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거문고(玄琴) . 양양금|襄陽琴

2017. 3. 22. 03:38율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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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玄琴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의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이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만주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거문고의 전신으로 보이는 현악기 그림이 다수 남아 전한다.

현재의 거문고가 6현 16괘(棵)인데 비하여 고분벽화에는 4현 17괘의 악기가 보이는 등 거문고의 모습은 전승과정에서 다소의 변화를 거친 듯하다.

‘가야의 금(琴)’인 가얏고에 비하여, ‘고구려의 금(琴)’을 뜻하는 감고.검고에서 이름이 유래된 거문고는 괘를 활용하여 한 줄에서 여러 음을 낼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장방형 현악기라는 점과 고구려의 음악문화를 잇고 있는 대표적인 악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감고 (ㄱ+ 아래 아 + ㅁ : 감)

 

가야에서 발생하고 신라에 수용된 남쪽지방의 가야금이 열 두 줄을 손가락으로 뜯거나 퉁겨서 연주하는데 비하여, 북쪽지방에서 발생한 악기인 6현의 거문고는 오른 손에 술대라는 가는 대나무를 쥐고 줄을 뜯거나 쳐서 소리내기 때문에, 비교적 꿋꿋하고 깊이 있는 음색을 지니고 있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사회에 거문고가 보편적인 악기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여 경덕왕 때의 거문고 명인인 옥보고(玉寶高)와 그 제자들에 의하여 전승되던 거문고 음악은 9세기 후반이 되어 비로소 신라 사회에 정착된 듯하다. 이후 가야금·비파와 더불어 신라의 향악기를 대표하는 삼현(三絃)의 하나로 연주되었다.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거문고는 선비 풍류객들이 인성과 정서를 수양하는 도구의 하나로 수용하면서 금도(琴道)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악기가 되어 백악지장(百樂之丈)으로까지 불렸다.

 

비교적 넓은 음역에 깊고 중후한 음색을 지닌 거문고는 전통사회의 양반·중인 등 지식인 풍류객들이 즐기던 정악(正樂)과 민간의 전문음악인들이 자신의 음악성과 기교를 마음껏 펼치던 독주곡인 산조(散調)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세계를 펼치고 있으며, 최근에는 창작국악곡에서도 매우 중요한 독주악기로 활용되고 있다.

 

 

 

 

 

1. 부들(染尾) : 몸통에 줄 뭉치를 고정하고, 적당한 장력을 주기 위하여 줄을 당겨 고정시키는 끈 묶음으로 여섯 가닥을 모아 들어서 모양을 내어 봉미에 고정시킨다.


2. 봉미(鳳尾) : 거문고의 줄을 고정시키기 위한 꼬리부분으로, 거문고 끝부분에 단단한 나무를 잇대어 붙이고, 구멍을 뚫어 줄을 꿴다.


3. 안족(雁足) : 문현. 괘하청. 무현의 세줄을 받치고 음 높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기러기 발 모양으로 나무를 깍아 만든 이동 가능한 줄 받침대.

 

4. 괘(棵) : 줄의 특정 부분을 눌러 원하는 음높이를 내기 위하여 일정한 비율의 간격으로 악기의 몸통위에 붙여 세운 16개의 나무 조각. 유현.대현.괘삼청의 세 줄만 괘위에 얹는데 괘상청은 주로 개방현으로 쓴다.

 

5. 줄 : 명주실을 꼬아 만들며, 각 줄의 굵기는 서로 다르다.

 

6. 술대 : 바닷가에서 나는 단단한 대나무로 만든 가는 붓 대롱 모양의 도구로, 오른손에 쥐고 줄을 치거나 뜯는다.

 

7. 대모(玳瑁) : 술대로 내려치는 부분에 덧댄 가죽.


8. 좌단(坐團) : 연주자가 오른손을 올려놓는 곳.

 

 

거문고

 

거문고는 보통 오동나무로 만든 윗판과 단단한 나무로 뒷판을 댄 울림통 몸체를 갖고 있다.

