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14. 12:21ㆍ美學 이야기
신라왕실의 주자(注子), 기마인물형토기 : 윤상덕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騎馬人物形土器)는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문화재입니다. 1924년 발굴될 때에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지금도 신라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관람객의 사랑을 받습니다. 주인과 하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각각 말을 탄 모습으로, 말 탄 사람의 의복과 각종 말갖춤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신라인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사진. 기마인물형토기 주인상
기마인물형토기 주인상, 신라 6세기초, 높이 26.8 cm, 국보 91호
어떻게 발굴했을까
이 기마인물형토기는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5월 30일이었습니다. 금령총은 6세기초,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쯤의 신라 무덤입니다. 금령총 주변에는 신라의 초대형 무덤이 모여 있습니다. 금령총의 북쪽에 약 15m 떨어져서 단일 무덤으로는 신라의 가장 큰 무덤인 봉황대가 있고, 서쪽에는 금관총, 서봉총, 남쪽에는 황남대총, 천마총이 있습니다. 금관이 최초로 발견된 금관총은 금령총과 불과 50여 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1920년 금관총에서 금관이 발견되었을 때 당시 언론은 ‘동양의 투탄카멘’이라고 특필하였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금관총은 집을 짓던 중에 발견되었기 때문에 무덤의 형태나 금관이 어떻게 출토되었는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일제의 고고학자는 조선총독부 총독을 설득해서 남아 있는 무덤 중에 봉분 일부가 훼손된 두 무덤을 발굴하게 됩니다. 이 무덤이 금령총과 식리총이었습니다. 결국 금관총에 이어 두 번째로 금관이 출토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금령총은 지하에 덧널[木槨]을 만들고, 그 위에 돌과 흙을 두껍게 덮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입니다. 덧널 안에는 시신을 안치한 널[木棺]을 머리를 동쪽에 오도록 넣고, 시신 동쪽에 부장품을 넣은 작은 상자를 매장하였습니다. 기마인물형토기는 부장품을 넣은 상자 속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무덤 주인은 어린 왕자?
묻힌 사람은 머리에 금관을 쓰고 금 귀걸이와 허리띠를 했으며 허리에는 칼을 찼습니다. 유물이 화려해서 신라 왕족의 무덤으로 여겨집니다. 가는고리 귀걸이와 칼을 찼으니 남자입니다. 특이한 점은 금령총의 허리띠 길이가 다른 것과 달리 무척 짧다는 것입니다. 금관도 다른 금관에 비해 작아서 무덤 주인은 어린아이였나 봅니다. 어쩌면 무덤 주인은 어려서 죽은 왕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만들었을까
기마인물형토기는 말을 탄 사람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숨은 기능이 있습니다. 말 등에는 깔때기처럼 생긴 구멍이 있어 액체를 넣고, 말 가슴에는 대롱이 있어 액체를 따를 수 있습니다. 말 내부는 비어 있어 240cc 정도를 담을 수 있습니다. 이 토기는 신라 왕실에서 술이나 물을 따르는 데 쓰던 주자(注子)였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이처럼 말을 이용한 독창적 디자인의 주자(注子)를 만들었는데, 왜 ‘말[馬]’을 디자인에 응용했을까요. 이는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 죽은 이를 하늘로 인도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옛 무덤에서는 말과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천마총의 천마도를 비롯하여, 말 모양의 신라 토우나 토용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토기와 함께 하인으로 여겨지는 또 하나의 기마인물형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손에 방울을 들었습니다. 앞장서서 하늘로 주인을 안내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발견 당시 하인상이 주인상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
기마인물형토기의 X선 사진입니다. 말 내부가 비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사진을 유심히 보면 이 토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먼저 몸통의 아래쪽, 다리가 붙은 부분을 보십시오. 다리를 붙일 때는 힘을 줘서 눌러야 합니다. 그러면 몸통이 비어있으므로 이 부분이 몸통 안쪽으로 약간 튀어나오는 것이 정상인데, X선 사진에는 튀어나온 부분이 없고 매끈합니다. 이것은 다리를 붙일 때 안쪽에 단단한 물건을 넣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아마 나무를 원통모양으로 적당히 깎아 안에 넣고 성형을 했나 봅니다. 그럼 이 나무는 어떻게 제거했을까요? 말 엉덩이 쪽을 보면 손가락으로 잡아서 오므린 것과 같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에 말 엉덩이 쪽으로 나무를 빼내고 엉덩이를 다시 봉합한 것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나
이제 마지막으로 세부 사진을 보면서 기마인물형토기로 무엇을 알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말 탄 사람입니다.
사진. 턱 밑에 수염처럼 보이는 것은 모자를 묶은 끈입니다. 콧대도 무척 높습니다.
턱 밑에 수염처럼 보이는 것은 모자를 묶은 끈입니다. 콧대도 무척 높습니다.
사진. 바지 모양은 갑옷과 비슷합니다.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칼일까요?
바지 모양은 갑옷과 비슷합니다. 옆에 붙어 있는 것은 칼일까요?
사진. 뒷모습도 보십시오. 윗도리는 무엇을 입었을까요?
뒷모습도 보십시오. 윗도리는 무엇을 입었을까요?
사진. 발걸이도 있습니다. 가죽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신발 끝은 버선코 같습니다.
발걸이도 있습니다. 가죽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신발 끝은 버선코 같습니다.
다음은 말과 말갖춤입니다.
사진. 뿔처럼 생긴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갈기를 묶어 올린 것입니다. 말방울도 보입니다.
뿔처럼 생긴 것이 있습니다. 사실은 갈기를 묶어 올린 것입니다. 말방울도 보입니다.
사진. 웃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입에 재갈을 물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입에 재갈을 물었습니다.
사진. 말안장은 앞판을 세모꼴로 장식했습니다. 띠고리도 보입니다.
말안장은 앞판을 세모꼴로 장식했습니다. 띠고리도 보입니다.
사진. 말띠드리개와 말다래도 있습니다. 천마도가 바로 이 말다래에 그린 것입니다.
말띠드리개와 말다래도 있습니다. 천마도가 바로 이 말다래에 그린 것입니다.
함께 출토된 하인상입니다.
사진. 함께 출토된 하인상입니다
함께 출토된 하인상입니다. 높이 23.4 cm, 국보 91호, 본관 9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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