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時代 多角形(8각·9각·12각) 건물과 前方後圓墳 발생의 근원에 대한 試論 / 韓宗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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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時代 多角形(8각·9각·12각) 건물과 前方後圓墳 발생의 근원에 대한 試論(백제전방후원분의 모든 것)     

    

배달 | 조회 288 |추천 0 |2005.11.15. 14:25 http://cafe.daum.net/greatbaekje/1qbm/6       


 



三國時代 多角形(8각·9각·12각) 건물과前方後圓墳 발생의 근원에 대한 試論(韓 宗 燮)

 



Ⅰ. 서 론


   하남시 이성산성(二聖山城)에 다각형 건물지가 밀집되어 발굴되면서 이러한 것에 대하여 보다 많은 의문들이 제기 되었고 이러한 것에 체계적인 연구가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일본지역 답사와 함께 그 근원을 밝힐 수 있는 관련유적 발견으로 이 유적과의 비교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지금까지 이성산성의 발굴성과는 큰 것이었으나 한반도 내에서는 발견되지 않거나 특수성이 있는 유적들이기에 비교 연구를 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특히 다각형 건물지는 백제인들이 쌓은 일본의 구마모도현(熊本縣)의 기쿠치성(鞠智城)에도 8각 건물지가 있다는(98년 8월 KBS일요스페셜) 보도에서 동일성 등 관심사가 되었으나 명확하게 어떤 성격의 유적인가를 종합적으로 연구 검토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글은 이성산성을 이해하고 이러한 조형물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배경과 집단의 구성과 직위 등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것이 신앙과 관련된 유적이라면 제정일치 사회나 중앙집권적 사회에서 왕과 관련된 제사가 구심점이 되었던 만큼 현재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백제 건국지를 밝혀줄 수 있는 직접적인 유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이성산성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은 다각형 건물지가 밀집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신앙유적과 다각형 건물지와 일본 구마모도 국지성의 팔각형 건물유적 등과 비교 연구하여 그 근원을 규명하고자 한다.



 

 

Ⅱ. 본 론


1. 다양한 자연숭배의 위계성
   이성산성에서 발굴된 8, 9, 12각 등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 목적에 의하여 조성된 것으로 목이 짤린 토제마, 별자리가 새겨진 돌거북돌 등 신앙적인 유물이 발견되면서 사상적 측면에서 필자의 관심사가 되었다.불교가 유입되기 전의 고대 신앙대상과 종류를 살펴보면 대부분 자연에서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살펴보면 해의 신, 달의 신, 농사의 신, 야철(冶鐵)의 신, 수레바퀴의 신 등 매우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고 있다.지금도 일본에는 많은 종류의 신사(神社)가 있으며 이러한 신(神)들 중에서 상위에 있는 것은 하늘과 관련된 것이다. 특히 해와 달은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숭배 대상 중에서 가장 우선 되어왔다.또한 성스러운 신앙지의 선택은 아무 곳에나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치와 신앙대상물이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자연에 대한 위계 질서처럼 합리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성산에 있는 유적들의 위치를 살펴보면 이성산성 내부에는 3개의 능선이 있으며 다음 그림과 같이 배열되어 있다.





   이 3개의 능선에 배치된 유적 중에서 제일 낮은 능선에는 그 어느 유적보다 표현과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거북바위가 발견되었다. 이 거북바위의 거북이 등에는 16개 정도의 구멍이 새겨져 있는데 그 구멍의 크기를 살펴보면 제각기 다르면서 정교하게 파여진 것으로써 매우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고대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던 별자리와 비교 조사해 본 결과 오리온 별자리와 같은 배치이며, 밝기에 따라 구멍의 크기 또한 다르게 파여진 것까지도 일치하였다.
   이 오리온 별자리가 있는 능선에는 또 다른 구멍이 새겨진 바위가 3개나 더 배치되어 있다. 이중에는 오리온 별과 함께하는 큰개, 작은개 별자리들이 거북돌에서 동남쪽으로 약 60m 아래 지점에 배치되어 있다. 또 이곳 능선에는 작은 원형의 돌단이 많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필자가 조사한 결과로는 별자리가 새겨진 거북바위가 있는 산자락은 별의 능선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 12각 건물지의 의미
   필자는 이성산에서 별자리 능선을 발견하므로서 하늘에 대한 신앙적인 특성을 가진 산성이라는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체계적인 자연숭배에서 별보다 우위에 있는 하늘의 자연이라면 밤의 제왕이라 할 수 있는 달(月)이였다. 고대인들은 어떤 상징성을 구성하고자 할 때는 외부적인 형상과 내재되어 있는 속성을 결합하여 합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순리라고 추정된다. 즉 고대인들도 같은 계절과 시기로 되돌아오는 달의 운행주기가 12개월이었던 것에 바탕을 두고 원형의 테두리를 12각으로 표현했었던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볼 때 별의 능선보다 한 차원 높은 12각지가 존재하고 있는 능선이 달의 능선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

