식은 송화다식(松花茶食)입니다. 송화는 소나무 꽃가루이지요. 그 꽃가루를 모아 꿀과 버무려 다식판에 박아 내놓으면 때깔 고운 노란 빛의 송화다식이 됩니다. 이 송화다식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반가운 벗과 함께 소나무에 걸려 있는 흰 구름을 보는 것도 이 시절에 할수있는 일이지요.

   도은 이승인(陶隱 李陞仁)은 다음과 같이 그윽한 시 한수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 산 남쪽 북쪽은 가는 길로 나누어지고  /  소나무 꽃가루는 비를 머금고 떨어지고  /  도인이 물을 길어 띳집으로 돌아간 뒤  /  푸른 연기는 흰구름을 물들이네   "

    비를 머금은 송화가루가 뚝뚝 떨어지는 아침, 한 도인이 물을 길어가서 불을 피우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이 시는 차라리 글자가 그 어느 구석에도 없지만 차의 내음이 물씬 배어 나옵니다. 고려말의 도은 이승인이 훌륭한 차관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차내음은 더욱 짙어집니다.고운 잎차를 다관에 넣습니다. 조금만 찻잔에 차를 따라서 송화다식과 함께그 대에게 권합니다.그대 마음 속에서도 뻐꾸기 우는지요.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6월의 차 - 마음 속에 차 다(茶) 자를 쓰며 -----

   봄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푸른 잎이 눈부신 6월입니다. 낮의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여 여름이 시작된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달입니다.이번 달에는 망종과 하지의 절후가 들어있고, 민속 명절인 단오가 있습니다.망종 때는 보리는 수확하여 햇보리를 먹게 되고, 볏모가 자라나서 심게 됩니다. 하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지요. 이렇듯 바쁜 농번기에 일손을 놓고 잠시 쉬는 날이 단오입니다.이 6월의 기념할만 차 한잔의 옛일로서는 송대의 다구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다구도찬(茶具圖讚)》이 쓰여진 일이지요. 그날은 하지가 지난 5일 뒤입니다. 그럼 먼저 단오 때에 있는 차 풍속을 알아보도록 하지요.단오 때에는 여러 민속이 있습니다만 차와 관련된 두 가지 민속이 문헌에 전합니다.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나오는 차부적은 부적을 쓸 때 쓰는 붉은 주사로 차 다(茶) 자를 써서 뱀을 쫓는다고 합니다. 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꾸로 흐르는 물에 먹을 갈아 용 자를 써 네 벽에 붙이고, 단오날 오시에 주사로 차 다(茶) 자를 많이 써서 붙이면 뱀과 지네가 없다. 여기서 단오날 차 부적으로 뱀을 쫓는다는 이야기는 《증보산림경제(增보山林經濟)》에도 보입니다만, 오늘날 그 흔적을 찾아보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니 '신다부'라는 부적이 있는 것을 보면 차 자가 어떤 신통력을 가졌다고 믿은 것은 분명합니다. 신다는 악귀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신도(神茶)와 울루(鬱壘)라는 대문을 지키는 문신을 가리키는 말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전예형이 쓴 《자천소품》에 보면 물에 관하여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우물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입니다.  " 갈홍(葛洪)은 말하였다. 5월 5일 날 닭털을 시험삼아 던져 보아서 털이 곧장 내려가면 독이 없지만, 네 모퉁이를 빙빙 돌면서 떨어지는 우물물은 마시면 안된다. "  이 이야기나 앞서 나오는 이야기나 모두 오늘날 생각해 보면 이상할 따름입니다. 날로 짧아지는 여름 밤, 이런 옛 사람의 마음을 더듬으면서 차 한잔을 마시도록 하지요. 싱싱한 햇차의 맛이 신비롭게 입안을 적실 것입니다.

   그리고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단정하게 감은 뒤 창포뿌리로 비녀를 하고 차 한 잔을 우려내는 엣 여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가슴두근거리는 즐거움입니다. 단오날 피는 창포는 우리가 흔히 꽃창포라고 부르는 보라색과 흰색의 창포와는 달리 수수하기 짝이 없는 그런 꽃입니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이 꽃창포를 유난히 좋아하여, 꽃창포를 수반에 꽂아 놓고 차회를 열기도 하지요. 중국에서는 이 단오날을 약차절(藥茶節)이라 하여 창포차를 마시고 약차를 만듭니다. 여름에 차를 낼 때는 물을 먼저 넣고 차를 우려내는 상투법으로 한다고 옛문헌에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차를 넣고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내는 하투법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고온 다습해지는 이 계절에 특별히 유의하여야 할 것은 차의 보관입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차일지라도 차 보관이 안되면 차가 지닌 본래의 맛을 잃게 됩니다. 차의 보관을 잘못하여 차통에 습기가 차서 변질이 되면, 다음과 같은 심정이 절로 이해될 것입니다.

  " 시름진 비는 한 달이나 강물처럼 내려//  하늘은 밤낮으로 어두컴컴  /  해와 달을 감추네  /  항아리 속 좋은 술은 /  향기를 바꾸었으니  /  어찌 마실 수 없는 것을 /  마셔 사람을 취하게 하리 /  상자 속 향기로운 차도  /  맛이 많이 변했으니  /  끓여 마신다 한들  /  잠을 쫓을 수 있으리. "

    이 시는 고려시대의 다인인 이규보의 《장마비 노래》입니다.여기서 한달 동안 온다는 비는 망종이 지난 뒤 6월 중순부터 시작하여 7월 초순까지 이어지는 매우(梅雨)를 가리킵니다. 이 시기에 매화의 열매인 매실이 노랗게 익기 때문에 매우 또는 황매우(黃梅雨)라는 시적인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때 강우량이 풍부하지 않으면 한 해의 수확량이 크게 줄게됩니다.그러나 오랫동안 계속되는 장마는 의복 뿐만 아니라 집안이 눅눅해지고, 습한 곳에는 곰팡이가 핍니다. 이 시기에 습기를 싫어하는 차의 보관은 각별히 신경써야 합니다. 차 보관이 불편하였던 그 옛날, 훌륭한 다인으로 손꼽히는 이규보도 장마통에 차맛을 잃은 차를 이렇게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차 보관이 참으로 힘들기는 힘든 일인가 봅니다. 그래서 허차서의 《다소》에는 비오는 날에는 차 단지의 뚜껑을 열지 말라고 까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차의 보관이 용이하고 과학적이어서 이런 불편한 점이 없지만 한번 연 차통 속의 차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미리 차를 작은 포장으로 나누어 놓고, 마실때 마다 하나씩 풀어서 마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그러나 차의 종류에 따라서는 오래된 차가 더 좋을 수가 있습니다. 해를 많이 넘긴 차를 진년차(陣年茶) 또는 노차(老茶)라고 하는데, 보이차와 오룡차, 철관음과 같은 발효차로 진년차를 만듭니다. 녹차나 일반적인 차가 신선한 맛이 있다면, 진년차나 노차는 그와 다른, 중후하고 깊은 맛이 있지요.옛 문헌에는 햇차와 묵은차를 섞어서 차를 우려내면 햇차가 묵은차의 맛을 도와 훌륭한 차우리기가 된다는 기록이 보입니다만, 오래 묵은 녹차는 마시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하지가 가까운 무더운 여름날 매미가 울기 시작합니다. 늘어지게 울기 시작하는 그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여름날 차생활 준비를 시작합니다. 먼저 차수건이나 차보도 삼베나 모시로 바꾸어 시원하게 꾸며보지요. 그리고 좀 여유가 있으면, 옛 어른들이 유기그릇에서 백자그릇으로 바꾸듯이 차그릇도 차빛깔이 잘 보이는 그런 백자로 바꾸어 봅니다. 그리고 찻상과 차탁도 대나무로 만든 소품으로 꾸며봅니다. 어떤가요? 한층 더 시원한 느낌이들지요. 그리고 찻물을 끓입니다.솔바람 소리 잣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립니다. 조심스레 찻통에서 차를 들어낸 뒤에는, 나머지 차는 습기가 침입하지 않도록 꼭 싸서 차통에 다시 넣어둡니다. 물을 붓고 차를 넣습니다. 가끔 개이다 다시 비오고 비오다다시 개이는 사람살이에서 뱀과 같이 사악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이제 대문이 아니라 마음 속에 주사로 차 다(茶) 자를 써 봅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7월의 차 - 생각만 하여도 마음에 연그늘이 덮이는 연화차 ----

