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9. 22:52ㆍ美學 이야기
학문하는 방법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가설(稼說)」,『송정집(松亭集)』集)』 韓國의 古典 / 漢文이야기
2014.11.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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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慧, 思考, 情緖를 理解하고자 할 때 漢字와 漢文를 통하지 않고 어찌 알 수 있으랴.. 漢字와 漢文을 알아야 한다. 漢文을 알아 原文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고, 최소한 번역한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飜譯文을 읽더라도 基本的인 漢字에 대한 理解가 없이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한자를 모르면 국어생활이 어려워 진다는 얘기다.
★★★
학문하는 방법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이명기(李命基)의 송하독서도(松下讀書圖) 부분.
『한국의 미12 산수화 下』에서 인용. 호암미술관 소장.
[原文]
子知夫稼乎。稼之道有三。曰時曰漸曰勤而已矣。能盡三者。則爲良農。不能盡三者。則是淺農夫也。
何謂時。春者播之時。夏者耘之時。秋者獲之時也。播失於春。五穀不生。耘失於夏。苗而不秀。苗而不秀則痒。獲其可得乎。然則稼之者可不及時乎。夫君子之於學也亦然。學之時必在少壯之年。不於少壯而努力。則老而失其時矣。猶稼者之失於春而無其秋也。孔子曰。後生可畏。安知來者之不如今也。盖爲年富而力强也。年富則期效遠。力强則用功深矣。然則學之者可不以時乎。稼之與學。視其時。
何謂漸。甸然後播。播然後耘。耘然後獲。若播今而求耘於明。朝耘而暮求其獲。則是其心急於助長。與宋人一其愚矣。然則稼之者可不以漸乎。夫君子之於學也亦然。學之漸。必在循序而進。若欲躐等而速成則反不達。猶稼者之揠苗而助之者也。夫子曰。三十而立。四十而不惑。至於七十。然後從欲而不踰矩。然則學之者可不以漸乎。稼之與學。視其漸。
何謂勤。勤者不怠之謂也。稼者不怠。則有種而有獲。學者不怠。則成始而成終。反乎是則稼與學俱喪其功矣。然則三者固不可一廢。而勤者又三之本也。
嗚呼。稼。鄙夫野人之所能也。學非君子不能。其爲道而甚於稼乎。稼之失。止於餓而已。學之失。人不人矣。人而不人。則雖有粟。吾得而食諸。
- 하수일(河受一, 1553∼1612), 「가설(稼說)」, 『송정집(松亭集)』
[飜譯文]
그대는 農事를 잘 짓는 方途를 아는가? 農事를 잘 짓는 데에는 세 가지 方途가 있다.
제때에 맞추어서 짓는 것과
차근차근히 짓는 것과
부지런히 짓는 것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방도를 能히 잘하는 자는 좋은 農夫가 되고, 제대로 못 하는 자는 賤한 農夫가 된다.
어째서 제때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인가?
봄철은 파종을 할 때이고, 여름철은 김을 맬 때이고, 가을철은 수확을 할 때이다.
봄에 제대로 播種을 하지 못하면 五穀의 싹이 나지 않는다.
여름에 제대로 김매지 못하면 싹이 났어도 이삭이 패지 않는다. 싹이 났어도 이삭이 패지 않으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니, 수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즉 농사짓는 자가 제때에 농사를 짓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무릇 君子가 學問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그렇다. 학문하는 것은 젊은 나이 때에 해야 한다. 젊어서 學問에 힘쓰지 않으면 늙어서 그 때를 놓치는 것이, 농사꾼이 봄철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철에 收穫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기를, “後生을 두렵게 여길 만하다. 앞으로 後生들이 지금의 나보다 못하리라고 어떻게 壯談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는 대개 後生은 나이가 젊고 氣力이 旺盛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젊으면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고, 氣力이 旺盛하면 깊게 工夫할 수가 있다. 그런즉 學問하는 자가 제때에 공부를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농사짓는 것과 學問하는 것은 모두 제때에 해야 하는 것이다.
어째서 차근차근 지어야 한다는 것인가?
밭갈이를 한 다음에 播種을 하고, 播種을 한 다음에 김을 매고, 김을 맨 다음에 收穫을 한다. 만약 오늘 播種하고서 내일 김을 매거나, 아침에 김을 매고서 저녁에 收穫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그 마음이 조장(助長)하는 데에 急한 것으로, 宋나라 사람이 곡식이 빨리 자라라고 싹을 뽑아 올린 것과 그 어리석음이 똑같은 것이다. 그런즉 농사꾼이 차근차근히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무릇 君子가 學問하는 데 있어서도 역시 그렇다. 學問을 차근차근히 하는 것은 반드시 順序에 따라서 해 나가야만 한다. 만약 等級을 뛰어넘어서 速히 이루고자 한다면, 도리어 到達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농사꾼이 싹이 빨리 자라라고 싹을 뽑아 올리는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30세에 뜻이 섰으며, 40세에 迷惑되지 않았고,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法度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그런즉 學問하는 자가 차근차근히 漸進的으로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農事짓는 것과 學問하는 것은 모두 차근차근히 해야 하는 것이다.
