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전설

2013. 8. 26. 06:50산 이야기

 

 

 

      

 

    설악산(雪嶽山)은 설산(雪山), 설봉산(雪峰山), 설화산(雪華山)이라고도 불렸으며, 금강산을 서리뫼(霜嶽)라고 불렀듯, 설악산을 설뫼(雪嶽)라고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외설악 쪽만을 설악이라 했고, 내설악 쪽은 따로 한계산(寒溪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에서는 설악을 영산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으니, 신라 때부터 설악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설악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눈이 일찍 오고 오래도록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가위부터 쌓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비로소 녹는 까닭에 이렇게 이름지었다.”
--- 「동국여지승람」

 

둘째,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의 색깔이 눈같이 하얗기 때문에 설악이라고 이름하였다.
---「증보문헌비고」

 

셋째,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의 우리 고어가 변해서 설악이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고어로 신성, 숭고, 고결, 생명을 뜻하는 ‘설악’의 ‘설(雪)’은 신성함을 의미하는 음역이니 곧 생명의 발상지로 숭상했다는 뜻도 있으며, 옛날부터 내려온 숭산(嵩山)사상의 연유이다.

글 - 박그림(설악녹색연합 회장)

 

 

    고려말 강원도 안염사(安廉使, 도지사)로 있던 안축(安軸)이 영랑호에 와서 설악산을 바라보며 이곳 경관을 읊은 시 중에 “모운반권산여화(暮雲半捲山如畵)”란 귀절이 있는데, 이는 “저문날 구름이 반쯤 걷히니 산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구나”라는 뜻이다.

 

   산을 평하는 글에 “金剛秀而不雄 智異雄而不秀 雪嶽秀而雄”이라는 문구가 있다. 금강산은 수려하기는 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기는 하나 수려하지 못한데 비해 설악산은 수려한데다가 웅장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설악산은 삼국사기에는 ‘雪嶽’, ‘雪華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인제군지에는 ‘寒溪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문헌비고에는 ‘극히 높고 험한 산으로 중추에 눈이 내리면 그 다음해 여름에 가서야 눈이 녹으므로 설악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했고, 여류시인 금원여사(錦園女使)가 쓴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에  ‘설악산 돌은 눈과 같이 희므로 설악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했는가 하면,  노산 이은상 선생은 설악산은 본래 ‘살뫼’였는데 한자로 쓰다보니 ‘설악’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살뫼’의 ‘살’은 ‘설’의 음역으로 신성 숭고 청결(神聖 崇高 淸潔)이라고 풀이했다.

글 - 향토사학가 박익훈 선생의 「낙수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