3. 9각 건물지의 의미
   지금까지 9각의 조형물은 한반도 내에서는 이성산에서만 발견되고 있어 매우 특이하다. 중국에서는 9각과 관련된 유적이 있다는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으며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것으로 9각은 설계부터 어려움이 있어 특수성이 인정되고 있다.
또한 숫자 중에서 기본적이고 제일 큰 단일 숫자는 9이며 우리말 '구'의 어원도 "크다"는 뜻이며 10은 하나의 묶음단위로서 무한대 까지는 크기의 한계를 정할 수 없는 숫자의 단위로서 9의 숫자만이 큰것에 해당된다고 고대인들은 생각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 9각건물지가 있는 능선은 이성산성 내에서 가장 높은 능선으로서 하늘을 주재하는 해(日)의 능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별, 달의 능선과의 관련하여 연구해 볼 때 서열상으로 높은곳에서부터 해(日) 달(月) 별(星)의 3개의 능선으로 각각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9각지의 위치는 3면으로 시야가 트여 있고 동명묘의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검단산 정상과 동서방향으로 연결되는 위치이다. 이러한 위치의 선정은 이곳이 어느 곳보다도 신성한 위치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신성라인(Holy Line)에 속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9각이란 하늘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태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단일숫자로 표현한 것이 9각이었던 것이다.

 

4. 8각건물의 의미
   지금까지 별자리 능선, 달의 능선, 해의 능선 등이 규명이 되었지만 이성산성에서 발견된 각형건물 중에서 8각에 대해서 한일 양국에서도 풀지 못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국지성(鞠智城)의 8각 건물지는 북(鼓)을 메달아 두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4방 8방이라는 뜻에서 땅에 대한 제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모두 구체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않고 있으며 현대에 와서는 아무런 상징성을 부여하지 않고 8각정을 건축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삼국시대에 조성한 8각 구조물에 대한 자료를 근거로 그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우선 국내와 일본지역의 자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백제 지역


  ㄱ.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산41(사적 제352호)번지
   고대 사찰지로서 동국대 발굴조사에서 동사(桐寺)라는 명문이 발견된 곳으로 거대한 건물 중심에 조성된 8각 구조물을 건축학계에서는 목탑 내부의 구조물로 보는 견해와 불교미술에서는 불상대좌로 보는 시각으로서 아직까지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8각 구조물이다. 이곳은 현재 백제의 왕성으로 밝혀지고 있는 서쪽에 위치한 대규모 사찰로서 지금은 대원사(大圓寺)라는 사찰이 건립되어 있다.





   이 8각 구조물은 아래 그림과 같이 반지름의 길이가 267cm이다. 이것은 일본의 신정횡(新井橫)씨가 쓴 ≪환상의 고대척(古代尺)≫이라는 저서에서 삼국시대 한국의 척(尺)은 1자의 단위가 26.7cm라는 것을 방대한 자료에서 도출하였으며 많은 삼국시대의 유적에서 이러한 척도로 조성되었음이 검증되고 있다.
   즉 8각 구조물의 반지름이 267cm로서 고한척(古韓尺)으로 10자(尺)에 해당되어 이것이 삼국시대의 척도로 조성한 8각형 구조물로서 백제왕성과 관련된 유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부근의 이성산성에는 8각 건물이 9각 건물지와 같은 능선 가까이에 조성되어 있다. 왕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것으로 왕=태양=9각 등이 동일한데 9각 가까이에 8각이 있는 것과 같이 왕성주변에 8각 조형물이 조성되었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비유된다.