  덥지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절로 땀이 납니다. 이렇게 더운 날 우리 조상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차를 마셨을지 사뭇 궁금합니다. 이번 7월에는 소서와 대서 절기와 초복과 중복 그리고 6월 유두날이 들어 있습니다. 이 런7월에는 뜨거운 차를 마신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마음가짐과 행위에서 이미 더위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동양문화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됩니다.우리 선조들이 더위를 이기는 데에는 다른 나라의 피서법과는 달리 적극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흔히 열로써 열을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방법이 그것이지요. 그 대표적 예로는 복날 땀 흘리며 막는 삼계탕이나 개장국과 한증이 있습니다.

  차를 마실 때에도 이 이열치열의 정신에 바탕을 둔 이런 말이 전해옵니다. 추울 때 차를 마시고, 더울 때 차 마시기를 그치면 진정한 차마심이 아니다. 여름날 차 마시는 풍속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마도 《부생육기(浮生六記)》 속에 나오는 운(芸)이의 연화차가 아닌가 합니다. 임어당(林語堂)에 의하면 중국의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인 운이는 훌륭한 다인으로서 충분한 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연화차는 비단봉지에 싸서 아직 피지 않은 연꽃 봉오리 속에 넣어 두었다가 해가 뜨기 전 봉오리 속에서 꺼내어 새로 길러온 샘물을 달여서 마시는 차입니다.

   이 연화차를 생각만 하여도 넘실거리는 연잎과 바람에 나부끼는 연꽃잎, 그리고 그 연잎과 연잎에 달린 아침이슬이 저를 운이의 곁으로 이끌어 갑니다. 물론 이 연화차는 청대에 유행하던 꽃차의 하나인데, 운이의 손길에 의해 우리에게 더욱 생생하게 그 멋과 향기를 전하는 차입니다.요즈음도 이 운이와 같이 자기 나름대로 차를 마시는 방법을 개발하는 여러 차 동호인들을 만날 수 있어 무척 즐겁습니다. 추울 때 차를 마시고 더울 때 차를 마시지 않는 것은 진정한 차마심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옛 선배들이 남긴 문헌을 살펴보면 복더위 속에서 차를 마신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데 요즈음 차 애호가들은 자기나름대로 이 더위 속에서도 쉽게 차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이웃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차가 섞인 마실거리와 먹거리는 주로 홍차와 가루차로 만들어집니다. 그차와 음식들은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차생활을 오래한 사람들도 신기하게 보십니다. 그럼 그런 마실거리와 먹거리에 관하여 알아 보도록 하지요.먼저 아이스크림과 가루차를 잘 섞어서 들어보십시오. 이 때 아이스크림은 향료가 없는 것이 좋지만 부득이 한 경우라면 바닐라 향이 섞인 아이스크림도 좋습니다. 아이스크림과 가루차의 조합 비율은 빛깔과 맛을 조절해가면서 자신의 기호에 맞추도록 하지요.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조금 변형된 이 맛에는 만족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마실거리로는 사이다와 가루차를 섞어 마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가루차를 잔 속에 넣고 찬 사이다를 부어서 조금 휘저으면 거품이 쏴하는 소리와 함께 잔뜩 피어납니다. 그 때가 가장 마시기 적합한 때입니다. 그러나 이 마실거리의 아쉬운 점은 거품이 쉽게 사라진다는 점입니다.마치 여름 소나기와 같은 시원함을 주는 마실거리라 하겠습니다.어떤 차벗들은 차를 우려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마시면 갈증이 안나서 좋다고 하고, 어떤 차벗들은 차는 금방 우려서 마시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아직 여기에 관한 정확한 학계의 보고가 없음으로 여름철의 차를 마시는 한 방법으로 소개할 뿐입니다. 이웃 일본이나 대만에서는 오룡차를알 미늄 용기에 담아서 뜨겁게 하여 마시거나 차게 하여 마시는 방법이 개발되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알미늄 용기 속에 든 오룡차가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일반화되지는 않고 있습니다.술과 차를 사랑하는 벗들은 차를 술에 넣어 즉석 칵테일을 만들어서 마십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차게 냉장시킨 소주와 오룡차를 섞어서 마시는 방법이 유행합니다. 이 칵테일은 뒷끝이 깨끗하여 더욱 그 성가를 높이고 있답니다. 차와 술은 그 특성이 상반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와같은 방법이 생겨난 것을 보면 이미 서구에서는 뜨거운 홍차와 위스키를 조금 떨어뜨려 내는 방법으로 홍차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위스키가 섞인 홍차가 겨울날의 사랑받는 차라면 이 소주와 오룡차의 차마실거리는 여름날의 좋은 칵테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홍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름날 즐길 수 있는, 정말 맛있는 아이스티를 만드는 방법을 하나 소개하지요. 먼저 홍차를 우려냅니다. 홍차는 녹차를 우려내는 요령과 같이 우려내는데, 붉은 장미빛으로 우러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렇게 우러난 홍차에 홍차 전용 설탕으로 단맛을 더하여 식힙니다.그리고 모양을 주어 냉동실에서 얼리지요. 이제 준비가 되었으면 시원한 아이스티를 만들어 보실까요.먼저 홍차 한 잔을 우려서 유리잔에 담고 얼린 홍차 얼음덩이를 더합니다.그리고 레몬 한 조각을 띄우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스티는 보기에도 아름다울 뿐만 아이라 시간이 지나도 차의 맛이 옅어지지 않습니다. 여름날 야유회에 갈 때 홍차 얼음덩이를 만들어 가면 색다른 맛과 분위기를 만들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원한 차푸딩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지요.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천을 끓이다가 홍차를 넣어 홍차빛이 우러나도록 끓여서 검은 설탕으로 단맛을 주고 식혀서 냉장실에 넣어 두면 됩니다. 이 때 용기의 모양에 따라 푸딩의 모양이 바뀌므로 많은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그 시원한 맛에 여러분도 놀랄 것입니다. 홍차를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빛깔도 탁할 뿐만 아니라 떫은 맛이 진해지지요.아직 더우신가요. 그럼 제가 마신 여름 차 한 잔을 소개하지요. 몇년전 여름, 차생활을 하신다는 스님 한 분을 뵈러 산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날따라 어찌나 무덥던지 땀으로 목욕을 하는 것처럼 해서 산을 올랐습니다.급한 마음에 질러 간다고 한 것이 길을 잘못 잡아 산 정상까지 올라 갔다가다시 내려와 길을 헤매었습니다. 그러다가 물줄기 하나를 발견하고서 따라 올라가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암자와 요사채 하나가 동그마니 있었습니다.

