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2- 서기전 108 년 조선의 패수 서쪽에 흐르는 2 요수 / 작성중

2016. 5. 1. 17:22우리 역사 바로알기


지리2- 서기전 108 년 조선의 패수 서쪽에 흐르는 2 요수 - 작성중 | 大韓

신석재 2016.04.29 11:41

      



   서기전 108 년 조선 땅을 침범한 한 무제 유철의 5 만 병졸들이 건넌 요수는 <한서/지리지>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의 대요수이며 그 위치는 지금의 란하 중류 승덕 부근의 물길이였습니다.


서기전 202 년 한을 세운 고조 유방이 죽을 때 등장하는 연왕 노관의 무리였던 만이 동쪽으로 조선으로 피할 때 건넌 패수는 1250 리 길이의 대요수 동쪽 지역에 흘렀으며 당시의 요동군 동쪽 끝이며 대략 90 여 년 후에 설치된 낙랑군 사이의 경계 지역을 서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참고도 - <한서/지리지> 기록에 의거 북경 이동 지역의 한 시기 유주 7 군 설치 추정지





고지도 - 송요 시기 제도된 지리도 일부분





참고도 - 우공도









신채호는 이 대요수를 지금의 란하라 단정하였고 패수를 1911 년 멸망한 청국의 봉천부 지역을 흐르는 헌우록 즉 지금의 란하 동쪽 강안에 있었던 청 시기의 해성현 지역이며 한 시기의 요동군 요수.안시현 부근으로 비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윤내현은 고조선.위만조선 시기의 요수는 지금의 란하이고 <한서/지리지>의 1250 리 길이의 대요수는 지금의 요하라 주장하였으니 윤내현이 고대의 요수를 란하라고까지 구분하여 주장한 것은 대단한 일로 박수 쳐줄 일이지만 위치 비정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왜종이나 이 땅의 식민지사관자들이 주장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왜종과 그 나부랑이들은 고대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 뿐이라고 하며 <한서/지리지>의 대요수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말하면 지금의 요하 길이는 3300 리라 하니 반고가 설명한 대요수 길이와는 2000 여리 이상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한서/지리지>에 설명된 대요수를 지금의 요하로 비정하는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 여 년 전 반고가 설명한 요하가 지금의 요하여야만 준왕조선의 왕검성과 고구려 평양성이 반도 평양 지역이였다고 억지를 부리더라도 중국의 25 개 정사와 정사급 지리지 기록과 대한의 <삼국사기><삼국유사> 등 고기록들과는 일치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지명을 동쪽으로 이동시키고 지도를 이동된 지명에 맞추어 조작할 수 있으면 그 틀을 깨기가 여간 어렵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한서/군국지> 요동.낙랑군에 주석된 낙양으로부터의 거리라는 3600 리와 5000 리 떨어진 지점은 지금의 란하 중류 서쪽 지역과 동쪽 지역을 말한 것이며 또한 후조선 500 여 년 동안 연경을 오간 사신들이 건넌 요하는 지금의 란하였습니다. 즉 중화인들은 모든 기록과 고지도에서 요동을 지금의 란하가 경유하는 지점으로 설명하였고 우리 대한인들도 지금의 란하 중류 지역을 요동으로 인식하였었습니다. 


따라서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모호한 지리 내용을 명확하게 특정하고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 그리고 만주국을 통하여 왜종아이들이 감행한 지명이동.지도조작을 명백하게 밝힐 수 있는 근거자료는 대부분 중국에 있는 고대 문헌과 고지도 뿐이며 1850 년 대 전후하여 간행된 우리 대한의 지리지나 고지도는 유의해서 참고해야 합니다. 왜종아이들이 정확한 사서들은 수거.격리시켰고 일부 남은 사서들의 자구나 고지도를 변조.삽입.왜곡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국의 북경으로부터 지금의 란하까지 사이의 지리적 검토는 대한 4300 여 년 역사를 언급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 것입니다. 

중화아이들이 스스로 설명한 대한과의 국경선인 요하.압록수가 지금의 요하와 압록수가 옳은가를 검증하려면 북경 이동 지역의 지리지 검토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어쨋든 <삼국사기>와 사마천의 <사기>에 언급된 패수와 짝하는 한 시기의 대요수는 앞 글에서 설명한 진시황 시기까지의 1 요수와 전혀 다른 물길이기 때문에  2 요수라 구별하겠습니다. 2 요수는 1 요수에서 동쪽으로 약 300 리 떨어져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다가 정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갔으며 반고는 2 요수의 발원지를 새외라 설명하여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였음을 드러냈고 북위 시기의 력도원은 백평산이라 하였지만 이후 2 요수의 발원지를 비정하려는 사가들은 없었습니다. 


