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31. 01:59ㆍ경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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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무덤 http://cafe.naver.com/growingsoul/2019
심차 야코보비치.찰스 펠리그리노 지음
"이 남자와 이 여자는 한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모자 관계일 수도 없습니다. 모계 쪽으로는 남매일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샘플들이 한 무덤에서 나왔다면, 그 무덤이 가족의 무덤이라 가정한다면,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도 없기 때문에 부부였을 가능성이 무척 높습니다."
'다빈치 코드' 보다 충격적인 유골
1980년 이스라엘 고고학국 고고학자들은 예루살렘 외곽 탈피오트의 아파트단지 건설 현장에서
1세기경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만 유행 했던 유골함 무덤을 발굴했다.
유골함 무덤은 동굴 외실에 1년간 시신을 보관해 살이 다 썪으면 그 뼈를 수거해
석회암 뼈단지에 담아 내실 의 벽감에 보존하는 무덤 양식이다.
'탈피오트 열 무덤'으로 불린 이 무덤에선 모두 10개의 유골함이 발굴됐다.
1개는 발굴조사 도중 사라졌다. 남은 9개 중 6개의 유골함에서이름이 확인됐다.
'요셉의 아들 예수' '마리아' '마테' '요세' '마리암네' 그리고 '예수의 아들 유다'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 이름이고 마테와 요세는 신약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형제들 이름과 일치한다.
기독교 신자라면 흥분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발굴조사가 들은 유대인이었다.
1세기경 마리아와 요셉 예수란 이름은 너무 흔했고 예수의 아들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폭발력이 컸다.
이 때문에 이 무덤의 존재는 수십 명의 관계자에게만 알려진 채 다시 묻혔다.
이 무덤의 존재가 다시 부각된 것은 2007년이었다. 영화 '타이타닉' 의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하고
유대계 캐나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심차 야코보비치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예수의 잃어버린 무덤'이 반영되면서였다.
이책은 그 다큐멘터리에 다 담지 못한 제작과정의 뒷이야기도 자세히 담았다.
출발점은 2002년 '존재가 드러난 '요셉의 아들. 예수의 동생 야고보'라고 적힌 유골함이었다.
야고보는 예수의 또 다른 형제 이름이다.
이 유골함의 존재들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던 야코보비치는 이유골함이 탈피오토 열 무덤에서 사라진 유골함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 이 유골함의 크기는 1980년 기록으로만 남은 유골함의 크기와 거의 같았다.
이 유골함의 녹청 성분분석 결과도 다른 9개 유골함의 녹청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탈피오토 열무덤이 예수의 가족무덤일 통계적 확율은 매우 높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전체 여성의 25%가 마리아였고 남자중 요셉은 14%, 유다는 10% 야고보는 2%에 해당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이 한 가족으로 묶일 확률은 25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여기에 마리암네가 막달라 마리아의 본명이라는 '빌립행전'의 5세기 필사본 기록이 더해지면
그 파급력은 상상력의 산물인 소설 '다빈치 코드'를 능가한다.
앞에 인용한 글은 '예수'와 '마리암네'라고 적힌 유골함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전문가가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 채 한 말이다. 이에 따르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고 그 사이에서 '다빈치 코드'가
주장한 딸이 아니라 아들이 태어났으며 유럽이 아니라 에루살렘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에 기독계의 통념을 뒤집는 내용이라 거센 반발을 불렀다.
눈 뜬장님 신세가 된 이스라엘 고고학계도 쌍지팡이를 들고 반박에 나섰다.
그러나 그 반박 논리는 이 책의 과학적 분석을 압도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통계가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캐머런 감독이 서문에 쓴 글처럼 조사는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섣부른 예단은 삼가고 오로지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인용자료)
이스라엘인종의 기원과 몽골인의 캐릭터
Researches Into The Ethnic Origins Of Israel by C. F. Parker, B.A., page 37:
“It must be confessed that they (the Hittites) were not a handsome people. They were short and thick of limb, and the front part of their faces was pushed forward in a curious and somewhat repulsive way.
The forehead retreated, the cheekbones were high, the nostrils were large, the upper lip protrusive. They had, in fact, according to the craniologists, the characteristics of a Mongolian race.
Like the Mongols, moreover, their skins were yellow and their eyes black. They arranged the hair in the form of a ‘pigtail’, which characterizes them on their own and the Egyptian monuments quite as much as their snowshoes with upturned toes.
In Syria they doubtless mixed with the Semitic race, and the further south they advanced the more likely they were to become absorbed into the native population.
The Hittites of Southern Judah have Semitic names and probably spoke a Semitic language. Kedesh continued to bear to the last its Semitic title, and among the Hittite names which occur further north there are several which display a Semitic stamp.” (If one could observe one of Esau’s wives today, she probably would look somewhat like an Albanian Turk.)
이스라엘인종의 기원를 추적했던 성경고고학자 파커는 그의 글에서 이집트와 히타이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몽골인의 캐릭터에 무척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BC 2천년경이다. ..(인용자료)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 이집트와 사카족 추정
초기 로마의 초기는 도시국형태였었다.
