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5. 00:09ㆍ우리 역사 바로알기
중국 고전에서 ‘옥’의 의미
옥기는 장신구와 제사용의 도구로서 고대 중국문명 기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홍산문화의 대형제단, 여
신묘와 적석총의 결합과 옥장의 예 등은 예제가 5000년 전의 요하지역에서 이미 비교적 완비된 체제로 형성하
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문해자>에서 말하길 “옥은 돌 중에서도 아름다운 것(石之美者)”을 가리킨다고 하였지만, 갈고 닦지 않으면
옥이라 할 수 없다. [시경]<학명鶴鳴>에 이르기를 “타산지석他山之石 가이공옥可以攻玉”이라고 하였다. 돌을
소인에 비유하고 옥을 군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옥은 군자에 비유되곤 하였다. 예로부터 옥을 완성하는 과정(切磋琢磨)을 인간의 성장과정에 비유하였
고, 그 완성된 옥을 군자의 다섯가지 덕목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옥은 신분과 지위의 상징
그리고 옥은 장식으로서의 예술적 가치 이외에 신분과 지위의 상징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의가 있을 뿐만 아
니라 그것을 매장함으로써 영생永生을 기원하는 종교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옥을 갖게 됨으로써 영생불멸永
生不滅한다는 생각과 당시 고대사회의 어떤 신분상의 등급과 권력에 대한 관념이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이것
이 바로 예의 원형이다.
옥은 예禮의 원형
이렇게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비실용적인 옥기를 부장품으로 하였을 뿐, 토기와 석기 등 생산활동과 다양한 관
계를 가지는 기물은 거의 부장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홍산문화의 주인공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낼 때, 정신이 물질보다 중요하다는 관념을 매우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왕국유王國有는
‘예는 두 개의 옥으로 신을 나타낸 기물’ 이라 해석하여, 옥과 예가 특수한 관계에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옥만
을 수장한 것은 옥기가 최초의 예기였음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옥만이 예기가 된다’ 고 하는 바로 그
것이 예의 본래 뜻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직 옥만이 신과 교통할 수 있다는 홍산문화의 주인공들의 사상적 관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관념은 홍산문화의 옥기 제작 공예에서도 매우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특히 공자는 ‘군자는 옥으로 덕을 견준다(以玉比德)’(예기) 고 강조했다. 이렇게 공자는 재질과 광택, 구조, 소
리 등 옥의 자연적인 특성을 인간의 도덕적 가치에 부여하였다.
옥이 온유한 것은 인仁과 같고, 치밀한 것은 지知와 같고, 곧아서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은 의義이며,
정연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예禮를 닮았다. 소리가 청아하고 여운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악樂이고, 옥
의 티와 좋은 마음을 감출 수 없으니 충忠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군자는 온유하고 마치 옥과 같이
생겼으니 그래서 군자가 귀한 것이다.([예기]<聘義>)
<예기禮記>는 “자고로 군자는 반드시 패옥을 찬다” 고 기록했다. 선사인들은 하늘 운행의 궤적에 있는 태양을
관찰하고 둥근 옥벽玉璧을 만들었다. 이것으로 하늘과 태양을 숭배했다. 또한 땅을 사각형으로 생각하고 옥종
玉琮(사각형 형태의 옥)을 만들어 땅에 제사를 지냈다. 중요한 것은 석기와 토기 같은 것들은 생활용품들이지
만 옥기는 관념 형태의 창작물이었다는 점이다.
동물 옥 장식
선사인들은 생명은 하늘이 부여하는 것이며, 신령한 동물과 산수, 토지 등은 서로 영물처럼 치환된다고 보았
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제기에 신비로운 문양과 부호, 상형문자 등을 깎아 넣은 것이다. 씨족부락은 각종 동
물 옥 장식으로 제사에 쓰이는 신기神器와 그들이 숭배하는 토템을 만들었고, 씨족사회의 번성과 풍성한 수
확을 바랐다. 홍산인들은 정신문화 범주에 속하는 옥을 무덤에 도배하는 장례 풍속으로 물질문화를 배척하고,
정신문화를 중시하는 사유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올빼미, 새, 녹송석으로 만든 올빼미...>
<올빼미, 거북이, 봉황...>
홍산문화의 특징은 옥기
홍산문화가 주목을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러한 옥기를 부장한 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대만 국립고
궁박물관에 전시됨) 옥기는 홍산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주요한 내용 중 하나인 것이다. 홍산문화의 옥기는 발
달한 사해 - 흥륭와 문화 옥기의 기초 위에서 새로운 비약적 발전을 맞이하였다. 옥기는 장신구와 제사용의
도구로서 중국 전통적인 정신세계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설문해자>는 ‘옥玉 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영靈 자는 밑의 무巫가 옥으로(가운데 입 口자 3개) 신과 소통한다(以玉通神)는 뜻이다.