   스님은 계시지 않고 그 곳을 지키는 신도 한 분이 더운데 올라 오셨으니 세수를 하고 땀을 식히라고 하셨습니다. 땀을 식히면서 앉아있는데 그 신도분이 뜨거운 차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차를 마시면서 저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고 조금 있자 갈증이 사라지면서마음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때마침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지 산이 기웃하였지요. 그때 그 시원함,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잠시 신선이 된 듯한 바로 그런 기분이었지요.여러분들도 운동을 하여 땀을 많이 흘린 뒤나 무더운 날 뜨거운 차 한잔을들어 보십시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일어나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식혀줄 겁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8월의 차 - 느티나무 그늘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

   시원한 나무 그늘과 찬 음료가 생각나는 8월, 잎 지고 열매 맺는 가을을 생각하기엔 아직 이르지요. 그러나 이 8월의 첫머리에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가 들어 있습니다. 삼복의 마지막인 말복이 중순 경에 들어 있고, 더위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처서가 8월의 끝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지 가득 차면 넘친다는 옛 말씀이 과연 허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같은 절기 외에도 이 8월에는 칠월 칠석과 칠월 백중이 들어 있어 무더위에 찌는 한여름을 보다 시원하게 만듭니다. 칠석이 한밤의 축제라면 백중은 한낮의 축제입니다. 물론 칠석날에 낮의 모임이 없는 것이 아니고, 백중날 밤의 모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웬지 칠석에는 밤의 정서가 흐르고 백중에는 낮의 힘찬 정서가 흐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럼 이즈음에 옛 선배들이 차를 마신 기록을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입추가 되면 가을 기운을 아침이슬이나 아침안개로 먼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지요. 이 가을 바람 속에서 여성다인인 영수합 서씨는 차를 마시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 내 쇠약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  너도 늙었으니 내 마음 알 것이라  /  지팡이 짚고 나서면 가을바람 차고  /  창을 열면 옥같은 이슬 맑기도 해라  /  비록 거문고와 피리소리는 없어도  /  술과 차는 갖추어 놓았네  /  한가로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졸면서  /  어찌 명리를 다투리 . "

    이 시는 영수합 서씨가 동생에게 보낸 시입니다. 한 발자국 물러서는 여름날의 찬바람과 아침이슬에서 영수합 서씨는 문득 자신의 가을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리고는 자신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동생에게 자신의 근황을 시로 적어 보내고 있습니다.그녀가 느티나무 그늘에서 졸면서 마시던 한 잔의 차는 과연 어떠하였을 것인지 위의 시로서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찻자리가 실내가 아닌 밖으로 옮겨져 있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여름날 차생활을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을 줍니다.《다경》의 제9장은 차생활에서 생략할 수 있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야외에서 차를 마실 때는 번거로운 차도구를 생략한다고하였습니다. 즉 솔숲에서는 차도구를 벌려 놓는 구열을 생략한다든지, 샘물이나 산의 개울가에서는 물통이나 개수통, 물거르는 자루를 생략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요. 그리고 산이나 바위를 오를 때는 차살림은 산아래에서 모두 준비한 다음 번잡한 차도구를 생략한다고 하였습니다.이렇게 볼 때 산간이나 강가에서의 차생활은 무척 단순한 차살림으로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원감국사는 《산속의 즐거움》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은 단순하지만 선(禪)의 정신이 넘치는 시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 한 바릿대의 밥과 한 쟁반의 나물 /  배고프면 밥을 먹고 지치면 잠을 자네  /  물 한 병과 차 남비 하나  /  목마르면 들고 와서 손수 달이네  /   산 속 생활에서 차살림이란   /  물 한 병과 차 끓이는 남비 하나 . "

 

라고 한 원감국사의 이 시에서 우리는 안으로 가득 넘치는 내면의 세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여름날 느티나무 그늘이나 시원한 냇가에서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히면서 차 한잔을 마시는 그런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선이 따로 있겠습니까, 마음이 한가하면 곧 신선이 아닐런지요. 이즈음 고려시대 절에서는 차를 마시면서 과일도 함께 먹은 기록이 보입니다. 이규보가 안화사를 방문하고 남긴 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규보는 안화사의 샘물로 일곱 사발의 차를 마신 다음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앞부분을 생략하고 뒷부분만 옮깁니다.

  ' ..... 때는 마침 초가을로 바뀌었지만  /  늦더위는 아직도 여전하여  /  정오엔 찜통같이 더워도  /  저녁 때엔 서늘하여 기분 좋구나  /  푸른 외를 맛보니 수정 같아  /  과즙이 이를 시리게 하고  /  두 볼 같이 붉은 복숭아를 깨무니 잠을 깨운다  /  누워서 한가하게 돌아가기를 잊으니  /  이 놀이는 참으로 나의 뜻에 맞구나 . "

   한편 이와 같이 단순하고 소박한 차생활 이외에 갖은 머리를 다 짜서 교외로 나가 차를 마신 기록을 연화차를 만든 운이가 남겨 놓고 있습니다. 운이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포장마차라고 할 수 있는, 죽 파는 수레를 빌어 차수레로 만들어서 보다 적극적인 야외에서의 차생활을 하였습니다.우리 선조들도 수레를 이용한 정자를 구상하였다면 많은 분들이 놀라실 것입니다. 이른바 바퀴를 단 이동식 정자지요. 그 정자의 이름은 사륜정(四輪亭)이라고 합니다. 경치 좋은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시회를 열 수 있는 정자를 설계한 이규보나 운이의 생각은 보다 여유로운 사람을 추구하는 풍류정신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매미 소리가 쟁쟁한 8월의 오후, 가까운 산과 들에 나가 차를 끓입니다.그리고 냇가에는 여름 과일을 담궈 놓고 차게 식힙니다. 그리고 가을 기운이 들고 잇는 산과 들을 봅니다. 마음에 가을이 들면 근심(愁)이라구요. 그근심, 차 한 잔과 함게 지웁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9월의 차 - 솔 향기 가득한 한가위 날의 차 한 잔

   가을입니다. 아침이면 하얀 이슬이 맺히는 가을입니다. 아직 한낮엔 곡식을 익히는 햇빛이 따갑습니다. 그러나 제법 가을빛을 띠는 나무그늘에 들어서면 신선한 기운이 감돕니다. 잠시 잠시 오는 비가 개면 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먼 산이 가깝게 보입니다. 이 9월에는 백로와 추분의 절기가 들어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중국의 다서인 《자천소품》에 보면, 이슬은 양기가 넘쳐서 흩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빛깔이 짙은 것을 감로(甘露)라고 하고, 감로는 기름처럼 엉키고 엿처럼 맛이 달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은 이슬로 차를 달이면 그야말로 신선이 마시는 음료가 아니겠습니까?옥저(沃沮)의 백성들은 단이슬을 마신다는 기록이 《박물지(博物誌)》에 보이고 오월 단오에 상추에 맺힌 이슬을 얼굴에 바르면 피부가 고와진다는 풍속도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도 이슬을 음료와 미용 재료로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그 이슬이 하얗게 빛나는 백로의 계절입니다. 이슬을 모아 차를 마신다는것은, 내가 사는 서울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예전에 사원에서 헌다라 하여 부처님께 차를 올렸습니다. 요즈음은 차보다는 맑은 물을 올립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다게(茶偈)를 하지요. 여기서는 그 일부만 옮기도록 합니다.

