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6. 01:28ㆍ글씨쓰기
p291-294 한글 글씨(한글서체의 변천 정음반포의 초기 글씨)서예통론
p291-294 한글 글씨 한글의 창제부터 궁체흘림에 이르는 그 발전 과정은 한자의 생성에서부터 초서가 발달한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비교해 보면 한글반포 당시의 글씨체는 한자의 전서에 해당하고, 사대부들의 필사본은 예서에서 해서로 정착되는 과도기의 글씨인 곡랑비(谷朗碑)나 찬보자비(爨寶字碑) 같은 글씨의 변모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궁체정자는 초당삼가의 해서의 정립과 같고 흘림은 행서의 발달과 같으며 진흘림은 초서와 통한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글씨를 좀 더 시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쉽게 쓰고자 하는데 뜻이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예술미가 더해지면서 더할 수 없는 미의 화신(化身)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한글글씨의 흐름은 정음 반포의 초기 글씨 형태와 중기의 혼서필사체의 형태, 그리고 후기의 궁체의 발달로 대별할 수 있다. 한글서체의 변천 정음반포의 초기글씨 훈민정음의 창제에서 보여주는 한글은 한문서예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 이유는 훈민정음이 “형상을 본떠서 한 것으로서 글자는 (고전(古篆))을 본받은 것이다. [象形而字倣古篆] ”라는 것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즉 한자의 전서는 한글의 자형이나 필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의미가 된다. 이 시기의 글씨꼴은 『훈민정음』에서 그 표준을 대할 수 있다. 필획이 모두 원필(圓筆)이며 가로획과 세로획이 수직과 수평이고 글씨의 모양에 따라 글자의 길이가 신축성이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훈민정음해례본』이나 『동국정운』이 있다. 다시 원필로 쓰였던 전서체의 형태에서 획의 굵기의 변화와 기필 수필에서 기울기가 생기고 방필의 형태를 띤 것으로 바뀌어 갔다. 이것은 전서에서 예서나 해서로 바뀌는 현상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월인석보』에서 나타나며 더욱 발전되어 필사본 육필인 『상원사중창권서문』에서 그 면모를 접할 수 있다. 혼서 필사본(混書 筆寫本) 조선의 중기에 들면서 조정의 대사는 아직도 한문이 통용되고 있었지만 일상에서는 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글이 실용의 글씨로 부각되어졌다. 이 당시의 육필은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사대부 간의 글씨는 국한문 혼용으로 한 이른바 “혼서체(混書體)”가 성행하였고 궁중에서는 한글의 편지들이 쓰여 졌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조선어필>이나 <인선왕후 편지글> 등이다. 이 당시의 글씨는 초기의 글씨에서 크게 변화되어 한자의 해서 필법으로 쓴 것이다. 따라서 가로획의 기울기가 생기고 현침의 현상이라든지 가로획의 마제잠두 또는 구(鉤)의 형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왕비들의 글씨형태는 차차 궁체의 선구가 되었다. 참고서적; <<서예통론>> 선주선저, 원광대학교출판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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