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일(8/18)

2013. 8. 20. 13:41경전 이야기

 

 

 

      




연중 제20주일(8/18)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 성령의 불이 타올라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알고 찬미할 수 있도록 청합시다. 또한 이 세상에 정의의 불이 타올라 온갖 불의와 잘못이 그 불에 타 없어지도록 기도합시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이 활활 타올라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말씀의 초대
    남부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게 멸망하기 전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밝히신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에 이끌려 예언자를 박해하고, 임금은 그들의 모략에 빠진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기 동족들에게 예수님을 향하여 달릴 길을 끝까지 달려가자고 권고한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죄인들의 적대 행위를 견디시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신 분이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화는 인간적인 욕심에 얽매인 적절한 타협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된 정의의 실현을 위하여 불의한 타협의 끈을 태우고자 하신다(복음).
    제1독서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예레 15,10).>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38,4-6.8-10 그 무렵 대신들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예레미야는 마땅히 사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자는 이 백성의 안녕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치드키야 임금은 “자, 그의 목숨이 그대들의 손에 달려 있소. 이 임금은 그대들의 말에 어찌할 수가 없구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경비대 울안에 있는 말키야 왕자의 저수 동굴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밧줄로 묶어 저수 동굴에 내려보냈는데, 그곳에는 물은 없고 진흙만 있어서 그는 진흙 속에 빠졌다. 에벳 멜렉은 왕궁에서 나와 임금에게 가서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저 사람들이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한 일은 모두 악한 짓입니다. 그들이 그를 저수 동굴에 던져 넣었으니, 그는 거기에서 굶어 죽을 것입니다. 이제 도성에는 더 이상 빵이 없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 멜렉에게 명령하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른 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죽기 전에 그를 저수 동굴에서 꺼내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1-4 형제 여러분,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우리를 구름처럼 에워싸고 있으니,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상이 주는 거짓 평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참평화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풀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평화는 ‘불’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불’은 『성경』에서 심판을 뜻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불이 훨훨 타오르기를 바라시는 것은 세상 안에 있는 온갖 죄악을 태우고자 하시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의 경우에는 불이 성령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루카 3,16; 사도 2,3.19 참조). 결국 세상에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의 온갖 불의와 부패를 없애 버리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평화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세례란 옛 삶이 죽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란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구원을 가리킵니다. 곧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 사업이 이 세상에 참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평화는 분열을 통하여 옵니다. 인간은 본디 혈연과 학연, 지연 등 수많은 관계의 사슬에 얽매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관계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마치 태아가 탯줄 없이는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시겠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관계 가운데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질서가 잡혀야 인간 본연의 평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에 익숙하면 익숙한 만큼 그리스도의 참평화를 얻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되새기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평화를 누리려면 무엇을 결단해야 하겠는지 묵상해 봅시다.
 
-출처 매일 미사-
♬ 작은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