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서문

2016. 4. 26. 21:51美學 이야기


「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서문 | 여행 이야기

李澤容(이택용) 2013.01.25 10:05

      

                                                       「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서문

                                                                                                                                             고람(古藍) 전기(田琦)

가을 하늘 높고 기운은 맑은데 차를 마시며 길게 읊조리다가, 옛 상자 속에서 완당 김정희공이 서화를 논평한 몇 장의 종이를 찾았다. 이것은 내가 지난여름에 이 책 속에 기록된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림과 글씨를 가지고 재주를 겨루어, 스스로 한때의 호쾌한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한번 읽어보니 말은 간결한데 뜻은 심원하며 훈계하고 깨우쳐주는 것이 너무나 정성스러워서 잘하는 자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정진하게 하고, 못 미치는 자는 근심하며 고쳐나가게 하였다. -중략- 우리 완당 김정희공이 주신 것이 어찌 많다고 하지 않으리요. 마침내 이를 유재소(劉在韶)에게 정리하게 하여 몇 마디 말을 머리말로 덧붙여 동호인에게 보인다.

 

                                  1849년(현종 15) 9월 9일 후 이초당(二草堂) 앞 국화 그림자가 스산할 때 전기(田琦)가 쓰다.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 저작물의 섬네일 이미지      

 

*예림갑을록(藝林甲乙綠)은 김정희(金正喜)가 1849년(헌종 15) 경연(競演)의 형식을 빌려 문하(門下)의 서화가(書畫家) 14명을 지도하면서 그들의 작품에 대하여 평론했던 내용을 모아 놓은 서화 비평서이다. 내용은 고유섭(高裕燮)의 ≪조선화론집성朝鮮畫論集成≫본에는 표제 밑에 ‘이초당독본(二艸堂讀本)’이라 부기하여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전기(田琦)의 수택본에서 전재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현재 전기의 도장이 찍힌 필사본 1책이 개인 소장으로 전하고 있다. 전기가 1849년 9월에 쓴 서문과 당시의 몇몇 관련 기록에 의하면, 이 책은 1849년 여름 전기의 이초당에서 있었던 서화 경연에 대한 김정희의 평어(評語)를 전기가 보관하고 있다가 유재소(劉在韶)에게 부탁하여 기록한 것이라 한다.

김정희가 1848년 12월에 제주도 유배에서 풀려난 뒤 지난 10년간 제자들의 공부를 점검하고 아울러 자신이 생각한 서화의 이상적인 지향점을 제시해 준 것이다. 이 서화 경연이 김정희가 유배를 떠나기 전인 1839년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겨우 10대밖에 되지 않은 전기가 이런 일을 자신의 집에서 주도했다는 점이 다소 무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김정희가 김계술(金繼述)의 해서(楷書)를 평하면서 “예전 그대로 10년 전의 모습이다.”라고 말했던 점을 보아도 이는 1849년에 있었던 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본래 서예가 8명 渼坡 金繼述, 松南 李亨泰, 雨帆 柳湘, 小貞 韓應耆, 耳山 李啓沃, 古藍 田琦, 寉石 劉在韶, 蕅堂 尹光錫이 묵진(墨陣)을 이루고, 화가 8명 北山 金秀哲, 小癡 許維, 希園 李漢喆, 霞石 朴寅碩, 古藍 田琦, 蕙山 劉淑, 蔗山 趙重默, 寉石 劉在韶이 회루(繪壘)를 이룬 뒤 서화를 번갈아 가며 경연하고 비평했다.

                         

하지만 전기와 유재소는 서화에 모두 참여하였기 때문에 실제 참여 작가는 총 14명이다. 경연과 비평이 행해진 것은 1849년 6월 20일부터 7월 14일까지 7회로서, 서예 4회, 회화 3회이다. 서예는 주련[聯]· 편액[扁]· 해서[楷]의 3종을 대상으로 하여 각 종마다 ‘매화시경(梅華詩境)’, ‘운하울흥(雲霞蔚興)’ 등과 같은 문장을 제시하고 모든 참여 작가가 똑같이 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회화는 ‘추산심처(秋山深處)’, ‘추수계정(秋水溪亭)’ 등과 같은 화제를 각 개인별로 달리 제시하고 각자 주어진 화제를 그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김정희의 비평 내용은 기본적인 학습 태도는 물론, 구체적인 기법이나 이상적인 심미관 등 서화에 관한 광범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그 기본적 관점은 금석학(金石學) · 고증학(考證學) 및 남종 문인화(南宗文人畫)를 토대로 하고 있다.

김정희가 겸재(謙齋) 정선(鄭敾)의 동국 진경(東國眞景)과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계통의 동국 진체(東國眞體)를 비판하고, 윤두서(尹斗緖) · 심사정(沈師正) 등의 남종 문인화 계통과 이인상(李麟祥) · 강세황(姜世晃) 등의 비학(碑學)을 높이 평가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서화관과 표리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