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기사계첩 중 경현당석연도 己亥耆社契帖 중 景賢堂錫宴圖

2017. 3. 29. 14:37건강 이야기


한식아카이브




        그림 속 한식 > 옛 그림 속 한식 > 연회음식

기해기사계첩 중 경현당석연도 己亥耆社契帖 중 景賢堂錫宴圖

                   
기본사항음식문화미술사역사민속



김진여(金振汝)·장태흥(張泰興)·박동보(朴東普)·장득만(張得萬)·허숙(許俶),
1719~1720년, 비단에 채색, 52.0×72.0cm, 국립중앙박물관









































술잔이 모두 다섯순배 도는 제 5작연으로 개최된 이 <경현당석연>에서는
'초무', '아박무', '향발무', '무고무', '광수무', 등의 다섯 가지 정재와
'여민락', '낙양춘' 등의 연주곡이 공연되었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27(양재동 aT센터) 1306호 (재)한식재단 우:137-787 전화) 02-6300-2074 팩스)02-6300-2055




[스크랩] 숙종조 기로연肅宗祖 耆老宴 -여민동락 與民同樂| 常識/자료
금제 | 조회 88 |추천 0

숙종조 기로연 肅宗祖 耆老宴 여민동락 與民同樂

숙종 45년(1719년), 그림으로 기록한
기사계첩(己巳契帖)의 '경현당석연',' 봉배귀사', ' 기사사연'


의례순서
< 경현당석연景賢堂錫宴>
시작고지
경현당입실
배례(拜禮)
진찬(進饌)
제1작(第一酌)
제2작(第二酌)
제3작(第三酌)
제4작(第四酌)
제5작(第五酌)
예필(禮畢)
< 봉배귀사奉盃歸社>
기로소로 향하는 행렬
< 기사사연耆社賜宴>
파연
뒷풀이


'기로연'이란 어떤 잔치인가

    기로연은 노인을 위한 잔치다. 기(耆)는 '나이가 많고 덕이 두텁다(年高x德)'는 뜻의 한자로, 나이가 일흔이 넘는 노인을 '기'라 했으며, 80이 되는 것을 '노(老)'라고 하였는데, 조선시대에는 특별히 기로소에 입적한 원로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잔치를 벌이고 그것을 '기로연'이라고 했다.

    기로소란 조선시대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국가 원로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기로소에 입적(入籍)하기 위해서는 정2품 이상의 문관(文官) 벼슬을 지낸 이로 나이가 70세 이상이기 때문에,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조선 왕조 500년 동안 기로소에 든 사람은 7백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중에서는 임금도 몇 명 포함되었는데, 임금의 경우 일반 관리들과는 달리 60세 이상이면 기로소에 든다는 원칙이 있었고, 또 어떤 때는 50세만 넘어도 기로소에 든 예가 있어 태조(재위 1392-1398)는 60세에, 숙종(재위 1674~1720)은 59세에, 영조(재위 1724~1776)와 고종(재위 1863~1907)은 각각 51세에 기로소에 들어 갔다.

    기로연은 매년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 그리고 중양(음력 9월 9일)에 서울과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었다. 이 날은 보통 기로연에 참석한 기로들이 먼저 편을 갈라 투호놀이를 한 뒤, 진편이 이긴편에게 공경의 뜻으로 '읍(揖)을 하고 서서 술을 마시는 의식이 있었으며, 이어 음악과 춤, 술과 음식을 갖춘 본격적인 잔치를 벌여 날이 저물 때까지 풍류를 즐겼다. 그리고 연회를 치르고 나면 기로들은 화공을 시켜 잔치 장면을 그려 서로 나눠 갖고 대를 물려 소장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처럼 정례적인 기로연 외에 왕이 기로소에 드는 등의 경사가 생기면 좀 더 특별한 기로연을 벌이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잔치가 곧 숙종 45년(1719), 숙종의 기로소 입적을 계기로 숙종이 기로들을 궁궐로 초청해 벌인 '경현당석연'과 기로소에서 잔치를 베풀도록 한 '기사 사연'이다


숙종이 기로소에 입적(入籍)하다-'경현당 사연'

    숙종 44년말, 여러 신하들은 곧 춘추 60을 바라보는 숙종의 기로소 입적을 서둘러 추진하기 시작했다. 조선 건국 이래로 왕좌에서 60을 넘긴 임금이 태조대황 뿐이었기 때문에 숙종이 곧 60이 된다는 것은 왕실의 큰 경사였다. 따라서 '서민은 70, 군주는60에 기로소에 든다'는 원칙을 약간 융통성 있게 적용하여 숙종 45년 2월 59세 된 숙종이 비로소 기로소에 드는 경사를 맞게 되었다.