몸체에는 16개의 괘가 있고, 해죽으로 만든 술대를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 사이에 끼고 엄지손가락으로 버텨쥐고 줄을 뜯거나 쳐서 연주한다. 이 때 대점(大点)이라하여 오른손으로 내려치거나, 소점(小点)이라하여 오른손을 몸체에 대고 뜯거나 쳐서 연주한다.

 

연주자 편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제1현은 문현(文絃), 제2현은 유현(遊絃), 제3현은 대현(大絃), 제4현은 괘상청(棵上淸), 제5현은 괘하청(棵下淸), 제6현은 무현(武絃)이라 부른다. 이 6현 중에서 유현과 대현으로 선율을 연주하는데 유현을 가야금처럼 가늘고 높은 소리를 내며, 대현은 상당히 낮고 굵은 소리를 내어 거문고만의 독특한 음색을 드러낸다.

 

또 유현과 대현, 괘상청은 모두 괘 위를 지나는데, 그 괘위를 줄과 함께 살짝 눌러 밀면 음이 올라가며 문현.괘상청.괘하청.무현 등은 개방현으로 연주된다. 현재 거문고 연주 때 사용되는 구음으로는 덩. 둥. 등. 당. 동. 징. 쌀갱. 싸랭. 슬기덩. 슬기둥. 슬기등. 뜰 등이 있다.

감수   : 김영운(한양대학교 국악과 교수)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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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양금|襄陽琴

 

 

 

 

題琴款(琴卽王考宰襄陽時所得)


綠綺琴伯牙心鍾子始知音
一鼓復一吟 泠泠虛籟起遙岑


녹기금(綠綺琴)에 담은 백아(伯牙)의 마음 종자기(鍾子期)가 비로소 그 음악을 통해 알았네.
거문고 한 연주마다 한 탄식으로 돌아오니, 냉냉한 허공 속의 소리 먼 봉우리까지 들리네.

 


玲瓏石上桐一鼓一吟
五十春當時鍾子棄

我去玉軫金徽生素塵
陽春白雪廣陵散 倘寄蓬萊山水人


영롱한 바위 위 오동 거문고 한 연주마다 한 탄식이 절로 나네.
오십 나이에 이르러 종자기(鍾子期)가 떠나버리니
나도 거문고를 버려 흰 먼지만 이네.
정월에 흰눈이 광릉에 흩어지니, 급히 봉래산 수인(水人)에게 보내네.

 

 

양양금|襄陽琴Yangyanggeum, Geomungo Used by Ryu Hongwon
세로 162.0 가로 20.7 1726년

전주류씨 함벽당종택 소장, 한국국학진흥원 기탁품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14호

류홍원이 1726년 양양 낙산사 이화원의 나무로 제작한 거문고로, 양양에서 제작한 것이라 하여 ‘양양금’ 이라 불린다.
거문고 바닥에 류홍원이 쓴 ‘제탄관(題琴款)’ 의 시가 초서로 새겨져 있고, 안쪽 면에는 1777년에 묵서한 제작 과정이 적혀 있다.

 

 

 

 

 

 

 

고금|古琴

Gogeum, Book Containing Poetry and Theory of Music 세로 28.0 가로 19.0 18세기


조선 후기 실학자 위백규(魏伯珪, 1727~1798)의 저서로 경서 중에서 감명 받은 구문을 거문고 소리에 빗대어 고금이라 이름 한 책이다.
시문과 함께 소리와 음악에 대한 이론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어 음악에 대한 선비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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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정악

 

절제의 선비 음악

 

옛 사람들은 거문고를 모든 음악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백악지장(白樂之丈)’이라고 불렀다.

음색이 깊고 웅혼해 다른 악기들을 능히 거느릴 만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로부터 거문고는 남성의 악기요, 식자층의 악기였다.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전하는 왕산악은 고구려의 제2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고, 거문고를 즐겨 연주한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 등도 문ㆍ사ㆍ철을 두루 갖춘 선비들이었다.

