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다성(茶聖) 육우의 품수(品水)와 천하제일천 / 중국차문화사 13.14.15.16.

2018. 3. 20. 17:37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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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문화사

 

(13) 다성(茶聖) 육우의 품수(品水)와 천하제일천

 

"곡렴천 물맛이야말로 천하 제일"

 

▲ 여산 강왕곡 곡렴천

 

 

1) 다성 육우의 품수(品水)

 

고대 문헌 기록에 보이는 중국의 명천(名泉)들은 매우 많다. 모르긴 해도 중국다도의 범주에서 샘물에 관한 영역만 따로 떼어내어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만큼 그 영역이 방대함은 물론 그것이 차에 미치는 영향 또한 대단히 크다.

 

중국의 곳곳에 산재되어 있는 명천들은 제각기의 특성과 우수한 수질을 자랑하며 숱한 고사를 안은 채 유구한 차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수질에 따라 차의 맛이 달라지고 있음을 반증함이 아니겠는가? 특히 다성(茶聖) 육우(陸羽)는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차에 관한 조사와 연구뿐만이 아니라 샘물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깊이 있고 광범위한 조사와 연구를 하여 마침내 중국 전역의 명천들을 선발하여 20등급으로 나누었다.

 

그 외, 당대(唐代)의 저명한 품다가(品茶家) 유백추(劉伯芻)도 전국각지에 산재해 있는 차를 다리기에 적합한 샘물을 맛보고 감정한 후, 가장 적합한 샘물을 일곱 등급으로 나누어 평가하였다. 특히 청대의 건륭제(乾隆帝)는 차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차를 사랑했음은 물론 샘물에 대한 품평 지식도 실로 전문가를 능가할 정도였다. 지금도 그가 선별하여 매겨놓은 천하명천의 등급은 여러 문헌에서 전하여져 후세 다인들의 차에 적합한 샘물의 선정에 훌륭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차에 관련된 유적지를 돌아보다 보면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 불리어지는 명천(名泉)들은 꽤나 많다. 사람들은 “천하에 하나밖에 없어야 할 천하제일천이 중국에는 왜 이리도 많은가?”하고 의아해한다. 필자 또한 그 중의 한 명이었지만 또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대에 따라 수질이 변하고, 품평하는 자들의 입맛과 그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거나 여러 문헌을 통해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지명도가 높은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으로는 대략 네 곳으로 압축하여 볼 수가 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곳이 육우가 자신의 저술인《다경》에서 천하제일로 꼽은 여산(廬山) 강왕곡(康王谷)의 곡렴천(谷簾泉)이고,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곳은 장우신(張又新)의 《전다수기(煎茶水記)》중에서 유백추(劉伯芻)가 천하제일로 꼽은 진강(鎭江) 중령천(中泠泉)이다. 그리고 세 번째와 네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곳은 건륭제가 천하제일로 꼽은 북경의 옥천(玉泉)제남(濟南)의 박돌천(趵突泉)이다.

 

 

▲ 북경 옥천과 옥천사

 

 

2) 여산(廬山) 강왕곡(康王谷)의 곡렴천(谷簾泉)

 

당(唐) 태종(太宗) 때 육우(陸羽, 733—804)는 오랜 벗이자 신임 홍주(洪州, 지금의 南昌) 어사(御史)인 소유(蕭瑜)의 권유에 의해 신성(信城)에서 홍주 옥지관(玉芝觀)으로 이사하였다. 한번은 육우와 소유가 함께 여산(廬山)을 등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들은 산행 도중에 여러 차를 품미하고 또 여러 곳의 샘물을 함께 품평(品評)하기도 하였다.

 

육우는 산행 중에 여산 동남(東南) 관음교반(觀音橋畔)의 초은천(招隐泉)과 여산 용지(龍池)의 산정수(山頂水)를 차례로 맛보고 평가한 뒤 하늘을 우러러 돌연 감탄하고 곡렴천을 칭송하여 말하기를 “여산 곡렴천(谷簾泉)의 물맛이 천하제일명천으로 손색이 없구나!” 그러자 옆에 있던 소유(蕭瑜)가 육우를 비아냥대며 말하기를 “천하의 명천이 수도 없이 많은데 어찌하여 곡렴천을 제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나?” 하였다.