여기서 옥은 무인巫人이 신에게 헌납하는 예물이다.
출토된 홍산문화 옥기
홍산문화 옥기를 대표하는 것은 동물형 옥기, 고형기, 구운형기, 옥벽이다. 동물형 옥은 웅룡, 저룡, 호랑이, 봉
황, 부엉이, 물고기, 거북이, 벌레 등이 포함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용 모양 옥이다. 고형기는 마제형옥
고라고도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타원형의 통형이다. 홍산문화의 옥벽은 방원형 모양이다. 위쪽 가장자리에는
구멍이 1~3개가 있다.
<옥웅룡, 옥조룡, 옥룡...>
<옥고와 옥벽...>
<구름형 옥제품...>
과학적인 발굴을 거쳐 출토된 유물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상당히 다채로운 옥기들은 이미 널리 알려
져 있다. 그 중에서도 재료의 크기, 재질의 성분, 세공술의 수준 등에서 볼 때, 최고로 중시되는 유물중에 ‘구운
형句雲形’(갈고리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의 구름을 본뜬 형상) 기물로 칭해지는 양식들이 있다.
구운형 기물은 상부에 작은 구멍이 두 개씩 나 있고, 그 안쪽으로는 출구가 양 옆으로 두 군데 있는 지하도를 연
상시키는 기다란 구멍이 있다. 주로 화려한 옥제품들이 부장된 묘에서 출토되고 있다. 우하량 유적지에서는 이
렇게 화려한 물품들이 부장된 묘가 몇 군데 발견되고 있다.
대묘의 주인공
옥기는 묘장墓葬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적석총 석관에서는 수준이 뛰어난 세계 최고最古의 옥 제품들과 채색
토기가 발굴되었다. 상등 규격의 옥기는 대형 적석총 중심대묘 가운데에서 많이 보인다. 이들 옥기를 출토한
대묘大墓는 기세가 웅위하다. 같이 매장된 옥기의 수량이 많고 정미한 재료를 사용해 묘 주인이 당시 사회의
귀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산 정상에서 발견된 중앙 대형묘의 주인은 손에 옥 거북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신과 소통할 권리를 독점한 무인巫人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인간의 대표이면서 신의 의지를 체
현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무인巫人인 것이다.
<제5지점의 중심대묘에서
는 노년 남성 1구의 인골
과 7점의 옥기가 출토됐다.
양 귀에 옥벽(玉璧), 즉 둥
근 옥이 양 귀 밑에 가지런
히 놓여 있고, 가슴팍엔 구
름형 옥장식이 놓여 있다.
또한 그 아래 말발굽형 옥
기가 있으며, 오른팔엔 옥
팔찌가 놓여 있다. 무엇보
다 양손에 옥거북이가 쥐
어져 있다는 게 재미 있다.
조사단은 이 무덤의 주인
공을 ‘무인(巫人·요즘의 무
당과는 다른 차원이다)’이
라고 추정했다...>
중국 고대 예제禮制의 기원은 신과 통하는 무술巫術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무인은 옥을 제작하
는 기술을 독점함으로써 천지신에게 제사 지내는 특권을 농단하고 천지를 관통하는 능력을 보였으며, 하늘과
땅의 경지를 아는 지자智者로 우뚝 섰다. ‘옥으로 신에게 보인다(以玉示神)’는 옛말이 바로 그것이며, 그 주인
공은 바로 무인이라는 말이다.
즉 중앙 대형묘의 주인공은 신과 통하는 독점자로서 교주이면서, 통치자이다. 이것은 제정일치 시대의 단적인
모습이다. 이는 당시의 씨족 구성원들의 신분 분화가 이미 명확했으며, 집단의 수령이 이미 출현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옥기를 독점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신분계급이 생기고, 전문화, 분업화가 이뤄지고, 하늘과
소통하는 독점자가 고국古國을 통치하는 이른바 제정일치 사회의 개막을 뜻한다.
