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회화사] 산수화와 기운생동 8/17/10

2016. 2. 18. 12:13美學 이야기



      

작성일 : 10-08-21 20:09   
 
 
산수화와 기운생동 8/17/10    
글쓴이 : 뽕킴   조회 : 3,981
 
 

중국회화사 2nd hour : Landscape Painting and the Life of the Spirit 산수화와 기운생동


   삼국시대의 위, 촉, 오 나라가 망한 후, 위나라를 떠맡고 서진(265-316)이 섰지만, 외세 흉노족을 끌여들여 망한다. 명맥을 유지한 남은 왕족이 남쪽 양쯔강 지역으로 도망가서 동진(317-420)을 세우고 이때부터 남북조의 혼돈의 시기가 된다. 하지만 이 육조시대는 문예사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운 시, 서예, 회화가 나온다. 중국의 그림은 보이는 대로, 있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므로, 만권의 책을 읽고 천하의 반을 돌아다녀 식견이 높아야 그릴 수 있다. 중국 회화에 등장하는 icon 역시 서양미술의 도상학보다 더 많이 알아야지 감상이 가능하며, 한자는 기본이고 그림의 배경이 된 소설과 역사를 다 알아야 한다.

고개지(동진시대)의 Admonitions of the Instructress to the Cout Ladies 를 두고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ㅡ인물의 얼굴과 몸이 수려하고 (수골청담) 누에가 실을 뽑아낸 것과 같은 붓질이며 (춘장토사) 물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몸에 옷이 찰랑 찰랑하다.(조의출수)


왕희지 303-361 (Wang Xizhi) 동진시대


   위진시대는 수나라의 통일 전까지 영웅 난세시대로 불리며 명사들은 정계 관직에 있기보다는 도연명(동진시대)의 귀거래사에서 시사하듯이 호산락수 방랑형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한가로히 유유자적) 하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 왕희지는 필체에 호산락수 방랑형해 도가사상을 담아낸다. 왕희지의 필체는 수심종화, 염남평화로 묘사되는데,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천하태평을 즐기는 도가사상이 필체에 반영된다.

왕희지의 난정서 Preface to the Poems Composed at the Orchid Pavilion, 353 년 




다음은 난정서의 왕희지 글씨를 묘사한 글이다.
마치 떠 있는 구름이 흩날리고
놀란 용 한마리가 웅크렸던 몸을 펴는 듯하다.
시원한 바람이 옷소매로 불어들어오고
밝은 달이 마음 속에 녹아 들어오는 듯 하다.
고금을 막론하고 둘도 없는 군계일학적 작품이다.

난정서는 진작이 없다. 서예에 뛰어난 당태종은 왕희지 글씨를 백방으로 구해서 연습을 하고 난 뒤, 자신의 무덤에 묻으라 했기에 남아있지 않다. 난정서를 못 구하고 있었던 당태종은 왕희지가 난정서를 아들인 왕헌지에게 물려준 후, 그의 자손이 자신의 제자에게 준 것을 알게 된다. 당 태종은 그 제자를 불러 회유, 협박했으나 끄덕도 않자, 지략과 설득에 능한 신하를 난정서를 구해 오라고 보낸다. 신하는 신분을 숨기고 그 자손의 제자에게 그림을 배우는데, 신하의 식견에 반한 그가 수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감추어놨던 난정서를 보여 준다. 신하는 그것을 가지고 당태종에게로 야반도주한다.


   당태종이 그토록 탐을 내었던 난정서는 무슨 내용인가? 동진 9년에 41명의 시인들이 난정정자에 모여 주연을 하면서 시를 한 수씩 짓고 벌주도 마셔가면서 풍류를 즐겼는데, 그 시모음집을 난정서라 하고 술에 취한 왕희지가 서문을 썼다고 한다. 왕희지는 동진의 왕 사마씨 집안과 밀접한 관계의 명문가 자제로 장군 자리가 보장된 위치에 있었으나 관직을 버리고 내노라 하는 풍류가 시인들과 어울렸다.

