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의 흐름과 변화 (명대의 서법)

2019. 11. 26. 00:56글씨쓰기



서체의 흐름과 변화 (명대의 서법)|서예통론

하전|조회 160|추천 0|2015.04.01. 20:18http://cafe.daum.net/bbhy0003/S1GN/27 

 

p239-246


명대의 서법 

명은 1368년에서 1644년에 이르는 276년간이다.

명대의 서법은 원의 서풍을 계승하여

복고를 쫓았으며

조맹부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제왕들이 서예를 애호하고

장려함으로써 서풍이 성해질 수 있었다.

명초의 서가로는 삼송이심(三宋二沈)’이라고

일컬어진 송극(宋克). 송수(宋璲). 송광(宋廣).

심도(沈度). 심찬(沈粲)이 있으며

대개 초서를 잘 썼다.

중엽이 지나면서 심주(沈周). 오관(吳寬).

이동양(李東陽) 등이 전대(前代)를 역추(力追)하였고,

또 축윤명(祝允明). 문징명(文徵明).

왕총(王寵)이 출현하여

자앙(子昻)으로부터 진당(晉唐)에 이르는 공부로

기격(氣格)이 높아졌다.

만명(晩明)에 가서는

사동(邪侗). 장서도(張瑞圖). 미만종(米萬鍾).

동기창(董其昌)의 명말사대가(明末四大家)

황도주(黃道周). 예원로(倪元璐). 부산(傅山).

왕탁(王鐸) 등이 저마다 일면목을 독창(獨創)하였다.

 

 

 

축윤명(祝允明, 1460-1526)

  자는 희철(希哲)이다.

오른손에 지지(枝指)가 있었던 이유로

()를 지지생(枝指生)

또는 지지산인(枝指山人)이라고도 하였고

지산(枝山)도 사용하였다.

장주인(長州人)으로

벼슬은 응천부통(應天府通)을 지냈다.

글씨는 장년(壯年)

종왕(鍾王)과 조맹부 등을 공부하여

만년에 풍골이 난만(爛漫)하고

천진종일(天眞縱逸)

서풍을 이루었다.

묵적으로 <출사표(出師表)>. <행서척독(行書尺牘)>.

<두보추흥팔도(杜甫秋興八道)>. <대자초서(大字草書)>

등이 있다.

 

종왕(鍾王) ; 종요와 왕희지

난만(爛漫) ; 산뜻하고 아름답다

천진종일(天眞縱逸) ; 꾸밈이 없고 자유자재하다 ?




참고도판

전적벽부(前赤壁賦)


초서칠언율시축(草書七言律詩軸)


출사표(出師表)


   

문징명(文徵明, 1470-1559)

  자는 징중(徵仲)이고 초명(初名)은 벽()이다.

장주(長洲) 사람인데 형산(衡山)에 살았으므로

형산거사(衡山居士)라 지호(自號)하였다.

시문과 서화를 다 잘 하였다.

54세에 벼슬에 올라

한림원대조(翰林院待詔)를 지내다가

2년 후 사관(辭官)하고 향리로 돌아와

서화에 몰두하여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

아들 문팽(文彭)은 글씨도 잘 쓰고

또한 전각의 개조(開祖)로서도 유명하다.

문징명은 오관(吳寬). 축윤명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뛰어난 천분(天分)을 발휘하였다.

묵적으로 <졸정원기(拙政園記)>.

<과정복어십절(過庭復語十節)>.

<도연명음주이십수(陶淵明飮酒二十首)>.

<망천도권발(輞川圖卷跋)>. <중수난정기(重修蘭亭記)>

등이 전한다. 문징명은 소해(小楷)와 행초에 뛰어났으며

왕희지의 전형(典型)을 추구하여 하였다.

 

개조(開祖) ; 처음으로 시작하여

그 일파(一派)의 원조(元祖)가 된 사람

전형(典型) ; 모범이 될 만한 본보기

조상이나 스승을 본받는 틀

 

 

참고도판

금강경책(金剛經冊)


적벽부(赤壁賦)




황정견서복파신사시권발



 

동기창(董其昌, 1555-1636)

  자는 현재(玄宰), 호는 사백(思白)이며 화정(華亭) 사람이다.