   여러 신하들은 아울러 이를 축하하는 궁중 잔치, 진연을 배설하고자 했지만, 숙종은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도는 등 백성이 어려움에 빠져있으며, 자신도 병환 중이라며 잔치를 사양했다. 다만 기로소에 든 원로들을 모셔 잔치를 벌이기를 희망해 벌인 것이 곧 숙종 45년 4월 18일의 <경헌당 석연>(석연(錫宴)이란 임금이 신하를 위해 베푸는 잔치)이다.

   이날 임금이 기로들을 위해 베푼 잔치는 일반적인 궁중 잔치인 진연(進宴)의 예에 맞춰 진행되었는데, 주요 참석자는 왕과 왕세자, 기로 열 분(초청된 기로는 본래 열 한분이었느나 그 중 한분이 고향에 내려가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등이었다.

    한편 궁중 잔치에서는 축하와 축수의 의미를 담은 술잔을 올리는 진작(進爵)의 절차가 중요한데, 보통 진연에서는 주인공이 임금이기 때문에 두 번째 술잔인 제2작까지 먼저 임금께 올린 후, 제 3작부터 잔치에 참여한 왕세자와 문무백관들이 술을 나눈다. 그런데 기로연에서는 먼저 임금께 술잔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 첫 번째 술잔부터 임금이 기로들에게 술을 권해 함게 나눔으로써 국왕이 기로들에 대한 공경과 여민동락의 의미를 표했다. 특히 숙종 45년 <경현당석연>에서는 이 잔치를 벌이는 중에 임금이 기로들을 위해 직접 은배(銀杯)를 하사하고, 지금부터는 이 '은 술잔'으로 술을 마시도록 하라며 기로들을 감동시키는 '작은 이벤트'가 연출되기도 했다. 술잔이 모두 다섯순배 도는 제 5작연으로 개최된 이 <경현당석연>에서는 '초무', '아박무', '향발무', '무고무', '광수무', 등의 다섯 가지 정재와 '여민락', '낙양춘' 등의 연주곡이 공연되었다.



'기사사연'-임금이 기로들에게 잔치를 내리다.

   한편, <경현당석연>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영의정을 지낸 기로 김창집(1648-1722)은 숙조의 '은배 이벤트'에 감격하여 '임금께서 하사하신 은배를 가지고 기로소에 돌아가 임금의 덕을 기리고자 하니 잔치를 베풀어주시기 바란다'는 특별한 청을 올렸다. 이에 대해 숙종은 흔쾌히 허락하고 장악원의 춤과 음악, 잔치 음식 등을 갖춘 '사연(賜宴)을 허락하였다.

    이에 모든 기로와 장악원 악사와 춤을 맡은 무동(舞童)들이 '은배'를 받들고 시가행진을 하며 기로소로 돌아가는데, 이러한 구경거리가 흔치 않은 것이라 행렬을 보려는 인파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 시가행진 구간은 광화문 새문안교회 근처(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에 있던 경희궁의 경현당에서 교보빌딩 근처에 있던 기로소까지였는데, 이 거리를 장악원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무동들은 공연 의상을 입은 채 기로들과 함께 줄지어 행렬하는 그 모습은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날 오후 기로서에서는 임금이 하사한 은배를 받들고, 화기애애한 잔치를 벌이는데 이 자리에는 기로와 기로들의 자제가 함께 했으며, 마당에는 인근 주민과 구경꾼들까지 몰려들어 그야말로 '여민동락-공경과 나눔'의 잔치가 되었다.



기로연의 '세 가지 미덕(美德).

    기로연의 세 가지 미덕, 즉 삼선(三善)은 부자(父子)의 도(道), 군신(君臣)의 의(義), 장유(長幼)의 예(禮)를 기리는 것으로, 조선시대 국가경여의 중요한 핵심을 보여주는 의례라고 생각한다. 신하들은 군주가 무병장수하여 밝은 생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일을 축하하고, 국왕은 국가 원로들의 연륜과 경험을 공경하여 받들고, 조화로써 임금과 신하, 임금과 백성이 서로 마음이 통하는 화락한 태평성대를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로연은 몇몇 기로들을 위한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잔치가 끝난 후에는 서민 노인들을 대상으로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고, 쌀과 음식을 나누었으며, 때로는 무거운 세금을 탕감하거나, 벼슬살이를 했던 노인들에게는 품계를 올려주는 등의 다양한 계기를 마련해 노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펴함으로써 잔치의 의미망이 확장되었다. 기로연은 모든 노인에 대한 공경을 바치는 잔치였던 것이다.



'숙종조 기로연'-<여민동락-공경과 나눔>으로 재해석되다.