오늘날에도 거문고는 우리 음악 연주 전반에 걸쳐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거문고를 전공한 사람들이 우리 음악계를 이끌고 있다. 정악거문고의 대가 장사훈 선생의, 문현을 치고 그 여음을 다음 유현 소리가 나기 직전에 왼손바닥으로 막으며 타는 거문고 소리는 가히 신선의 소리 그 자체였다. 유현의 영롱한 소리도 일품이려니와 대현의 육중한 소리는 깊은 바다에 산다는 잠룡의 꿈틀거림을 묘사하고 있었다.

 

필자도 한적한 마을에서 벽에 거문고를 걸어놓고 거문고정악을 타며 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느짓한 상영산이나 여창 가곡 이수대엽을 타고, 지그시 눈을 감고 속소리로 거문고 구음(口音)을 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낭만과 즐거움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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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악기의 우두머리, 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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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는 백악지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 음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근세의 우리 음악계를 이끌었던 함재운, 함화진이나 현재 우리 음악계의 원로인 성경린, 1991년에 타계한 장사훈은 모두 거문고 전공이었다. 고악보도 거의 다 거문고 악보여서 우리 음악 이론을 공부하려면 거문고를 연주해야만 했다.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에서도 학과 공부를 잘하는 순서대로 거문고 전공자를 정하였다 하니 거문고 연주자들의 자부심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현악 연주자가 관악 연주자에 비해 음악계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것은 동ㆍ서양이 같다. 서양의 오케스트라에서도 악장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맡고, 고대 그리스에서도 관악기인 아울로스(aulos)보다 리라(lyra)의 음악을 격이 높다고 여겼다. 아마도 몸 안에 기운을 직접 불어넣어 터뜨리는 관악기의 직접성보다 손이나 매개 도구를 이용해 연주하는 현악기의 간접성이 더 순화되고 절제된 음악을 만들기 때문인 듯하다.

 

이러한 까닭에서인지 마음가짐이 음악에 나타난다고 생각한 조선의 사대부는 손으로 직접 뜯는 가야고보다 술대라는 도구로 타는 거문고를 더 사랑하였다. 음악을 통한 정신 수양을 중요하게 여기고 나아가 거문고를 그 도구로 사용했기에 겉모양부터 여러 철학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거문고는 오동나무로 만드는데, 고이 자란 나무보다는 풍상을 겪으며 어렵게 자라다 말라죽은 나무, 곧 ‘석상자고동(石上自枯桐)’을 최고로 친다. 무른 재질의 오동나무는 음으로, 어렵게 자라 나이테가 촘촘한 것은 양으로 치므로, 우선 재료에서 음양이 조화를 이룬다. 또 『삼국사기』에 의하면 거문고는 길이를 3자 6치 6푼으로 잡는데 이는 1년 366일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거문고의 앞면은 둥글게 만들어 하늘[天]을 나타내고, 뒷면은 편편하게 만들어 땅[地]을 가리킨다. 거문고에서 흘러나오는 다섯 음인 궁, 상, 각, 치, 우는 천지조화를 이루는 오행과 관련이 있다. 오동나무의 음양과 어울려 동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음양오행을 완성하는 셈이다. 거문고는 이처럼 애초부터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어서 특히 선비가 사랑하는 악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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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로 연주하는 아정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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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악(正樂)이라 하면, 말 그대로 아정(雅正)하고 고상하며 바르고 큰 음악이다. 궁중 음악의 일부를 포함하여 민간 상류층에서 즐겨 연주하던 모든 음악을 지칭한다. 특히 선비들이 풍류방에서 즐기던 가곡 연주에서는 다른 악기가 없더라도 거문고는 반드시 갖춰야 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일제 강점기만 해도 거문고로는 민요나 무용 반주 등을 하지 않았다.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악기 편성으로 연주하는 대표적인 정악곡은 여민락과 영산회상이다.

