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 14:42ㆍ美學 이야기
현대미술의 화두는 몸, 붓 대신 손으로 그리다
[오마이뉴스 글:김형순, 편집:김대홍]
▲ 전인아 개인전이 열리는 '금산갤러리' 데스크 위로 전시제목이 보인다 |
ⓒ 김형순 |
작가는 창작동기에 대해 "내 작업은 살아있는 세포처럼 쉼 없이 움직이며 그 생성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작품도 생물체처럼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으로 보는가. 이번 전에서도 역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그림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런 제목은 바로 이 같은 생각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보다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색(色)으로 우주만물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서 움직이게(動) 그리고 싶다는 것과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마저도 요동치게(動) 그리고 싶다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태초의 그림을 찾아서
▲ 전인아 I '주작#1' 종이에 혼합재료 51×69cm 2017. 천지만물을 움직이게 할 만큼의 힘이 느껴진다. |
ⓒ 김형순 |
우리는 고구려 벽화하면 '수렵도'와 '사신도'를 떠올린다. 사신도는 신성한 동물인 '봉황, 청룡, 백호, 현무'가 승천하는 기운을 그린 것이다.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사계절과 오행사상에서 연유한 하늘의 28 별자리를 상징하는 천문도이다. 이런 그림은 번잡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봐도 그렇지만 작가에게도 엄청난 창작의 자극제가 되리라.
거기에서 고구려인의 의식주는 물론 여가생활, 교통수단까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그림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걸 넘어서려는 꿈과 이상세계도 그려져 있다. 고구려의 역사를 이보다 더 생생하게 잘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고구려를 다시 보게 된다. 한국회화의 원형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려 벽화가 왜 이렇게 다이내믹한가? 그것은 태양에서 잉태된 하늘의 자손이라는 자긍심과 함께 당시 인도 등 서역과도 활발한 교류를 나누는 개방국가였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5세기말에는 넓은 만주벌판까지 영토를 차지한 최강대국이 아니었나. 위 '주작'만 봐도 그런 기개가 느껴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기백이 아닌가 싶다.
▲ 전인아 I '봉(鳳)#1' 종이에 혼합재료 95×70cm 2017 |
ⓒ 김형순 |
봉황은 길조이고 '신조'(神鳥)라고도 하다. 그래서인지 옛 고궁이나 고전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봉황은 음양오행에서 남방을 관장하고 불을 다스리는 여름의 신(神)이기도 하다. 두 날개를 확 펼치는 모습이 원기로 넘친다.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을 말한다. '주작(朱雀)'으로도 불린다. 그 신체 자체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구조로 되어 있단다.
작가가 사신도에서 얻은 건 뭘까? 우리 조상이 이루려 했던 삶의 가치와 미적 감각, 역사와 우주와 종교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노력 등. 작가는 여기서 우리문화 원형의 한 갈래로 보고 회화의 원류를 얻을 수 있는 대표 콘텐츠로 여기는 것 같다.
근원적 모태인 '매트릭스'를 생성시키는 그림
▲ 전인아 I '화조#1' 종이에 혼합재료 69×51cm 2017. 이런 '화조'는 상서롭기도 하고 성스럽기도 하다 |
ⓒ 김형순 |
전인아는 바로 이런 생명의 원류를 찾아주는 근원적 모태 즉 '매트릭스'라는 주제를 2007년부터 즐겨 다루어왔다. 이런 미학은 쉽게 말하면 죽어가는 것을 다시 살려내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환생과 부활의 이미지가 있다. 예컨대, 억눌린 감정을 표현한다거나 지친 삶에 마음에 여유를 찾아주고 축제의식을 복원시키는 그런 역할 말이다.
위 작품의 구성을 보면 안으로 대상이 집중돼 있고 밖으로는 기가 흩어져 있다. 그렇지만 안팎이 배타적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이라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이런 긴장과 이완의 대조는 리듬감을 낳는다. 이 작품은 역시 고구려 벽화에서 받은 영감이 커 보인다. 작가가 강조하는 매트릭스를 잘 구현한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그녀는 운명적으로 화가(?)다
▲ 전시장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전인아 작가(가운데) |
ⓒ 김형순 |
작가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후, 한 때 작가적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3년간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결혼 후 육아 등으로 바쁘게 지내다가 결국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그림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1997년부터는 교수를 하면서도 1년에 1번씩 전시를 열 정도다. 작가로서 작업할 때와 그림이 팔릴 때가 가장 행복하단다.