난정서는 250자 25행으로 천하 제일의 행서로 꼽힌다. 글자가 전혀 고르지 않으며 잘 쓴 글씨라기보다는 자유자재로 쓴 흘려쓰기이다. ‘구름이 흐르고 물이 흐르듯 붓을 사용하여 가볍고도 무거운 듯 떠있는 듯 하면서도 가라앉아 있고 용맹스러운 듯하나 느리고’ 규율이 없는 천태만상의 행서이다.



Semi-Cursive script (행서)
 




Cursive script (초서)


왕희지가 행서체와 초서체를 만들어 문자가 하나의 예술이 된다.




Clerical script (예서)






Regular script (해서)


 
왕희지는 정보전달, 관료문서용 기록문자인 해서체와 예서체를 가져다가 행서, 초서를 만들어 글자가 예술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조식 Cao Zhi 192-232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



위나라 왕 조조의 5째 아들 조식은 군왕이 된 첫째 형 조비의 왕후를 사모하는 낙신부를 쓴다.

조식, 낙신부  洛神賦
遠而望之 , 皎若太陽升朝霞 ;
迫而察之 , 灼若芙?出? 波 .
?纖得衷 , 修短合度 . 肩若削成 , 腹如束素 .
延頸秀項 , 皓質呈露 . 芳澤弗加 , 鉛華弗御 .
雲?峨峨 , 修眉聯娟 . 丹唇外朗 , 皓齒內鮮 .
明眸善? , ? 輔承權 .




고개지는 조식의 낙신부를 The Nymph of the Lo River 낙신부도로 그린다.



 


   위나라의 조식은 낙신부를 쓰고 위나라가 망한 후에 동진의 고개지가 조식의 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 절세미인 낙신은 물의 신으로서 여자의 미의 조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식은 어릴 때부터 시를 잘 짓고 똑똑해서 장자인 조비를 제치고 아버지 조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장차 왕이 될 조비는 늘 조식을 경계해 왔다. 전쟁이 많았던 삼국시대에는 남의 땅을 쳐들어가서 초토화를 시킨 후 왕과 왕의 가속, 가신은 멸문지화를 시키는 것이 관례였다. 조조는 하북지방에 이미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였던 원소와의 ‘관도대전(200)’에서 승리를 하는데 그 나라의 왕비가 절세미인이었고 조씨 형제가 다 반한다. 소복차림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왕후 진씨부인(견비)의 아름다운 자태에 조씨 형제가 그만 넋을 잃고 반한다. 그중 조비와 조식은 특히 더 했다. 조비가 아버지 조조에게 졸라서 견비를 죽이지 않고 데려오고, 조비가 왕이 되자  자신의 왕비로 삼았다. 자신의 타고 난 미모 때문에 지아비를 죽인 원수를 남편으로 받들고 살아야 하는 견부인은 자살을 생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조식이 몰래 사모하던 형수님을 위로하며 서로에 대한 연정이 커진다.


   동생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형은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지기를 바라면서 (조식을 따르는 신하도 있었기에) 조식을 변방의 영지로 돌리다가 마침내 조비는 조식을 반역죄로 누명을 씌워 죽일 결심을 한다. 조비가 조식을 불러들여 ‘죽이겠다. 그러나  이자리에서 시를 지어 나를 감동시키면 목숨을 살려준다’ 하였다. 왕비 견부인에게 칠보를 가라고 이르고 왕비가 한 발자국 띌 때마다 조식은 시를 한 줄씩 지어야 했다. 조식을 죽일 명분을 위해 억지를 쓰는 왕과 살이 마르는 고통 속에서 일보 씩 가는 왕비 앞에서 조식은 칠보시를 짓는데 그 시가 왕을 감동시켰고, 마침내 생명은 부지하게 되었다.


칠보시


煮豆燃豆箕(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上煎何太急(상전하태급)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눈물을 흘리네.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서로 들볶는 것이 어찌 그리 심한지

They were boiling beans on a beanstalk fire,
Came a plaintive voice from the pot.
O why, since we sprang from the selfsame root,
Should you kill me with anger hot?"