 

거문고는 처음에는 경안법(輕按法)으로 연주했다. 경안법은 손가락으로 줄을 밀거나 당기지 않고 가볍게 연주하는 것으로 소리가 담백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조선 후기부터 줄을 밀어 짚는 역안법(力按法)을 사용하여 윤기 있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오른손의 검지와 장지 사이에 술대를 끼고 엄지로 버텨 쥔 다음 줄을 내려치거나 뜯고, 때로는 줄을 가볍게 밀어 타며, 산조에서는 괘상청ㆍ괘하청ㆍ무현 세 개의 줄을 아래위로 훑어 타기도 한다.

현을 내리칠 때는 공명통에 부딪히기 때문에 술대가 부딪히는 부분[玳瑁:대모]에 부드러운 가죽을 입혀 잡음을 줄였다. 이 부분을 대모라고 하는 이유는 예전에 거북[瑁] 등 껍데기를 말려 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실제 거북 등 껍데기를 붙인 거문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술대로 위에서 내려치는 것을 대점(大点)이라고 하고, 오른손을 몸체에 댄 채로 뜯는 것을 소점(小点)이라고 한다.

특히 대점은 거문고 소리를 대표하는데, 현의 떨림과 공명통의 울림이 어우러져 둔한 듯하면서 웅장한 소리가 난다. 거문고는 여섯 줄 가운데 유현ㆍ대현이라 불리는 두 줄만 선율을 연주하고 나머지 네 줄은 ‘두루룽’ 하는 지속음(drone)을 내는 구조를 가진 점이 특이하다.

 

 

 

『악학웨범』에 실린 거문고

 

 

 

 

거문고의 구조와 세부 명칭(출처: 송혜진, 『한국악기』, 열화당)

 

 

거문고는 가야고와 달리 각 줄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연주자 쪽에서부터 첫째 줄은 문현(文絃), 둘째 줄은 유현(遊絃) 또는 자현(子絃), 셋째 줄은 대현(大絃), 넷째 줄은 괘상청[棵上淸], 다섯째 줄은 괘하청[棵下淸]ㆍ기괘청[歧棵淸], 여섯째 줄은 무현(武絃)이라 일컫는다. 줄을 버티어 놓은 괘는 움직일 수 없게 고정되어 있고, 가장 높은 괘는 6cm를 넘는다.

여섯 줄 가운데 둘째ㆍ셋째ㆍ 넷째 줄은 제일 높은 괘(제1괘) 위에 버텨져 모든 괘 위를, 나머지 세 줄은 안족(雁足) 위를 지난다.1)

 

이 괘 위를 지나는 세 개의 줄을 살짝 눌러서 밀거나 당겨서 음정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또 누른 손가락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농현을 표현한다. 세 줄 가운데서도 유현(둘째 줄)과 대현(셋째 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대현은 여섯 줄 가운데 가장 굵은 줄로 소리가 낮고 굵으며, 유현은 가장 가는 줄로 높고 가는 소리를 낸다. 나머지 네 줄은 손가락을 대지 않고 한 음만을 내는 개방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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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학이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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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는 어디서, 언제 나타난 악기일까? 김부식(1075~1151년)이 펴낸 『삼국사기』에는 거문고의 유래가 자세하게 전한다.

 

 

"진(晋)나라 사람이 칠현금을 보내 왔다.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이 악기인 것은 알았으나 그 악기의 연주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 임금이 이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후히 상을 주겠다고 하였다. 이때 제2상이었던 왕산악이 그 모양은 그대로 두고 그 제도를 많이 고쳐서 1백여 곡을 지어 연주하니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추었다. 그래서 이를 현학금(玄鶴琴)이라 하였는데 뒤에 현금(玄琴) 즉 검은고(거문고)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면 거문고와 ‘검다’는 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국문학자인 양주동 박사는 ‘검다’라는 말은 감(玄), 검(墨)이고 이는 우리 나라 옛 말에서 신(神)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검, 곰 등은 모두 신 또는 하늘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천자문』의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도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한다. 하늘의 색깔이 검다는 것은 밤하늘을 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검’이라는 말은 하늘을 나타내는 말이다. 가야고가 가야국의 악기라는 뜻이듯 거문고도 고구려의 악기라는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삼국사기』에서 검은 학이 춤을 추었기 때문에 거문고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거문고를 미화하기 위해 만든 일화인 듯하다. 그만큼 거문고가 비범하고 소리가 아름다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요즘에는 거문고의 줄을 밀어서 연주한다. 이 연주 기법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 음악의 독특한 시김새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서양의 현악기는 줄을 고른 다음에 현을 그대로 둔 채 지판을 짚어 소리를 낸다. 그러나 거문고는 밀어서 음을 높인 다음에 연주하므로 밀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오게 하면 장2도 이상 음이 내려온다.

