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설악산 적벽 들꽃다회 - 다섯

2013. 11. 12. 16:42들꽃다회

 

 

 

       설악산 비선대 앞 적벽에서 들꽃다회 - 다섯 (끝) / 20131108 작성

 

 

 

 

                    차(茶)에 대하여

 

                                          茶     宗

 

 

 

씀바귀라는 글자에서 한획을 빼어서 만들어진 차(茶)

 

원래부터 그 맛은 씀바귀를 닮아서 쓰다.

 

안록산의 난을 피하여 사천 땅으로 피난한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는

 

임진란 때 도루묵을 은어라고 했다가 도로 묵이라고 하였던 선조와는 달리

 

장안으로 되돌아가서도 서촉 땅에서 맛본 몽정차(蒙頂茶)를 잊지 못했다.

 

 

 

황실의 차마시기는 곧 관리들과 상인들에게 퍼져 나아갔고,

 

그 수요에 맞추려고 차는 사천을 벗어나 양자강을 따라 점점 하류로 펴저 나갔다.

 

처음엔 황실에 바치는 공물이던 것이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전매제도로 활용된다.

 

교연(皎然)과 육우(陸羽)는 이러한 풍조에 힘입어 다법(茶法)과 다서(茶書)를 지었고,

 

차마시기는 중원 땅을 오가던 유목민 대상들에 의해 새외(塞外)로 번져갔다.

 

 

 

찻그릇은 도자기를 잘 빗게 하였고, 마른 차의 그 가벼움으로 인하여 무역품이 되어 갔다.

 

차를 달이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려고 시를 짓거나 글씨를 쓰고 골동품을 완상하기도 한다.

 

솔파람이나 댓파람 소리에 싫증을 느낄 즈음이면 비파를 뜯거나 거문고를 타기도 한다.

 

달은 밝아도 글을 읽기에는 어두워 유등에 불밝힐 때면  향료를 조금 섞어 정신을 맑게 한다.

 

종이에 찻물을 스며들게 하거나 가루차에 뜬 거품을 보고 서로 즐기기도 한다

 

 

 

고구려의 무용총에는 주인인 듯한 사람이 서역에서 온 비구들에게 차 대접을 하는 그림이 있고,

 

신라의 경주에는 차를 달이는 자루솥(樵頭)을 들고 차공양하는 왕손(王孫)이 돋을 새김으로 남아 있다.

 

백제에는 은탁금잔이나 동탁은잔들이 더러 출토되어 그 당시의 찻생활을 짐작케 한다.

 

차맷돌(茶磨)이나 차연(茶硏)에서 나르는 옥색 구름에도 찻주발에 피어나는 포영(泡影)에도

 

나는 없어지고 오로지 차만이 남아 있곤 하는 고려인들의 차정신이 오늘에도 이어진다.

 

 

 

열도부여에 이어진 부여의 다법(茶法)들은 바다가 깡통 역활을 하여 오롯이 남아 있다.

 

센리큐(天利休)는 그 성(姓)이 천황과 같다고 하여 조상 때에 천(千)으로 성을 바꾸고 나서도

 

그 뿌리를 잊지 못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정벌을 반대하다가 할복할 칼을 하사받는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은 아직도 바다 건너에서 온 파란눈들도 가르치며 부여차의 맥을 잇고 있다.

 

이제 나와 남을 나누는 일이랑은 접어두어도 좋을 만큼 전자의 빠름으로 지혜와 지식들은 전달된다.

 

 

 

식민지에서 거두어 들이는 은화를 차값에 탕진하던  신사의 나라는 마약을 팔아 은괴를 회수한다.

 

아편을 불태우던 청나라 관리들은 증기선을 앞세운 함대에게 굴복하여 종이호랑이가 되었다.

 

만주로 쫓겨간 청의 황실은 일본의 괴뢰국이라는 오명을 남긴 채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신생 식민지에 차를 팔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인디언을 가장한 식민지 사람들에게 차를 싣은 배를 빼앗긴다.

 

차로 인하여 독립한 아메리카합중국은 차 대신 커피를 팔아 줄 것을 유대 상인들에게 부탁한다.

 

 

 

이젠 차나 커피나 매 한가지이지만 그래도 육식을 적게하는 동양인들에게는 차가 더 어울린다.

 

그래도 궂은 날이나 정신이 몽롱한 날이면 잘 볶은 커피향이 그리 싫지 않아지기도 한다.

 

동방박사의 선물인 유향(儒香)과 몰약(沒藥)을 항생제와 마취제로 대체한 지금에도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한 자루의 촛불을 밝히우고 가루향을 다져 넣고 향 피우며

 

한잔의 진한 차가 당기는 날이면 날려 쓴  한시첩(漢詩帖)을 슬그머니 펼쳐본다. 

 

 

 

 

 

 

차달이기

 

                     설악동 노루목 설악관광호텔 주차장에서 동계용 해먹인 환단소(桓檀巢)에 누워...........

 

 

 

 

 

 

 

 

 

 

 

 

 

 

 

 

 

 

 

 

 

 

 

 

 

 

 

 

 

 

 

설악동 노루목 산악인의 불꽃탑

 

 

 

 

 

 

 

 

 

 

 

 

 

 

 

 

 

 

 

 

여기에 이름이 새겨지신 분들 중 7분들은 산행시 모시고 다녔고,

4분은 선후배님들의 부형들이시라,

 

오대산 선재길로 출발하는 버스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는

빈 다관으로 나마 헌다례 흉내를 내었으니.........

 

다음에 들릴 때에는 시간을 여유있게 가지고 찾아 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