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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기(知己)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다. 대화 중에 평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상대방의 언동에 크게 유쾌함을 느끼고, 글을 읽어가는 도중에 글 속에서 평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바를 발견할 때도 그렇다.
중국 북송시대 황정견(1045~1105)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완당(阮堂)의 서예작품으로 유명해진 “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라는 시에 대해 최근 기존의 해석과 다른 정민 교수의 해석을 접하고 그런 통쾌함을 맛보았다.
기존 해석으로 유홍준 교수는 “고요히 앉아 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라고 했고, 임광명(부산일보 기자)은 “차는 벌써 반을 마셨으되 향은 처음 그대로다”라고 풀었으며, 최원준 시인은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따르니 향기가 피기 시작하고, 신묘한 차향을 맛보고 있으니 물 흐르고 꽃이 피도다”라고 해석했다.
또 민병준은 “고요히 앉은 곳에 차는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과 같고 신묘한 작용이 일어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는 듯하여라”라고 풀이했고, 이귀남 전 법무장관은 “반으로 줄어들었으나 처음과 같은 향기를 머금은 차”, 도예가 한용민은 “차를 마신 지 이미 반나절이 지났으나 입 안 가득 그윽한 차향은 처음과 변함없다”고 해석했다.
모두들 이 시를 차에 관한 시로 알고, 차 맛에 중점을 두다 보니 이같은 해석이 나오게 됐다고 본다.
그런데 정민 교수는 달랐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고 향 사르고 묘한 작용이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피네”라고 해석하고 있다.
맞다. 이 시는 깨달음에 관한 시다. 깨달음의 시는 언어도단과 심노절(心路絶)의 경지이므로 언어로서 정확하게 해설할 수가 없는 것이나 부득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몇 마디 허물을 늘어놓고자 한다.
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을 사르니 묘한 기운이 일어 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어나네’ 라고 해석하고 싶다.
1구의 정좌처(靜坐處)는 공간을 나타내고, 2구의 묘용시(妙用時)는 시간을 나타낸다. 1구는 정(靜)이고, 2구는 동(動)이다.
1구는 외면적 모습이고, 2구는 내면적인 상태다. 1구는 행위주체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에 불을 붙이는 유위로 시작되고, 2구는 행위주체가 사라지고 오직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무위로 끝난다. 1구는 원인이고, 2구는 결과이다.
수류화개(水流花開)에서 수류란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에서 식도를 타고 배 속으로 내려가니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1구의 다반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모두 오행에서 수(水)를 나타낸다.
화개란 향이 타들어가면서 사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1구의 향초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향불과 꽃은 오행에서 화(火)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시는 무심(無心)한 상태에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을 사르니 차 기운이 퍼지고 향이 타들어 감에 따라 물아일여(物我一如), 좌망(坐忘)의 경지에 든 것을 읊은 것이다.
이 시에는 행위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행위 주체가 없는 경지가 바로 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는 것이다.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꽃은 그냥 피는 것이다.
선도(仙道)에서는 수승(水昇)과 화강(火降)의 균형으로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읊은 것으로 볼 것이다. 이 시와 동일한 경지를 읊은 소동파의 나한찬(羅漢贊)이란 시 제9수 말구에 “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가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단순히 차에 관한 시가 아니다. 차에 관한 시로만 읽다보니 기존과 같은 ‘차는 반을 마셨으나 향기도 처음 그대로다’라는 해석이 생겨났고 ‘시종일관’과 동의어로 사용됐다.
이 시를 茶禪一如의 시로 읽더라도 기존 해석과 같이 하면 다선일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차의 향과 맛에 집착해 분별한 것이 되어 벌써 선에서 십만팔천리나 멀어져 버린 것이 된다.
이 시의 키워드는 정좌(靜坐)에 있는 것이다. 정좌의 보조수단으로 차와 향이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 수류화개의 경지를 얻으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절창(絶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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