이 같은 음정 차이 때문에 빠르게 줄을 밀고 당기는 것만으로 깊은 바이브레이션을 낼 수 있다. 이것을 우리 음악에서는 농현(弄絃)이라고 한다.

고도의 기교를 부리기 위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음계를 오르내리는 연습을 하는 서양 음악과 달리, 우리 음악에서는 농현의 농담(濃淡)으로 음악을 만들어 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거문고 정악 - 절제의 선비 음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 2007.6.20,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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蓬萊詞。

 

一曰綠綺琴。伯牙心。鍾子始知音。

一鼓復一吟。泠泠虛籟起遙岑。江月涓涓江水深。一曰玲瓏石上桐。一鼓一吟三十春。

當時鍾子棄我去。玉軫金徽生素塵。陽春白雪廣陵散。倘寄蓬萊山水人。

世多模刻。或有亂眞者。琴品頗高。大絃益雄渾。尤宜於平調。古樂師咸德亨常喜鼓之。稱以上品。其後俗師輩惟取婉軟便手。常苦其大剛。少皷之。指已告痛矣。

 

 

 

 

담헌서(湛軒書) > 내집 4권 > 보유(補遺)

 

봉래금 사적(蓬萊琴事蹟)

 

첨지(僉知) 박종현(朴宗賢)은 우리 고조모(高祖母) 박 부인(朴夫人)의 조고(祖考)이니, 공(公 첨지공(僉知公))은 곧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외손이다. 초당은 음을 잘 알고 거문고도 잘 탔다. 공은 늘 곁에 있으면서 가만히 듣곤 하였다. 초당이 일찍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다가 방안에서 밝고 높은 거문고 소리가 들리므로 오랜 후에 문을 열고 보니 곧 외손인 첨지공이었다. 이때 그는 나이 아홉 살이었다.

초당은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자기가 배운 바를 모두 전해 주었다. 첨지공은 천부의 재질에다 초당의 전해줌을 얻게 되자 드디어 악(樂)에 있어서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특히 거문고에 정통하였다.

비축한 거문고 중 명기도 많았으니. 봉래금(蓬萊琴)이 그 중의 하나다. 공은 일찍이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과 거문고 친구가 되어 친히 지냈다.

봉래가 거문고 배에 글 두 편을 적고 지락가(至樂歌)라 이름했는데, 세상에서 봉래금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공은 죽고 자손은 쇠퇴[零落]하여 가업(家業)을 지키지 못하여 박 부인이 봉래금과 단금(短琴) 하나를 집에 간직해 두었는데, 언젠가 이르기를,

“내 자손 중에 만일 거문고를 아는 자가 있다면 이를 전해 주겠다.”

하였다.

 

중종조(仲從祖) 유수공(留守公)이 초년에 배우다가 중단하고 능히 끝마치지 못하였다. 봉래금은 비록 종가(宗家)에 잘 간직되어 있었건만, 단금은 남에게 빌려 주었다가 잃어 버렸다.

괴협(棵) 좌우에 새긴 오언(五言) 20자(字)는 즉 첨지공의 시(詩)와 글씨라 한다. 병자(丙子) 9월에 중종조부께 듣고 기록한다.

 

양봉래의 글[詞] 한 편에,

 

“녹기(綠綺)의 거문고요, 백아(伯牙)의 마음이라. 종자(鍾子)001]은 비로소 곡조를 알매, 한번 두드리고 다시 한번 읊조리네. 딩딩 거문고 소리 먼 봉우리에 일매 강의 달은 곱디곱고 강의 물은 깊도다.”

