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주자사 진의 벽화로 본 고구려강역의 추정

2018. 3. 11. 23:02우리 역사 바로알기

유주자사 진의 묘 덕흥리고분에서 발견

신도현 도향 중감리출신

석가불문제자인 00진은 벼슬하여 지위가 건위장군 국소대형 좌장군 . 국소대형은 고구려 관직명으로 보인다.

요양장군 요동태수사.

지절 동이 교위 유주자사인.

진은 77세로 죽었다. 영락 18년 (AD 408 戊申)

 

유주자사 관할하에 있는 13명의 태수들이 정무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아랫 쪽에 무릅꿇고 있는 두 사람이 있으며 이 두 사람을 통사리라고 하는데 통역관으로 보인다.

이 그림을 주축으로 선문대 이덕일교수는 아래의 지도에 나타난 지명들이 13태수의 지역으로 이곳이 유주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의 다른자료 들을 보면 이곳은 고구려가 아니라 연나라라는 주장도 있다. 북경근처가 전통적으로 연나라였다는 친일학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유주자사 진이 고구려인이며 그가 고향땅인 북한에 묻힌 것이다. 즉 당시의 한반도는 신적인 존재들이 사는 곳이었고 이곳사람들이 외지로 나가서 모두 큰 벼슬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는 그토록 많은 고인돌이 있는 것이다.

즉 한반도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향이 되는 중심세력이 있었고 그들이 각지에 식민지를 세워 통치했다고 하는 수도를 국내성과 국외성 두 개씩을 두었다는 설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로마시대를 상상해 보라. 세계 곳곳에 로마의 식민지를 두고 로마사람들이 각 지역에 나가서 통치를 한 후 죽은 후 고향땅에 묻힌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의 지방관제에 대하여 알려진 것이 없다. 현재 5부족이 각기 전국을 나누어 다스렸다는 것과 3경을 두었다는 것 이외엔 없다. 즉 지방을 ‘주’라는 이름으로 나누었다는 기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주’라는 지방으로 나눈 것은 오히려 신라밖에는 없다. 신라는 전국을 5주2소경으로 나누었고 나중에 통일신라에 가서 옛3국영토를 일부회복하여 각각3주씩을 설치 9주5소경으로 편재했다. 그리고 발해는 5경 15부 62주로 하였으며 각부에 도독을 두었고 62개주에 자사를 두었다.

즉 유주자 사진은 유주라는 명칭과 관직명인 자사라는 이름에서 신라 또는 발해의 지방관제와 일치되고 있다. 만약 하나의 주의 크기가 위의 그림과 같다면 발해라는 나라는 위 그림이 나타난 지역의 62배나 넓은 땅을 가진 나라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영락이라는 연호는 광개토왕시기의 연호이고 건위장군 국소대형 좌장군에서 대형은 분명히 고구려에서 사용하던 관직 명이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지방 관제 역시 ‘주’로 나누었고 주의 장관인 ‘자사’라는 관직을 두었던 것 일까? 만약 발해라는 나라가 고구려 땅의 거의 전부를 회복하였다면 발해는 62주나 있었음므로 위 지역의 62배나 되는 넓은 땅을 가진 나라였던가?

고구려의 지방관제에서 주와 현이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고구려는 멸망 당시 5부 176성이었는데 그것을 9도독부 42주 100개 현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유주와 같은주가 42개나있었으므로 고구려의 땅의 넓이는 위 지역의 42배 정도로 넓어져야하지 않을까?

출처 : 삼태극
글쓴이 : hido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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