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30. 20:18ㆍ경전 이야기
기독교의 한 종파를 형성한 네스토리우스는 안디옥 근처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428년 동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 감독에 임명됐으나 교리논쟁에 휩싸였다.네스토리우스파는 교리논쟁에서 알렉산드리아학파에 패배해 451년 칼케돈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렸다.
네스토리우스파가 서방교회와 단절되는 순간이었다.네스토리우스파는 몸을 추스르고 독자적인 교회 전통을 수립해 나갔다.페르시아를 기반으로 7세기 초부터 인도와 아라비아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했고 이 물결은 비단길을 따라 중국까지 이르렀다.
알로펜을 중심으로 한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단이 중국에 도착한 것은 635년 당 태종 때였다.이때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다.당 태종은 재상 방현령을 통해 네스토리우스파의 선교단을 맞이했고 장안(長安)에 머물면서 경전을 번역하도록 했다.네스토리우스파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경교로 널리 알려졌다.그리고 3년 뒤 경교는 조정의 인정을 받아 포교활동을 허락받았다.
경교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1세기 이상 융성하다 당 말기에 이르러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특히 경교는 845년 무종에 의해 탄압받고 875년 황소의 난으로 신도들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등 핍박을 받아 지하로 숨어들었으며 원대에 다시 일어났다.
일부 종교 역사학자들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와 몽고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던 고려시대에 경교가 우리나라에 어떤 경로로든 전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한국기독교사연구회가 1989년 펴낸 `한국기독교의 역사Ⅰ'에 의하면 영국의 여성 고고학자 고든이 이같은 가능성을 제일 먼저 제시했다.
고든은 한일합방 무렵 한국에 4년간 머물면서 불교사찰을 관찰한 뒤 경교가 한국 불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즉 그는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의 신장과 관음상 나한상 제석천상 등에서 페르시아의 경교적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래된 시기는 1832년으로 봐야 할 것 같다.이때 로드 암허스트호의 선의(船醫)이며 통역관인 칼 귀츨라프가 지금의 충남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 2리 고대도에 와서 성서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 문화유적을 발굴하고 있는 교회사가 전택부장로가 귀츨라프의 항해기를 입수해 공개한 적이 있다.이 자료에 따르면 귀츨라프가 조선 국왕에게 성서를 권유했고 왕은 이를 거절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고대도 주민들은 성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당시 귀츨라프는 고대도에 상당기간 체류하면서 주민들에게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주고 감기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약도 지어주었다.선장 린제이의 항해기에는 귀츨라프가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이를 다시 한국인 양의가 조선말로 받아적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뒤 1885년 4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가 인천 제물포에 첫 발을 내디뎠다.한국 교회는 현재 이를 개신교의 첫 전래로 보고 있다.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행사도 이를 기준으로 지난 95년에 열렸다.
그런데 서울로 들어선 언더우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이미 한글로 번역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카페 <irano-judaica> 천국의 향기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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