2 요수는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마감하며 중화 땅을 통일할 때 연국의 장수 진개가 일시적으로 점거했던 부왕의 조선 서쪽 지역 일부를 점령하면서 요수란 명칭도 자연스럽게 옮겨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것이 기록된 첫 지리지가 <한서/지리지>입니다.


한편 2 요수보다 더 크고 긴 물길이 2 요수가 흘러드는 요동군 안시현의 부근이였을 요동군 서안평현에서 바다로 흘러들었습니다. 즉 반고는 <한서/지리지> 현토군 서개마현 주석에서 마자수가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로 들어가고 이 염난수는 서남쪽으로 흘러 요동군 서안평현을 경유한 후 바다로 들어갔는데 그 길이는 2100 리이고 2 개 군을 경유하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즉 요동군의 새외에서 흘러오는 1250 리 길이의 대요수보다 약 2 배에 가까운 길이의 염난수가 현토.요동군을 경유하여 대요수가 흘러드는 바다 부근에서 역시 바다로 흘러들었던 것입니다. 

요동군의 서안평현과 안시현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수십여 리 될까요?

그러면 염난수가 본류이고 대요수가 지류라고 정의하면 무리일까요?


어쨋든 참견하기 좋아하고 말 많은 역사지리가들은 이 염난수를 눈여겨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반고가 처음으로 기록을 남겼고 이후 약 700 여년 동안 중화의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다가 당 시기 <통전>을 저술한 두우가 두번째로 정확하게 지목하여 언급하였을 뿐입니다. 즉 마자수 일명 압록강은 말갈 백산에서 발원하여 국내성 남쪽을 지나 서쪽에서 염난수와 만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은 동.서국의 역사지리가들을 큰 혼란에 빠지게 한 묘한 구절인데, 우선 마자수를 일명 압록강이라 단정한 것은 <한서/지리지>의 마자수 설명과 다르고 압록강이 말갈 백산에서 발원하여 국내성 남쪽을 지나 서쪽에서 염난수로 들어간다는 설명이 너무 압축적이여서인지 혹은 반고가 설명한 염난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는지 후세의 동.서국 사가들은 염난수를 엉뚱하게도 압록수의 상류 지류로 잘못 인식하게 됩니다. 


곧 1250 리 길이의 대요수나 820 리 길이의 열수가 2100 리 길이의 염난수의 지류였을 뿐인데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후한서/군국지> 낙랑군 주석과 같이 낙양으로부터 동북쪽으로 5000 리 떨어진 낙랑군의 탄열현을 흐르는 820 리 길이의 열수는 당 시기 두우도 <통전/변방문/동이하/고구려>에서 설명했듯이 고구려 국내성 남쪽이 낙랑군 지역이며 820 리 길이의 열수는 고구려에서 가장 크고 천참으로 여기는 압록수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진족인 청국인들과 후조선의 선학들은 두우가 설명한 염난수를 압록수의 상류 지류인 파저강.동가강 곧 혼강으로 잘못 인식하였고 압록수가 흘러들어간 2100 리 길이였던 염난수는 아예 잊고 바다로 흘러들었다고 간주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된 정황은 아마도 후한 말 현토군이 고구려의 공격으로 쫓기고 폐군 상황에 이르면서 현토군을 경유하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도 점점 잊혀지고 요동군을 흐르는 1250 리 길이의 대요수가 수.당과 고구려와의 경계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염난수를 대신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요동군 남쪽의 바다는 실제 염난수와 대요수 및 열수 등이 합쳐져 강 폭이 바다와 같이 매우 넓어졌을 뿐으로 <후한서/군국지> 요서.요동군 주석과 같이 요동군에서 남쪽으로 약 300 여리 떨어진 산해관.갈석 부근의 창해.요해 해안선까지는 만灣 형태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반고가 설명한 현토.요동 2 개 군을 경유하며 1250 리 대요수가 흘러든 바다로 들어가는 2100 리 길이의 염난수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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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250 리 길이의 대요수 곧 제 2 요수와 염난수 및 압록수와의 지리적 관계는 대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또 연국인 만이 중화 땅에서 요수를 건너 설치된 요동고새를 동쪽으로 나와 건넜다는 패수는 요수와 대체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