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의 그림 스님에 빠지다 5. 서위, ‘묵포도도’

2016. 2. 19. 10:57美學 이야기



       조정육의 그림 스님에 빠지다 5. 서위, ‘묵포도도’| ******불교미술종합

고집통 | 2015.02.13. 06:31


 

5. 서위, ‘묵포도도’

 

“죄업을 녹이려면 사명감의 대지 위에 실천의 탑을 쌓아라”

 

   

서위, ‘묵포도도’, 중국 명,

종이에 먹, 166.3×64.5cm, 대북고궁박물원.

 


   “나의 아들아. 나는 네가 훌륭한 제자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다. 네가 오기 전날 밤에 나는 상서로운 꿈을 꾸었다. 그런데 너의 죄업을 정화시키기 위해 네 곳에 탑을 쌓도록 했다. 이는 각기 평정과 능력과 열망과 인내를 뜻한다. 절망과 슬픔을 완전히 극복한 너에게 장차 신심과 정열과 인내와 지혜를 가진 제자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은 인내와 열성으로 세속적인 갈망을 녹여 마침내 대지혜를 얻게 되며 훌륭한 수행자들이 되리라.”

  

 

재산 전부 빼앗긴 밀라레빠

복수심에 당숙 가족 몰살

악업 참회하고자 스승 찾아

오랜 수행 끝 깨달음 얻어

 

서위는 좌절 극복 못하고

생활고 해결 위해 붓 들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드디어 내가 진리를 배울 수 있단 말인가. 밀라레빠는 스승 마르빠의 이야기를 듣고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스승님께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하실 줄을 꿈에도 몰랐다. 발길질을 하고 머리카락을 질질 끌어 집 밖으로 내동댕이친 스승이 아니던가. 가혹하고 모질고 냉정하던 스승의 행동이 오직 나의 죄업을 정화시키기 위해서였다니. 그것도 모르고 그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다. 밀라레빠는 스승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렸다. 눈물을 흘리는 밀라레빠를 향한 스승님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위대한 마법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찾아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자 열망했다. 그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다. 영적인 나의 아들은 큰 고통과 작은 고통을 겪었으므로 큰 죄업은 거의 다 정화되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보살피며 진주처럼 소중히 간직했던 가르침을 베풀고 입문식을 행하도록 하겠다. 은둔하여 명상할 때 필요한 음식도 공급해줄 테니 너는 안심하여라.”

 

   그는 마침내 번뇌의 머리를 깎고 진리의 옷을 입은 수행자가 되었다. 스승을 찾아 온 지 6년 8개월만이었다. 밀라레빠는 1052년 티베트깡가짜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아홉 살 때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당숙과 당고모에게 전 재산을 맡겼는데 그들은 밀라레빠가 열다섯 살이 되면 재산을 돌려주라는 유언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밀라레빠의 재산을 전부 빼앗아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종처럼 부려먹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흑마술을 배워 원수들을 죽이도록 했다. 그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살생흑마술과 우박폭풍법을 배워 당숙과 당고모의 가족 35명을 몰살시켜버렸다. 마을도 우박폭풍으로 휩쓸어버렸다. 대참사였다. 당숙과 당고모도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다. 가족이 그들의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두고두고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였다. 완전한 복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왜 이렇게 괴로운가. 원수에게 복수를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밀라레빠는 큰 충격에 빠졌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는 지난날의 악업을 참회하고 무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진리의 스승 마르빠에게 왔다. 스승은 그의 마술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마술을 써서 도둑들을 물리쳐보라고 했다. 그는 살생흑마술을 써서 도둑들을 물리쳤다. 그가 위대한 마법사라 불렸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스승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지만 진리를 가르쳐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탑만 쌓게 했다. 그동안 지은 죄업을 정화시켜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것을 알리 없는 밀라레빠는 스승이 자신을 학대한다고 여겼다. 그러기를 무려 6년8개월. 마술을 부려 살생한 죄업이 어느 정도 정화된 것을 안 스승은 비로소 진리의 입문식을 마련했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자살까지 결심한 직후였다. 그가 느꼈던 감동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날부터 그는 스승님이 가져온 음식을 먹으며 영적인 지혜가 각성될 때까지 여러 해 동안 동굴에서 수행을 계속했다. 낮에는 조용히 앉아서 명상에 잠겼고, 밤에는 진언을 외웠다. 명상을 통해 영적인 지혜가 각성되었다. 진언을 통해 의식이 명징해졌고 의식은 목소리를 통해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확산되었다. 밀라레빠의 수행이 깊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스승의 지도로 동굴에서 수행하던 그는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승과 헤어져 고향집에 도착했다. 제행무상이라 했던가. 고향집은 폐허로 변해있었다. 사람들은 흑마술사의 저주를 두려워해 발길을 끊었고 어머니의 뼈로 짐작되는 유골만이 흙더미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유골로 탑을 만든 후 동굴로 떠났다. 나중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누이동생은 거지가 되어있었다. 그는 이 모든 현상을 보고 윤회세계의 어떤 것에도 영속적인 기쁨이 있지 않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다. 가끔씩 누이동생과 과거의 약혼녀가 음식을 가져다 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쐐기풀을 끓여 먹으며 몸이 파랗게 변하도록 수행했다. 수행생활은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부처님의 경지를 성취하기 위해 혹독한 고행을 계속했다. 한 생애 동안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영혼을 완전히 정화시켜야만 한다. 마침내 그는 12년 동안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얻고 나니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었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지도한 스승님 내외는 물론이고 그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친척들조차도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만든 스승이었다. 두두물물이 스승 아님이 없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동굴 생활은 계속됐다. 사람들과 제자들이 찾아왔고 그의 누이동생도 그를 따라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당숙과 당고모도 찾아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로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 노래를 모은 것이 ‘십만송’이다. ‘십만송’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기쁨과 정신적인 가르침이 담겨있어 수세기동안 티베트의 수도자들과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중생의 이익을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육신을 벗을 때가 가까워진 것을 알고 그의 명성을 시기한 라마승이 준 독이 든 우유를 기꺼이 마셨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게으름 없이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평생을 명상수행과 함께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중생들을 교화한 후 1135년에 열반에 들었다. 그의 나이 83세였다.