이에 육우가 씨익 웃으며 말하기를 “자네가 직접 곡렴천의 샘물을 길어다 한 번 맛보면 곧 알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소유(蕭瑜)는 즉시 병사들에게 명하여 한양봉(漢陽峰) 아래 강왕곡(康王谷)으로 가서 곡렴천(谷簾泉)의 물을 길어 오게 하였다.

 

 

▲ 여산 강왕곡 곡렴천

 

이틀 후, 병사들이 곡렴천의 물을 길어 돌아왔다. 육우는 그들이 길어온 곡렴천의 물을 가지고 여산의 특산품인 운무차(雲霧茶)를 다리었다. 천하제일의 명천인 곡렴천의 아름다운 물맛을 여러 사람들에게 맛보이게 할 작정으로 안진경(顔眞卿)을 비롯한 많은 지기들을 초청하였다.

 

사람들은 청순하고 향기 부드러운 운무차를 마시며 이구동성으로 “육우는 진정 평천(評泉)의 명수로 손색이 없네. 여산 곡렴천의 물맛은 정말로 아름답구나!”하고 감탄하였다. 그러자 육우는 이에 맞장구쳐서 “그렇다네. 곡렴천의 물맛은 초은천(招隱泉)과 용지산정수(龍池山頂水)보다 맑고 차가우며 또 향기롭고 달지!” 그리고 득의양양하게 찻잔을 들어 맛을 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육우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이 물은 아무래도 여산 곡렴천의 물이 아닌 것 같은데?”

육우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아연실색하여 멍하니 바라보았다. 육우 곁에 있던 소유(蕭瑜)는 황급히 물을 길러 온 병사들을 불러서 “너희들 분명히 곡렴천의 물을 길러온 것이냐?”하고 다그치자 그 병사는 사실이 들통 날 것을 두려워하여 시치미 떼면서 “나리, 이것은 곡렴천의 물이 확실합니다.”하고 황급히 둘러대었다.

 

 

▲ 북경 옥천 샘물

 

 

그런데 그때 마침 강주(江州, 지금의 九江市)자사(刺史) 장우신(张又新:《전다수기(煎茶水記)》의 저자)이 도착하였다. 장우신은 육우가 여산 곡렴천의 물을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여산 곡렴천의 물을 한 단지 길어서 육우의 다회에 참가하러 왔던 것이다. 이에 엉터리 샘물을 길어 온 병사들은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다. 곡렴천의 샘물을 길어서 돌아오다가 파양호(鄱陽湖)를 건너는 도중에 거센 바람과 큰 파도를 만나 그만 실수로 곡렴천의 샘물을 호수에 다 쏟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곡렴천 샘물 대신에 파양호의 호숫물을 한 단지 가득 채워서 돌아왔던 것이다.

 

앞에서 거론 한 바와 같이 육우는 그의 저서《다경》에서 천하의 명천 20종을 품평하였는데, 여산 관음교반의 초은천(招隱泉)을 천하제육천(天下第六泉), 여산 용지산정수(龍池山頂水)를 천하제십천(天下第十泉)으로 서열을 정하고 오직 여산 곡렴천만을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 하였다.

 

곡렴천은 강서 여산(廬山)의 최고봉인 한양봉(漢陽峰) 서쪽의 강왕곡(康王谷: 여산 삼대협곡중의 하나) 아래에 위치하며 여산 도화원(桃花源) 경구(景區)의 주요경관지이다. 곡렴천은 한양봉에서 발원하여 강왕곡으로 절벽아래로 곧장 떨어지는데 그 길이가 무려 삼백오십장(三百五十丈:약 1100미터)에 이른다. 실로 장관이 아닐 수가 없다.

