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山 金秀哲 .북산 김수철.

2016. 4. 26. 19:21美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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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山 金秀哲 .북산 김수철.| 동양화.한국화

無念無想 | 조회 95 |추천 0 | 2008.10.17. 20:14



  

   초기에는 정형화된 남종화풍을 토대로 한 김정희(金正喜)파 화풍과 상통하는 면이 나타난다.

전기(田琦:1825~54)·허유(許維)와 같은 김정희파 화가들과 교유가 있었으며 김정희의 화평

을 통해 그림지도를 받기도 했다. 김정희는 그의 〈풍림심유도 楓林尋幽圖〉〈매우행인도

梅雨行人圖〉에 대해 포치가 익숙하고 위치와 용필(用筆)은 좋으나 착색이 세밀한 경지에 이

르지 못했다는 평을 한 바 있다. 후기에는 대담한 생략과 청신한 설채(設彩)를 특징으로 하는

개성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색적인 화풍은 윤제홍(尹濟弘:1764~?)의 회화세계를

발전시킨 것으로 김창수(金昌秀)의 작품과 함께 조선 말기 화단의 새로운 동향을 대변해준다.

대표작인 〈계산적적도 溪山寂寂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전기〈설경산수도 雪景山水

圖〉와 구도가 매우 유사하며, 〈송계한담도 松溪閑淡圖〉(간송미술관 소장)의 간결한 구도와

담채(淡彩)는 현대 수채화를 연상시켜 준다.



    

       武陵春色圖                        歸帆山水圖                              夏景山水圖


 19세기 조선 말기 화단에서 활동했던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은 다른 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화풍으로 주목받는 화가이다. 경물의 대담한 생략과 왜곡, 감각적인 색채의 사

용을 특징으로 하는 북산의 화풍에 대해, 추사 김정희는 '솔이지법(率易之法)'이라는 평어(評語)

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화면 아래쪽 나무숲에 둘러 싸인 서옥(書屋), 전경(前景)과 후경(後景)을

구분 짓는 수면(水面), 갈대 숲이 우거진 마을과 뒤에 솟아 있는 주산(主山)이라는 매우 단순한

구도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도, 앞서 말한 북산 화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특정한 준

법을 사용하지 않고 옅은 담채와 태점을 위주로 산을 묘사하고, 화면 내의 원근을 구분하지 않고

평면화시키는등 현대적 감각도 느껴진다. 화면 오른쪽 위에 씌어있는 화제(畵題)는 "낚시가 물려

몇 번이나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물 위를 떠도는 꽃 탓으로 또 한해를 머물겠네"라는 내용으로 화

면의 고적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溪山寂寂圖



松溪閑談圖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화가. 자는 사익(士益, 혹은 사앙). 호는 북산(北山). 본관은

분성(盆城, 혹은 김해). 산수와 화훼(花卉)를 즐겨 그렸으며, 초기에는 정형화된 남종

화법에 의한 화보풍(畵譜風)과 김정희파 화가들의 회화세계와 상통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고, 후기에는 왜곡된 형태와 청신한 담채(淡彩), 독필(禿筆)과 유탄소묘(柳炭素描)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감각의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특히 그가 후기에 보

여 주었던 이색적인 화풍은 윤제홍(尹濟弘)의 전통을 발전시킨 것으로, 김창수(金昌秀)

의 작품과 함께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동향을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적인 느

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품으로 《계산적적도(溪山寂寂圖)》

송계한담도(松溪閑談圖)》 《산사만종도(山寺晩鐘圖)》 《강산매림도(江山梅林圖)》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매우행인도(梅雨行人圖)》 등이 있다.



花華圖


 <연꽃〉은 김수철 특유의 색감과 구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한쪽으

로 치우치게 하여 여백을 살렸고, 담묵(淡墨)으로 재빠르게 윤곽을 그리고 엷은 채색을 더하였

다.꽃이나 잎의 모양이 실제로 본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기보다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처럼 깔끔한 선과 담채(淡彩)가 어우러져 신선한 느낌을 준다.'



 

花弄圖


   북산 김수철의 산수화는 갈필(渴筆)에 어울리는 담담하고 굵은 선으로 윤곽을 그리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몰골법(沒骨法)을 사용하면서도 간결한 윤곽을 꽃에 두어 대조적으로 묘사하

고 있다. 이 쌍폭은 화려한 금박(金箔)분 당지(唐紙) 위에 양쪽으로 한 구석에 위치한 괴석의 배경만

을 나타내고 나머지는 탐스러운 모란꽃을 한 그루씩 그리고 있다. 괴석은 거의 갈필의 꼬불꼬불한 필

선으로 윤곽을 나타내고, 그 속으로 농담의 변화가 있는 설채(設彩)로 괴석의 조형을 살리고 있다. 김

수철이 꽃그림에 사용한 설채는 풍성하여, 근대적인 서구의 수채화법을 연상시킬 정도로 참신한 감각

을 풍기고 있다.이 그림은 세로로 긴 종이를 사용하였는데 조선 말기에 유행한 형식이며 중국 청 말기

에 유행한 형식을 수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족자 종이에 수묵담채 금은박 각각 127.3*29.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신이나 생애 등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세기 중엽경에 활

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사익(士益),

호는 북산(北山). 산수와 화훼를 즐겨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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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梅圖


   이 그림은 북산이 남긴 많은 화훼(花卉) 그림에서 그의 독특한 적은 수의 필선으로 대상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기법을 볼 수 있는데  이 석매도도 기법상으로는 그에 속한다. 화면 중간 부분을 차지하는

바위나 나뭇가지의 윤곽이 모두 부드러운 선과 몇 개의 흩어진 점으로 묘사되었고, 바위와 나무라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물체를 질감의 차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엷은 색채와 먹의 선염(渲染)으

로 표현하였다. 이런 단순화에서 일종의 통일성이 이루어진다 하겠다.위로 곧게 뻗은 예리한 선으로

된 작은 가지들, 빠른 붓 동작으로 선묘한 듯한 율동적인 매화 송이들, 그리고 색채로 완전히 메꾸지

않고 흰 부분을 남겨놓은 데서 오는 경쾌감 등이 북산의 솜씨라 하겠다.  또한 화면 중앙에 괴석 하나

가 왼쪽으로부터 돌출하면서 그 뒤에 노매 한 그루가 꽃망울들이 한창인 잔가지들을 위로 뻗고 있다. 

필선은 일반적인 북산체와는 좀 달리, 농묵으로 바위와 매화의 윤곽과 가지를 휙휙 속필로 그려갔는

데, 형사보다는 기운의 효과를 바랐던 것 같다. 화면 앞, 오른쪽에 '철석심장'이라는 시 한귀 썼는데,

이는 남송의 선비 번방이 그의 선배 심추가 귀양살이 중에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음을 가상히 여겨 지

은 시의 첫 구로서, '철석심장 연수약'에서 땄다 한다.즉, 쇠나 돌같이 굳은 마음을 바위와 매화에 비

한 것이다. 김수철의 화풍에 관한 영향에 대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당시 중국의 양주파 등의 신조류

화풍을 성취한 면으로도 볼 수 있다. 여하튼 그의 화풍은 보기 드문 독자적인 것이라고 할 만하다.

-종이에 수묵담채 51.8*28cm 서울 개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