이 작가의 세련된 감각과 미적 안목은 집안분위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간송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이 된다. 여기가 작가의 집이었으니 어려서부터 이런 문화재와 쉽게 접했던 것이다. 아니 여기가 놀이터였다. 그러니 작가가 부지불식 간에 받은 영향이 컸으리라. 작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동영상] 보화각
지우기의 반복을 통한 그리기
▲ 전인아 I '봉#4, 담#6-1, 담#7-1, 담#8-1'(왼쪽부터) 종이에 혼합재료 72×102cm 2017. 서양화에 비유하면 '모네'의 연꽃 연작이 연상된다. |
ⓒ 김형순 |
작업에서 붓을 사용하는 것과 손을 쓰는 건 분명 다르다. 맨손으로 그린 그림은 작가의 체취와 촉감과 온기까지도 담긴다. 일종의 '액션페인팅'이다. 현대미술의 화두는 몸이다. 손이 다 닳도록 그리다보니 색이 동이 되는 놀라운 순간도 맞으리라. 게다가 속히 훤히 보이는 수채화 효과가 난다. 이런 투명성은 21세기 시대정신이기도 해 모던해 보인다.
위 연작도 작가가 문질러 그린 작품이다. '담'이라는 제목이 궁금해서 작가에게 물었더니 "일상적이고 친근한 생활 속 정경 중 하나로 소박한 감성의 원초적 이미지를 연꽃이나 연못, 풀벌레나 개구리 등 근원적 자연물을 다룬 것"이라고 말한다. 또 "연꽃주변에서 더위를 식히는 풍류를 때 이르게 떠올리게 했다"는 설명이다. 그 뜻이 참으로 오묘하다.
이 '담'은 분명 고구려벽화에 새겨진 연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울산대 전호태 교수는 그의 해설에서 "벽화내부 연꽃무늬는 불교의 영향이다. 고구려인은 연꽃을 내세가 아니라, 조상신의 세계로 돌아가 현세를 연장시키는 자궁으로 삼았다. 거기에서 완전히 새롭고 자유로운 존재로 탄생하는 세계를 꿈꾸었다"라고 풀이한다.
판타지 같은 환상적 요소를 중시하다
▲ 전인아 I '서산#1' 비단에 혼합재료 78×133cm 2017. 마치 21세기 '신선도'를 보는 것 같다 |
ⓒ 김형순 |
또 예를 들어보면, 작가가 사람을 그릴 때도 성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무성이거나 중성이다. 그러면서 번지는 수성재료와 겹치는 색상을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구상화인데도 추상화처럼 보인다. 이런 기법은 환상적이고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는 촉매제가 된다.
비단에 그린 작품 '서산#1'도 마치 신선이 노니는 이상세계 같다. 그런 환상적 세계가 펼쳐진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나 신화가 읽힌다. 작가는 이런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고구려 벽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산과 바다에 나오는 풍물 지리서이자 상상적 동물을 나열한 '산해경' 같은 책을 많이 참고했단다.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개념은, 관객을 작업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시작할 뿐 그걸 완성하는 건 관객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제 나름으로 상상력을 맘껏 펼치면 참여할 여지가 많아진다. 그들을 통해 역으로 작가가 촉발시키려는 미적 환영이나 판타지는 더 커진다. 여기서도 그런 의도와 경향이 보인다.
▲ 전인아 I '봉#3' 종이에 혼합재료 102×70cm 2017. 서양화로 치면 판타지 넘치는 '샤갈' 풍 같다 |
ⓒ 김형순 |
"내가 경기중학교 다닐 때 한문선생인 '천관우'에게서 노장사상을 배웠어. 노자 책은 5천 단어밖엔 안 돼 그런 대로 배울 만했지. 그런데 장자는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스케일이 더 크고 더 깊어. 노자를 뻥 튀기면 장자가 되는데 거기에는 무시무시한 스케일과 판타지기 담겨 있어. 그런데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판타지가 넘치는 것은 바로 일연이 쓴 <삼국유사>야. 거기에 우리 민족의 놀라운 판타지가 담겨 있거든."