홍산문화의 옥기 무덤 통계
이 외에, 중형 묘지들도 항상 옥기를 매장하여, 옥기가 홍산문화에서 중요한 부장품이 되었다. 이같이 옥을 매
장하는 현상은 홍산문화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선사시대의 무덤은 대대 토기를 주요한 부장품으로 하는 매장
습속을 가지는데, 홍산문화 만은 예외이다. 홍산문화의 무덤에서는 토기와 석기를 수장한 경우가 매우 적으며,
대부분 옥기만을 수장하였다.
통계에 따르면, 우하량에서 발견된 홍산문화의 무덤 61기 가운데 부장품이 있는 무덤은 31기이며, 그 가운데
옥기를 수장한 것이 26기이다. 이 수치는 전체 부장품 무덤의 80%를 상회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심 대묘 및
기타 비교적 큰 무덤 모두는 옥기만을 수장하였고, 토기와 석기를 수장한 무덤도 간혹 있지만, 그들은 모두 소
형 무덤이다. 이 사실은 옥기만을 수장하는 것(唯玉爲葬)이 우하량 적석총의 특별한 제도였음을 알려주고 있
다.
그러나 홍산문화 무덤에 수장된 부장품은 옥기를 위주로 하지만, 부장된 옥기의 개체수는 매우 적다. 우하량
적석군총에서 발견된 근 100기의 무덤을 통계하여 보면, 대묘는 보통 10점을 넘지 않고 보통 무덤의 경우에는
3~5점 정도이다. 이와 같은 옥기 수장에 보이는 ‘적으나 정밀한’ 현상은 홍산문화에서 옥기가 가진 비중이 얼
마나 무겁고 그 함의가 깊은 지를 알려 준다.
옥기 시대
보통 중국상고사를 석기 -청동기 - 철기 등 3단계로 구분한다. 그런데 홍산문화에서 보듯이 석기와 청동기 사
이에 옥기 시대도 중요한 시대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구분의 필요성을 파악해서일까? 여기
에서 옥玉의 시대를 넣어 석기 - 옥기 - 청동기 - 철기 등 4단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2,000년 전부터
나왔다. 후한 때 원강袁康이 지었다는 <월절서越絶書>에 다르면 풍호자風胡子라는 사람이 초나라 왕에게 치국
의 도를 이야기하면서 옥기시대를 언급했다.
헌원, 신농, 혁서의 시대에는 돌을 병기로 삼았고(석기), 황제의 시대에는 옥玉으로 병기와 신주神主
를 삼았다. 우임금 때는 청동기를, 그 이후엔 철기를 썼다.
그는 중국의 고사를 석기 - 옥기 - 청동기 - 철기의 네 단계로 나누고 있다.
이렇게 석기시대와 청동시대 사이에 고도로 발달한 옥문화를 표지로 하는 시대에 대해 학자들은 옥기시대라
고 지칭하기도 한다. 옥기시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이 문제를 토론하였다. 장광직, 손수도 등은
중국 동부 연해지구 월아형月牙形 지대에 옥기를 주요 특징으로 하는 초기 국가가 존재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중국 고대사에 옥기시대가 있었고, 옥기시대는 중국 문명 기원의 시대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홍산 옥기문화와 한반도의 연관성
옥기문화는 북방계통 세석기 문화의 후속문화이다. 중국의 곽대순은 발달된 옥기문화가 서요하 유역에서 기
원한 것은 이 지역의 세석기 문화 전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세석기 문화는
시베리아 남부 → 만주 → 한반도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이는 세석기 문화 주
도세력이 옥기문화의 주도세력이고, 이들의 주맥은 한반도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
석기 문화는 산동지역으로 남하하여 양저문화, 용산문화, 대문구문화 지역에서 많은 옥기를 남기게 된다.
홍산문화와 관련하여 지적될 수 있는 한반도와 세계 최초의 문명이 형성된 요하지역과의 연계성은 이것 외에
또 있다. 요하지역의 초고 문명이 흥륭와 문화에서 세계 최초의 옥 귀걸이가 발굴되었는데 이 옥 귀걸이에 사
용된 옥은 요령성 수암에서 나온 수암옥이다. 이 옥 귀걸이는 영생불멸을 상징하는 옥결玉玦(패옥, 한쪽이 트
인 옥 귀걸이)로, 홍산문화에서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이는 만주지역의 동쪽과 서쪽이 교류하고 있음을 입증
하는 중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옥귀걸이가 그것도 흥륭와 문화와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
동해안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선사유적지에서 발견된 것이 그것인데, 외양이 흥륭와
문화의 옥 귀걸이와 비슷하다.
<"홍산문화", 김선주 지음, 상생출판, 60~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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