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9. 22:16ㆍ美學 이야기
옛 그림에서 배우는 열 가지 피서법
조정육 2013.07.13 18:03
옛 그림에서 배우는 열 가지 피서법
여름이다. 덥다. 숨이 턱턱 막힌다. 옛날에도 이렇게 더웠을까. 그때는 지금처럼 고층 건물이나 차량이 많지 않아 훨씬 시원했을 것이다. 아무리 시원해도 여름은 여름이다. 매연이 뒤섞인 후덥지근한 더위는 아니라도 땀나는 여름이 덥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옛 선비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벗어났을까. 그림 속에서 몸도 마음도 시원하게 해 줄 피서법을 찾아보자.
1)관폭도
더위는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사라진다. 뜨거운 여름날 폭포를 찾아가다보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폭포 소리에 벌써부터 마음이 시원해진다. 물에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원함은 더욱 커진다. 직접 들어가서 몸을 담그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물. 그것이 폭포다. 콸콸 쏟아지는 소리와 물이 떨어지며 생기는 물보라에 몸도 마음도 서늘하게 젖는다. 아무리 뜨거운 뙤약볕 아래 있다 해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한기를 느낄 것이다.
17세기에 활동했던 윤정립(尹貞立:1571-1627)의 <관폭도(觀瀑圖)>는 눈과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그림이다. 두 선비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폭포를 보고 있다. 주인을 따라 시중들던 아이도 잠시 넋을 잃고 폭포를 바라본다. 폭포를 감상하고 있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폭포 가까이에서 근접 촬영하듯 그렸다. 19세기에 활동한 한운평의 <구룡폭(九龍瀑)>은 인물이 아닌 폭포가 주제다. 오른쪽 하단에 폭포를 구경하는 선비와 안내하는 승려가 있지만 폭포의 장대함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안개가 가로지른다. 심산유곡이 따로 없다.
원래 ‘관폭도’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701-762)의 「여산의 폭포를 바라보다(望廬山瀑布)」라는 시가 주제였다. ‘향로봉에 빛이 나자 보랏빛 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 폭포는 긴 강에 매달린 듯하다. 나는 듯 흐르는 강줄기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삼천 척이나 되어, 마치 은하수가 우주에서 쏟아지는 듯하다(日照香爐生紫煙, 遙看瀑布掛長川, 飛流直下三千尺, 疑是銀河落九天)’ 라는 구절이다. 물줄기가 삼천 척이라는 과장법과 그 모습이 마치 은하수 같다는 비유는 이후 한·중·일 세 나라 문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여산을 직접 여행하지 않고도 여산에 다녀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한운평의 <구룡폭>은 ‘여산폭포’를 그리는 전통에 정선(鄭敾:1676-1759)에서 시작된 진경산수화의 전통이 결합된 민화풍의 관폭도다. 갓을 쓴 조선 선비와 사람을 닮은 바위 형상은 정선에서부터 시작된 전통이다.
윤정립, <관폭도>, 17세기 초, 비단에 색, 27.7×22.2cm, 국립중앙박물관
한운평, <구룡폭>, 18-19세기, 종이에 연한 색, 클리블랜드박물관
2)탁족도
더위를 잊는 방법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다. 물에 발 담그는 것을 탁족(濯足)이라 한다. 옛날 사람들은 한여름에 탁족을 즐겼다. 탁족은 머리에 물을 끼얹는 것보다 더 시원하다. 찬 물에 5분 정도만 발을 담가도 웬만한 더위쯤은 싹 가신다. 종실집안 선비였던 이경윤(李慶胤:1545-1611)이 탁족의 시원함을 생생하게 그렸다. 선비는 발이 시려 물에서 발을 꺼내 비비고 있다. 그림을 보는 나의 발이 시리다. 이경윤의 <탁족도>가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차원이라면 정선의 <호방(豪放)>은 장쾌하다. <호방>은 당나라 시인 사공도(司空圖호:837-908)의 글 「시품(詩品)」을 주제로 그렸다. ‘시품’은 시를 쓸 때 갖춰야 할 품격을 스물 네가지로 요약한 글이다. 그 중 ‘호방’은 ‘의기가 장하여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음’을 뜻한다. 그림은 호방의 뜻에 어울릴 만큼 시원하다. 발이 시원해서 시원한 것이 아니다. ‘동해바다 부상에서 발을 씻는다(濯足扶桑)’는 기상이 서려 있어 시원하다. 마음속에 웅장한 뜻이 담겨 있다면 이까짓 더위쯤이야 무슨 대수랴.
