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정민 교수에게 듣는 이미지 속 텍스트 읽는 법

2016. 3. 11. 03:40잡주머니



       인문학자 정민 교수에게 듣는 이미지 속 텍스트 읽는 법| 온양민속박물관

이현숙ninalee | 2016.02.28. 08:40


인문학자 정민 교수에게 듣는 이미지 속 텍스트 읽는 법

정민 교수, 윤열수 관장
민화民畵, 상징해석과 이해 없이는 다가서기 어렵다

정민 교수, 윤열수 관장



   글자는 의식을 담는 도구다. 조선 초 한글이 창제되었지만, 한자문화권이 바로 한글문화권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며, 우리 역시 한자문화권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화제畵題는 그림의 주제를 담는다. 조선시대 그림들은 한자문화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만들어졌고, 화제 역시 한자로 쓰인 작품이 많다. 정민 교수와 같은 고전인문학자와 민화의 접점이 바로 그러한 지점이다. 한자를 모르면 한문으로 쓰인 화제畵題를 읽지 못하고, 고전 속에서 형성된 화제話題를 모르면 그림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왕성한 저술을 통해 고전과 대중의 만남을 주선해온 국문학자 정민 교수를 월간 <민화>의 윤열수 발행인이 조촐한 식자 자리에 초대, 귀한 대화를 나눴다. 20년 동안 자료를 모으고 분류해왔지만, 그는 새와 꽃, 나무, 그림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고 말한다. 특히 민화는 2013년 경주민화포럼에서 발표를 맡게 되면서 찾아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그의 저서들과 그림 독해법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민 교수는 미술사학계와 민화계에서 텍스트와 그 안의 상징, 즉 그림의 의미를 상당 부분 놓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Context(문맥)가 Meaning(의미)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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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열수 정민 교수님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정말 격의 없이 편하게 이야기 하십시다.

정민 부족한 저를 이렇게 자꾸 불러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윤열수 무슨 말씀을요! 최근 들어 민화와 한시漢詩를 접합하는 시도가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러한 시점에 한시를 오래 연구해 온 젊고 뛰어난 학자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합니다. 정 교수의 저서는 재미도 있는데다 깊이까지 있어 많은 이가 열광하고 있지요. 요즘 독서가에서 정민 교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특히 그림과 한시의 접점을 풀이하신 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림 속 동식물과 그 상징에 주목하시게 되었습니까?

정민 한 20년 정도 되었겠네요. 금언체禽言體라는 조선 중기에 유행한 독특한 시에 주목하면서 새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새들의 울음소리를 한자를 빌려 적어낸 아주 재미있는 시죠. 예를 들면 소쩍새는 ‘솥짝鼎小’, ‘솥이 작네’ 하고 노고지리(종다리)는 ‘노고질老姑疾’, ‘늙은 시어머니 병났네’ 하는 식이죠. 민중의 내면세계가 반영된 시입니다. 이 자료를 모아 1998년 한국학술진흥재단(現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 논문을 썼어요.
옛 사람들이 봤던 새의 모습은 그림에 들어있고, 그림속의 새를 보다보니 꽃, 나무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요. 논문을 쓰려니 새를 알아야겠다 싶어 대만을 갔을 때 야생조류협회 찾아가서 온갖 책과 새 울음소리 녹음테이프를 사오고, 방문하는 나라마다 새에 대한 자료와 조류도감을 사 모으고…. 새 동호회 회원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슈퍼마켓에서 흰색 가지를 발견하면 사다가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신문에 연재하고, 《한시속의 새 그림속의 새》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 선생이 1930년에 펴낸 《화하만필花下漫筆》에 생물학자 김태정 선생님의 사진을 더해 《꽃밭속의 생각》이라는 책으로 낸 배경이기도 하고.

 

윤열수 그 연재 기억납니다. 풍부한 문헌자료와 그림의 내용이 맞아 떨어져 감탄했습니다. 작년에 나온 《새 문화사전》도 참 중요한 책이지요. 그나저나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겠네요.

정민 정말 그랬습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우리 문헌 중에 ‘죽계竹鷄’라는 새가 나와요. 그런데 그 새가 무슨 새인지 알아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중국 조류도감에 죽계라는 새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라틴어 학명을 다시 우리나라 조류도감과 대조하고 이렇게 저렇게 알아보니 그게 따오기더라고요.

윤열수 민화학계에서 그림의 상징은 아직 단편적으로밖에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민화의 상징체계를 처음 분석한 분은 안동의 한학자 출신인 김호연 선생으로 알고 있는데, 1세대 학자들과 2세대 학자들까지도 도상의 구조와 상징체계 면에서는 아직 속 시원한 연구 성과를 내놓지 못했어요.

