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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대 후기에 제작된 ‘서유기’ 육필 연화. 손오공과 요괴 홍해아의 대결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져 있다. |
‘서유기’의 주인공은 삼장법사일까 손오공일까. 삼장법사가 실존인물이었던 당나라의 구법승 현장 스님(600~664)을 모델로 만들어진 인물이라면 손오공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일까. 중국을 비롯해 인도, 태국, 일본, 티베트 등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손오공은 어떻게 해서 ‘글로벌 스타’가 되었을까.
원주 명주사고판화박물관 ‘서유기’ 관련 판화·서책 등 70여점 전시…5월15일까지 문화채청 ‘생생문화재사업’ 2월4·5일엔 인출체험행사도
‘붉은 원숭이 해’라는 2016년, 손오공을 다시 만난다.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아는 듯 하지만 우리는 아직 손오공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원주 명주사고판화박물관(관장 한선학)은 소장 유물 4000여점 가운데 선별한 손오공 관련 유물 70여점을 통해 손오공을 재조명한다. 2월2일~5월15일 고판화박물관 전시관에서 열리는 ‘서유기 특별전-붉은 열정 손오공’은 익숙한 손오공과 함께 손오공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다. ‘붉은 열정 손오공’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손오공이 열정과 헌신 그리고 희망의 상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에는 인도와 태국을 비롯해 한국, 중국, 일본의 다양한 ‘서유기’ 관련 자료들이 총망라된다.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의 뿌리를 2500여년 전 등장한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들도 눈길을 끈다. ‘라마야나’는 주인공 ‘라마왕자’가 원숭이 장군 ‘하누만’의 도움으로 악마에게 납치된 부인 ‘시타’를 구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분명 라마왕자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이는 원숭이 하누만이다. 놀라운 무공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적을 무찌르고 정의로운 라마왕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은 ‘서유기’의 손오공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라마야나’는 동남아로 전파되며 다양한 이야기의 구조로 확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하누만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며 사실상 주인공으로 부상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이는 ‘서유기’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으로 확산되며 손오공의 영역이 확산되는 것과도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지’나 ‘수호지’에 비해 ‘서유기’의 번역서가 많이 나오지 않은 편이다. 이에 대해 한선학 관장은 “한반도에서 원숭이가 자생하지 않은 점도 이유가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중국와 일본에서는 손오공을 비롯한 원숭이 관련 자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피마온’이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는 중국 청나라 말기의 목판은 ‘원숭이 부적’이다. 손오공이 옥황상제로부터 ‘필마온’이라는 관직을 받은 데서 유래한 용어다. ‘말의 역병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담긴 ‘피마온’의 발음이 ‘필마온’과 유사해 나쁜 병을 물리치는 부적에 원숭이 그림과 함께 등장하게 됐다. 티베트에서는 불경의 내용을 새긴 티베트 문자가 원숭이의 털로 묘사된 판화도 출토돼 이 또한 원숭이가 부처님의 가피를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와 일본에서는 특히 ‘서유기’ 관련 유물들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다양한 판본의 ‘서유기’ 책 속에 묘사된 손오공의 모습은 힘차고 날렵하며 언제나 열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판화인 연화(年畵)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호랑이와 마주해서도 물러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러한 이미지 또한 손오공과 유사하다.
전시된 유물 중에는 손오공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는 육필 연화가 특히 눈길을 끈다. 가로 220cm, 세로 90cm의 대작으로 ‘서유기’ 40, 41, 42회에 등장하는 손오공과 요괴 홍해아의 대결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이 작품은 청대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궁궐이나 사찰 등 대형 건축물에 장식됐던 연화로 추정된다.
한선학 관장은 “‘서유기’는 가장 오랜 세월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새해를 맞이한 국민들이 손오공과 같은 열정과 희망으로 역경을 극복해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문화재청이 선정하는 ‘2016 생생문화재사업’의 일환이다. 고판화박물관 측은 새해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2월4~5일 원주시청 로비에서 원숭이 판화 인출체험행사를 무료로 진행한다. 한편 고판화박물관이 주최하는 제7회 원주 고판화축제는 5월27~28일 열릴 예정이다. 033)761-7885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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