 

 

▲ 여산 풍광

 

 

 

(14) 다성(茶聖) 육우의 품수(品水)와 천하제일천 (2)

 

옥으로 만든 즙과 같이 순후한 맛 '일품'

 

▲ 중령천 입구

 

 

3) 진강(鎭江)의 중령천(中泠泉)

 

또 하나의 천하제일천은 지난 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장우신(張又新)이 《전다수기(煎茶水記)》에서 극찬한 중령천(中泠泉)으로서 일명 남령천(南泠泉 혹은 南零泉)이라고 한다. 중령천은 강소성 진강시(鎭江市) 금산(金山)의 서쪽에 위치한 석탄산(石彈山) 아래에서 발원한다. 이곳은 양장강 밑바닥의 지하수가 솟아올라 석회암의 틈새를 따라 흐르는 샘물로서 양자강에서 유일무이하게 샘물이 솟는 천안(泉眼)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여기서 ‘천안(泉眼)’이란 샘물이 솟아나는 구멍을 ‘샘물의 눈’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에 샘물이 강 가운데에 있을 때, 장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다가 석해산(石解山)과 골산(鶻山)에 막히어 물의 흐름이 세 굽이를 돌아 흐르게 되었는데 세 굽이를 돌아 흐른다 하여 북령(北泠), 중령(中泠), 남령(南泠)의 ‘삼령(三泠)’으로 나누어 부르게 되었다. 여기서 ‘령(泠)’은 “물이 굽이쳐 흐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 삼령의 강 밑바닥에서 모두 샘물이 솟아 올랐다. 그 가운데 중령에서 샘물이 가장 많이 솟는다하여 ‘중령천(中泠泉)’으로 통칭하여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중령천(中泠泉)을 가리켜 ‘남령천(南零泉)’ 또는 ‘남령수(南泠水)’라 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남령천(南零泉)’와 ‘남령수(南泠水)’는 모두 ‘영(零)’자를 령(泠)자로 바꾸거나 령(泠)자를 영(零)자로 바꾸어 써서 ‘남령천(南泠泉)’ 또는 ‘남령수(南零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 천하제일천-중령천

 

 

이 샘은 이미 당대에 그 명성을 천하에 드날리게 되었다. 당대(唐代)의 유명한 품다가(品茶家) 유백추(劉伯芻)는 전국 각지의 수질을 품평하고는 차와 잘 어울리는 물을 7등급으로 나누었는데 그중 양자강의 남령수(南泠水)를 제일 등이라 평가・감정하였다.

 

이후, 중령천은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다성 육우(陸羽)도 유백추(劉伯芻)보다 앞서 중령천(中泠泉)을 가리켜 천하제일천이라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여러 고문헌에 의하면, 이후 무수히 많은 역대의 문인학사 및 고관대작들이 모두 중령천(中泠泉) 명성을 듣고 흠모하여 직접 이곳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다려 마시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한다.

 

송나라 때의《태평광기(太平廣記)》에 보면 당나라 때의 재상 이덕유(李德裕)는 사람을 시켜 금산의 중령천을 길어오도록 차를 다려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원나라에 항거해 싸웠던 중국의 민족영웅인 남송 때의 명장 문천상(文天祥)은 1276년 원나라 군사와의 담판에서 인질이 되었다가 진강 부근에서 간신히 탈출한 후 중령천의 샘물을 마시고는 그 물맛에 감동하여 즉석에서 시를 짓고 중령천(中泠泉)을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고 극찬하였다.

 

이외에도 북송의 유명한 시인 소동파(蘇東坡:蘇軾), 남송의 애국시인 육방옹(陸放翁:陸游) 등도 중령천을 찬양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 금산공원 입구

 

 

옛날엔 이 샘물을 긷기가 결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금산지(金山志):金山의 역사를 기록한 地方志》에 의하면,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길러야했는데, 자시(子時:밤11시~밤1시)와 오시(午時:낮11시~오후1시)에만 가능했다. 물을 길을 때도 특수한 용기만을 사용하였다.

 

중령천은 파도가 높고 거센 양자강의 강 깊숙한 소용돌이 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동질(銅質)의 구슬과 덮개가 달린 동질의 호로병을 일정한 길이의 밧줄에 묶어서 강 한복판에 가라앉게 한 뒤 샘물이 솟는 굴(구멍)에 이르면 밧줄을 흔들어서 덮개를 연 다음 중령천의 샘물을 길었다. 이렇게 강 밑바닥에서 길은 샘물이 과연 진짜 중령천의 샘물이었을까?

