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기의 문신 최흥효는 나라에서 알아주는 명필이었다. ‘행서는 안평대군, 초서는 최흥효’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과거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한참 답을 쓰다가 한 글자가 보기에 좋았다. 그는 자기가 쓴 그 글자에 반해 넋 놓고 들여다보다가 기어이 답안을 쓴 종이를 제출하지 않은 채 들고 돌아왔다. 조선 중기 때 화가 이징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이징이 어려서 다락 위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집에서 이징을 찾았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징은 사흘 동안 다락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그림만 그렸다. 아버지가 화가 나 그의 볼기를 쳤다. 어린 이징은 뚝 뚝 떨어지는 눈물로 땅바닥에 새를 그렸다. 연암 박지원의 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연암은 이어서 말했다. “크나큰 도는 흩어져 버린 지 오래다. 미인을 좋아하듯이 어진 이를 좋아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저 사람들은 기예(技藝)를 위해 생명도 바칠 것이다. 아침나절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격이 아닌가.” 최흥효와 이징은 예술적 기량이 출중했다. 연암이 말했듯이 자기의 기예를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 작정도 할 인물이다. 어진 이들만 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도 도를 좇기는 마찬가지다. 이른바 ‘예도(藝道)’가 그것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글과 그림을 감평(鑑評)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창작과 비평은 맞물린 톱니바퀴다. 창작에 매진하는 이들이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있듯이 비평에도 높거나 낮은 안목이 존재한다.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에 보면 재미있는 사례가 나온다. 한 마디로 ‘안목의 대가’라는 것이 무언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그 중 안견에 관한 일화부터 보자. 세상에 명화로 알려진 그림이 있었다. 낙락장송 아래에서 한 사람이 고개를 들고 소나무를 쳐다보는 그림이었다. 그려놓은 형상이 참으로 생동하여 이른바 ‘천하의 명화’로 부를 만했다. 그러나 안견은 이 그림을 한번 보더니 이렇게 평가했다. “비록 잘 그리기는 했으나 사람이 고개를 들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는 법. 그게 없으니 이 그림은 큰 실수를 했다.” 안견의 이 한 마디로 그 그림은 버려졌다. 성종도 그림을 보는 안목에서는 안견에 뒤지지 않았던 임금이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있었다. 모두들 생생한 그림이라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성종이 그 그림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좋기는 하다만 잘못된 게 있다. 사람들이 어린애에게 밥을 떠먹일 때는 자기 입도 따라서 벌어지는 법인데, 이 그림은 입을 다물고 있구나.”
조영석, ‘새참’, 18세기, 종이에 담채, 20×24.5㎝, 개인 소장 |
18세기 화가 조영석은 인물화에 특히 뛰어났다. 그는 영조가 어진을 그리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단칼에 거절했던 강단의 소유자였다. “사대부로 태어난 내가 천한 기술을 지닌 화원과 더불어 어찌 함께 붓을 놀리겠는가.” 이것이 그의 변명이었다. 그의 그림에 풍속을 담은 소재가 많다. 풍속화로 화첩을 만든 뒤 조영석은 스스로 제목을 붙이기를 ‘사제(麝臍)’라고 했다. 곧 ‘사향노루의 배꼽’이란 뜻이다. 화첩 제목이 ‘사제’가 된 이유가 웅숭깊다. 사향노루의 향은 배꼽에서 나온다. 그 향기가 멀리까지 간다. 당연히 포수는 향기를 맡고 사향노루의 위치를 파악한다. 사향노루는 사향 때문에 죽는 셈이다. 조영석은 사대부가 그림이라는 기예를 자랑하다가는 제 명예에 누가 될 날이 올 것을 걱정했던 것이다.
조영석의 그림은 기막힌 눈썰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작품 ‘새참’을 보자. 이 작품은 그 유명한 화첩 ‘사제’에 실려 있는 풍속화다. 여름날 논밭 일을 하던 농사꾼들이 잠시 일손을 놓고 새참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필치로 보면 요즘 말로 ‘스케치’에 해당될 만큼 대충 쓱쓱 그어 형태를 잡은 작품이라 하겠다. 아낙네 둘이 광주리에 담아온 밥을 그릇에 나누고 있고, 먼저 밥그릇을 받은 이들은 숟가락질이나 젓가락질에 바쁘다. 맨 오른쪽 갓쟁이 하나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짚는 모습이 보인다. 농군들이 모인 자리에 웬 일로 갓 쓴 이가 끼어들었을까. 다른 이들은 하나같이 밥을 먹다가 갓쟁이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신분의 차이를 한눈에 알게 해주는 절묘한 순간을 포착했다. 하지만 이 그림의 고갱이는 따로 있다. 맨 왼쪽 농군과 그의 아들을 보라. 아비가 아들에게 밥을 떠먹이고 있다. 아들은 입을 딱 딱 벌린다. 아비의 표정은 행복에 겨워 자지러질 듯하다. 초승달처럼 웃는 눈매에다 살짝 들린 입 꼬리에 웃음기가 절로 감돈다. 부자지간의 정이 무릇 저러할 테다. 앞서 말한 ‘기예’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기술을 말한다. 기술이 예술로 승화하자면 선결조건이 뭘까. 아무래도 물태(物態)와 인정(人情)을 잡아낼 줄 아는 눈이 먼저일 테다.
◆ 손철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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