   조식의 칠보시는 같은 콩깍지에 나온 콩들이 삶아질 때 서로 들끌어 형제를 죽이는 현실의 상황을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목숨을 부지한 조식은 풍류객이 되어 형수에 대한 마음을 직접적으로는 고백할 수가 없고 물의 신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고대신화를 빌려서 형수와 이루어질 수 없는 Love Story, 낙신부를 쓴다.



조식, 낙신부


멀리서 바라보니 태양이 뜨는 안개 속에 있듯 광채롭고 신비로우며
가까이서 보니 희디흰 연꽃이 투명하고 파란 물 위에 피어난듯 하도다
엷은 구름에 사인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뿐하다.'
알맞은 키와 자태는 섬세하기 비할 때 없으며'
어깨선은 깎은 듯 매끄럽고 허리에는 흰 비단을 두른것 같다.
목덜미는 길고 갸름하며 흰 살결을 드러내고 있다.
향기로운 연지를 바르지도 않고 분도 바르지 않았다.
구름같은 모양으로 머리는 높직하고 길게 그린 눈썹은 가늘게 흐른다.
빨간 입술은 선연하게 눈길을 끌고 하얀 이는 입술 사이에서 빛난다.
초롱한 눈은 때로 곁눈질 치고 보조개는 귀엽기 그지없도다.


조식의 낙신부를 고개지가 낙신부도로 그렸고 총 8 version 이 전 세계에 있다.



고개지, 낙신부도 (동진시대)


낙신이 ‘나 떠나간다’ 하면서 옷이 팔랑팔랑 날린다. 조식은 어쩔 수 없이 보고만 있다.





 마침내 조식이 결심한 듯 배를 빌려 쫒아간다.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그러나 9 마리 용을 타고 올라가는 낙신의 배….  잡을 길이 없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 밑에 상사병에 걸린 조식이 강을 보고 하염없이 서 있다.

고개지의 여사잠도는 궁궐의 실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지만 낙신부도는 실외의 산수를 배경으로 하고 버드나무 강가, 수로 근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중국사람에게 버드나무는 이별의 상징이며 버드나무가는 연인이 이별하는 장소이다. 고개지가 낙신부도에서 최초로 사람의 감정를 풍경을 통해서 표현한다.




   Henan (허난성)
현재 중국에서 인구가 제일 많고 가난한 곳이지만,  남북조로 나누어진 육조 시대에는 천하를 호령하던 중원이었다. 6세기 말 수나라가 통일하기 전까지는 위진 남북조 시대는  난세였다.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남북조)
Southern Dynasties (남조 육조, 문예사적으로 6조라고 불린다)
1. Eastern Wu ( 삼국시대 오나라, 229-280)
2. Eastern Jin (동진, 317-420)
3. Liu Song Dynasty (송, 420-479)
4. Southern Qi Dynasty (제, 479-502)
5. Liang Dynasty (양, 502-557)
6. Chen Dynasty (진, 557-589)
동진이 망하고 송, 제, 양, 진이 있었고  Sui Dynasty 수나라가 통일한다 (581-618)




Yangzohu,
양쩌우, 양주, 양쯔강 근처로 풍경이 수려하다, 수나라가 수로 사엽을 펼치던 곳이다.
 


 





Jiansu  장수성
 
   허난성과 장수성은 붙어 있으며 가장 풍광이 좋은 곳으로  고개지의 산수화를 그리는 법에 대한 책, 화운대산기에 나오는 곳이다. 허난성, 장수성, 난징, 양쯔는 다 붙어있는 지역이며 고개지, 도연명이 돌아다니며 산수화를 그리던 남쪽 지역이다.





고개지, 화운대산기 Painting the Cloud Terra Mountain


   산수화 그리는 법에는 와유사상이 있는데 이는 누울 와, 즐길 유로 누워서 즐길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으로 속세를 잊고 마음의 평안을 찾고 그림을 통해 도를 닦는다는 도가사상이다.  관직을 탐하지 않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산으로 가서 흐르는 물가의 정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린다. 난세에는 죽림 칠현처럼 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많았다.