어째서 부지런히 지어야 한다는 것인가?
부지런하다는 것은 怠慢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농사꾼이 怠慢하지 않으면 씨를 뿌려서 收穫을 할 수가 있다. 學問하는 자가 怠慢하지 않으면 처음에 잘 始作해서 끝내 有終의 美를 거둘 수가 있다.
이와 反對로 한다면 農事꾼이나 學者나 모두 成果를 거둘 수가 없게 된다.
그런즉 위에서 말한 세 가지는 참으로 어느 하나도 廢해서는 안 되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부지런히 하는 것이 또 이 세 가지의 根本이 되는 것이다.
아아, 農事를 짓는 것은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이지만, 學問은 君子가 아니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學問하는 方途는 農事짓는 것보다 더 잘해야만 한다. 農事를 짓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자신이 굶주리는 데에서 그칠 뿐이다. 그러나 學問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면서 사람답지 못하면 비록 穀食이 있다한들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는가.
解說
선조 때 현감(縣監)을 지낸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이 學問하는 方途를 農事꾼이 農事를 잘 짓는 方途에 비기어서 지은 글이다. 河受一은 높은 벼슬을 하지는 못하였지만, 뛰어난 學識과 文章으로 當代에 널리 알려졌던 人物이다.
農夫가 곡식을 제대로 수확하기 위해서는 일 년 내내 힘써야만 한다. 제때에 씨를 뿌리고 제때에 김을 매주고 제때에 수확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順序에 따라서 차근차근히 해나가야 한다. 밭을 갈기 전에 씨를 뿌릴 수가 없고, 싹이 나기 전에 김을 매줄 수가 없고, 곡식이 여물기 전에 거둘 수가 없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빠뜨림이 없이 차근차근 부지런히 해야만 한다. 하루 동안을 게을리 하면 하루 동안 게을리 한 만큼 所出이 준다.
學問도 마찬가지다. 농사를 짓는 것처럼 제때에 맞춰서 工夫를 하되, 차근차근 順序에 따라서 끊임없이 해나가야만 무언가를 이룰 수가 있다. 儒學에서 말하는 활연관통(豁然貫通)이나 佛敎에서 말하는 돈오돈각(頓悟頓覺)은 어느 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활연관통을 하거나 돈오돈각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精進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디 學問만이 그러하겠는가. 이 世上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農事를 짓는 것은 한 해만에 全 過程이 끝난다. 올해 잘못 지었다고 하더라도 다음해에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가 있다. 그러나 學問은 그렇지가 않다. 전 과정이 한 평생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한 과정이 잘못 되었을 경우에는 그 후유증이 평생을 따라다니게 된다. 또한 한 때에 부지런히 공부를 하였다고 해서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變化하는 社會에서는 끊임없이 工夫를 하여 새로운 知識을 習得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금방 淘汰되고 만다.
농사를 잘못 지었을 경우에는 그 피해가 농부 한 사람만의 삶을 힘겹게 하는 데에서 그친다. 그러나 學問하는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잘못된 方途로 공부하였을 경우에는, 그 弊害가 農事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된다. 自身만의 利益을 追求하기 위한 방편으로 학문하였을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마저 荒廢化시키는 것이다.
조선 명종(明宗) 때의 명현(名賢)으로, 性理學에 밝았으며, 송강(松江) 정철(鄭澈) 등 많은 弟子를 길러냈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는 후생들에게 학문에 힘쓰기를 권면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生知 困知 區分 없이 아는 데로 歸結되니, | 不分生困竟歸知 (불분생곤 경귀지) |
이 시의 첫 구절에 나오는 생지(生知)는 태어나면서부터 道理를 아는 上等의 資質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곤지(困知)는 많은 努力을 기울여 익힌 다음에야 道理를 깨닫는 下等의 資質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셋째 구절에 나오는 ‘마음속에서 잊지도 말고 助長하지도 말라.’라는 말은, 孟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반드시 하는 일이 있어야 하되, 結果를 미리 期約하지 말아서, 마음에 잊지도 말고 빨리 자라도록 억지로 助長하지도 말라.”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김인후가 지은 이 「권학(勸學)」이라는 題目의 詩를 가지고 근래에 들어 부쩍 學問에 게을러진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시에 뒤늦게 새로운 공부를 하느라 힘겨워하고 있는 나의 딸을 勸勉한다. 아울러 工夫에 뜻을 둔 모든 학인(學人)들, 특히 며칠 전에 수능시험을 마친 受驗生들에게 學問하는 方途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때에 맞추어서 차근차근히 順序에 따라 끊임없이 精進해 나가는 데 있음을 말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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