벼슬이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고,

졸하여 태자태부(太子太傅)를 증()하였다.

서화를 다 잘하였으며 명 말기에 가장 저명한 사람이다.

중미(衆美)를 두루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분방한 초서나 완미(婉美)한 행서,

그리고 주일수려(遒逸秀麗)한 해서의 성취는

서예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후세의 영향은 지대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묵적으로는 초서인 <행초시권자발(行草詩卷自跋)>

행서인 <장욱고시발(張旭古詩跋)>.

<항묵임묘지명(項墨林墓誌銘)>

그리고 해서인 주자통서(朱子通書)

<만세통천진첩발(萬歲通天進帖跋)>

소해(小楷) 등이 유명하다.

이 밖에도 <행초시권(行草詩卷)>.

<한예관전찬(漢倪寬傳贊)> 등이 있다.

 

 

 


참고도판

삼세고명권(三世誥命卷)


칠언시책(七言詩冊)

행초시권(行草詩卷)


장서도(張瑞圖). 황도주(黃道周).

예원로(倪元璐)

  명말에 와서 신의(新意)를 개창한 서가들이 출현하였다.

. . 예와 명말청초(明末淸初)

걸쳐 활약하였던

왕탁(王鐸)과 부산(傅山)이다.

이들의 글씨는 사정없이 써 내려간

소위 연면초(連綿草)’라는 것으로

혹는 나라가 쇠하면서 생긴

퇴폐취미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왕헌지. 장욱. 회소. 황산곡. 동기창

등에 이어지는 엄연한 맥이다.

특징은 전인의 것보다 한층 자간을 붙여 쓰고

행간을 띄어 행()의 곡직(曲直)을 불문하는

분방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대표이다.

 

 

 

장서도(張瑞圖, ?-1644)

  자는 장공(長公) 호는 이수(二水),

또는 과정산인(果亭山人)이며

복건진강(福建晉江)사람으로

벼슬이 건극전대학사(建極殿大學士)에 이르렀다.

묵적으로 <후적벽부(後赤壁賦)>. <이백시권(李白詩卷)>

등이 있는데 기고(奇古)하고 표일(飄逸)하며 긴장감이 있다.

 

 


참고도판

감요사작(感遼事作)


칠언절구사병(七言絶句四屛)



 

황도주(黃道周, 1583-1646)

  자가 유평(幼平)이고 호는 석재(石齋)

복건장포(福建漳浦) 사람이다.

벼슬이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고

충군애국(忠君愛國)했던 사람으로

청 순치(順治) 3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순국하였다.

()는 충렬(忠烈)이다.

시문(詩文)에 뛰어났고

글씨는 금예(今隸)와 초서를 잘 썼다.

해서는 종요와 왕희지를 법으로 하여

약간 납작하며 주고(遒古)한 서풍이다.

초서는 글자를 읽기도 어려울 정도로

운필하여 썼는데

황산곡의 <억구유시(憶舊遊詩)>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묵적으로

<용단문업(榕壇問業)>. <효경정본(孝經定本)>.

<시폭(詩幅)> 등이 있다.

 

금예(今隸) ; 당나라 때 쓰던 예서의 하나.

곧 팔분을 가리킴

주고(遒古) ; 굳세고 예스러움 ?

() ; 諡號; 제왕, 경상(卿相),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추증(追增)하는 칭호

 



참고도판

 오언시축(五言詩軸)


 

 

예원로(倪元璐, 1593-1644)

  자는 옥녀(玉汝), 호는 홍보(鴻寶)이며

상우(上虞)사람이다.

벼슬의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이르렀으며

청의 순치원년(順治元年)에 순국하였다.

절개와 정직으로

강권(强權)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는

황도주와 같이 충렬지사로 꼽히며 시()

문정(文正) 이다. 그의 초서는 아주 독특하다.

이지러지고 기운 듯 한 글씨를

신묘(神妙)하게 연관(連貫)시켰고 행간이 특히 넓다.

얼핏 못쓴 것 같이 보이지만

눈과 마음을 끄는 고담(古淡)한 아취(雅趣)가 서려있다.