   " 내 이제 맑은 물을 올리니  /  달디 단 이슬차로 변하여라 "

    맑은 물을 올리면서도 달디 단 이슬차 즉 감로차(甘露茶)로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우려낸다면 그 차는 더욱 향기로울 것입니다. 그동안 덥다고 멀리 밀치어 둔 찻잔에 먼지가 앉아 있다면 그 먼지부터 털어내는 것도 이즈음에 할 일이지요. 그 밀쳐 둔 찻잔을 무릎 앞에 가까이 하고 차 한잔을 냅니다.차가 있고 좋은 벗이 있으면 어느 때인들 차 마시기 좋은 때가 아니겠습니까만, 점점 맑아지고 투명한 하늘을 보면서 마시는 차 한잔은 각별합니다. 당신이 건네는 차 한잔 속에 하늘이 담깁니다.하늘이 담긴 차 한잔을 가만히 입술에 가까이 가져가 보십시오. 어쩌면 당신은 그 때 하늘냄새를 맡을지도 모릅니다.

   추분 때가 되면 여름벌레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가을벌레의 울음 소리가 커집니다. 가을 비가 멎은 밤, 천지가 조용한 가운데 울기 시작하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는 이 가을의 차 마시는 정경 속에서 다음과 같은 담담한 시로 다시 살아납니다.

비 그치자 벌레는 울기 시작하고

어둠 속의 모든 풀이 젖어 있습니다.

방울져 떨어지는 물소리 처마 끝에 들리고

그 남은 물기는 베개 속에 스밉니다.

 내 사는 작은 집에 머물고자 하신다면

여울을 지나 작은 노를 멈추시지요.

 차 화로에 불이 있는지

구리 주전자는 벌레 소리를 내면서 웁니다.

   비가 그친 뒤 울기 시작하는 벌레 소리와 구리 주전자에서 나는 소리를 교묘하게 접합시킨 이 시는, 비 개인 가을밤 친구를 기다리며 차를 달이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차는 흔히 색.향.미, 즉 빛깔과 향기 그리고 맛의 예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차를 오감의 종합 예술이라고 하는 선배들의 의견에 찬성합니다.찻물을 끓일 때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차를 우려내고 차를 따를 때에 나는 소리를 가만히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출벌레 울음소리와 솔바람소리, 잣나무에 빗물 떨어지는 소리, 물결치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어 물과 불이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치있고 운치있게 차를 내어 마시는 모습을 보면 한바탕 춤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요.비 개인 저녁 가득한 풀벌레 울음 속에 차 한 잔을 끓이는 주전자에서 풀벌레 울음 소리가 그 풀벌레 소리와 어울립니다. 그리고 구름을 벗어난 달이 나옵니다.

   달이 둥글면 둥글수록 그리운 얼굴들이 모이는 추석이 가까워진 것이지요.추석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절입니다. 가윗날 또는 한가위라고 하는 추석은 옛 신라 때부터 있어 온 명절입니다. 추석날 아침에는 새옷을 갈아 입고,햇곡식으로 만든 차례상 앞에서 차례를 지냅니다.요즈음의 차례는 술을 올립니다만, 우리가 차로 차례를 지낸 기록은 가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늘날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후손들은 그 전통을 이어 차로 차례를 지내는 것을 재현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노력은 우리 차례 풍속의 역사와 근원을 밝혀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일각의 여성단체와 문중에서도 차례의 본 뜻을 살려 차로 차례를 하는 일을 앞장서고 있습니다.

   흔히 중국은 다예(茶藝,일본은 다도(茶道), 그리고 우리나라는 다례(茶禮)또는 차례라고 합니다만, 정작 차로 행하여져야 할 차례가 술로 지내진다는 것은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이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번 추석부터 차벗들이 먼저 조상님께 올리는 차례상에 차 한 잔 올리도록 하지요.옛 풍속은 고치기 힘들다고 하지만, 차례의 본 뜻을 어른들께 일러드리고 정성을 다하여 조상님께 차 한 잔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어른들도 흐뭇해 하실겁니다. 그리고 솔 향기 나는 송편과 함께 차 한잔을 가까운 친지들과 나누도록 하지요. 솔바람 소리와 솔 향기가 가득한 한가위 저녁이 문득 기다려집니다.-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 10월의 차 * 국화 향기를 차 한 잔에 담으며 - ----

   10월의 차 억새꽃이 바람에 뒤척이는 10월입니다. 깊은 잠을 청하고자 하여도 창밖의 벌레소리에 마음이 웬지 생둥거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억새같은 마음 속에 10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런 밤을 지낸 다음 이른 아침엔 찬 이슬을 털고 약수를 뜨러 한번 가시지요. 샘물 한 바가지로 간밤 마음속에 피고 지던 생각들을 한꺼번에 지웁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에 약수한 동이를 길어다가 차를 달입니다. 억새처럼 일렁이던 마음도 가을물 처럼 맑게 개고 조용해질 것입니다.이 10월에는 한로와 상강의 절기와 중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이슬이 차가워지고, 서리가 내려 이른 아침이면 입김이 하얗게 나는 때이지요. 이 계절에 빛나는 꽃은 국화입니다. 사군자의 하나이기도 한 국화는, 옛 선비들의 기상을 가장 잘 닮고 있는 꽃이지요. 국화 가운데서도 가장 국화를 대표하는 꽃은 노란 황국입니다. 맑은 하늘 아래 빛나는 황국을 보고 있으면, 마 마저 시원해집니다. 그 국화가 중구절의 때를 맞추어 피면, 우리 옛 선인들은 국화를 노래하는 시회를 열기도 하고, 국화 화분을 달빛 영롱한 마당에 내려놓고 감상을 하기도 하였지요.

   중구절은 삼월 삼짇날과 함께 양의 수가 겹쳐 있는 날로 중양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머리에 수유꽃을 꽂고 화(禍)를 피하기 위해 국화주를 마시기도 하였지요. 옛날 충담 스님도 이날 삼화령 미륵부처님께 차를 올리기 위해 삼화령에 올랐던 날이 중구절이란 것을생각하면, 이 중구절이 예삿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양절의 풍속이 많이 사라졌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아직 그 유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동양의 수 개념 속에서 보면 9라는 숫자는 양의 수의 끝인데 그것이 겹쳐있으므로 중구절 또는 중양절이라고 합니다. 양기를 존중하는 동양인들은그래서 이 날을 명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 중양절의 기록은 군신간에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행사였습니다. 신라 때에는 월상루에서 군신 간에 서로 시를주고 받았고 고려 때에는 중양절의 향연이 나라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이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선비들은 단풍놀이를 하면서 국화주를 마신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러니 차를 사랑한 우리엣 선인들이 이 좋은 때에 그냥 있었겠습니까. 차 한 잔을 불전에 공양하던 충담 스님과 비슷한 시기의 중국의 다승(茶僧)인 교연(皎然)은 다성 육우와 더불어 이 중양절 날 차를 마시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습니다.