  ㄴ.이성산성 용(龍)바위 유적

   하남시 이성산성 정상의 동쪽에서 필자에 의해 최근에 밝혀진 것으로 지나쳐 버리면 아무런 형상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거친 암벽이 모여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위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입증할 만한 유물도 발견되었기에 중요한 유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앞으로 발굴 조사를 해보아야 자세한 것을 알 수 있겠지만 표면상으로는 아래 그림과 같이 주위에는 8각의 형태로 돌로 주위를 둘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내부에는 자연적인 바위를 최소한 가공하거나 돌을 쌓아 연결 조성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머리와 꼬리가 있는 동물의 형상으로 보여지고 느낄 수 있는 유적이다.이 유적은 앞에서 살펴본 다각형 유적이나 전방후원분 발생의 근원을 보다 사실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는 원초적인 유적으로서 필자는 이 것이 고대인들의 정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표본이 되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본다.앞으로 보다 심층적인 연구 조사를 실시한 후에야 종합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문제제기 차원에서 간단히 서술하는 바이다.





  ㄷ. 충남 부여 쌍북리 폐사지 8각 초석
    부여 도읍지 주변의 사찰의 초석이 8각으로서 보기 드문 초석이며 백제시대의 유물이다.
  ㄹ. 부여 구룡면 용당리 만가대(萬家垈) 8각 우물
     백제시대 왕족들이 사용하였던 우물로 추정된다.
  ㅁ. 부여 동남리 전천왕사지(傳天王寺地) 8각 우물
     8각 우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
   ㅂ. 부여 쌍북리 8각 우물
     부여여고 내에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백제시대의 것으로 추정한다.

 

2) 신라 지역
  ㄱ. 경주 분황사(芬皇寺)의 8각 우물
    분황사는 선덕여왕 8년(634년) 용궁의 북쪽에 건립한 국가적인 대규모 사찰로서 이곳에는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외부는 8각이며 내부는 원형으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한 것에 ≪삼국유사(三國遺事)≫권(卷)2, 원성대왕(元聖大王)편에 "왕이 즉위한지 11년(795년)에 당나라 사자(使者)가 서울에 와서 한 달을 머물러 있다가 돌아 갔는데 하루 뒤에 두 여자가 내정에 나와서 아뢴다. 저희들은 동지(東池) 청지(靑池)에 있는 두 용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당나라 사자(使者)가 하서국(河西國)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 남편인 두 용(龍)과 분황사 우물에 있는 용(龍)까지 모두 세 용의 모습을 바꾸어 작은 고기로 변하게 해서 통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바라옵건데 폐하께서는 두사람에게 명령하여 우리 남편들인 나라를 지키는 용(龍)을 여기에 머무르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신라 왕도에 건립된 호국사찰인 분황사의 8각 우물 속에는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용이 살고 있다는 것으로 그들의 집을 8각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8각은 왕이나 나라를 지키는 호국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3) 고구려 지역
  ㄱ. 고구려의 사찰 중에 8각의 탑은 정릉사, 령탑사, 반룡사, 금강사 등이다.





ㄴ. 특히 평양에서는 8각 목탑을 많이 건설하였고 일부 지방에서는 4각 나무탑을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ㄷ. 평양의 정릉사는 부처를 위한 절간이 아니라 동명왕의 원찰이다. 동명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사찰로서 8각의 탑은 원찰의 중심 건축물로 5세기 초엽에 건설되었다.위의 국내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제왕성 서쪽의 사찰지에 8각의 조형물이 있고 고구려 도읍지였던 평양에 건설된 탑들은 8각이며 그 중에 정릉사는 시조 동명왕을 위한 원찰로서 그 중심에 8각탑을 건설한 것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8각이 왕 또는 왕과 관련된 주변에서만 조성하였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4) 일본 지역