 

전하는 말에 의하면 동전(銅錢)류의 금속화폐를 물을 가득 채운 잔속에 넣었을 때 물이 잔 입구 위로 2 내지 3센티미터까지 올라도 밖으로 넘치지 말아야 진짜 중령천 샘물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중국 민간에는 “영배불일(盈杯不溢: 잔은 차도 넘치지 않는다.)”이란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는 지하수가 강 밑바닥의 석회암층의 무수한 틈새를 따라 구멍으로 흘러나오면서 진흙이 여과되고, 여러 종류의 광물질이 용해됨으로써 그 표면장력이 증대된 것이라 한다.

 

이렇듯, 중령천은 거대한 강 한복판에서 발원한 까닭으로 일 년 내내 수온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아울러 여러 종류의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샘물은 비취(翡翠)처럼 녹색을 띠며 짙을 땐 마치 경장(琼漿:옥으로 만든 즙, 美酒)같아 그 순후함을 가히 알만하다. 이 샘물로 차를 달이면 맑은 향기와 시원하며 감미롭기 그지없다.

 

 

▲ 금산사 대웅전

 

 

그러나 청대에 이르러서 근 백 년 동안 양자강 강변은 사토가 퇴적되어 모래톱이 높아짐에 따라 금산과 중령천은 곧 육지와 서로 연결되게 되었다. 중령천이 강안(江岸)으로 올라오게 된지 얼마동안 그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청나라 동치(同治) 8년(1869년)에 이르러 후보도(候补道)、설서상(薛书常) 등에 의해 다시 발견되었다.

 

현재 중령천의 천안(泉眼)은 사방 주위엔 섬돌로 쌓아 만든 난간이 방형의 연못을 에워싸고 있다. 아울러 그 정면 돌 난간에는 청말(淸末) 장원 진강지부(鎭江知府)였던 왕인감(王仁堪)이 제자(題字)하여 써놓은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란 글씨가 중령천의 명성을 자랑이라도 하듯 힘차게 써져 있다. 돌난간에 기대어 샘의 연못을 내려다보면 마치 하나의 명경(明鏡)과도 같아서 은하수 흐르는 달밤이면 더할 나위 없이 흥취(興趣) 있는 감상이 될 것이다. 연못의 남쪽에는 또 정자(亭子)가 하나 서 있어 이름 하여 ‘감정(鑑亭)’ 이라 하는데, “물과 샘을 거울삼아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정자 가운데는 유람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석조로 된 탁자가 놓여있으며 바람 또한 상쾌하여 그 운치가 그윽하다. 연못의 북쪽에는 이층의 누각이 있으며 위, 아래층 모두 다실(茶室)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또한 경치가 그윽하여 유람객들이 차를 마시며 전원의 멋을 음미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 금산공원 내의 탑영호

 

 

누각 아래층 맞은편 벽 좌측에는 심병성(沈秉成)이 쓴 ‘중령천(中泠泉)’이란 글씨가, 우측에는 설서상(薛书常)이 쓴 ‘중령천’이란 글씨가 각각 석각(石刻)되어있다. 샘과 연못 주위는 숲이 무성하고 풍경이 수려하여 그윽하니 아름다운 것이 마치 별천지에 있는 느낌이 든다.

 

현재, 중령천은 진강시 서북쪽에 위치한 금산(金山)공원 내에 있으며, 금산 공원 안에는 동진(東晋)시대의 고찰인 금산사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천하제일천인 중령천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거대한 탑영호(塔影湖)와 백화주(百花洲), 경천원(镜天园) 등의 풍경구가 어우러져 있으며, 금산공원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금산사를 우측으로 돌아서면, 청나라 강희황제와 건륭황제가 강남 순찰시에 배를 접안(接岸)하고 내렸던 어마두(御碼頭)가 있다.