   " 중양절 날 산승이 사는 집동쪽  /  울타리에는 국화 또한 노랗게 피었네 /  속인들은 술에 빠져 있으니  /  누가 국화 향기가 차 향기를 돕는 것을 알리요."

   이 시는 가을날, 특히 중양절 날 국화 향기 속에서 차를 마시는 기록으로는 가장 앞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차와 꽃이 어울린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기도 하지요. 이 시에는 수행인들이 살던 사원에서 술 대신 차를 마시는 모습 속에 국화 향기가 가득합니다.국화를 사랑하여 국화꽃을 보면서 국화 향기가 나는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국화꽃을 그대로 말려서 마시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화차, 감국차가 바로 그것이지요. 잘 말린 국화와 감초를 넣어 마치 차를 우려내는듯 마시는 국화차의 쌉쌉한 향기는 여느 마실거리보다 시정이 넘치는 일이지요.

   그러나 꽃차의 하나로 발전한 국화차는 이와는 조금 달리 보이차와 말린 국화, 그리고 감초를 넣고 우려냅니다. 그 빛깔은 그리 사랑스럽지 않지만,그 향기와 맛은 깊은 가을로 접어들게 합니다. 이 차는 열을 내리는 해열작용을 하기 때문에 감기가 들었을 때 좋다고 합니다. 저는 그 빛깔이 취향에 맞지 않아 보이차 대신 우리 잎차를 넣습니다.국화꽃과 우리 잎차는 참으로 맑은 연두빛을 띠고 우러납니다. 그 향기 또한 쟈스민차와 같이 짙은 것이 아니라 은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국화차와 국화잎을 박아 만든 국화전을 곁들이면 이 가을이 더욱 향기로와 지지요. 국화전 대신 쑥갓과 대추 그리고 잣을 박아서 국화꽃처럼 만든 전도 우리 눈과 입을 즐겁게 합니다.

   가을빛이 더 사라지기 전에 차도구를 챙겨서 가가운 산이나 들로 한번 나가 보실가요. 이 가을에는 모든 사물들이 본연의 빛깔을 더욱더 선명하게 합니다. 하늘은 더욱 푸르러지고, 강은 더욱 깊어 보입니다. 그런 자연속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을 혜일 스님은 제주도의 병천암에서 다음과 같은 차시속에 펼쳐보입니다.

   " 몇 리를 쉬 흘러가는 시냇물은  /  맑고 깨끗하여 푸른 하늘 비치네  /  종해라는 도인은  /  시냇가 가까운 곳에 암자를 세웠으니  /   이미 자연 속에 줄거움을 따르고  /  또 부처님 인연에 의지하였네  /  서늘한 가을 아름다운 달밤에  /  돌을 쓸고 찻자리를 열었다오."

    마치 한 폭의 신선도를 연상하게 하는 이 시는 가을 저녁의 맑은 운치를 그대로 전합니다. 달이 차 마시는 이의 좋은 벗이 된다는 것은 여러 선배들이 일러주셨습니다만, 서늘한 저녁기운 속에 차 한잔을 감싸고 밝은 달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가슴까지 따뜻한 차 한잔의 온기가 정말 전하여 지는것 같습니다.아무런 꾸밈이 없는 간단한 차도구를 바위 위에 벌려 놓고 정다운 이와 국화꽃을 마시는 차 한 잔, 거기에 밝은 달이 비쳐지고 서늘한 저녁 기운이 우리 옷깃에 스밀 때면, 마음의 얼룩들이 하나하나 지워질 것입니다. 국화 향기 가득한 그대 마음 속에 차 한 잔을 따릅니다. 국화 향기 가득한 차 한 잔을 따라줄 벗이 있다는 즐거움 하나로도, 억새처럼 일렁이던 마음도 가을물처럼 맑아집니다.-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11월의 차 * 황금빛 꽃술의 차꽃을 찻잔에 띄우며 -

   달력을 봅니다. 11이란 숫자가 어느덧 가장 큰 글씨로 자리잡고 있습니다.늦은 가을비 오고 잎 지더니 어느새 11월입니다. 11이란 숫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이 나란히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잎이 다 무너진 두 그루 나무 같기도 하고요.이 11월의 절기에는 겨울이 시작하는 입동과 흰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소설이 들어 있습니다.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 따스한 차 한 잔을 나눌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차를 사랑하여 다형(茶兄)이란 호까지 가진 김현승 시인은 무등차를 마시면서 다음과 같은 차시를 남겼습니다. 

   "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  갈가마귀 울음에  / 산들 여위어 가고  /  씀바귀 마른 잎에  /  바람이 지나는 남쪽 /    11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  이로움도 향기인양 " 

   이 시의 제목은 <무등차>입니다. 이 무등차는 광주 무등산 일원을 중심으로, 특히 의재 허백련 선생이 명백을 잇던 춘설차가 아닌가 합니다. 광주의 춘설헌 삼애다원에서 생산하던 춘설차는 기억 속의 향기가 되고 있습니다.외로움도 향기를 갖게 하는 무등차를 끓이는 이 11월에 차꽃이 한창입니다. 9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차꽃은 11월까지 이어집니다. 종류에 따라서는 다음해 1월까지 이어지지요.차꽃은 눈 같이 하얀 꽃잎과 황금빛 꽃술의 아름다움을 초의 스님의<동다송>에서는 우거진 찻잎이 싸락눈과 싸우고, 차의 흰꽃은 서리에 씻기어 가을의 아름다움을 떨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꽃에서 맑은 향기가 은은히나고, 사랑스런 열매를 맺는다고 노래했지요.

    그 차꽃과 차열매를 이용한 차생활을 살펴볼까 합니다.차 한잔이 우려지면 차꽃을 그 찻잔 속에 가만히 띄워 보십시오. 한잔의차와 어울린 차꽃의 은은한 향기에 아마도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고반여사>에서는 꽃차 가운데 뛰어난 것으로 이 차꽃을 넣은 차를 들고 있습니다.차꽃을 넣으면 본래의 빛깔, 향기, 맛이 더욱 뛰어나다고 적고 있는 <고반여사>의 기록은 이 11월 차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기록이지요.또 차꽃만으로도 차를 달여 마신다는 기록도 옛 차문헌에 보입니다. 차꽃에 더운 물을 부어서 우려내거나 차꽃을 끓여서 내면, 아주 엷은 담황색의 차꽃차가 만들어지지요. 제가 만들어 본 바로는 너무 오래 끓이지 않는 일이지만, 차나무를 분재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차꽃이 한창 피는 이시기에 차꽃 몇송이 빌어 차꽃차를 만들어 보는 것도 운치있는 일이지요.