이경윤, <고사탁족도>, 16세기, 비단에 연한 색, 27.8×19.1cm, 국립중앙박물관
정선, <호방>《사공도시품첩》, 1749년, 비단에 연한 색, 27.8×25.2cm, 국립중앙박물관
3)주유도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하는 것도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신윤복(申潤福:19세기)이 그린 <주유청강(舟遊淸江)>은 뱃놀이하는 선비를 통해 시대를 풍자한 가작이다. 세 명의 선비들이 기생을 대동하고 뱃놀이하러 나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방안에만 앉아 책을 읽은 선비가 아니다. 허리띠가 흰색인 것을 봐서 상(喪)중인 것을 알 수 있다. 3년 상을 치루는 동안 그 더위를 참지 못할 정도로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음이 없는 선비다. 그러면서도 양반입네, 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한량이다. 그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시원하다.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선유도(船遊圖)>는 선비의 초탈한 자세가 돋보인다. 좁은 뱃머리에 두 선비가 탔다. 사공 옆에는 문방사우와 홍매를 실었고 고목 위에 학까지 더했다. 문인의 선유를 상징적으로 그렸다. 기생첩을 옆에 끼고 시끌벅적하게 뱃놀이하는 것이 한 때의 즐거움이라면 수평선이 보이지 않을 만큼 출렁거리는 물결 위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선비의 뱃놀이는 평생 지속되는 즐거움이다. 하물며 잠깐 동안의 더위가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탈속한 선비의 여유로움이 배울만하다.
신윤복, <주유청강>《혜원전신첩》, 종이에 색, 28.2×35.2cm, 간송미술관
심사정, <선유도>, 1764년, 종이에 연한 색, 27.3×40cm, 서울 개인장
4)조어도와 어초문답도
기다림의 시간이 아득한 사람이라면 낚시질도 권할만하다. 조영석(趙榮祏:1686-1761)의 <조어도(釣魚圖)>는 낚시꾼의 대명사 강태공(太公望)을 그렸다. 평생 백수로 살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믿었던 강태공은 세월을 낚기 위해 낚시질을 했다. 결국 자신을 알아주는 문왕(文王)을 만나 주(周)나라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은 더위만 식혀주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의 화와 고뇌도 씻어준다. 때로는 마음에 맞는 벗을 만나 행복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이명욱(李明郁:17세기)의 <어초문답도(魚樵問答圖)>는 어부와 나무꾼의 유쾌하게 대화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들은 비록 어부와 나뭇꾼 복색이지만 생업으로써 물고기를 잡고 나무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선비들이다. 세속의 찌든 먼지가 전혀 묻어 있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가 무성한 갈대처럼 싱싱하다. 꼭 격식 차린 대화가 아니어도 좋다. 수다라면 어떤가.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만나 묵은 얘기를 털어내고 나면 예상치 못한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영석, <강상조어도>, 비단에 연한 색, 78.5×49cm, 국립중앙박물관
이명욱, <어초문답도>, 17세기 후반, 종이에 연한 색, 172.7×94.2cm, 간송미술관
5)아회도 이유신(李維新:18-19세기)이 그린 <귤헌납량(橘軒納凉)>은 더위 피하기를 명분 삼아 수다 떨기 위해 모인 남자들의 만남을 그렸다. 좋은 사람은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서늘한 마루에 앉아 얼음 동동 띄운 수정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면 가슴 속에 콱 누르고 있던 돌덩어리가 내려 앉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친구는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해 주는 마술사다. 장소는 상관없다. <귤헌납량>이 건물안이라면 김수철(金秀哲:19세기)의 <송계한담(松溪閑談)>은 소나무 아래다. 김수철은 맑은 색채와 담백한 표현으로 독특한 화풍을 개척한 화가다. 소나무 그늘 아래서 오갔을 그들의 대화도 그림만큼 담백했을까? 