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6. 10:04ㆍ美學 이야기
판교 정섭의 작품 세계
image.baidu.com
Re:Re: 끽휴시복 (喫虧是福)우리들의 사는 이야기방
경화수월이 올린 글을 보고 공부 좀 해봤더니 참으로 기가막힌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군.
앞부분의 윤포레버가 올린 사설에서 한양대 정민 교수가 주장한 내용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네.
『청나라 때 판교(板橋) 정섭(鄭燮)이 유현(濰縣) 현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고향의 아우가 편지를 보내왔다. 집 담장 때문에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현감에게 청탁해 이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정섭은 답장 대신 시 한 수를 썼다. '천리 길에 글을 보냄 담장 하나 때문이니, 담장 하나 양보하면 또 무슨 상관인가? 만리 쌓은 장성은 여태 남아 있지만, 당년에 진시황은 보지도 못했다네.(千里告狀只爲墻,讓他一墻又何妨. 萬里長城今猶在,不見當年秦始皇.)' 이와 함께 '끽휴시복(喫虧是福)' 네 글자를 써 보냈다. 밑지는 게 복이라는 뜻이다. 그 아래 쓴 풀이 글은 이렇다. '가득참은 덜어냄의 기미요, 빈 것은 채움의 출발점이다. 내게서 덜어내면 남에게 채워진다. 밖으로는 인정의 평온을 얻고, 안으로는 내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다. 평온하고 편안하니, 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滿者損之機, 虧者盈之漸. 損於己則盈於彼, 外得人情之平, 內得我心之安. 旣平且安, 福卽在是矣.)' 아우가 부끄러워 소송을 포기했다.』
위 글을 보면 분명 판교 정섭과 그의 고향 아우 사이에 있었던 내용을 말하는 것임을 누구라도 짐작할수 있을 것이네.
그런데 여기 보이는 시는 판교 정섭의 작품이 아니라 동 시대의 재상이요 대학자였으며 강희자전(康熙字典)의 편찬에도 깊숙이 관여하였던 장영(張英)의 시(詩)라는 설이 있네. 구체적인 내용은 지면관계상 생략하니 아래 싸이트를 열어보면 알수 있을 것이네. (http://moyangsung.blog.me/116388544)
서로의 주장이 달라 과연 누구 말이 맞는지 좀더 알아 보기 위하여 정섭과 장영을 한번 추적해 보았더니 장영의 작품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게 되더군.
아무리 그래도 유명대학 교수의 말씀인데 허튼 소리를 하였을까 싶어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추적을 계속해 보았더니 여전히 장영의 작품쪽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네.
호가 동포(東圃) 또는 포옹(圃翁)이라 불린 장영(1654~1722)은 안휘성(安徽省) 동성(桐城) 출신으로, 동성의 대표적인 거리인 육척항(六尺巷)이 탄생하게된 배경으로 언급되고 있네.
당시 동성에 거주하던 장씨와 오씨(혹은 엽씨)는 마주보고 살았는데 서로 자기땅으로 길이 나는 것을 원치 않았었고 이의 해결을 위해 장영에게 물어본 바, 먼저 장씨가 세자(三尺)를 양보하도록 하였고 뒤이어 오씨가 세자를 양보하여 육척항이 생겼다고 설명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명확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자세한 사항은 아래 싸이트를 참고하여 주시게. (http://blog.daum.net/gjkyemovie/11331494)
아무튼 사정이 이와 같으니 정민 교수께서 백운의 물음에 답을 주어야 할것 같네. 정섭의 작품이 맞습니까? 장영의 작품이 맞습니까?
사서의 기록이 없다하여 멋대로 재단하고 해석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곡학아세(曲學阿世)요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 불리게 될지니 글을 씀에 있어 항상 신중을 기하여 주실 것을 교수님께 거듭 당부 드립니다.
난득호도(難得糊塗)와 끽휴시복(喫虧是福)은 판교 정섭의 작품이라 믿어 의심치 않네. 다만 끽휴시복은 송대(宋代)의 문인이었던 소강절(邵康節)의 "아휴인시화(我虧人是禍) 인휴아시복(人虧我是福)"의 문구를 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난득호도는 그의 작품으로 지금도 중국인들의 처세술로 널리 인구에 회자되고 있기에 그 탄생배경과 호도경의 내용에 대해 관련 자료를 올려 드리오니 참고 하시길...