 

[‘어(御)’는 옛날 황제 또는 황제와 관련된 물건이나 행동을 나타내는 뜻이고, ‘마두(碼頭)’란 중국어로 항구란 뜻으로 중국어로는 마터우(ma tou)라고 읽는다. 금산은 원래 장강의 작은 섬이었으며, 그 모습이 마치 “장강 속에 피어난 한 송이 부용꽃 같다.”라고 찬사를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탑영호 서쪽 호수가에는 부용루(芙蓉樓)라는 거대한 이층 누각이 웅장하게 서서 중령 앞뒤로 ‘탑영호’와 ‘중령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 금산공원 내의 부용루

 

 

 

 

(15) 다성(茶聖) 육우의 품수(品水)와 천하제일천 (3)

 

"박돌천 물 마시지 않으면 제남 여행 헛했다"

 

 

▲ 제남시 박돌천

 

 

4) 북경의 옥천(玉泉)

 

중국의 청나라 황제 중에 십전무공(十全武功)을 자랑하던 건륭황제는 평생 차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샘물에도 무척 조애가 깊어 중국 천하를 두루 편력하면서 방방곡곡의 유명한 샘들을 맛보고는 서슴없이 북경의 ‘옥천(玉泉)’과 제남(濟南)의 ‘박돌천(趵突泉)’을 동시에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이라 정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건륭황제는 차를 마실 때 반드시 물을 가려서 썼다고 한다. 중국 전역에 산재되어 있는 수많은 명천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물맛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은두(銀斗: 은으로 만든 국자 같은 것)를 가지고 다니며 물의 경량(輕量)을 측정한 뒤, 그 결과를 가지고 천하샘물에 등급을 손수 결정하였다고 한다.

 

 

▲ 북경 옥천 샘물

 

 

건륭이 북경의 옥천(玉泉) 샘물을 은두(銀斗)로 측정해 보니 “옥천의 물은 어리고 비중이 가장 작았으며 똑같은 은두로 측정한 타 샘물에 비해 그 무게가 가장 가벼웠다.”라고 평가하였다. 건륭은 이에 서슴없이 옥천의 샘물이 차를 우려 마시기에 가장 적합한 물이라고 칭찬한 뒤 천하제일천(天下第一泉)으로 정하였다.

 

이외에도 건륭은 《옥천산천하제일천기(玉泉山天下第一泉記)》에서 “무릇 산 밑에서 나오는 찬 샘물 중에서는 정말로 경사(京師:지금의 북경)의 옥천(玉泉)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천하제일천이라고 정했다.”라고 하였다.

실제로도 옥천의 수질은 상등에 속하며, 이 물로 차를 우려내면 우려낸 찻잎에서 빛이 날 정도이다.

 

옥천은 북경의 서쪽 교외에 있는 옥천산(玉泉山)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명대의 학자 장일규(蔣一葵)가 천진(天津)의 풍물에 대해 기록한《장안객화(長安客話)》란 문집에는 “만수사(萬壽寺)를 나와 시내를 건너면 서쪽 십오 리에 옥천산(玉泉山)이 있는데 샘물(옥천:玉泉)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당시 옥천의 명성이 어떠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 천성광장

 

 

5) 제남(濟南)의 박돌천(趵突泉)

 

산동성 제남(濟南)은 역대로 좋은 샘물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인데, 명천(名泉)의 수가 무려 72 곳이나 된다. 그래서 제남을 일컬어 ‘천성(泉城:샘물의 도시)’라고 한다. 박돌천(趵突泉)은 제남의 72명천(名泉)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박돌천(趵突泉)은 또 일명 ‘함천(槛泉)’이라고도 하며 낙수(濼水:산동성에 있는 강)의 발원지로서 이미 2,700년이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돌천의 수질은 청정할 뿐만 아니라 그 물맛이 달고도 차갑다. 이 물을 오랫동안 마시게 되면 신체건강에 유익하고 물을 다려 차를 우려 마시면 그 향이 그윽하고 맛 또한 진하고도 부드럽다.

 

박돌천은 천지(泉池:샘물이 솟아올라 못을 형성한 곳)의 물 밑바닥에서 솟아 나오는 샘물로서 천안(泉眼:샘이 솟는 구멍)이 세 곳이나 된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여기서 하루에 솟아나는 샘물의 양은 최대 16.2평방미터까지 된다.