   찻잎과 소주로 차술을 만들어 마신다는 이야기는 점점 일반적인 이야기로되고 있습니다. 소주와 오룡차 칵테일은 이웃 일본에서 날로 인기를 더하고있지요. 술과 차는 대칭되는 개념의 마실거리이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 둘이 어울려 숙취가 없는 차술이 된 것입니다. 그런 차술을 마셔 보신 분들 가운데서도 차꽃으로 차술을 만들어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분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저는 2-3년 전부터 그 차꽃술을 맛보고 있습니다. 차꽃술은 차꽃을 따서 병 속에 가득 넣은 다음, 소주를 부어서 차꽃의 향기와 소주를 어울리게 한 술이지요. 소주 특유의 냄새가 사라지고 은은하고 맑은 차꽃 향기가 넘치는 차꽃술은 이 겨울 문턱에 마실 수 있는 색다른 마실거리입니다. 애주가들은 차꽃술 역시 찻잎술과 마찬가지로 숙취가 없다고합니다.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같은 시기에 피고 맺습니다. 그 모습에 반한 사람들은 봄날 찻잎이 피어나는 모습 뿐만 아니라, 차꽃과 차열매를 같이 즐기고자 차나무로 분재를 만들어서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차열매에서 동백이나 아주까리, 유채처럼 훌륭한 식용유를 얻을 수 있다는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차나무의 씨에서 만들어지는 기름을 대만에서는 고차유(苦茶油)라고 합니다. 이 고차유의 쓰임새는 보통의 식용유와 같지만, 특히 위장계통의 병에 좋고 가구를 닦으면 훨씬 우아한 색상의 광택이 난다고 하여 일반 식용유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차산지에서도 이 차열매를 모아 기름을 내어 판매하면 찻잎 외에 새로운 소득원으로 등장할 것으로생각됩니다.

   11월의 차생활 가운데 즐거운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10월을 장식하던 붉고 노란 낙엽으로 차를 달이는 일입니다. 이일을 흔히 홍엽전다(紅葉煎茶)라고 하는데, 그 뜻은 붉은 잎으로 차를 달인다는 뜻이지요. 조선시대의 매월당과 서산대사는 즐겨 이 낙엽으로 차를 달여 마셨습니다. 다음의 시는 그렇게 차를 달여 마시던 매월당 차시의 한 부분입니다.

   " 나면서부터 성품이 괴팍하여  /  속세의 일을 싫어하였지  /  나야 원래 평범한 사람  /  꽃다운 시절은 이미 다갔네  /  누런 잎으로 차를 달이는 뜻  /  그대는 아실런지  /  잎 위에 쓴 시가 새어나가  /  은사(隱士)인 것이 알려질까 두렵다네."

    조금 의역을 하였습니다만, 매월당 김시습이 누런 잎에 시를 쓴 다음, 그 잎을 불태워 차를 달여 마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여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그 낙엽을 태워서 달인 차 한 잔. 그 찻잔에 차꽃을 띄운 다음, 마음 속에 묻어둔 얼굴들과 함께 마십니다. 이제 1자가 나란히 서 있는 11월의 11자가 부럽지 않습니다. - 차 한 잔(박희준:신어림) 

   茶와 음악사이 다리를 놓는다.

   근대 한국화의 거장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선생은 차를 사랑해 광주 무등산 자락에 직접 차밭을 가꿨다.그의 그림 「고사탄금」(高士彈琴)에 보면 선비는 거문고를 타고 한 켠에서는 동자가 찻물을 끓인다.차향기가 바람결에 스며드는 동안 줄 없는 거문고를 소나무에 걸어놓고 無音의 음을 즐기는 풍류는 옛사람의 멋이었다. 작곡가 6명이 차 마실 때 어울리는 정갈한 음악을 작곡 중이다.이 달중 완성을 목표로 국악작곡가 이성천, 황병기, 김희조, 박일훈,양악 작곡가 백병동, 이건용이 쓰고 있다.국악 연주단체인 한국창작음악연구회가 작품을 위촉,11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다례시연을 겸해 연주회 형식으로 발표하고 음반도 만들 예정이다.다도음악을 따로 만들기는 처음이다.차와 음악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 공연은 한국차문화협회, 한국차인연합회가 함께 준비하고 있다.이들은 차 한 잔의 여유가 일상 속으로 운치있게 파고들기를 바라는 마음과 전통음악 보급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유교에 나타난 다문화 우리문화의 다문화 특징중의 하나는 선비문화 라는 것이다 . 선비란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이야기 하며 옛날의 선비들은 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그렇기 때문에 차문화에 나타난 유가의 영향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부터이나 그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고려말엽 부터이다. 그러기에 차와 관련된 내용도 보면 고려시대 이후의 사람이 대부분 이에 대한 연구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유교의 다문화에 영향을 끼친이는 고려말의 이색과 조선중기 초의선사가 될 것이다 .언뜻 초의선사가 유교 다문화에 영향을 미치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우나 그의 스승 다산으로 부터 받은 유교적 교육이 차문화에 그 영향을 나타내고 있다.이것은 후에 이야기 하겠지만 불교와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고려의 다인들은 차믈 마시는 모임을 '다석''다연''명석'이라 하였다. 이 자리를 귀하게 여기여 때로는 초대장도 보냈다 한다.그리고 다례의 규범과 절도가 있었으며 다담을 중히 여기었다 한다.대부분의 고려말기 선비들에서 차에 관한 글월들을 봐서 이들을 중심으로 음다 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알수 있다.후에 이들의 영향은 조선의 차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었다.특히 이색의 차생활 철학은 조선의 선비들에게 차문화에 대한 지표로 삼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차문화는 실학사상가들에 의해 발전하였다.차에대한 논리적 전개와 이론적 다서를 쓰고 차문화도 상당히 실용적인 차문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선비계층에 있어서는 유학과 더불어 차문화가 발전을 하게 되었는데 그에는 크게 두가지 사상이 나타나게 된다. 군자수신의 다도와 유교의 중도사상이다. 이색은 다도를 군자가 수양을 쌓는 방법으로 보았다.그는 차를 끓여마시는 일은 성의, 정심, 수신하는 군자의 수양의 길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차를 '끓이는 일을 다사에 정성을 다함으로써 성의를 보이고자 하였으며 마시고 난 후에는 편견이 없어지고 마음이 깨끗해져 생각에 삿됨이 없어져 '사무사' 정성이 바름이며 악을 버리고 착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고 하였다.즉,사기가 없는 마음정심인 것이다. 목은 이와 같이 정심하면 자연히 몸과 마음이 닦아져 수신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차를 마시는 것을 정좌하여 마시었는데 이것은 유학을 공부할 때의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자함이었다. 다음으로 초의선사에 의한 중도사상이 있는데중 정,중화,중용을 포함하는 중사상은 중도사상이라고도 한다. 여기는 초의선사가 포법에서 터득한 중도사상과 추사가 다도에서 터득한 중화사상이 있다.초의 선사는 동다송에서 차를 물이요 물은 다의 몸체이다,체는 우려난 찻물의 몸을 뜻하는 물이고,신은 우러난 물의 찻기를 비유하였다. 좋은 물과 좋은 차로 (이것을 정차라 하였다)우릴 때에 중도를 잃지 말기를 권하였으니 이것은 차의 분량이 많고 적음,찻물의 온도가 차고 더움,거르는 시간을 이야기 한다. 차가 많으면 맛이 쓰고 향기가 가라앉으며 물이 많으면 맛이 없고 너무 일찍 거르면 다신이 일어나지 않으며 마시는 것을 너무 지체하면 묘한 향기가 달아난다 하였다. 따라서 차를 딸 때는 그 오묘함을 다하고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고,물은 진수를 얻어야 하고 우릴 때는 그 중을 얻어 체와 신이 어울리고 건과 영이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여기에 이르면 다도를 다하는 것이다 하였다.여기서 물을 체로 보고 차를 정신으로 보아 다시 이것을 사람에 비유 건전한 몸과 건전한 정신을 지닌 중도를 터득한 사람에 비유하였으며 조화롭고 향기로움은 중도를 지닌 윤리적 삶과 같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유가의 달도에 해당한다. 추사는 중도와 아울러 중화를 가르키고자 하였는데 그의 글귀에 정좌를 하고 나니 다의 향기가 나고 오묘한 용이 일어나니 물이 흐르고 꽃이핀다는 말이 있다.여기서 용은 현상으로 나타날 때의 모습으로 모두 절도에 맞으면 화라고 한다. 정좌란 마음을 다스리고 고요한 상태이며 이때 다의 향기가 피어나고 오묘한 도심이 드러나니 모든 것이 조화롭다란 의미로 여기서의 도심은 중을 잡은 것을 이야기 하며 중이 잡히면 화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차문화에 대한 일언

