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한국 선조들의 ‘정신음료’였다
2016. 5. 21. 00:15ㆍ차 이야기
차는 한국 선조들의 ‘정신음료’였다

차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선조들은 역사서와 시 등으로 차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한국 전통차 초기 역사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선종의 불교문화를 통해 독자적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차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것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선덕여왕 때의 일이다. 당나라를 다녀온 대렴이란 인물이 차 씨앗을 들여온 것이다. 이때부터 차는 불교·승려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1,400여 년 전, 당시 차는 부처님을 위한 공양물이었다. 7세기 ‘삼국유사’에 실린 보질도 태자의 차 공양물 일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8세기께 쓰여진 연기 법사의 발원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에는 ‘육법공양’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는 부처님께 드리는 여섯 가지 공양물(향香·등燈·차茶·꽃·과일·쌀)을 의미한다. 신간 ‘박동춘의 한국차 문화사’(동아시아)는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 ‘전통차’의 원형을 밝히고 있다.
책엔 24명의 다인(茶人)의 전기와 함께 40여 편의 다시(茶詩) 실려 있다. 1,000년의 역사 부침 속에서 차를 손에 놓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도적 차별 때문에 차로 심신을 달랜 최치원, 정치적 난세 속에서 친구와 틀어진 상처를 차로 치유했던 도은 이숭인, 숭유억불 분위기 속에서도 차로 꾸준히 우정을 나눴던 추사와 초의 스님까지 망라하고 있다.
책에선 최치원, 최승로,추사도 있지만 이색, 정몽주, 김종직, 김시습, 정약용 다인으로 불러내고 있다. 40여 편의 다시와 24명의 다인들의 전기(열전)을 통해 1,000년에 걸쳐 형성된 한국 전통차 문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우리 차 문화의 원형질은 초의 선사의 차맥을 잇고 있던 응송 스님에게서 저자 박동춘으로 이어졌다. 응송 스님은 직접 자신의 차 제조법을 저자에게 전수했다.
책엔 24명의 다인(茶人)의 전기와 함께 40여 편의 다시(茶詩) 실려 있다. 1,000년의 역사 부침 속에서 차를 손에 놓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도적 차별 때문에 차로 심신을 달랜 최치원, 정치적 난세 속에서 친구와 틀어진 상처를 차로 치유했던 도은 이숭인, 숭유억불 분위기 속에서도 차로 꾸준히 우정을 나눴던 추사와 초의 스님까지 망라하고 있다.
책에선 최치원, 최승로,추사도 있지만 이색, 정몽주, 김종직, 김시습, 정약용 다인으로 불러내고 있다. 40여 편의 다시와 24명의 다인들의 전기(열전)을 통해 1,000년에 걸쳐 형성된 한국 전통차 문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우리 차 문화의 원형질은 초의 선사의 차맥을 잇고 있던 응송 스님에게서 저자 박동춘으로 이어졌다. 응송 스님은 직접 자신의 차 제조법을 저자에게 전수했다.
◆왕실이 선도했던 차 문화 융성기
고려시대가 되면서 차 문화는 부흥기를 맞게 된다.고려 왕실이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차 문화를 확산시킨 것은 불교의 역할이 컸다. 고려 초 왕실이 주관하는 의례에 차가 올려졌고, 귀족층 또한 ‘고급문화’로써 차를 향유했는데 ‘시무 28조’를 올렸던 최승로는 왕이 직접 차를 만드는 호화로운 의례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했다.