이유신, <귤헌납량>, 종이에 연한 색, 30×35.5cm, 서울 개인 김수철, <송계한담>, 종이에 연한 색, 59.4×47.7cm, 간송미술관 6)여행 여행을 떠나는 것도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나를 발견할 수 있어 좋고 함께 떠나는 여행은 인간의 깊이를 배울 수 있어 좋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새로움은 시들한 내 삶에 생기를 찾게 해 준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불편함조차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스승이다. 시가 멈출 때 길을 떠나라. 함윤덕(咸允德:16세기)의 <기려도(騎驢圖)>는 시인의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 나귀 탄 시인이 시상(詩想)에 잠겨 있다. 힘에 겨운 듯 지친 나귀를 보니 길을 나선 지 오래 된 듯하다. 선비 체면에 걷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면 올레길, 둘레길을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홍도(金弘道:1745-?)가 그린 <옥순봉도(玉筍峯圖)>는 여행지의 감동 때문에 붓을 든 작품이다. 옥순봉은 단양 팔경 중의 하나다. 그림 속에서 선유하는 선비들처럼 지금도 옥순봉 앞에는 배가 떠다닌다. 똑같은 장소를 왔다 갔다 해도 우리 시대에 김홍도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함윤덕,<기려도>, 16세기, 비단에 연한 색,15.6×19.2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옥순봉>,《병진년화첩》, 1796년, 종이에 연한 색, 26.7×31.6cm, 삼성리움미술관 7)홀로 있기 조선 전기에 활동한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전형적인 선비화가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자연을 보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는 작품이다. 잠시라도 번잡한 속세를 벗어나 자연과 마주할 때 사람은 조금 순해진다. 강희안은 선비화가였는데 당시 새로운 미술사조였던 절파화풍(浙派畵風)을 수용해 <고사관수도>를 그렸다. 배움에 관한한 열려있는 선비였다. 자주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열린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이인상(李麟祥:1710-1760)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도 홀로 된 자의 고즈녁함을 보여준다. 그림 속 선비는 폭포를 구경하는 ‘관폭’을 하고 있지만 여러 사람과 잡담하며 더위를 식히는 ‘관폭’이 아니라 저만치 홀로 떨어져 앉아 ‘관폭’하는 중이다. 선비는 폭포를 보면서 폭포에 투영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홀로 있음을 기피한다. 그러나 홀로 있음은 외로움이 아니다.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적극적인 행위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홀로 있는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강희안, <고사관수도>, 15세기 중엽, 종이에 연한 색,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이인상, <송하관폭도>, 종이에 연한 색, 23.9×63.5cm, 국립중앙박물관
8)독서하기
독서만큼 즐거운 피서법은 없을 것이다. 글을 읽다 잠시 생각이 필요하면 그만큼 멈출 수 있다는 점에서 독서는 영상매체를 감상하는 것과 달리 여유롭다. 가을만이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인생의 멘토와 만나고 싶을 때는 언제든 독서할 수 있다. 김희성(金喜誠:1710년대-1763년 이후)이 그린 <산정일장(山靜日長)>은 책 읽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작품이다. 비가 한바탕 흩뿌리고 간 다음 하늘이 맑게 개었다. 세상이 말끔하게 개어 마음까지 깨끗한 날, 사방이 뻥 뚫린 마루에 앉아 책을 읽는다면 이보다 더 행복하고 시원할 수 있을까. ‘산정일장(山靜日長)’은 ‘산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나대경(羅大經:1196-1252)의 싯귀절을 줄인 말이다. 책 읽는 순간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책 읽는 행복은 앞 길이 구만리같은 소년처럼 길 것이다. 이명기(李命基:18세기)의 <송하독서도(松下讀書圖)> 역시 책 읽는 행복을 그린 작품이다. 책이 곁에 있는 동안에는 굳이 다른 사람이 곁에 없어도 좋다. 책을 쓴 필자와 단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독서하는 동안 말 붙이는 사람은 불청객이다. 독서의 행복을 느껴보기 위해 과거 속으로 찾아갈 필요는 없다. 마음만 있다면 지금 여기서도 오롯이 누릴 수 있다.