    국립국악원에서는 올해 '공연문화원형탐구시리즈' 네 번째 기획물로 숙종조 기로연'을 정하고, 조선시대 기로연에 내재된 여러 가지 의미를 현대 공연 무대에서 재해석하는 일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먼저 "숙종실록(肅宗實錄)" 기록과 숙종 45년 <경현당석연도>와 <봉배귀사도>, <기사사연도>를 그림으로 기록한 화첩"기사계첩(己巳契帖)", 숙종 45년 9월에 개최된 '진연'을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 등의 원전을 참고하고, 박정혜, 사진실 등 그림과 의례를 연구한 현대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참고했다. 그리고 제작진으로 참여한 각 방면의 자무단들이 수시로 모임을 가지면서 '숙종조의 기로연을 현대무대에 어떻게 재현해 기로연의 본래 의미와 공연예술의 완성도를 겸한 무대를 연출할 것인가'하는 점을 토론했다. 매 토론에서는 '원전의 정확한 이해', 원전의 창조적 해석', '현대 공연물로서의 흥미과 감동' 이 주요 논제였으며, 공연이 개최되는 국립국악원의 무대공간에 어떻게 올릴 것인가 하는 점이 많이 논의되었다.

첫째, 기로연은 국가왕실의 권위를 표방한 화려한 잔치라기보다는 국가의 원로가 주인공인 정겹고 소박한 연회라는 점
둘째>, 주인공들이 연로하므로 서로에 대한 공경은 물론 노인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이 자리하는 잔치라는 점.
셋째, 왕이 노인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은배'라는 모티브를 확대하여 공연의 상징성을 부각시켜보자는 점
넷째, "기사계첩"이라는 훌륭한 미술작품이 남아있으므로 이 자료를 공연 현자에서 청중을 시각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도록 적절히 활용할 필요성
다섯째, 잔치가 궁궐 잔치와 시가 행렬, 사대부와 서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로소 잔치로 구성되었으므로 이것을 무대 연출에서 변화 있게 표현함으로써 이 공연이 '단순한 원전 재현'이 아닌 독립적인 무대 작품으로서의 긴장괌과 다이나믹을 살릴 것
여섯째, 21세기에 시도되는 공연인 만큼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공연의 '재미' 측면을 보강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의례의 진행'에 활기를 줄 것
일곱째, 특히 기로소 잔치 장면에서는 '잔치가 무르익자 팔십 노인 두 사람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는 "기사계첩"의 내용을 참고해 이 잔치가 일반 서민들에게도 '열린 잔치' 였음을 부각시켜 과감하게 민속음악도 이부 편성해 기로연이 지닌 '여민동락-공경과 나눔'의 의미를 부각할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여민동락-공경과 나눔>은 원전자료와 그림에 바탕을 둔 재현 작업과 그 내용을 현대 공연의 개념에 맞게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연출되었다. 이 내용이 악가무의 오랜 전통을 호흡해 온 국립국악원 연주단과 무용단, 그리고 의례와 음식, 의상, 공예 분야의 전무가들의 전통을 바라보는 뛰어난 안목으로 가다듬어져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 <여님동락-공경과 나눔>의 무대를 통해 2백 80여 전 초여름 아침. 환갑을 앞둔 국왕이 70세, 80세 고령의 국가 원로와 함께 한 정감 넘치는 아름다운 예의 공간을 넘나들며 잔치에 내재된 많은 '한국인의 문화 마음'을 공유할 일만 남았다. 이런 공유의 체험이 '사람 사이의 정을 소중이 여기는 한국인'을 다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자져본다.

                                                 송혜진(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교수)

제 작: 고증자문_이성무(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공연자문_성경린,김천흥(국립국악원 원로사범) 대본·구성_송혜진(숙명여대 교수) 연출_이병훈(용인대 대우교수) 음악지도_황규남, 이춘희(국립국악원 정악단, 민속단 예술감독) 정재지도_하루미(국립국악원무용단 안무자) 의례연출·집례_박재희(철학박사, 성균관대) 찬안재현_황혜성(조선왕조 궁중음식보유자) 외


짧은 글 ----

    기로연(耆老宴)이란, 조선시대 기로소(耆老所)에 등록된 나이 많은 문신들을 위하여 국가에서 베풀어주는 잔치로 기로소는 연로한 문신들을 예우하고 그들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인데, 조선시대 문신들의 경우 나이 70세가 되면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임금이 음악과 춤을 갖추어 베푼 잔치 중, 숙종의 기로소 입적을 축하하기 위해 벌인 연회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이는 『기사계첩(己巳契帖)』의 <봉배귀사도>, <기사사연도>, <경현당석연도> 등을 통해 그 모습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숙종 45년 음력 4월 18일, 숙종이 60세를 맞자 신하들은 임금의 기로소 입적을 축하하는 진연(進宴)을 바치고, 임금은 국가원로(耆老)들을 위해 기로연을 베풀게 된다.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