고급문화였던 차가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힘이었다. 당시 고려의 사상세계를 지배했던 불교계와 교류했던 문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려 중·후기를 지나면서 차 풍속이 사치해지고 각종 의례에 동원되면서, 고려 백성들은 갖은 핍박에 시달렸다. 이 시절을 살았던 고려의 문인 이규보는 “차는 백성의 애끊는 고혈이니/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일정량의 차를 바치고, 차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와 노인까지 차출되는 통에 농민들은 차나무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고급문화였던 차가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힘이었다. 당시 고려의 사상세계를 지배했던 불교계와 교류했던 문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려 중·후기를 지나면서 차 풍속이 사치해지고 각종 의례에 동원되면서, 고려 백성들은 갖은 핍박에 시달렸다. 이 시절을 살았던 고려의 문인 이규보는 “차는 백성의 애끊는 고혈이니/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일정량의 차를 바치고, 차를 만들기 위해 어린이와 노인까지 차출되는 통에 농민들은 차나무에 불을 지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 척불숭유와 스러져가는 차 풍속
조선시대 들어 척불숭유가 대두되면서 불교문화가 억압되었고, 차 문화 또한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하지만 차 문화는 승려들과 교류하는 문인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속된다. 벼슬길에서 벗어나 은자의 삶에 들어서 자연과의 합일을 노래하는 문인들의 안빈낙도 정신과 참선과 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의 차 문화가 일맥상통하여 어우러지게 된 것이다. 당시 차를 만드는 것은 불가의 독특한 문화였지만 이들과 어울리는 문인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정약용은 아암 혜장 등 만덕사의 승려들에게 주역, 시문 등을 가르쳤고, 그 보답으로 차를 받았다. 김정희 또한 만허 스님에게 차를 구하기 위해 ‘희증만허’라는 시를 써서 보냈다. 이후 만허 스님이 어려워했던 불교 교리를 해석해주고 난 뒤 보시로 차를 받기도 했는데, 다른 승려들에게 추사체 작품을 많이 써주었다고 한다.‘기다(記茶)’를 저술하여 차의 실용적인 활용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것은 농업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되는 시기에 대두된 차의 실용안이라는 것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 ‘초의차’ 5대 계승자인 박동춘
저자 박동춘은 차를 직접 만들고 마시며, 심신을 수련하는 구도자로서, 그리고 차 이론과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30여 년을 살아왔다. 30여 년 전에 만난 응송 스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응송 스님은 책의 마지막 24번째 꼭지에 소개되는 다인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차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초의선사의 법통을 이은 응송 스님을 저자는 1979년에 해남의 백화사에서 만났다. 당시 한학을 공부하던 26세의 박동춘은 86세의 노승 응송의 ‘동다정통고’출판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책의 서문에서 응송 스님은 자신이 경험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제자 박동춘에게 전한다는 글을 남겼고, 그에게「다도전게」를 써줘 ‘초의차’의 법통을 잇는 후계자로 공식화했다. 이로써 박동춘은 1800년대 초의선사로부터 시작하여 범해, 금명, 응송에 이어 5대째 ‘초의차’(초의선사의 방식으로 만든 차) 계승자가 된 것이다.
저자는 “차는 원래 맑음을 상징하며, 우주를 소통하는 이상적인 정신 음료이다. 또한 차를 즐기는 궁극의 목표는 맑은 정신과 고요해지는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차는 그저 맛을 위한 음식도, 웰빙 건강식도 아니다. 어떤 ‘행위’를 포함한다. 차에는 지난 1,000년간 정신과 마음의 수련까지 고려했던 선조들의 수행의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말초적 즐거움에 지친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게 아닐까. 차를 사랑했던 한국 역사 속 문인들을 ‘다인 호출해내는 것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저자 박동춘은 차를 직접 만들고 마시며, 심신을 수련하는 구도자로서, 그리고 차 이론과 역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30여 년을 살아왔다. 30여 년 전에 만난 응송 스님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응송 스님은 책의 마지막 24번째 꼭지에 소개되는 다인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차의 성인이라고 불리는 초의선사의 법통을 이은 응송 스님을 저자는 1979년에 해남의 백화사에서 만났다. 당시 한학을 공부하던 26세의 박동춘은 86세의 노승 응송의 ‘동다정통고’출판을 도우면서 인연을 맺었다. 책의 서문에서 응송 스님은 자신이 경험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제자 박동춘에게 전한다는 글을 남겼고, 그에게「다도전게」를 써줘 ‘초의차’의 법통을 잇는 후계자로 공식화했다. 이로써 박동춘은 1800년대 초의선사로부터 시작하여 범해, 금명, 응송에 이어 5대째 ‘초의차’(초의선사의 방식으로 만든 차) 계승자가 된 것이다.
저자는 “차는 원래 맑음을 상징하며, 우주를 소통하는 이상적인 정신 음료이다. 또한 차를 즐기는 궁극의 목표는 맑은 정신과 고요해지는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차는 그저 맛을 위한 음식도, 웰빙 건강식도 아니다. 어떤 ‘행위’를 포함한다. 차에는 지난 1,000년간 정신과 마음의 수련까지 고려했던 선조들의 수행의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말초적 즐거움에 지친 현대인들이 가장 원하는 게 아닐까. 차를 사랑했던 한국 역사 속 문인들을 ‘다인 호출해내는 것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차를 통해 바라 본 1000년의 역사
책은 ‘차’로 애환을 풀고, ‘차’로 왕을 꾸짖고, ‘차’로 몸 건강을 다스렸으며, ‘차’로 사람을 만나고, ‘차’로 글을 지었던 한국사 인물들을 통해 바라본 1000년간의 역사를 담고 있다.