중국 청나라 중엽 양주팔괴(揚州八怪)라 하여 양주의 괴짜 문인화가 8명 중 우두머리 격이었던 정판교(鄭板橋, 1693~1765)라고 불리는 정섭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삶은 많은 괴짜들이 그러하듯 불우했으나 삼절(三絶)로 이름이 높아 시․서․화에 두루 능하였습니다. 어쨌거나, 오십이 넘은 나이에 8명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하며 산동 지방에서 11년간, 조선의 사또와 같은, 현령이라는 벼슬을 합니다. 그런 어느 날, 육조시대 때 세워진 정문공비를 찾아보기 위해 내주 지방에 있는 거봉산을 찾고, 시간이 늦어 산속에 있는 모옥(茅屋, 거친 집)에서 하루 밤 신세지지요. 그 허름한 집의 주인은 범상치 않아 보였으나 스스로를 입에 풀칠이나 하며 근근이 어수룩이 살아가는 ‘바보’ 늙은이라는 뜻의 호도노인(糊塗老人)이라 소개합니다.
그 茅屋(모옥)에는 좋은 돌에 조각을 잘 새겨 넣은 큰 벼루가 있어 판교 정섭은 그것에 크게 감탄하는데, 다음 날 그 어수룩한 노인은 판교 정섭에게 “현령이 이곳까지 왔으니 벼루에 새길 좋은 글 하나 써 달라” 부탁합니다. 판교 정섭은 즉석에서, 하룻밤 신세 고마움의 표시로 호도(糊塗)를 빗댄, ‘바보 되기 어렵다’는 뜻인 ‘難得糊塗(난득호도)’라는 네 글자를 먼저 쓰고 이어 자신이 강희제 때 수재, 옹정제 때 거인, 다시 건륭제 때 진사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康熙秀才(강희수재) 雍正擧人(옹정거인) 乾隆進士(건륭진사)라고 쓰지요. 당시 과거제도는 3단계로 이루어졌다 합니다. 고향마을에서 치르는 1단계 시험인 향시(鄕試)에 합격하면 수재라 불렀고, 2단계인 각 성(省)에서 치르는 시험인 원시(院試)에 합격하면 거인, 마지막 3단계인 황제 앞에서 치르는 전시(殿試)에 합격을 하면 진사가 되었는데 이를 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벼루가 워낙 컸던 관계로 정판교는 남은 자리에 노인에게 발문(跋文)을 부탁하는데 노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씁니다.
得美石難(득미석난 ) 아름다운 돌 얻기 어렵고 得頑石尤難(득완석우난) 굳센 돌 특히 얻기 어렵지요 由美石轉入頑石更難(유미석전입완석갱난) 아름다운 돌 굳센 돌로 바뀌기는 더욱 어렵답니다 美於中頑於外(미어중완어외) 아름다움은 속에 있고, 굳셈은 밖에 있지요 藏野人之廬(장야인지려) 시골사람 오두막에 숨어 살뿐 不入富貴門也(불입부귀문야) 부귀의 문 넘나들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난 후, 그 노인은 정판교가 먼저 쓴 글에 대꾸(對句:대답하는 글)로 다음과 같이 낙관합니다.
院試第一 (원시제일) 원시에서 일등 鄕試第二 (향시제이) 향시에서 이등 殿試第三 (전시제삼) 전시에서 삼등
노인이 쓴 이 글에 판교 정섭은 깜짝 놀라고, 그제 서야 비로소 산속 모옥에 묻혀 사는 이 노인이 한 때 중앙의 출중한 고관이었으나 부귀영화를 버리고 갈 길을 닦으면서 자신을 숨기며 바보인 척 살아가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게 되지요. 이에 판교 정섭은 다시 붓을 들어 앞에 쓴 ‘난득호도’ 네 글자에 더하여 다음과 같이 대꾸합니다.