   지금까지 제가 개인적으로 어느 다서에서도 보지 못한 어느 차인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우리들 차문화에 대한 내용으로 이와같이 보편타당하고, 합리적인 의견을 논리적으로 제시한 글을 본적이 없습니다. 초보자는 특히 그 외 차생활을 꾸준히 해오신 분들이라도 한 번쯤 되새겨보는 데 전혀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화다실 차사(茶事) 강의서 중 서문...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라는 말이 있다. 어느 답이 맞느냐는 논란을 접어두고 라도 생물은 그 나름대로 생존의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 건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적절하게 섭취해야 한다. 외부적인 공기나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기氣를 통한 간접적 섭취도 있지만 필요한 영양소를 직접 입으로 통하여 섭취하는 행위는 가히 필수적인 생존목적 그 자체라 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음식은 우리가 입을 통해서 먹고 마시는 섭취물을 총칭하는 말인데,하나의 입속에서 이빨과 혓바닥을 경유해 섭취·분해·흡수되어 가는 과정이 필요에 따라 적절히 다른 것은 실로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과학적인 생명의 오묘한 현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먹는 것은 일차적으로 입안에서 잘게 씹거나 쪼개서 섭취하는 만큼 분해 과정이 더딜 수 밖에 없는 반면, 마시는 것은 그런 과정 없이 바로 흡수되므로 배출도 자연히 빠르게 진행 된다. 건강한 정상인이라면 하루 대소변의 각기 다른 횟수를 보면 자연 납득이 갈 것이다.삶의 모든 유지현상법이 오로지 양극단(兩極端)의 적절한 조화에 그 성폐가 달려있다는 논리를 먹거리에서도 적용시킬수 있다면 먹고 마시는 이 두가지 필요행위의 조화관계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이 두가지의 성질이나 흡수내용이 서로 다르다 해도 반드시 상호보완 내지는 협조하여 일체화된 조화관계 속에서만 소기(所期)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지만 대체적으로 씹어먹는 고형섭취물은 분해과정을 통하면서 필요 영양소로 흡수되고, 마시는 액체섭취물은 흡수된 영양소와 함께 용해되어 몸 구석구석까지 쉴새없이 돌며 신진대사를 유연하고 원활하게 촉진하며 나머지는 신체 안의 각종 노폐물이나 음식찌꺼기, 독소, 감염물질 등을 씻어 밖으로 배출해 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먹는 것이든, 마시는 것이든, 청결하고, 온화하고, 감정을 상쾌하게 하여 흡수와 배출이 용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함은 물론이다.이 중요한 먹고 마실 먹거리가 현대에 와서는 각 개인의 개성과 기호, 특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자극을 부추기고 간편, 청결을 가장한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획일적 산업정책에 의존하게 함으로 결과적으로 수 없는 오염을 부추겨 우리들 생존 건강이 치명적인 도전의 위기에 처해지게 되었다.이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 스스로의 욕망의 충족을 위한 자연지배욕과, 사랑과 정성의 식(食)윤리관이 아닌 눈앞의 이윤과 편리성 하나만 쫓는 인스턴트식 삶의 방식을 선호한 어리석은 결과로 우리 모두가 함께 겪어야할 재앙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녹차는 말할 것도 없이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약성과 기호를 겸한 음료이다.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기원전 2700년쯤 염제 신농씨(炎帝神農氏)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사람들은 그때부터 차를 음료로 마셔왔고 지금까지도 애용하고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다른 어떤 음료보다 차라는 것이 우리들에게 그만큼 약리작용이나 정신적인 정서에 까지도 두루 이로웠다는것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음다(飮茶)의 풍속이 어찌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져 올수 있었겠는가.

   차는 서양에서 발생한 커피처럼 설탕이나 프림을 가미할 필요도 없고 술처럼 몸에 해로운 독소를 남기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 모든 독소를 정화시키며, 다른 것을 가미할 필요없이 차잎만으로도 영양과 감미도 애초에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 또한 마신 뒤의 여운도 좋아 입안의 상쾌함이나 위의 편안함은 비할 데가 없다.어쨌던 누구나 차를 마셔보면 맛을 알던 모르던 위로 흐리멍텅하던 머리가 맑아지고 아래로 텁텁하던 위장의 소화가 금방 되어 버리는 효험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의 은은한 향기는 다른 어떤 물질의 향기보다 맑고 담백하며, 맛 또한 자극없는 쓴맛(苦), 떫은 맛(澁), 신맛(酸), 짠맛(鹽), 달콤한 맛(甘) 등의 오미(五味)가 고루 갖추어져 있다.

