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2 초르아 출신으로 단 씨족에 속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마노아였다.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그 여자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4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 6 그러자 그 여자가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 모습이 하느님 천사의 모습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묻지도 못하였고, 그분도 당신 이름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나에게, ‘보라, 너는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그 여자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삼손이라 하였다. 아이는 자라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25 그가 초르아와 에스타올 사이에 자리 잡은 ‘단의 진영’에 있을 때, 주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복음 루카 1,5-25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작년인 2012년 11월과 12월에는 정말로 추웠었지요. 그래서 32년 만에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라고 매스컴에서는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왔던 작년 11월과 12월에 스키복과 수영복 중에서 어떤 품목이 백화점에서 더 많이 판매 되었을까요? 당연히 눈이 많이 왔고 추웠으니 스키복이 더 많이 판매되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영복이 더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수영복 매출이 스키복에 비해서 자그마치 3%나 많았다고 하더군요. 이 기간 수영복이 20억 원 어치나 판매 되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판매율이 37.7% 증가로 13.8% 증가한 스키복을 크게 앞지르는 수치였습니다.
뜻밖의 결과이지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뜻밖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무조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부정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이것 역시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나약하고 부족하기만 한 인간이 어떻게 모두 알 수가 있겠습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뜻밖의 일들이 다가오면 당황해 합니다. 특히 이 뜻밖의 일이 좋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면 부정을 하려하고, 원망의 생각과 말로써 그 일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자신의 뜻만 내세우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 소식을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말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는 나이가 많았으나 아직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에 대해 평생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응답을 받게 되었고, 그것도 주님 앞에서 큰 일물이 될 것이라 하지요.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이니 얼마나 크게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까? 하지만 즈카르야는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의심을 품습니다. 뜻밖의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에 천사는 곧바로 입을 다물게 합니다.
우리 역시 뜻밖의 일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님께 말하려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 대한 의심을 벗어버리고, 대신 주님의 큰 사랑으로 인한 그 모든 것을 기쁘게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뜻밖의 일들. 이 뜻밖의 일들이 뜻밖의 감사와 기쁨의 일도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간과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 낼 수 있다. 그것이 밧줄의 아름다움이다(김훈).
인천 중3동성당의 야외 구유.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하십니까?
광고의 힘
초등학교 시험 문제입니다.
“이것은 중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 순례자나 여행자가 쉬어가던 휴식처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장소를 제공하고 필요한 간호를 베풀어 준 것이 그 효시가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불치질환의 말기 환자 및 가족에게 가능한 한 편안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총체적인 돌봄(care)의 개념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즉,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의술(延命醫術)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활동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정답이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호스피스’입니다. 그런데 한 초등학생이 이 문제를 보자마자 “아~~”하면서 자신 있게 답을 이렇게 적었답니다.
“보람상조”
광고의 힘입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서 자주 접했기 때문에, ‘보람상조’가 호스피스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광고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이를 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세상에 알리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어제 동창신부의 부탁으로 성탄 판공을 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신자 수가 6,000명 이상 되는 큰 성당인데도 오랫동안 성사를 줄 필요가 없더군요. 조금 성사를 주다보면, 봉사자가 들어와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끝났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점점 소홀히 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소홀함이 주님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사랑을 가져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