- 고려 왕실의 폐단을 꾸짖었던 고려의 최승로
‘시무28조’에서 최승로는 ‘공덕재’라고 하는 불교 의례에서 왕이 직접 차를 갈아 마시는 의식을 하는 것을 ‘폐단’이라고 지적한다. 백성의 고혈로 차가 거둬져서 행해지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 차를 나누던 도은과 삼봉, 여말선초 시기의 정치는 나눌 수 없었다
삼봉 정도전에게 죽임을 당했던 도은 이숭인. 그러나 둘은 귀한 차를 보내주며 챙길 정도로 절친이었다는 사실이 기록에 남아 있다. 이색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둘은「차일봉병안화사천일병정삼봉」이란 시에서 드러났듯 서로 차를 챙겨주는 벗이었다.
- 민초들을 위한 차밭을 만든 점필재 김종직
김종직은 해마다 나라에 차를 바쳐야 하는 차세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위해 차밭을 만들었다. 스스로는 차를 즐긴 사람이었지만 차밭을 조성한 것은 함양군민들의 차세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점필재시집」에 그 연유가 나타나있다.
- 광자의 몸짓으로 불의한 세상을 등졌던 매월당 김시습
세조에 의해 단종이 물러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책을 모두 불사르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는 김시습. 이후 기록에 의하면 그는 기행을 일삼으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25편이 넘는 다시 茶詩 속에 담긴 그의 속내는 소박하고 청빈한 선비의 모습 그 자체뿐이다. 광자의 모습 일색이었던 역사의 기록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 악학궤범의 허백당 성현
문장과 음악에 능통했던 풍류객이었지만 혼란한 시절을 살았던 허백당 성현. 그가 살았던 시대와 달리 그가 남긴 「행화소영」을 보면 고요함 속의 끽다의 즐거움만이 담겨 있다. “ 비 오듯 물 끓은 정병에 막 차를 넣었는데/(책을 잡던) 곤한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잠이 들었네/ 짝짝거리는 새 소리에 화들짝 놀라 (낮잠에서) 깨어보니/ 살구 가지 꽃 그림자, 성긴 발에 가득하다. 어지러운 시대의 난국에서 평화를 바라는 듯한 개인의 심정이 느껴진다.
- 한국 전통차의 성인, 초의선사
척불숭유의 조선에서 초의선사는 다산과 추의와 깊은 우정을 나눴다. 조선 후기, 승려는 천민으로 분류되었고 불교계의 힘도 미미했다. 하지만 초의선사는 깊은 수행력으로 많은 문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아가 자신이 복원시킨 대흥사의 제조법으로 만든 차를 자신과 교유했던 문인들에게 나눠 주기에 이른다. 당시 명나라의 차 제조법과 명확히 구분되는 ‘초의차’는 한국 특유의 얇은 찻잎으로, 한국의 풍토성이 담긴 차 맛을 구현해냈다. 환로를 뒤로하고 오로지 자기 수행으로 빚어낸 초의선사의 차는 5대에 걸쳐 저자 박동춘에게 전수되었다.
◆지은이 박동춘은?
1979년 한학을 공부하던 26세의 저자는 해남 백화사에서 86세 응송 스님을 만난다. 이곳에서 응송의 ‘동다정통고’ 출판을 도우며 차 이론과 제다법을 전수받았고 ‘초의차’ 5대 계승자가 되었다. ‘초의차’는 현재 남아 있는 한국 전통차의 유일한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간소한 살림에 청빈한 삶을 지향하는 그의 호는 무공(無空). 저자는 매년 전남 승주 차밭에서 재배한 찻잎으로 직접 차를 덖고 마시며 수행자의 삶을 사는 동시에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강의를 하고 있다.한 2001년 설립한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의 소장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딴 ‘동춘차’를 만들었고 꾸준히 교육생을 모집하여 한국 전통차 전승을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저서로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우리시대 동다송’, ‘추사와 초의’ 등이 있다. 저자는 “차는 원융하고 순일한 가치를 지녔다”며 차가 우주를 소통하게 하는 능력과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김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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