백남준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한국인의 판타지를 극찬했는데 작가가 추구하는 바도 이런 판타지 속 환상적 요소가 연출하는 것이리라. 위 '봉#3'에는 그런 열망이 화폭에 옮겨졌다. 이런 작품을 보면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어떤 상상력이 발동된다. '도연명'이 꿈꾼 무릉도원이나 판타지소설에 나오는 초자연적이고 영험한 세계를 보는 듯하다.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다
▲ 전인아 I 'Dyptich#1' 석고(Dental Stone) 73×61cm 2015 |
ⓒ 김형순 |
위 작품은 새와 인체, 물고기와 나뭇잎의 형상을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여러 자연물이 하나가 되어 춤추는 듯한 형상이다. 자연과 인간과 우주가 하나라는 동양적 우주관인 '천지인'의 상징적 은유인가. 하여간 관객의 눈길을 더 집중시킨다.
이 작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작가에게 물었더니 "날갯짓을 그린 회화작품(shell of stock)에서 '색'을 배제하고 선적인 동세를 표현했다. 근원적인 모태인 매트릭스와 중앙에 '모아진 손'은 자연물과의 교감 및 동식물의 형태를 오가는 환상적 세계를 담았다"라는 설명이다. '환상, 교감, 매트릭스' 같은 작가의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덧붙이는 글 | 금산갤러리 장소와 소개 http://www.keumsan.org/ 전화: 02)3789-6317
ㅡ EBS1 역사채널e ㅡ
전인아 화가 "가족의 평가가 가장 무서워..편하게 볼 그림 그리고 싶어"
이향휘 입력 2017.01.31 17:08
한국 대표 예술패밀리 간송家..4대째 화업 잇는 추상 화가
금산갤러리서 '색(色), 동(動)'전.."감각적인 색채는 나의 무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보화각을 지나 산길을 더 올라가려다 이런 나무 팻말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칼바람에 코끝이 시려온다. 기와집을 연상케 하는 살짝 들린 처마선의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발을 디뎠다. "안녕하세요."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손녀이자 이 집의 차녀인 화가 전인아 씨(47)의 목소리다. "건축가 김중업 선생님하고 제자들이 제가 태어나던 해 이 집을 완성했다고 하더군요. 이 집하고 저랑 나이가 같아요. 하하."
오전의 햇살이 거실 소파와 포장을 막 뜯기 시작한 그림들 위로 쏟아진다. 이달 8일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에서 개인전 '색(色), 동(動)'전을 발표하는 그의 신작들이다.
갤러리에 걸기 전 부모님의 집에 작품들과 함께 들른 그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이번엔 얼마나 신랄한 평가를 받을까 싶은 눈치다. 그의 아버지는 간송의 장남이자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인 전성우 화백.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고 보성고 재단 동성학원 이사장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시 '와사등'을 쓴 김광균의 딸이자 공예 작가인 김은영 매듭장. 게다가 언니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인 전인지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는 남동생들과 올케까지 합치면 집안에 미술 전공자들은 차고 넘친다. 조선 최고 부자였던 할아버지는 일제에 항거해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재산을 다 바친 그 유명한 간송 아닌가.
안목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안에서 작가 활동하기는 생각보다 수월치 않은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칭찬에 목말랐어요. 제가 기가 약한 게 아닌데 가족 전체가 다 기가 세다 보니 속상할 때도 많지요. 술까지 들어가면 언니와 동생들의 평가도 장난 아니지요. 사회보다 가족의 평가가 가장 무서워요."
아버지에게 칭찬다운 칭찬을 받은 기억은 꽤나 오래전이다. 서울대 미대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잘했다"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인터뷰 도중 어머니가 거실에 나왔다. 딸의 그림 중 어떤 게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아버지(전성우 화백)는 얘에게 감각보다는 깊이에 치중하라는 말을 하죠"라며 "이 그림은 색이 좀 강하지 않니?"라고 물었다. "가족의 말이 무섭다"는 그의 말이 엄살은 아닌 듯했다.
