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연인으로 묘사한 구약 성경이다.
여인은 연인이 다가오는 소리에 설레며,
지난날 자신에게 와서 사랑을 고백했던 순간을 떠올린다(제1독서).
마리아는 아기를 잉태하자 기쁨에 넘쳐 친척 엘리사벳을 서둘러 찾아간다.
성령으로 가득 찬 두 여인은 서로 축복하며 주님을 찬미한다(복음).
<보셔요, 내 연인이 산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 아가의 말씀입니다. 2,8-14<또는 스바 3,14-18ㄱ>
내 연인의 소리! 보셔요, 그이가 오잖아요.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나의 연인은 노루나 젊은 사슴 같답니다.
보셔요, 그이가 우리 집 담장 앞에 서서,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본답니다.
내 연인은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지요.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자, 이제 겨울은 지나고 장마는 걷혔다오.
땅에는 꽃이 모습을 드러내고, 노래의 계절이 다가왔다오.
우리 땅에서는 멧비둘기 소리가 들려온다오.
무화과나무는 이른 열매를 맺어 가고,
포도나무 꽃송이들은 향기를 내뿜는다오.
나의 애인이여, 일어나오. 나의 아름다운 여인이여, 이리 와 주오.
바위틈에 있는 나의 비둘기, 벼랑 속에 있는 나의 비둘기여!
그대의 모습을 보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를 듣게 해 주오.
그대의 목소리는 달콤하고, 그대의 모습은 어여쁘다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9-45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느 수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수녀님의 가정은 오래된 천주교 집안이었는데, 아침이면 언제나
어머니가 그녀 방에 들어와서 깨우며 이렇게 인사하였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체칠리아와 함께!” 그러면 그녀는
“주님께서 엄마와 함께!” 하고 대답하며 일어났답니다.
수녀님은 그 경험을 떠올리면서, 이 인사말이 수도 생활을 하는 데에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인사말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사벳이 이렇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우리 삶에는 같은 인사말이라도 겉치레처럼 느껴지는 말이 있고,
체칠리아 수녀님의 체험처럼 기쁨과 힘을 주는 인사말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성모님의 인사말을 듣고
온몸으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성모님의 인사말에 주님의 현존이 강하게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가운데 아기 예수님을 모시게 되었기에 거기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기쁨을 자신의 인사말에 담을 수 있었고,
그것이 엘리사벳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인사말에는 처녀가 아기를 가진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요셉에게서 쫓겨날 것이라는 걱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사말은 환희의 외침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인사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사말에다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담으면 상대편에게
더욱 큰 기쁨이 전달될 것입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미사를 통하여
우리 몸에 모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기뻐하라 내 영혼아
| | | | | | | | | | |
| |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