또한 신라와도 상당한 연관성 있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정치제는 공화정이며 문화와 민족이 샤카족과 연관된다고 알려졌다.
카필라성은 당시 대부분의 전통적 국가들이 행하던 공화정을 펼치고 있었는데
사미띠(Samitti)라는 의회를 중심으로 국정이 다스려졌습니다.
부처님의 아버지인 숫도다나왕은 일반적인 개념의 왕이라기 보다 바로 이 사미띠(Samitti)의 라자(Raja),
즉 의장을 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를 로마의 후손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현재 이탈리아와 로마와는 별개로 보는 시각도 아주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서기 475년에 서로마가 멸망한 후에 1,400여년간 이탈리아 반도에는 통일 국가가 없었고,
수많이 이민족들의 침략과 이동이 있었으며, 한때는 남부 이탈리아가 이슬람 세력에게 점령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역사서에서
예수의 부친이 로마지배층이란 기록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의 모계는 유태인이며 부계는 로마인으로 어쩌면 샤카족과 연관이 될 수있다.
히타이트의 가장 원형적인 종족은 후리안(Hurrian)으로 불려지며
이들이 세운 미타니왕국은 비인도유러피언 문화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울러 18세기까지 유럽 사학자들은 후리인들을 코카서스 백인종이 아니라 동아시아계 몽골로이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우세했습니다.
그리스와 이집트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던 히타이트와 그들의 선조 후리인들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후리(Hurri)인들은 이집트를 정복한 '쿠티'Khuty/ kurri와 동일시 되곤 했는데 우리는 후에 중앙아시아 흉노의
수장들 이름에서 '구티'라는 이름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아울러 이 후리인들이 왕조를 세울 당시 히타이트에는 '얄라-간'(Yala-gan), 쿠티간(guti-gan)등 칸의 이름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후리(Hurri)인들의 언어는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도유러피언어와는 다른 교착어체계였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스 신화가 유럽중심주의 (eurocentricizm)에 의해 왜곡 날조되었다.
블랙 아테나'의 저자 버넬은 19세기 유럽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인의 인종적 기원을
논함에 있어 그리스 원주민을 '황인종'이라고 고백하며 번민하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합니다.
버넬은 19세기 유럽학자들이 그리스의 헬레네스인들을 셈족과 동양인의 혼혈로서
인식하고 또 그 원주민을 동양인이라고 한 것은 백인 우월성을 이야기하려 했다고 해석하지만
현대 유전학이 밝히는 사실은 좀 더 복잡합니다.
사카세존과 사카족에게는
유태인의 유전자조합의 피조물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이, 얽힘과, 중첩의 세계에서는 유전자 조합인 유태민족의 우주인 피조물 사상은 없다.
아쇼카왕의 인간사'에 관한 역사서와 팔리어경전에서 알려진 것처럼 인도에서 아쇼카왕의 팔리어 경전을 접한
예수께서 우주와 우주인들에 관해서 지금의 현대인 보다 더 많이 우주와 우주의 외계인들의 실체에 관해서 알고 계셨다.
예수님이 구약을 배제한 근본적인 이유는 우주와 외계인 존재를 알고 게셨다.
"With his mind thus concentrated, purified, and bright, unblemished, free from defects, pliant, malleable, steady, and attained to imperturbability, he directs and inclines it to creating a mind-made body. From this body he creates another body, endowed with form, made of the mind, complete in all its parts, not inferior in its faculties. ........
And what is the miracle of psychic power?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wields manifold psychic powers. Having been one he becomes many; having been many he becomes one. He appears. He vanishes. He goes unimpeded through walls, ramparts, and mountains as if through space. He dives in and out of the earth as if it were water. He walks on water without sinking as if it were dry land. Sitting cross-legged he flies through the air like a winged bird. With his hand he touches and strokes even the sun and moon, so mighty and powerful. He exercises influence with his body even as far as the Brahma worlds. .....................................
[출처] 석가세존 - 비길데 없는 하느님 / 작성자 비엘
초기 기독교의 원형과 지금의 기독교가 현재와 다른 것처럼
초기 세존의 가르침과 지금의 불교는 더 기독교의 변화 보다 더 왜곡되었다.
아리안족에의해 신화화한 산지종족의 역사를 재정립해야만
환국의 고대사의 전체적인, 동 서양을 통괄하는 측면에서
그 윤곽을 알 수있을 것입니다.
샤카족이나 세존의 제자분들은 세존을 붓다라 칭하지 않았다.
샤카족이 이미 라자의 명칭에서 붓다란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샤키야(Sakya)의 나라인 코리야(Koliyas)국의 수프라 붓다(Suprabuddha-善覺)가 라자의 자리에 있었다.
붓다란 일반호칭이며 아리안들이 자신의 종교 우월적인 측면에서 사용한 것이다.
샤카족과 세존의 제자분들은 세존을 로드(Lord)라고 호칭하였습니다.
<와싸다 닷컴> 게시판 / 시시토론 김재명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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