  ㄱ. 위의 고분을 포함한 일본 지역에서 발견된 8각 고분 및 관련된 조형물이 10여곳이나 발견되었다는 것을 요코하마 박물관 학예과장 전택하지(前澤和之)씨의 조언이며 몇가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ㄴ. 왕궁지와 의자 오사카에 있는 7세기 말의 왕궁이었던 난파궁(難波宮)의 유적으로서 내양남문(內壤南門) 좌우에 팔각전원(八角殿院)이 동쪽과 서쪽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발굴 결과에 의하여 밝혀진 것으로 2개의 8각 조형물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다른 8각 구조물은 일본 천황의 등극 즉위식에 사용하는 고어좌(高御座)로서 주위를 8각으로 조성하여 그 속에 앉아 있도록 한 의자로서 고대로부터 이용되었던 것이다.위의 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고분은 왕이나 지배자급에서만 8각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이며 왕궁지 전면의 좌우에 배치한 8각과 즉위식에 사용하는 의자 등은 왕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ㄷ. 일본의 웅본현(熊本縣) 국지성(鞠智城)은 백제인들이 쌓은 성(城)으로서 내부에는 8각 건물지가 남쪽과 북쪽에 각각 2개가 세워져 있으며 건물의 면적은 같은 것으로 다만 초석의 배열 구조만 다르게 되어있다. 현재 남쪽의 8각 건물지는 그림처럼 복원되어 있으며 일본에서는 북(鼓)을 치는 누각으로 추정하고 있다.국지성은 백제인들이 조성한 것으로 기록에는 7세기 말로 되어있으나 그 이전에 대한 것은 알 수 없는 성이다. 다만 7세기 말의 왕궁이었던 난파궁에서도 2개의 8각 건물이 세트를 이루고 세워진 것과 같은 현상이 국지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국지성의 8각은 북을 치던 곳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2개의 북치는 고루를 건립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은 건물의 모형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보다 많은 정성으로 조성되었던 건물이므로 고루보다는 훨씬 특수성을 지닌 건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8각 조형물은 다음과 같다.
ㄱ. 백제 왕성의 서쪽 하남시 춘궁동 동사(桐寺)지의 8각 조형물
ㄴ. 이성산성 8각지와 용(龍)바위 주위의 8각 테두리
ㄷ. 부여 쌍북리 폐사지 8각 초석
ㄹ. 부여 구룡면 만가대(萬家垈) 8각 우물
ㅁ. 부여 동남리 전천왕사지(傳天王寺地) 8각 우물
ㅂ. 부여 쌍북리 8각 우물
ㅅ. 신라 경주 분황사의 8각 우물
ㅇ. 고구려 평양의 정릉사, 령탑사, 반룡사, 금강사의 8각의 탑
ㅈ. 일본의 약 10개 정도의 8각이 결합된 고분
ㅊ. 일본의 난파궁 문전에 배치한 2개의 8각 건물
ㅋ. 일본 왕의 등극에 사용하는 고어좌(高御座)
ㅌ. 백제인들이 쌓은 일본 웅본현(熊本縣)의 국지성(鞠智城) 내의 2개의 8각 건물지
(조사된 것은 총 25개소)


   위의 자료 중에서 국지성이나 이성산 등 산성 내에서 발견된 것만이 어떤 성격의 조형물인가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성산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8각건물지에 대한 연계성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이성산 8각지의 위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8각지는 9각지와 가까운 거리에 같은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해의 능선과 동일 선상에 8각이 위치해있다. 달이나 별의 능선에서도 관련된 것은 한 능선에 길게 배치되어있는 예로서 8각은 9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② 8각의 위치가 9각보다 높게 위치하고 있으며 9각은 동쪽이며 8각은 서쪽이다. 이러한 배치는 9각은 해로서 해보다 높은 위치에 8각으로 상징되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③ 9각보다 8각이 작은 것으로 태양보다 8각 상징물이 작다는 것이다. 즉 9각지 반지름은 약510cm, 8각지 반지름은 약440cm이다.
8각의 위치나 규모에서 추정되는 것은 태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높은 위치에 있으며, 규모가 작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러한 뜻에서 하늘과 관련된 것 중에 고대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태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비중이 있는 별을 찾아서 해당되는 별의 속성과 지금 까지 발견된 유적을 비교하여 검증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해와 달 다음으로 밝고 숭배되어 왔으며 항상 태양과 가까이에 있는 별이 금성(金星)이다. 즉 금성은 해와 달 다음으로 밝은 천채로서 달이 없는 밤에는 금성의 별빛에 의하여 그림자가 생길만큼 밝은 별이다. 마야문명이나 이집트 문화에서도 금성과 관련된 금성력을 사용할 만큼 숭배되어 왔었던 별이다.


이러한 금성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금성은 새벽과 저녁으로 분리되어 볼 수 있는 별로서 새벽에는 샛별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저녁에는 보편적인 용어로 태백(太白), 금성(金星)등으로 불리워져 왔었던 것이다. 즉 새벽별로 263일 나타났다가 50일정도 보이지 않으며, 저녁별로는 263일 나타난 후 8일동안 보이지 않다가 다시 새벽별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263+50+263+8을 1회합주기 또는 1금성년 이라고 하며 총 583.9일이다.

② 금성은 새벽에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질 무렵에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별로서 항상 태양을 멀리 떠나지 않으며 최대의 이각(離角)이 48도를 넘지 않는다.