정민 제가 도상Icon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림속의 도상을 어떻게 읽을까? 분명히 뭔가 있다’ 싶어서, 책을 많이 봤는데 말씀하신대로 디테일한 부분이 해결 안 된 게 많아요. 도상이 어떤 문맥에서 상징화되는지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림을 보다가 오히려 옛 문헌, 경전 등에서 도움을 얻는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작심하고 모으게 되었지요. 장승업 그림 중에 순무와 큰 무를 그려 놓은 작품이 있죠. 왜 잘생기지도 않은 무와 순무를 주목한 것일까요? 《시경》에 보면 ‘채봉채비采葑彩菲’라는 말이 있어요. 순무와 무의 뿌리를 먹으려고 심지만, 뿌리가 부실하다고 시래기로 먹을 수 있는 무청까지 버리지는 말라는 뜻이죠.
마침 2013년에 경주민화포럼에서 발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고, 그동안의 연구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민화의 전체적인 맥락이라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림의 디테일은 읽겠더라고요. 고사를 알면 의미가 명백하게 보여요. 문맥상 그렇게 되는 거죠. 옛 그림과 민화는 그냥 아무렇게 그린 그림이 아니라 읽어내야 하는 그림입니다. 우리 도상이 갖는 체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자는 그림을 이해하는 열쇠고요. 현대어로 쉽게 풀이해서 그림을 보는 사람이나 그리는 작가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림 속에만 존재하는 꽃과 새

윤열수 교수님의 발표를 민화인들이 굉장히 참신하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민화에 표현된 동식물들이 실제 생김새와 다른 경우도 많아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정민 그렇습니다. 조류학자와 식물학자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물어보면 ‘글쎄, 이게 무엇일까? 이렇게 생긴 건 없어요’ 하는 대답을 듣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분들은 생태학적 사실을 연구한 학자이지, 그림을 보는 분들이 아니니까요. 그리는 사람들이 도상을 이미 의미화, 관습화해서 자꾸 인용하니까 실제와는 다른 그림들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림의 맥락 속에서 존재하다보니까 사실과 다른 부분도 개의치 않고 반복하기도 합니다.

윤열수 그림의 여백을 메우려고 물총새의 꼬리를 길게 늘인다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동식물을 한자리에 모아두거나 하기도 하죠.

정민 그러니 ‘무슨 목의 무슨 과에 속하는 뭐다’라고 단언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물론 그리다가 실수로 조금씩 잘못 그린 것이 반복되었을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기도 합니다. 도상 하나하나를 문장 성분으로 삼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 그림에도 문맥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을 ‘도상의 세트화’라고 부르는데요, 의미 자체는 중국에서 넘어왔더라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우리나라가 특화되어 있어요.
이 부분에서 우리의 색과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그저 잘못 그린 그림일 뿐인데 말이죠. 인문학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윤열수 조선시대 민화작가들을 추적하다보면 그 지역의 손꼽히는 한량들인 경우가 있어요. 또 벼슬을 하던 사람들이나, 사대부 출신도 있습니다. 그 정도 사람들이 뭘 잘 몰라서 그렇게 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가 개운치 않습니다. 이런 문제가 민화계가 당면한 과제 중의 하나인데, 실제로는 도상의 원전을 찾는 일은커녕 화제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사람조차 얼마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 교수님은 화제가 없는 그림에서 ‘화제가 무엇이겠다’까지 읽어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선생님의 접근방식에 ‘우와’하고 놀랄 수밖에요.

정민 괜히 그림까지 아는 체하려는 오지랖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공이 다른데서 오는 차이일 뿐이고 학제간의 교류가 필요한 부분인거죠. 저는 민화나 그림의 작가론이나 계보, 양식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다만 저 같은 고전문학자들은 그림을 보면 ‘무슨 경전의 어떤 주제가 그려진 거구나’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 그림에선 저 정체불명의 도상이 복숭아일 수밖에 없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시는 분들에게도 도상과 상징의 이해가 도움이 될 겁니다.

윤열수 《새 문화사전》과 같은 책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다음 주제의 책은 언제쯤 나올까요?

정민 지금은 너무 바빠서 한 3~4년 정도 더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그림만의 특징으로 세계화하라

윤열수 민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민화학계는 걸음마 단계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로 조자용, 김철순, 김호연, 이우환, 김기창, 박주환 선생들 까지를 1세대 연구자로 봅니다. 이들은 주류 미술사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셨지요. 그 뒤를 이은 2세대 연구자들은 이제 막 좌충우돌하면서 민화가 무엇인지, 민화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반면 민화 화단은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할 만 합니다. 신년벽두부터 대갈문화축제를 시작으로 1년 내내 각종 민화행사와 전시들이 이어집니다. 무척이나 고무적이면서도 민화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를 고심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용어 문제, 세계화 문제가 중점적으로 대두되고 있어요.

정민 민화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용어 문제 등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긴 하겠군요. 민화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민화가 다른 나라의 그 어떤 그림과도 확실히 다른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화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용어라면 세계무대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지요.

윤열수 맞습니다. 그것은 우리보다 민화에 대해 많이 연구해온 1세대 학자들도 깊이 고민해온 문제입니다. ‘얼의 그림’이라거나, ‘겨레그림’과 같은 이름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결국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채색화라거나 ‘한국화’, ‘한민화’, ‘행복화’라는 다양한 이름이 대안으로 떠오릅니다.