聰明難 糊塗難(총명난 호도난) 총명하기도 어렵고 바보이기도 어려우나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유총명이전입호도갱난) 총명한 사람 바보인 척은 더욱이 어렵다오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방일착퇴일보당하심안) 집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당하(그 즉시)에 마음 편하고 非圖後來福報也(비도후래복보야) 도모하지 않아도 훗날 복이 되어 갚아옵니다
이후로 판교 정섭은 ‘난득호도’라는 글을 그 특유의 글씨체로 써서 벽에 붙여놓고 그의 좌우명으로 삼습니다. 나아가 '흘휴시복(吃虧是福; 손해를 보는 것이 곧 복이다)'이라는 글도 이에 더하며 “내가 손해 보면 남이 이익을 보는 법(損於己則利於彼손어기즉이어피), 그가 이익을 보고 나는 마음에 편함을 얻으니 어찌 복이 아니랴!”라고 주를 달지요. 정판교의 이 두 메시지는 세상사는 처세술에 유독 관심이 많은 중국인들 사이에 내용이 부풀려지고, 마침내 ‘호도경(糊塗經)’이라 하여 일명 ‘바보경’으로 불리는 경전의 반열에까지 오릅니다. 이로 인하여 ‘바보 같은 삶’이 그들 삶의 제일의 철학이 되지요. 이것이 바로 ‘호도’ 즉, ‘바보’라는 말의 유래가 되고, 이 말은 지금도 대부분의 중국인들의 집, 사무실 등에 편액으로 걸려있어 누구든 흔히 볼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hassim/41)
제1편 爲人 : 낮추는 생존의 기술 1장 內智外愚 : 속은 지혜로우나 겉으로는 어리석다 - 모자라는 척하는 법 2장 內巧外拙 : 안은 교묘하나 겉으로는 서투르다 - 미련한 척하는 법 3장 不飛不鳴 : 날지 않고 울지 않는다 ― 벙어리인 척하는 법 4장 委曲求全 : 자신을 굽혀 일을 성사시켜라 - 순진한 척하는 법 5장 大柔若剛 : 크게 유약하나 강한 척하라 - 용감한 척하는 법 6장 大進若退 : 크게 전진하나 후퇴하는 척하라 - 패한 척하는 법 7장 居安思危 :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 - 두려운 척하는 법 8장 無爲而爲 : 행함이 없이 행하라 - 나태한 척하는 법
제2편 辦事 : 물러섬으로 전진하는 책략 1장 深藏若虛 : 깊이 감추어 마치 없는 것처럼 하라 - 드러내지 않고 일을 행하는 법 2장 容貌若愚 : 용모를 마치 어리석은 것처럼 하라 - 모호하게 일하는 법 3장 能忍則安 : 인내할 수 있어야 평안하다 - 참을성 있게 일하는 법 4장 順水推舟 : 물길을 따라 노를 저어라 -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일하는 법 5장 欲擒故縱 : 잡기 위해 놓아주라 - 융통성 있게 일하는 법 6장 緘口自重 : 입을 다물고 자중하라 - 비밀을 지키며 일하는 법
제3편 處世 : 화합의 원칙 1장 和氣致祥 :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 온화한 마음자세를 배워라 2장 吃虧是福 : 손해 보는 것이 바로 복이다 - 족함을 아는 마음자세를 길러라 3장 以德報怨 : 덕으로 원수를 갚아라 ― 관용의 마음을 가져라 4장 自得其樂 : 스스로 그 기쁨을 얻어라 - 평상심을 잊지 마라 5장 戒急用忍 : 급한 것을 경계하고 인내를 이용하라 - 의연한 태도를 단련하라
제4편 社交 : 누구와도 원만하게 처세하는 기교 1장 說着易, 做着難 :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친구를 사귐에 있어서의 바보철학 2장 是也朦朧, 非也朦朧 : 옳아도 몽롱하고 옳지 않아도 몽롱하다-대화 속에 담긴 바보철학 3장 合不得, 分也不得 : 더해서도 안 되고 나누어서도 안 된다 - 가정에서의 바보철학 |
cafe.daum.net/andonghigh28/K3k/902 안동고28회
[정민의 세설신어] [164] 끽휴시복 (喫虧是福)
입력 : 2012.06.26 23:33

청나라 때 판교(板橋) 정섭(鄭燮)이 유현(攸縣) 현령으로 있을 때 일이다. 고향의 아우가 편지를 보내왔다. 집 담장 때문에 이웃과 소송이 붙었으니, 현감에게 청탁해 이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정섭은 답장 대신 시 한 수를 썼다. '천리 길에 글을 보냄 담장 하나 때문이니, 담장 하나 양보하면 또 무슨 상관인가? 만리 쌓은 장성은 여태 남아 있지만, 당년에 진시황은 보지도 못했다네.(千里告狀只爲墻,讓他一墻又何妨. 萬里長城今猶在,不見當年秦始皇.)' 이와 함께 '끽휴시복(喫虧是福)' 네 글자를 써 보냈다. 밑지는 게 복이라는 뜻이다. 그 아래 쓴 풀이 글은 이렇다. '가득참은 덜어냄의 기미요, 빈 것은 채움의 출발점이다. 내게서 덜어내면 남에게 채워진다. 밖으로는 인정의 평온을 얻고, 안으로는 내 마음의 편안함을 얻는다. 평온하고 편안하니, 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滿者損之機, 虧者盈之漸. 損於己則盈於彼, 外得人情之平, 內得我心之安. 旣平且安, 福卽在是矣.)' 아우가 부끄러워 소송을 포기했다.
성대중(成大中·1732~1809)은 말한다. "성대함은 쇠퇴의 조짐이다. 복은 재앙의 바탕이다. 쇠함이 없으려거든 큰 성대함에 처하지 말라. 재앙이 없으려거든 큰 복을 구하지 말라.(盛者衰之候, 福者禍之本. 欲無衰, 無處極盛. 欲無禍, 無求大福.)" 떵떵거려 끝까지 다 누릴 생각 말고, 조심조심 아껴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그 복이 길고 달다. 재앙은 부엌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배고픈 개처럼 틈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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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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