1970년생인 그는 4남매 중 유일하게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명품 컬렉션으로 유명한 예술패밀리에서 4대째 화업을 잇는 주역이다. "가족의 무게감은 극복할 수는 없었어요. 벗어나고 싶다기보다는 그거에 매달리다 보니 더욱 의존적이게 되더군요."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동기나 후배들이 작가로 일찌감치 잘나가는 것에 기가 죽었다. 서울대 교수였던 서용선 작가는 수년 전 그의 개인전을 보러 와서는 "네가 작가가 될 줄은 몰랐다"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해 3년간 리모컨을 비롯한 제품 디자인을 하기도 했다. 1997년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작가로서 명성은 그만큼 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길의 끝에는 언제나 붓이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 감정을 남김 없이 토로할 수 있는 것이 그림밖에 없더군요. 마흔이 넘어서야 제가 갈 길은 그림밖에 없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마음을 다잡은 후 3년 전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그 후 1년에 한 번씩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자연스러운 이미지의 흐름이다. 화폭은 비구상에 가깝지만 새와 꽃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중국 고전 '산해경'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흐르듯이 이미지를 그렸지요."
손가락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수없이 붓질한 결과물 40여 점이 곧 갤러리 벽에 걸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색(色) 쓰는 것이 약한데 전 색에서는 자신이 있어요." 전시 이름이 색의 움직임을 뜻하는 '색(色), 동(動)'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업은 애증이에요. 힘들지만 또 제일 행복해요. 안 하면 몸이 아프죠. 미술이란 1 더하기 1을 한다고 해서 2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자기 만족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 진정한 작가 아닐까요." 냉혹한 지적과 평가 속에 다져진 그가 진정한 작가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전시는 2월 8일부터 3월 3일까지. (02)3789-6317
[이향휘 기자]
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
전
간송미술관
다른 표기 언어 澗松美術館
시대 | 현대 |
---|---|
위치 |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97-1 |
설립 | 1938년 |
성격 | 미술관 |
유형 | 단체 |
설립자 | 전형필 |
대표자 | 전영우 |
분야 | 예술·체육/회화 |
서울 성북구 성북동. 1966년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한국민족미술연구소부설 미술관으로 발족하였으여, 소장품은 전적, 고려청자, 조선백자, 불상, 그림, 글씨, 부도, 석탑 등 다양하다.
설립목적
간송(澗松)전형필(全鎣弼)이 수집한 고미술품을 정리․ 연구․ 전시하여,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되찾고자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일제강점기인 1938년 전형필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에서 출발하였다. 보화각은 전형필 자신이 수집한 우리나라의 전적 및 고미술품과 국학 자료를 전시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하였다. 1962년 전형필이 사망하자 아들인 전성우(全晟雨)와 전영우(全暎雨)가 부친의 유업을 이어 1966년 간송미술관과 한국민족미술연구소(韓國民族美術硏究所)로 새롭게 발족하였다. 미술관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설기관으로 되어 있어 미술관은 미술품의 보전·전시 업무를, 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 사업을 맡고 있다.
현황
미술관의 규모는 1층과 2층의 전시실을 가지고 있으며 소장품은 전적·고려청자·조선백자·불상·그림·글씨·부도·석탑 등에 걸쳐 다양하다. 2011년 현재 『훈민정음』(국보 제70호)·「청자상감운학문 매병」(국보 제68호)·「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제135호) 등 국보 12점, 보물 10점 등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서울시 지정문화재 4점이 등록되었다.
전시회는 회화·서예·도예·서화로 나뉘어 매년 봄·가을 2주일씩 2회 개최되며, 이 밖의 상설전시는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80여 회의 전시회를 통하여 약 1천점의 수장품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전시회와 함께 논문집 『간송문화(澗松文華)』를 발간하고 있다.
1965년 가을부터 고미술품 및 전적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고간송전형필수집서화목록(故澗松全鎣弼蒐集書畵目錄)』 상·하권을 간행하였고, 1967년에는 수만 권의 도서 중 2천여 질의 한적(漢籍)을 정리하여 『간송문고한적목록(澗松文庫漢籍目錄)』을 간행하였다. 또한 수장품들을 모아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추사명품첩(秋史名品帖)』·『겸재명품첩(謙齋名品帖)』 등을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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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간송문화』1∼32(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71∼87)
- 『간송 전형필』(이충렬, 김영사, 2010)
- 『간송문화』75(한국민족미술연구소, 2008)
- 『한국미술 100년』(한길사, 2006)
- 『간송문화』62(한국민족미술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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