   이 다섯가지의 맛은 차의 성분에서 나오는 것인데 처음 마실 때 약간 쓴듯 한 것이 차츰 입안을 상쾌하게 하면서 머리를 맑게 해준다. 먼저 닿는 맛은 쓴맛이며 오래 입안에 남는 맛은 단맛이라 이는 마실수록 형용키 어려운 삶의 맛을 고루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간편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이처럼 간편하고 보배로운 음료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다만 차의 약성과 효능을 온전하게 흡수하고 빛깔, 향기, 맛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반드시 정갈한 제다(製茶), 맑은 물, 고른 불, 소박하고 아름다운 도구, 행다(行茶)과정의 겸손하고 온화한 자세 등에 일련의 중정(中正)을 지켜야 함을 요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일정한 격식의 예(禮)가 자연스럽게 성립하며, 나아가 이렇게 몸에 베인 차분하고 정갈하며, 온화하고 겸손한 자세가 삶의 정서에 깊히 용해될 때도(道)의 경지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생활속에 자연스럽게 무르익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스 스로 터득할 수 있는 경지겠지만, 적어도 차생활을 즐겨 오래 하다보면 저절로 자세가 바르게 됨은 물론, 일상생활의 손길, 마음가짐 등이 사기(邪氣)없는 정성스런 모습으로 몸에 베어 옴을 반드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현대 우리네 삶의 특징은 오로지 간편하고 편리함 만을 추구하고 격식과 구속을 싫어한 나머지 가정내의 전통적인 윤리관마저도 평등이란 이름으로 서슴없이 허물어 버리고 있는 극히 무질서한 추세이지만 예(禮)란 다만 우리네 삶을 구속하기 위하여 설정한 격식(格式)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어떠한 목적에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도달하기 위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이며 행동이라고 안다면 스스럼 없이 표현할수 있고 또 평안하게 표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가령 밥을 짓는다 하자. 밥을 지을려면 누군가 먼저 쌀을 씻어 티끌과 돌을 골라내야하고 알맞은 물의 양과 도구에 담아 일정한 시간 알맞은 불을 때어 뜸이 푹 들도록 익히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식구 모두가 식사라고 하는 즐거운 시간을 맞이할수 있는 것이다. 이 당연한 격식의 과정을 자연스럽고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밥의 구속이라 할 수 있을까. 이야말로 밥에 대한 당연한 대접이요, 격식의 예로서 당연히 그렇게 함으로서 동시에 주린 배를 채우는 포만 감의 행복한 시간이 보장되어 지는 것이다.그래서 "중정中正을 따르는 당연한 법(法)"을 곧 예(禮)라 하며 예가 체득되어 지극히 자연스럽게 일상에 발현하는 것을 도라고 한다. 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맛있고 향기롭게 마시기 위한 일정한 격식이따르기 마련인데 그 격식이란 곧 처음부터 끝까지 "중정 (中正)"을  잘 지키는 일이라 했다. 그러나 이 중정의 법은 꼭 차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심신에 고루 갖추어져 있어야 할 당연한 골격으로 누구나의 삶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이는 결코 우리를 얽어매는 구속의 그 무엇도 아니며 결코 회피해야할 부담스러운 격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한평생 살면서어릴 때 배운 구구샘의 공식으로 구속감을 느끼고 부담스러워 회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다만 살아가면서 필요한 일정한 행위의 법칙은 나와 남, 나아가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한 번 익혀만 놓으면 그 다음 부터는 한없이 편안해지고 또 무한히 넓고 밝은 길이 열리는 것이다.차에 있어서도 만들고, 보관하고, 차를 끓여 마시는 일련의 행위를 하나하나 배울 때는 상당히 복잡한 듯 하지만 익히고 보면 따로 떨어 진 복잡한 격식이 아니라 한 동작으로 이어진 단순한 행위이며, 또이 렇게 익혀 몸에 배인다면 때와 장소, 환경에 따라 얼마던지 다양하고 간편하게 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차는 지금의 세대에서 마시면서 꼭 옛 방식만을 고집해야 한다던가,까다로운 의식만을 고수해야 한다면 차를 마시는 단순한 본질을 벗어난 "격식의 집착에만 빠지는 어리석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다산茶山선생은 "술을 마시는 민족은 망하고 차를 마시는 민족은 흥한다"고 한 바 있거니와 술의 해독은 차치하고라도 현대의 세상에선 사람이 마시는 생수生水 자체도 점점 마음을 놓을수 없으리 만치 오염이 가중되어 폐수 또는 고갈화枯渴化되어가고, 거기다 각종 산업의 범람하는 상품화로 온갖 화학음료들이 저마다 자극적인 맛으로 단장하여 우리들에게 대량소비를 유혹하고 있는 추세이다.이러한 폐해를 우리들 자신이 막고 심신의 건강을 함께 지킬수 있는음료로선 역시 녹차 이외엔 거의 대안이 없다고 확신한다.

   그만큼 단일 음료로서 심신의 각종 독소를 해독시켜주고 동시에 삶의 정서적인면에까지 건강한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음료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보아도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격식의 부담감이나 "일부 유한층이 즐기는 고상한 취미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차를 생활속에 가까이 즐기자. 결코 어렵게 받아들이지 말고 간편하고 실용적인 음료로 대하도록 하자. 가족이나 손님이 둘러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나누는대 화가 온화하고 화합되며 겸손하고 공경하는 자세가 익혀짐을 느낄 것이다.고성방가나 실없는 잡담 등은 자연히 어울리지 않아 차츰 정서적인 안목이 열려옴을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실감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차가 우리들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 그 밖에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본 강의에서 익히려는 몇가지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알아도 무방, 몰라도 무방한 것들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차를 마시려는 이들이 그 과정이나 배경 등을 모르는 것 보다는 알고나면 더 서슴없이 다가설 수 있는 한 기회를 제공하겠기에 복잡하게 산재된 여러가지 문헌들에서 꼭 필요하다 싶은 내용들만을 간추려 모아 본 것이다. 그저 차를 자연스래 가까이 대하고 싶은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우리나라 차문화사 

    1. 신라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차를 마셨는지는 확실치 않다. 최초의 차 재배는 흥덕왕 3년(828), 왕명에 의하여 대렴(大廉)이 당으로 부터 가져온 차 종자를 지리산 계곡에 심은 것으로 전하나 이미 선덕여왕(632-647) 시절에 차가 있었으며 서기 764년에 경덕왕이 삼짙날 부처에게 차를 공양하고 돌아오던 충담을만나 차를 마신 일화가 있고 월명사에게 예폐(禮弊)로 차를 내린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흥덕왕 이후 차가 대량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차는 잠을 쫒고 정신을 맑게 하므로 수도하는 승려, 수련하는 화랑과 낭도가 애음하였으며 조상을 위한 차례와 부처를 위한 공양다례(供養茶禮) 및 윗사람을 위한 다례가 이미 확립되었다.

   2. 고려시대

   신라의 다예를 계승한 고려의 다예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융성하였다.성종(981-987)이 풀매로 손수 말차를 제조할 만큼 왕실과 사원에서 차를 중시하고 애음하였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궁중에 차를 취급하는 관청인 다방(茶房)이 설치되고 사원에는 차를 재배, 제조하기 위한 다소촌(茶所村)이 마련되었다. 한편 일반인을 위한 차가게인 다점(茶店)과 여행자 휴게소인 다원(茶院)이 설치되었다. 고려인들은 차를 기호음료로 즐기는 외에 약으로 마셨으며 차를 마시는 것 이외에 차를 달이는 즐거움을 중요시하였는데 이러한 다풍(茶風)은 신라의 그것과 흡사하다. 고려인들이 마신 차의 종류는 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잎차, 말차, 단차였는데 이중 말차의 음용이 가장 성행하였다.차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한편 재배하기도 하였는데 고려 음다속(飮茶俗)의 골격은 풍류와 어우러진 것으로 다구와 다기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3.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다예가 더욱 대중화되었다. 전통혼례에서 신부가 시부모와 조상들에게 배례할 때 손수 달인 차를 올렸고 제사와 명절 때 차례(茶禮)를 지냈다. 사헌부의 관리들은 일정시간에 모여 차를 마시는 다시를 가졌으며 궁중연회시 주정(酒亭)과 나란히 다정(茶亭)이 반드시 놓였다. 궁중의 다방에는 관리를 두어 차를 취급하도록 하였으며 각 관청 및 지방 관아에까지 차모(茶母)를 두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차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차의 생산이 늘지 않은데다가 세금 공납이 강요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반인들 은 차례에 차 대신 술을 사용하였고 관아의 차모는 인삼탕이나 쌍화탕 등 약차(藥茶)를 달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승려와 선비들은 소규모이긴 하나 직접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제조하여 애음한 것이 오늘에 그 명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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