  금성이 이동하는 괘적을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5가지 유형으로서 되풀이하는 총 기간은 2920일로서 지구의 8년만에 반복운행 하는 것이다.
즉 금성에 관련된 자료를 요약하면 새벽별과 저녁별로 분리되어 나타난다는 것과 항상 태양을 멀리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또한 8년만에 되풀이되는 운행 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5. 금성과 8각의 관련성
(1) 태양숭배의 고대국가에서는 태양을 기준으로 12개월만에 반복 운행하는 달(月)을 12각으로 조성한 것처럼 금성도 태양을 기준으로 8년마다 반복운행 하므로 금성의 상징성으로 8각을 조성하였다.
(2) 불교 유입 전 자연숭배에서는 고대의 왕은 태양으로 상징되었고 태양 주위에 가까이 있는 금성처럼 왕과 관련된 유적에 8각 조형물이 있다는 것은 금성과 8각이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금성은 새벽별과 저녁별로 2개의 특성으로 구분되는 만큼 국지성과 난파궁에 같은 규모의 8각이 각각 2개씩 배치되어 있는 것도 금성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 태양 숭배국이었던 일본의 왕이나 통치자 묘제에 금성을 상징하는 8각이 적용된 것은 죽어서도 금성처럼 태양신과 함께 한다는 제정일치 사회의 묘제이다.위의 내용에서 금성은 8년을 주기로 다섯 종류의 운행을 반복하는 것으로 8이라는 숫자의 개념을 적용하였던 것이다. 태양 숭배국이었던 일본인들의 관념에서는 지금도 8이라는 숫자를 성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내재된 뜻은 모르고 다만 지금까지 전래되어 왔었던 것이다. 해와 달 다음으로 밝은 행성에 속하는 금성을 고대인들은 숭배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의 기록에 태백성(금성)이 달을 범하였다거나 낮에 나타났다 등 한성시대의 역사에 기록된 것으로 오랫동안 관심으로 관측되었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이성산의 역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여러 종류의 제단이나 신앙지가 밀집되어 서열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찾아낸 것이 별자리 바위들로서 예측하였던 것이 실증이 된 것이다. 다양한 자연숭배의 위계성이 밝혀진 것이며 이러한 서열에서 제일 상위에 있는 태양의 9각은 왕과 관련된 것으로 제정일치 사회에서 우위에 있는 제사권은 왕이 관장하였던 만큼 왕궁이 가까이 있음을 밝혀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태양신의 제단을 설치하고 오랫동안 배알했었던 왕은 백제의 왕으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이성산성은 백제시대의 성지로서 보호되고 가꾸어왔던 만큼 그 어느곳에서도 보기드문 석성을 정성 드려 쌓았던 것이다. 백제왕의 제사처가 되었던 산성이 밝혀짐으로서 인근에 궁궐지가 있음을 실증하였으며 또한 이성산성의 특성은 성지(聖地)를 구심점으로 한성을 지키는 군사적인 중심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배치는 강한 정신력을 길러주는 것으로 신앙을 바탕으로 구성하였던 것이다.

 

6.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조성 배경 연구
   일본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전방후원분의 형태는 열쇠구멍 모양의 형태가 특이한 것으로 왜 이러한 형태로 조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하는 것이 오랫동안 의문이 되어왔었던 것이다.
이러한 묘제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에 의해서 조성되었던 만큼 발생근원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특히 묘제는 보수성이 있으며 죽은 자의 염원이 포함된 만큼 뚜렷한 연관성이 있는 묘제인 것이다. 이러한 묘제의 성격이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8각의 실체가 밝혀지고 8각으로 조성된 전방후원분이 조성되었기에 유추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림 10>에 나타난 것을 보면 태양 주위에 항상 가까이 있는 금성을 표현한 8각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의 피장자는 왕과 관련된 신분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즉 왕이나 우두머리에 해당되는 고분이 전방후원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8각을 조성하지 않았던 묘제로 추정)