   동진시대부터 다오이즘은 꽃이 핀다. 자연에서 도를 구하는 은밀사상과 누워서 즐기자는 와유사상과 함께, 무와 공의 상태로 돌아가려 했다. 인간은 없어지는 유한한 존재이므로 자연 속에서 무, 공의 정수를 찾았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자연으로 돌아감을 노래했고 산수화를 그린다는 것은 도를 닦는 과정이므로 그림 안에 도가사상이 표현되도록 그림을 그렸다. 이상의 이론을 고개지가 화운대산기에 썼으며, 이런 이론적 배경이 없다면 동양화는 비과학적인 그림이며 낙신부도는 산과 사람의 비례가 전혀 맞지 않고 말도 안되는 엉터리 그림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림의 목적은 경지에 오른 공부와 식견을 전달함이 아니고 도를 닦는 과정이다. 산수화를 통해 인생의 허무, 결국 한 때임을 말하는데 여신과 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었고, 사랑은 무이며 나는 유로 남아서 버드나무 강가에 있다.


   난세인 만큼 여기저기 도인과 희한한 종교가 많았다. 육조시대에는 다오이즘이 종교급으로 올라서 도교가 되었고 국가의 이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별 종교가 많아서 사람들이 하나의 사상만을 쫓아갈 수가 없었고  왕조를 위협하는 세력권으로 발전하고 혁명을 꿈꾼다. 종교는 항상 유토피아를 꿈꾸는데 나의 국가가 그렇지 못하면 뒤집고 싶어진다.  




죽림칠현과 영계기 중의 산도와 왕융
Sang Tao and Wang Rong, Anonymous (begin 5th century)
 

Seven Sages of the Bamboo Grove, an Eastern Jin (265-420) tomb painting from Nanjing



 


왕의 무덤 안에 당시의 훌륭한 사상으로 여겨진 죽림칠현 얘기를 넣었다. 득도를 상징하는 식물인 대나무는 안을 비우고 밖을 단단히 하는 반대급부의 음양조화가 균형을 맞추고 있다. 난세는 균형이 깨어졌으므로 왕조가 쓰러지고 일어나고 한다.

   중국화에도 도상학적인 해석이 적용된다. 버드나무 그림 icon 은 육조 이후에 생겨나고, 여사잠도에서 왕과 정실, 측실이 입는 옷이 신분을 나타내는 도상으로서 도상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왕헌지 344-388 (Wang Xianzhi) 동진시대


 
왕헌지는 왕희지의 아들로서 두 사람은 이왕으로 불린다.




왕헌지 글씨





왕희지 난정서

왕희지와 왕헌지 두사람의 글씨를 비교하면 아들의 글씨는 아버지 것보다 더 흘려 썼다. 아버지가 만든 발판 덕분에 아들은 날아간다.




종병 375-443 (Zong Bing) 동진시대
종병의 화산 수서 (Hua shanshui Xu) 는 산과 물을 그리는 법에 관한 책으로 산수와유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을 그리는 산수가 아니라 그림을 보고 득도할 수 있는 산수화를 의미한다. 그림이 안빈낙도의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하나의 수단이 되어 득도하는 것은 ‘나’ 이다. ‘누워서 편안하게 지상낙원 그림을 보니까 살 것 같다’ 가 아니라 그림을 보고 정진을 해서 내가 지상낙원을 찾아야 한다. 

6조시대에 그림을 감상하던 사람들은 도가 사상에 빠져 있었으므로 그림을 보면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러나 서양사람이나 현대인들에게는 그림에 담긴 의미가 전달이 되지를 않고 비과학적인 그림처럼 보여진다.

고개지와 종병을 통해 이때부터 산수화의 개념이 형성되고 와유사상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수, 당, 명, 청 대로 내려가면서 개념이 바뀐다. 중국의 난세에는 수도가 남쪽의 여러 지역으로 움직였고 북경이 아직 등장도 안 하였다. 지금의 공간 개념을 적용시키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