 

   ‘묵포도도(墨葡萄圖)’를 그린 서위(徐渭,1521~1593)는 명(明)대의 화가다. 그는 파격적인 화조화를 잘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 희곡, 서예에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삶은 밀라레빠보다 더 기구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계모 손에서 자랐다. 성장하여 지방 관리 밑에서 군사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 그를 채용한 관리가 군사 기밀에 관련된 사건으로 체포되고 옥중에서 자살하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9번이나 자살 시도를 거듭했다. 자신의 두 번째 아내를 살해한 후 53세까지 7년 동안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에는 그림으로 여생을 보냈지만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청(淸)대의 팔대산인(八大山人)과 18세기 양주팔괴(楊州八怪), 그리고 20세기의 제백석(齊白石)에 의해 그의 작품세계가 새롭게 평가받았다.

 

   그는 인생에서 느끼는 울분과 좌절을 화조화를 통해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묵포도도’에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격렬한 그의 내면세계가 강렬하게 표출되어 있다. 화면 오른쪽 위에서 뻗어 나온 포도나무 가지에는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런데 과연 포도송이가 달려있는 걸까. 아니면 봄에 새로 돋아난 잎사귀가 붙어있는 걸까. 수묵만으로 그린 빠르고 격정적인 필치 위에 물을 뿌린 듯한 번짐 효과 때문에 포도나무는 그 형태가 정확하지 않다. 포도나무를 그린 후 실수로 그 위에 물을 떨어뜨린 듯하다. 이전에는 어떤 화가도 시도하지 않은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한 발묵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지만 세상은 자신의 재주를 알아주지 못했다. 노년이 될 때까지 그림을 그렸지만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궁핍한 생활고의 해결과 내면에 도사린 격정을 쏟아내기 위해 붓을 들었다. 서위는 필법을 통해 마음의 세계를 종이 위에서 자유자재로 구사함으로써 화조화를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남들보다 불행하게 사는 삶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끄러워해야 될 일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과응보의 법칙을 철저히 믿고 깨달음의 과보를 얻기 위해 어떤 과보도 흔쾌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밀라레빠는 과거의 죄업을 녹이기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오랜 윤회를 통해 쌓아온 죄업을 녹이는 길이라는 얘기다. 밀라레빠와 서위 두 사람 모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 사람은 진리를 찾아 불행에서 벗어났지만 또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불행 속에서 살다 갔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할 때 참고할만한 선배들이다.

 

[1280호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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