 

▲ 제남시 박돌천

 

 

이 세 곳의 천안은 어느 한 곳도 마르거나 멈춤이 없이 동시에 샘물을 쏟아 올리고 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천둥이 숨은 듯하여 이내 곧 어디선가 천둥이 칠 것만 같다. 못[池]의 밑바닥의 세 천안에서부터 수면 위로 솟아올라 물결을 이루는 모양이 마치 수면 위에서 세 개의 수레바퀴모양을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경탄과 신비감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천지(泉池)는 바로 이 세 곳의 천안에서 물이 샘솟아 못(池)을 이룬 곳이다. 못의 길이는 30미터, 너비는 18미터, 깊이는 2.2미터이다.

 

 

▲ 박돌천 공원 안내도

 

박돌천의 물은 일 년 내내 항상 섭씨 18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어 추운 겨울에는 수면 위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마치 얇은 운무(雲霧) 층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천지(泉池:샘물이 솟아 넘쳐서 못을 이루고 있음)는 깊고 고요하고 물결은 맑고 깨끗하다. 또한 그 옆엔 아름다운 채색으로 장식된 누각(樓閣)이 있고 그 기둥과 들보엔 화려한 조각과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정말 표돌천과 잘 어울리는 마치 한 폭의 신비스러운 인간계의 선경(仙境)을 보는 듯하다.

 

천지(泉池)의 서편에 못 안쪽으로 돌출하여 서있는 관난정(觀瀾亭:물을 관람하는 정자)은 명나라 천순(天順) 5년(1461년)에 지어진 것이다. 정자의 안쪽에는 관람객들이 천지를 감상할 수 있도록 돌로 된 탁자와 석등(石燈)이 설치되어 있다. 정자의 서쪽 벽에 새겨진 “관란(觀蘭))”은 명대의 서예가의 묵적이고, ‘제일천(第一泉)’이라고 석각(石刻)된 표석은 청나라 동치(同治) 연간의 서예가 왕종림(王钟霖)의 친필이다. 정자의 서쪽에 ‘박돌천(趵突泉)’이라고 새겨진 석비는 명대(明代) 산동순부(山东巡府) 호찬종(胡缵宗)이 쓴 것이다.

 

박돌천은 현재 여러 명천(名泉)들과 함께 박돌천 공원 내부에 있다. 박돌천(趵突泉)공원은 산동성(山東省) 제남시(濟南市) 중심에 있으며 박돌천남로(趵突泉南路)와 낙원대가(濼源大街)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 천불산(千佛山)을 등지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천성(泉城)광장을 대하고, 북쪽으로는 대명호(大明湖)를 바라보고 있다. 공원의 총면적은 94만 8천 평방미터이다. 박돌천공원은 샘(泉) 위주로 조경을 갖추어진 아주 특색 있는 풍치림 공원이다.

 

박돌천 천지(泉池) 북쪽 기슭에는 창이 밝고 깨끗한 내실(內室)을 갖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봉래사(蓬萊社)’라는 차관이다. 이곳은 일명 ‘망학정차사(望鶴亭茶社)’라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청나라의 강희(康熙)황제와 건륭(乾隆)황제가 모두 이곳에서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며 샘물을 감상하는 등 박돌천의 온갖 풍취를 즐기었다고 한다. 그때 박돌천의 물로 차를 우려 마시고는 “봄차 박돌천 물에 적시니 그 맛이 더욱 일품이다.”라고 감탄하고는 남쪽을 순례 중에 마시려고 휴대하고 왔던 북경 옥천(玉泉) 샘물을 모두 박돌천의 샘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박돌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제남(濟南)의 여행을 헛했다”라는 말이 있다.

 

▲ 제남시 박돌천

 

 

공원 내에는 박돌천 외에도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샘물이 많이 있다. 수옥천(漱玉泉), 유서천(柳絮泉), 황화천(黄华泉)、파우천(趴牛泉), 금선천(金线泉), 노금선천(老金线泉) 그리고 마포천(马跑泉), 계천(溪泉) 등이 바로 그러하다. 그리고 이곳은 역대 유명한 문인들이 많이 다녀 간 곳으로 유명하다.

