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8/25)

2013. 8. 26. 05:52경전 이야기

 

 

 

      


연중 제21주일(8/25)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1주일입니다. 하루가 낮과 밤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에는 낮처럼 빛이 날 때가 있는가 하면, 밤처럼 어둠의 시기를 겪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어둠의 시기에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는 인내입니다. 구원의 잔치에 나아가는 길에는 이처럼 기쁜 순간도 있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8월의 마지막 주일 미사를 봉헌하며 온갖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사고 청합시다.
    말씀의 초대
    유배지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곧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다른 나라에 흩어진 동포들까지도 모아들이신다는 것이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시련을 어떠한 자세로 이겨 내야 하는지 권고한다. 곧 시련을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위하여 내린 훈육으로 여기고 인내하며 바른길을 달려가야 한다. 그러할 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아무리 주님과 함께하였다고 자부하여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태도를 버리고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데려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6,18-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나는 그들 가운데에 표징을 세우고, 그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타르시스와 풋, 활 잘 쏘는 루드, 투발과 야완 등 뭇 민족들에게 보내고,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먼 섬들에 보내리니, 그들은 민족들에게 나의 영광을 알리리라.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깨끗한 그릇에 제물을 담아 주님의 집으로 가져오듯이, 그들도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주님에게 올리는 제물로, 말과 수레와 마차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러면 나는 그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삼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5-7.11-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22-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한번은 동창 신부가 그의 부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 하였는데, 그분은 공직자로서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비근한 예로, 추석 같은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이 과일 등의 선물을 보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곧바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 누구에게서도 단돈 만 원 한 장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가 아들 신부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원칙 하나가 있단다. 사람이 살다 보면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단다.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선택하기 싫은 것, 바로 그것을 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거야.” 덜 원하는 것, 덜 편한 것, 덜 쉬운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복음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를 보여 줍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좁은 문은 들어가기가 불편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오그려야 합니다. 그 반면, 넓은 문은 대접받는 사람들을 위한 문입니다. 그래서 그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편하고 쾌적합니다. 이 두 개의 문 가운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좁은 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올리도록 합시다.
 
-출처 매일 미사-
♬ 좁은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