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석춘칼럼]함병춘과 조국 근대화(조선일보:2013,11,18) /류석춘 연세대 교수·사회학

2019. 4. 22. 01:05잡주머니


미얀마 테러로 숨진 함병춘 先生… 한국 민주주의·자본주의 정신을 유교 전통에서 찾은 선각자
神에 대한 복종이 우선인 서양과 혈족을 우선하는 우리는 달라… 유난스러운 교육열도 설명 가능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1983년 10월 9일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는 끔찍한 만행이 벌어졌다. 서남아 6개국 공식 방문의 첫 번째 국가로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독립 영웅 아웅산의 이름을 딴 국립묘지에 예를 표하는 일정을 잡았다. 북한은 이 정보를 입수해 테러를 감행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이 사건으로 우리는 17명의 국가적 인재를 잃었다. 이 중에는 서석준 경제기획원 장관,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동휘 상공부 장관, 서상철 동력자원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익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 당대의 쟁쟁한 인재들이 포함되어 있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을 놓고 이제 와서 누가 더 아쉬운 죽음인가를 논하는 일은 정말이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한국의 경제 발전 그리고 근대화 과정을 연구하고 또 가르치는 입장에서 함병춘 선생의 죽음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은 없다. 왜냐하면 선생은 1970년 정부 일을 하기 전까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한국의 전통과 서구의 근대가 만나는 과정의 역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며 우리의 주의를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절대자가 없는 한국의 종교 그리고 문화적 배경에서 그러한 절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 개인의 자유와 평등 나아가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문제가 얼마나 어렵고 복합적인 과업인지를 선생은 어느 누구보다 일찍 깨쳤다. "인간의 제일차적 의무가 서양에 있어서는 신에 대한 복종과 충성인 것과는 달리 한민족에 있어서는 다른 인간들 즉 가까운 혈족, 친우, 혹은 동향인에 대한 정이었다"는 선생의 분석은 유대 기독교의 개인주의적 세계관과 유교의 인륜 중심 세계관의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 준다.

선생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근거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태복음 10:34-38)."

가족을 비롯한 자신의 주변인들에 대한 평안을 기도하는 한국의 구복(求福) 기독교인들에겐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긴장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긴장을 어떻게 해소하며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마침내 복지국가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는가? 절대 신이 없는 상황에서 나의 존재를 영원으로 이어줄 수 있는 방법은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내가 죽어서도 계속 개입되어 있으면 가능하다. 신의 구원 대신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 내가 남아 그들이 나의 존재와 의미를 재현해 준다면 나는 영원히 살 수 있다.

누가 이런 유교적인 영생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해 주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식이다. 자식이 나를 기억해 주고 재현해 주면 나는 죽지 않는다. 자손 혹은 역으로 조상은 나와 나의 미래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매개 수단이다. 마치 기독교인이 영원히 살기 위해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 노력하듯이 유교인은 자식을 키워 자신을 기억하고 재현하게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 영원히 살려고 한다.

유교 전통을 가진 사회가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을 함부로 대하랴마는 절대자 신을 가진 문화에서는 자식도 신 앞에서 상대화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절대자 즉 신이 없는 문화에서는 절대자의 자리를 자식이 차지한다. 그래서 유달리 자식 교육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은 이제 상식이 되었지만, 왜 유독 유교문화권에서 특별히 교육을 강조하였는가는 이러한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지향을 고려할 때만 이해가 가능하다.

선생은 1969년의 논문에서 "부(父)로서는 자(子)가 자기의 생리적인 일부분이라는 것보다도 사후의 위안과 씨족의 영속을 위해서도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었다"('한국의 문화전통과 법')고 이미 설파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의 정신을 유교적 배경에서 찾는 선생의 작업은 그래서 선구적이다. 마침 오는 22일 재직하였던 학교에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서거 30주년 추모 학술대회를 개최한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ㅡ 안보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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