綠綺琴。伯牙心。鍾子始知音。一鼓復一吟。泠泠虛籟起遙岑。江月涓涓江水深。

 

라 하였고, 또 한 편에는,

 

“영롱한 돌 위의 오동, 한번 치고 한번 읊으매 삼십 년이 봄이로다. 그 옛날 종자기(鍾子期) 나를 버리고 가니 옥진(玉軫)과 금휘(金徽)에 흰 티끌이 생겼네. 양춘(陽春)002]과 백설(白雪) 또 광릉산(廣陵散)003]을 봉래 산수 사람에게 붙여 줄거나.”

玲瓏石上桐。一鼓一吟三十春。當時鍾子棄我去。玉軫金徽生素塵。陽春白雪廣陵散。倘寄蓬萊山水人。

 

라고 하였다. 이것을 세상에서 모각(模刻)한 것이 많으나 혹 진면(眞面)을 어지럽힌 것이 있다. 거문고 품수가 자못 높은데 큰 것이 더욱 웅혼(雄渾)하여 평조(平調)에 더욱 알맞다.

옛 악사(樂師) 함덕형(咸德亨)이 항상 즐겨 타고 상품(上品)이라 일컬었는데, 그 후에 속된 악사들은 오직 손에 편리하게 곱고 부드러운 것만 취하였으며 크고 억센 것을 괴롭게 여겼으니 조금만 쳐도 손가락이 아프기 때문이다.

 

 

[주D-001]종자(鍾子) : 백아는 춘추 시대의 유명한 고금가(鼓琴家). 종자도 역시 춘추 시대의 저명한 지음가(知音家).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그의 마음을 알았다는 것.

[주D-002]양춘(陽春) : 옛날 초(楚) 나라의 가곡(歌曲) 이름에 양춘곡과 백설곡(白雪曲)이 있었음.

[주D-003]광릉산(廣陵散) : 진(晋) 나라 혜강(嵇康)의 거문고 곡조.

 

 

담헌서(湛軒書) > 湛軒書內集卷四 > 補遺

 

湛軒書內集卷四 [南陽洪大容德保著五代孫榮善編後學洪命憙校]

 

補遺

 

朴僉知宗賢。高祖妣朴夫人祖考也。公卽許草堂曄之外孫。草堂知音善鼓琴。公常在傍潛聽。草堂嘗自外而入。室中有琴聲。音韻淸高。竊聽良久。開戶視之。則乃外孫僉知公。時年九歲也。

草堂大奇之。因盡傳其所學。僉知公以天才之高。得草堂之所授。遂於樂無所不通而最精於琴。所畜多名材。蓬萊琴其一也。公嘗與楊蓬萊士彥。爲琴友甚善。

蓬萊題兩詞於琴腹。名曰至樂歌。世稱爲蓬萊琴者以此。公沒。子孫零落失業。朴夫人取蓬萊琴及短琴。一置之家中。嘗以爲吾子孫中如有解此者。嘗以是傳之。

仲從祖留守公始學之。中輟而不能終焉。琴雖藏之宗家。短琴則借人而失之。

棵之左右五言二十字。卽僉知公之詩與書云厼。丙子九月。聞于仲從祖父而記之。

蓬萊詞。

 

一曰  綠綺琴。伯牙心。鍾子始知音。一鼓復一吟。泠泠虛籟起遙岑。江月涓涓江水深。

一曰  玲瓏石上桐。一鼓一吟三十春。當時鍾子棄我去。玉軫金徽生素塵。陽春白雪廣陵散。倘寄蓬萊山水人。

 

世多模刻。或有亂眞者。琴品頗高。大絃益雄渾。尤宜於平調。

古樂師咸德亨常喜鼓之。稱以上品。其後俗師輩惟取婉軟便手。常苦其大剛。少皷之。指已告痛矣。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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