묵적으로 제화시(題畵詩)

몇 개의 조폭(條幅)이 전한다.

 

연관(連貫) ; 연결되다

고담(古淡) ; 예스럽고 담백하다 ?

아취(雅趣) ; 우아하고 고상한 정취

제화시(題畵詩) ; 그림에 쓴 글씨

조폭(條幅) ; 세로로 된 글씨. 그림족자.

                    (가로로 된 것을 횡폭(橫幅),

                한 폭으로 된 것은 단조(單條),

                짝수로 세트를 이룬 것을 병조(屛條)라고 함

 

 


참고도판


 


왕탁(王鐸). 부산(傅山)

 왕탁과 부산도 명말청초에 걸출한 서가로 꼽힌다.

조금 선배인 장. . 예에 통하는 유풍(流風)으로서

역진고고(力進高古)하여 신의(新意)의 필치를 보였다.

 

역진고고(力進高古) ; 고상하고 예스러움으로 힘써 나아감 ?

 

 

 

왕탁(王鐸 1592-1652)

  자는 각사(覺斯), 호는 숭초(嵩樵)이며

하남 맹진(河南 孟津) 사람이다.

박학호고(博學好古)하였고 시문에도 뛰어났으며

벼슬은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이르렀다.

명이 멸망하자

청에 항복하여 이를 하나의 흠으로 여긴다.

글씨는 당송으로부터 위진,

그리고 전예의 법을 융합하여

탁월한 성취를 이룩하였다.

해서는 노공(魯公)의 필법에

(), ()을 더하여 중후한 서품을 이루었고

행초에는 미불의 면목도 보인다.

그 크고 작은 글씨의 어울림과

필세의 흐름은 유미환발(流媚渙發)하여

그 영향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시권(詩卷)>, <시폭(詩幅)> 등의 그 묵적이 많다.

 

 

박학호고(博學好古) ; 배운 것이 많고 학식이 넓으며

옛것을 좋아함 ?

유미환발(流媚渙發) ;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활기차다 ?

시권(詩卷) ; 시로만 쓴 두루마리?

시폭(詩幅) ; 시를 쓴 족자 ?

 


참고도판

거연. 만학도권발(巨然. 萬壑圖卷跋)


두보시권(杜甫詩卷)


임왕정균행서축(臨王庭筠行書軸)






부산(傅山. 1607-1684)

  자는 청죽(靑竹)이며 후에 청주(靑主)라 고쳤고,

호는 주의도인(朱衣道人)이다.

명이 망하자 망국의 슬픔을 시로 노래하였으며,

강희제(康熙帝)

박학굉사(博學宏詞)로 추천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글씨를 배우는 이들에게

차라리 졸()할지언정 교()하지 말고,

()할지언정 미()하지 말며, 지리(支離)할지언정

경활(輕滑)하지 말며, 솔직(率直)할지언정

잘 안배(按排)하려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의 해서는 종. 왕의 필의로 하여 고수(古秀)하다.

행초서는 일기상관(一氣相貫)하여 장로(藏露)

기묘하게 섞어서 표일(飄逸)과 온자(蘊藉)를 겸한

일격(一格)을 이루었다.

왕탁보다 더 고격(高格)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의 작품도 있는데 매우 기이하다.

묵적으로 <시폭(詩幅)>. <조폭(條幅)>이 많이 전한다.

 

 

지리(支離) ; 같은 상태가 너무 오래 계속 되어

                넌더리가 나고 따분함

경활(輕滑) ; 가볍고 미끄러움 ?

솔직(率直) ; 거짓으로 꾸미거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음

안배(按排) ; 일을 처리하다

고수(古秀) ; 예스럽고 빼어남 ?

일기상관(一氣相貫) ; 한 기운으로 서로 꿰고 있음 ?

장로(藏露) ; 장봉과 노봉

                    (붓을 사용함에 붓의 끝이 감추어지는 것과

                붓의 끝이 획의 밖으로 드러남) ?

표일(飄逸) ; 고상하고 격조 있다.

온자(蘊藉) ; 너그럽고 온화함 ?



참고도판

맹호연시(孟浩然詩)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인터넷 사전.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