 

그들이 박돌천을 찬미한 시와 문장, 그리고 그들과 얽힌 재미난 이야기와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중국차문화사에 대한 교육뿐만이 아니라 일반관광이나 중국문학, 중국문화사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좋은 역사 현장이라 생각된다.

 

 

 

(16) 다성(茶聖) 육우의 품수(品水)와 천하제일천 (4)

 

"차는 물의 신이요, 물은 차의 몸이다"

 

 

▲ 금산공원 내의 어마두(御碼頭)

 

 

6) 최고의 찻물 천수(天水)와 지수(地水)
― 연수(軟水)와 경수(硬水)의 구분

 

차를 마실 때 차와 함께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물이다. 사람들은 돈이든 물건이든 간에 무언가를 아끼지 않고 마구 낭비할 때 흔히들 “마구 물 쓰듯 한다.”고 말한다. 물은 생명의 발원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가장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해 왔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나도 깨끗한 물을 별 어려움 없이 써왔던 터라 물의 고마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어 오히려 그 소중함과 절실함을 잊고 살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차를 마심에 있어도 많은 이들은 차의 우열(優劣)만을 따지기에 급급하지 그 차를 ‘어떤 물로 우려내어 마시는가?’에는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여 차를 애호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다신전(茶神傳)》ㆍ<품천(品泉)>에는 “차는 물의 신(神, 마음 또는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體)이니, 제대로 된 물이 아니면 그 정신이 나타나지 않고, 제대로 된 차가 아니면 그 몸을 나타낼 수 없다.” 라고 차와 더불어 물의 중요성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우리와는 달리 수질(水質)이나 양적인 면으로 모두 물 사정이 좋지 않은 중국에는 더욱 물의 절실함을 느꼈기에 물에 대한 연구가 오랜 세월을 차의 발전과 함께 병행되어 온 듯하다.

 

과학적 근거에 의하면, 물은 일반적으로 경수(硬水)와 연수(軟水)로 분류된다.

 

경수(硬水: Hard Water)는 물분자속에 금속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센물’이라고 하며 연수(軟水: Soft Water & Conditioner Water)는 물의 생성 시 자연 상태의 순수한 자체를 말하며 ‘단물’이라고 한다.

 

오랜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중국차학계의 물 구분법에 근거하여 더 자세히 정의하자면, 이른바 연수(軟水)는 칼슘이온과 마그네슘이온의 함유량이 물 1리터당 10밀리그램을 초과하지 않는 물을 가리킨다. 그 함유량이 10밀리그램을 초과할 경우 그 물은 곧 경수(硬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정의는 아마도 과학계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 일반인들에게 있어 매우 생소하여 이해가 쉽지 않을뿐더러 그저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와 닿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차학계에서는 일반인들이 간편하고 알기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계의 상태에서 이루어진 설수(雪水:눈이 녹아서 된 물), 빗물, 노수(露水:이슬이 맺혀서 된 물) 등은 ‘천수(天水)'라 하여 모두 ‘연수(軟水)’에 속한다.

기타 샘물, 강물, 냇물, 호수의 물과 우물물 등은 모두 ‘지수(地水)’라 하여 모두 ‘경수(硬水)’에 해당한다.”

 

▲ 수옥천

 

 

① 천수(天水=軟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옛사람들은 차를 우려낼 때 사용하는 빗물이나 설수(雪水)를 가리켜 ‘천수(天水)’ 또는 ‘천천(天泉)’이라 하였다. 빗물과 눈(雪)은 비교적 순수하고 정결(淨潔)하기 때문에 비록 빗물이 내리는 과정 중에 먼지나 티끌 그리고 이산화탄소 등의 오염물질이 섞여 있을지라도 염분의 함량이나 경도(硬度)는 지수(地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기 때문에 사람이 차를 마시기 시작한 이래로 줄곧 오랜 세월을 차를 우리는 데 가장 적합한 물로 애용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설수(雪水)는 중국 고대 문인들과 다인들에게 찻물로 널리 애용되어 왔다.