정민 글쎄요. 채색화라 하면 영어로 ‘Color Painting’인데, 그림 중에 채색화가 아닌 것이 있을까요? 민화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화나 무속화와 같은 종교화와도 성격이 다르고.

윤열수 당장 해결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문제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민화를 알리고, 세계화 할 수 있을까. 멀리 돌아왔지만, 사실 이게 오늘 정 교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정민 우리그림에서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봐야겠지요. 처음에는 도상과 상징이 중국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그림을 읽는 법을 연구하면 전체적인 맥락이 잡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우리만의 독특한 내용이 분명 있습니다.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부분도 있지만, 문화의 결이 다르면 의미도 달라집니다. 같아도 같지 않고 달라도 같은 우리그림의 독자성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강조하면 세계 어느 그림에게도 뒤지지 않을 겁니다. 2014년에 미국 보스턴파인아트뮤지엄에서 책가도를 전시했어요.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아요. 처음 보는 그림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책가도에 대해 설명하는 주된 내용 중의 하나가 ‘중국 황실의 다보격에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중국에는 우리나라와 똑같은 책가도가 없잖아요. 설혹 기원이 중국에 있다하더라도 정형화된 도상은 우리나라에서 창안하고 발전시킨 것입니다. 거기에는 분명 배경이 있을 것인데, 외람된 생각입니다만,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민화의 정체성에 주목해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윤열수 외람된 것이 아니라 정말 정확한 지적입니다. 중국의 다보격이 우리 책가도의 성립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특히 19세기에 와서 책가도의 모습은 완전히 바뀌지 않습니까?

정민 또 한 가지 이야기하고픈 부분은 형식의 차이, 변화입니다. 중국 그림이 권과 축으로 발달했다면 우리는 병풍이 주를 이룹니다. 중국의 유명한 그림 ‘청명상하도’와 이 그림과 형식이 유사한 우리의 ‘태평성시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청명상하도는 가로로 길기 때문에 이야기가 길을 따라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반면 태평성시도는 가로세로의 거리가 나오다 보니까 훨씬 더 다이내믹하고 입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죠. 병풍이라는 형식이 한옥의 구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데, 이게 우리 미술사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나를 생각해보세요. 쪽이 지니까 폭에 맞춰 세트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8폭에 맞춰 효제문자도가 8자로 구성되었죠. 이야기의 흐름도 8폭, 10폭에 맞춰 핵심을 추려 그려내지 않습니까? 한옥의 구조상 마당에서 행사를 치르게 되는데, 병풍이 공간을 구획하고 무대를 만드는 역할도 하죠. 이때 병풍이 완성된 의미구조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형식의 차이가 내용의 차이를 가져오고, 우리의 특색을 만들게 되는 거죠.

변화 속 만고불변의 코드를 찾아

윤열수 차세대 학자들을 많이 키워야하는 것이 민화계의 숙제입니다. 교수님 같은 학자가 민화계에도 더 나와야 할 텐데요. 민화의 세계화, 현대화의 또 다른 문제는 창작입니다. 현대 민화화단은 모사와 창작의 기로에서 작가들의 고민이 깊습니다.

정민 이 역시 제가 나서서 말씀드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제대로 되지 않은 창작과 제대로 되지 않은 모사 이 두 가지가 다 문제라고 봅니다. 문화계에서 엉뚱함과 참신함을 혼동하는 것은 흔한 현상입니다만, 흔하다고 해서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전통을 모사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고, 창작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아주 작은 딱정벌레가 있어요. 이게 과거급제를 의미하는 코드인데, 그걸 주목하지 못하고 빠뜨리면 문장에서 한 성분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각 소재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지요. 옳고 그름을 판단해줄 수 있는 기준, 규범이 필요합니다.

윤열수 작가들에게 과거를 이해하고 현대를 반영한 창작을 하라는 주문들을 합니다. 주목해야할 코드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정민 관장님도 늘 말씀하시듯이, 우리 민화의 가장 큰 주제는 수복강녕부귀다남壽福康寧富貴多男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다남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반면 수복과 부귀는 인류의 변치 않는 소망이죠. 그리고 입시와 취업, 즉 입신양명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업난이 심해지고 출세하기 힘든 현실 때문이겠지요. 이처럼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상징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갖기도 하고,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다만 그 도상 자체는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죠. 하나 예를 들자면, 만년필萬年筆의 ‘만년’에서 의미를 차용해 장수의 모티브로 쓸 수도 있겠고.

윤열수 바쁘신 교수님을 모시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상과 상징, 병풍, 민화의 세계화 문제 등 민화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말씀들이었습니다. 한 가지 제 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인다면, 상징사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더 많은 민화작가들이 그림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민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참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민 감사합니다.

 

대담 : 윤열수(본지 발행인), 정민(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학장)
정리 : 윤나래 기자
사진 :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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