1) 전방(前方) 조형물의 의미
   8각이 조성된 전방후원분에서 8각은 금성이라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앞쪽의 방형은 왜 조성했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금성의 속성을 보면 <그림 9>와 같이 종횡무진 하는 괘적을 알 수 있다. 즉 가던 길을 갑자기 되돌아오기도 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려가면서 회전하는 다양한 운행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관측하였던 고대인들은 분명히 금성에는 하늘을 헤엄치듯 운행하는 추진체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해와 달과는 달리 자유자제로 회전하는 금성의 특성에서 물고기처럼 유영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이에 꼬리를 연상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금성에는 물고기처럼 꼬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인덕천황릉과 같이 주위에 구덩이를 파서 물까지 채웠던 전방후원분도 조성하였던 것이다.이와 유사한 예로서 아래 그림과 같이 고대의 문자에서 나타나는 아침단(旦)의 초기문자는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형상으로 해를 상징하는 표와 아래 해가 해면에 비치는 모양으로 덧붙인 부호가 부가된 것을 볼 수 있다.태양 주위를 맴돌면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금성은 수많은 뭇별 중에서 우두머리에 해당되는 별이다. 해와 달을 제외하고 으뜸으로 밝은 금성은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특히 태양숭배 문화에서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태양신(神)을 보좌하는 역할로서 국가에서는 제후국의 왕이나 왕을 보좌하는 우두머리 또는 지역의 통치자등의 묘제로서 전방후원분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방형의 단을 제단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아래 그림과 같은 모양의 제단을 설치해야 할 이유가 없고 구조에서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주위에 호를 파고 물을 채우는 점에서도 제단으로는 볼 수 없으며 8각으로 조성되어 있으므로서 금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금성의 종횡하는 운행에서 유영하는 꼬리를 달고 주위에 물까지 채운 묘제로 발전하였던 것이다.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전방후원분은 평소에 살아있을 때 맡은 직분에 따라 죽어서도 천직으로 되돌아간다는 환생설에서 관련된 묘제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일본지역에서 조사된 전방후원분은 왕이나 우두머리의 통치자 묘제가 대부분이라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이성산성과 대비해보면 성내의 별의 능선과 달의 능선사이의 계곡 낮은 곳에 또 하나의 9각지가 조성된 것은 밤의 태양으로 추정되는 것이다.즉 고대인들의 생각에는 밤에는 태양이 지하세계로 숨는다는 생각에서 달과 별의 능선아래 즉 밤의 계곡을 선택하여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에 대한 관련성 연구는 추후 계속 되어져야 할 것이다.



 


Ⅲ. 맺음말
   지금까지 삼국시대에 다각형 유적이나 유물의 성격을 밝힌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로서 국내의 자료만으로 비교 입증하는데는 매우 미흡했었다. 필자는 고대 자연숭배 사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성산성 내에서 예견하였던 유적을 찾을 수 있었으며 일본 현지 답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한 결과 전보다 보다 더 명확하게 여러 사실들을 규명할 수 있게 되었다.특히 일본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의 발생 근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혀 알 수 없었고 다만 일본 고유의 묘제로만 인식되어 왔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묘제에서 백제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그 근원과 고대사상과의 관련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었다.


   그후 필자가 후원분에 8각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금성(金星)을 표현한 묘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금성을 상징한 묘제로서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지만 보다 구체적인 용어로는 "전방후 8각"으로 불러야 할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 전방후원분의 학명을 금성분(金星墳)이나 전미후원분(前尾後圓墳)등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또 8각은 8년만에 제자리로 돌아오는 금성의 주기를 표현한 것이며 금성의 곡예같은 운행에서 꼬리가 달려있다는 것을 연상하는 것으로써 꼬리형태가 조성된 각종 고분은 모두 동일계통의 금성분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유심히 살펴보면 한반도에서도 많은 금성분이 발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것이다.한반도에서 왕실과 관련된 다양한 8각 구조물이 조사되었고 이러한 것은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금성을 표현하는 상징물로서 일본의 금성 묘제가 한반도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본 연구의 중요성은 고대사 연구에 기초가 되는 것으로 삼국시대의 다각형 유적이 지금처럼 미술적인 기능에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신앙이나 숭배차원에서 변화된 형식의 상징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또 8각 9각 12각이 조성되어 있는 하남시(河南市) 이성산성은 왕실의 신앙지로 판명되면서 그 인근 평지의 교산동(校山洞)토성 일대의 유적지대가 백제의 왕도였음을 측면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끝으로 이러한 것을 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신 하남시의 시장님과 부시장님께 감사드리며 관계직원 및 자료수집에 협조해 주신 일본 국학원대학에 유학중인 양승희씨께 고맙게 생각하며 또한 친히 대담과 자료수집에 응해주신 요코하마 박물관 학예과장 전택화지(前澤和之)씨와 학예원 평야탁치(平野卓治)씨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