 

연수(軟水:즉, 天水)로 차를 우려 마시면 그 차향이 그윽할 뿐 아니라 맛 또한 순후(醇厚)하기 그지없다. 중국의 사대(四大)소설 중의 하나인 《홍루몽(紅樓夢)》에서는 귀족층의 다인들이 “격년(隔年)으로 불순물을 제거하여 깨끗하게 저장하여 둔 빗물[雨水]로 ‘노군미(老君眉:복건의 백차)’를 우려 마시고, 또 매화꽃 위에 내린 눈을 녹여 만든 물(雪水)을 지하에서 5년 동안 저장해 두었다가 차를 우려 마셨더니 그 맛의 청순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설수(雪水)는 연수(軟水)로서 깨끗하고 시원하여 찻물로 사용하면 탕색(湯色)이 곱고 밝을 뿐더러 그 향과 맛이 일품이다.

 

그 밖에도 공기가 청정할 때 내린 빗물은 찻물로 사용할 수가 있다. 그러나 계절에 따라 빗물의 수질 정도가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가을은 하늘이 높고 기운이 상쾌하여 공기 중에 먼지가 비교적 적고 빗물이 맑아 차를 우리면 그 맛이 상쾌하고 입 안에 차향이 회감(回甘)한다. 장마철에 바람에 날리는 가랑비는 미생물의 번식에 유리하여 가을 찻물보다 비교적 질이 떨어진다. 또한 여름철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빗물은 항상 모래가 날리고 돌이 뒹굴기 때문에 수질이 깨끗하지 못할뿐더러 찻물로 이용을 하면 차탕(茶湯)이 혼탁해져서 마시기에 부적합하다.

 

▲ '천하제일천' 중령천

 

 

② 지수(地水=硬水)

 

대자연에 속하는 물중에서 산의 샘물, 강물, 냇물, 호숫물, 바닷물, 우물물을 통칭하여 모두 ‘지수(地水)’라고 한다.  

 

샘물(泉水)은 산의 바위 틈새나 혹은 지층 깊숙한 곳에서부터 수차례에 걸쳐 여과과정을 거쳐서 땅위로 솟아오르기 때문에 비교적 수질이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층에 스며드는 과정 중 비교적 많은 광물질들이 샘물에 녹아내리기 때문에 염분함량과 경도 등이 천수(天水)에 비해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산에서 나는 샘물들이 모두 상등(上等)이라 할 수 없으며 특히 유황(硫黃)광천수의 경우는 마실 수가 없다.

 

반면, 강물과 냇물, 호숫물은 모두가 지면수(地面水)로서 광물질의 함유량은 많지가 않으며 통상 잡물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래서 혼탁의 정도가 심하며 비교적 오염되기가 쉽다. 그래서 강물은 일반적으로 찻물로 쓰기엔 이상적이지가 못하다. 그러나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강물이나 냇물 및 호숫물 등은 잡물(雜物)을 가라앉힌 후에 찻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우물물은 지하수에 속하며 찻물로 쓰기에 적합한지의 여부는 한 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볼 때, 지반이 얕은 층의 지하수는 지면에 오염되기 쉽기 때문에 수질이 비교적 떨어진다. 그래서 깊은 우물이 얕은 우물보다 비교적 좋다 하겠다. 그리고 도시의 우물물은 오염이 많이 되어 있어 짠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찻물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시골의 우물물은 오염도가 낮고 수질이 좋아 마시기에 비교적 적합하다. 

 

수돗물은 인공 정화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찻물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소독약품의 냄새가 너무 짙거나 혹은 각 아파트나 집안의 물탱크의 오염의 정도가 심할 경우 차향을 제대로 낼 수 없을뿐더러 차탕(茶湯)이 혼탁해지기 쉽다. 이럴 경우는 찻물로 쓸 수 없으니 각자 개인이 각별히 수질의 상태를 살펴본 후 사용하여야겠다.

 

 

박영환 / 중국 사천대학 객좌교수. 불교저널

 

 

 

 

 

 

 

 

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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