김희겸, <산가독서>,독주역국풍좌씨전, 종이에 연한 색, 29.5×37.2cm, 간송미술관
이명기,<송하독서도>, 종이에 연한 색, 103.8×49.5cm, 삼성리움미술관
9)낮잠자기
책을 읽다 졸리면? 그대로 잠들어도 좋다. 이재관(李在寬:1783-1838)의 <오수도(午睡圖)>는 책을 베고 잠자는 선비를 그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읽지 않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책을 베고 잠이 들면 책 속의 내용이 그대로 내 머릿속에 들어올 것 같다. 잠은 여유로움이다. 넉넉함이고 치유하는 시간이다. 책을 읽다 자는 것도 좋지만 피곤할 때 잠깐 조는 것도 꿀맛이다. 유숙(劉淑·1827~1873)의 <오수삼매(午睡三昧)>는 잠의 삼매에 빠진 스님을 그렸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졸릴 때의 눈꺼풀이라 했던가. 밀려드는 졸음은 천하 장사도 당해낼 수 없다. 화가는 어깨 부분을 진한 먹으로 그려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졸음이 바위처럼 무거움을 실감나게 그렸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선(禪)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이재관, <오수도>, 종이에 연한 색, 122×56cm, 삼성리움미술관
유숙, <오수삼매>, 종이에 담채, 28.0×40.3cm, 간송미술관
10)다시 열심히 일하기
지금까지 더위를 이기는 여러 가지 피서법을 살펴봤다. 그런데 진짜 좋은 피서법은 따로 있다.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 즐겁게 하는 것이다. 조영석(趙榮祏:1686-1761)이 그린 <수공선차도(手工旋車圖)>는 일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두 사람은 지금 웃통을 벗어부치고 목기를 깎는데 여념이 없다. 구릿빛으로 물든 살빛이 자주 옷을 벗고 일했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벗은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그들은 지금 고통스러울까. 아마 행복할 것이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빠져 있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할 일이 없어 넘치는 시간은 주체하지 못한실직자의 심정을 떠올리면 그들의 행복을 금새 이해할 수 있다. 이인문(李寅文:1745-1821))의 <격단조주(激湍操舟):격랑 속에서 물길을 잡는 뱃사공>도 마찬가지다. 바다로 나가기 위해 온 몸으로 거친 물과 사투를 벌이는 뱃사공에게서 더위 같은 것은 감히 접근조차 힘들어 보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그것이 더위를 이기는 최고의 피서법이다.(/)
조영석, <수공선차도>, 종이에 연한 색, 28×20.7cm, 개인
전 이인문,<격단조주>《고송유수첩》, 종이에 연한 색, 38.1×59.1cm,,국립중앙박물관
*이 글은 "퍼블릭 아트" 7월호에 실렸습니다.
blog.daum.net/sixgardn/15770618 조정육의 행복한 그..
'美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3) 이명기 ‘송하독서도’ / 고연희의 옛 그림 속 인물에 말을 걸다 (0) | 2016.03.19 |
---|---|
학문하는 방법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가설(稼說)」, 『송정집(松亭集)』 (0) | 2016.03.19 |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조선 풍속화 VS 네덜란드 풍속화 (0) | 2016.03.19 |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 VS 미켈란젤로 (0) | 2016.03.19 |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루벤스 파 VS 푸생 파 (0) | 2016.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