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의 해석

2014. 1. 29. 05:22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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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

 
 
bdukun
2008.09.3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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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서찰에 적힌 다송인데, 인터넷상을 검색을 해보아도 해석상 의견이 분분한 것 같아서 참선과 녹차를 즐기는 다선일미의 입장에서 해석을 붙여 본다.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중국 송나라 황정견

    茶禪一味(다선일미)를 알아야 위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면

"정좌처에 차는 반이고 향은 시작되는데,

 묘용시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네"

의역하면

"고요히 앉아서 차를 마시면 감로향이 시작되는데

 묘하게 운용하면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茶半香初는 차를 마실때 먼저 코를 사용하여 차의 향을 음미하고, 찻잔의 반정도를 마시고, 마신 차의 반정도는 목으로 흘려보내고, 나머지 반으로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면 입안에 감로가 고이고, 감로의 향이 혀 끝에 느껴지는데 이 향이 다반향초의 향초입니다. 그래서 茶半이라 하고 香初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반향초는 "차를 마시면 감로향(다반향)이 시작되는데" 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茶半은 그냥 차를 마신다로 해석하는 것이 부드럽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반잔을 마셔도 감로향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열잔을 마셔야 감로향을 아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생각만해도 감로수가 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이지요. 따라서  茶半은 "차를 마신다"로 해석하는 것이 제일 무난합니다.


    우리가 참선을 할때 혀끝을 입천장에 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혀끝은 임맥과 독맥을 연결하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이윽고 화두를 들어서 몰입하면 몸이 이완되고 몸이 이완되면 기혈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혀끝을 타고 감로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감로는 쉽게 말해서 침이 고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감로의 맛과 향을 무엇으로 표현할가요, 이 세상에서 이 처럼 맑고 깨끗하고 달콤한 맛과 향기는 달리 없을 겁니다.

아무튼 감로가 고이면 꼴깍 꼴깍 침을 삼키게 되고, 감로수가 경락을 따라 흐르게 되고, 감로수가 흐르는 곳에 기혈이 열리면서 생명력의 환희를 느끼게 됩니다.

마치 봄비에 시냇가의 버들강아지가 피어나 듯이 감로수가 흐르는 곳에 기혈이 열리면서 우리 몸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게 됩니다.

 

    이 것을 수류화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녹차를 마시면 녹차가 막혔던 경락을 이완시키고 유통시켜 줍니다.

또한 차를 마시면서 혀끝으로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노라면 혀끝을 타고 감로가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계속 차를 마시면서 감로를 음미하고 감로수를 흐르게 하면, 역시 기혈이 열리면서 우리 몸에 생명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선일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묘용시 수류화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시도 황정견의 시입니다.

 

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空山無人  水流花開 (공산무인 수류화개)


가없는 푸른 하늘에
구름 일고 비 오는데
빈 산엔 사람하나 없어도
물 흐르고 꽃은 피네

 

푸른하늘에 태양이 있어 산하대지를 비추니

생명의 물은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고

이 구름이 비가 되어 산하대지를 적시니

물이 흐르고 꽃이 피누나

 

이를 일컬어 水昇火降이라 하니

이로 인하여 천지가 살아 숨을 쉰다네

어디 여기에 사람을 거론하랴만

차 한잔 잘 마시면 사람이 곧 자연이라네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의 깊은 뜻이 여기 있다네

 

 

 

 

 

 

 (2)re: 차(녹차)예찬하는 한문시나 칠언절구

koreanaya
답변채택률86.5%
2006.07.15 14:31
답변 추천하기

질문자 인사

좋은글 감사합니다. 글은 곧 괴목 전통차 탁자 전면에 음각으로 서각될 예정입니다. <<<KIN_COMMENT>>>좋은글 감사합니다 또 다른 괴목 전통차 탁자에 양각으로 서각될 예정입니다 글씨가 좀 크게될것 같네요.

 

 

   靜坐處茶半香初(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묘용시수류화개)

 

작자와 해석이 정확하지 않고 분분합니다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풀이들이 있더군요.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를 반 넘게 마시도록 타는 향은 처음과 같고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더라.
  
   조용히 앉아 차를 마시면 향기는 언제나 처음 그 맛.
   신묘한 마음(지혜)의 작용은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고요한 자리에 앉아, 눈으로는 색깔을
   코로는 향기를 입으로는 맛을 음미하며
   차를 마시니 어느 때인지
   물 흐르고 꽃피는 곳에 와 있구나.

 

   고요히 앉은 이곳 차는 반 줄었어도 향기는 여전하네
   신묘한 작용이 일어나니 물 흐르고 꽃 피어나는구나.

 

   고요한 좌선실에 차 맛은 반잔의 맛, 향기는 첫 향기
   묘용을 쓰는 시간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나니.

 

 

 

해당 글은 지식스폰서가 활동 기간 (04년~08년 6월 종료)중에 작성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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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산 개암사 들꽃다회(2)>에서 발췌

 

 

  나무는 절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쭉 보아 왔겠지만.......

말이 없다..........

그러나 고요에 잠기면 나무가 말을 걸어 온다.........

 

   이 고요에 잠기는 데 도와주는 매개물인 체(體)가 바로 차(茶)이다.

다선(茶仙)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대련(對聯) 글씨에서

 

정좌처다반향초(靜坐處茶半香初)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

 

라고 설파하였다.

   첫련의 다반향초를 놓고서 차를 우위로 하는 분들과 향을 우위에

놓는 분들 사이에 여러가지 구구한 해석과 주석들이 붙어 왔으나,

 

불이문을 주창하신 원효의 발자취가 배인 능가산에 와서

구구한 설명은 피하기로 한다.

 

마지막 련의 수류화개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대자연의 현상을

읊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차마시는 사람이 차를 마시면(水流)

 

꽃은 마음을 연다(花開)라고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차를 마시면 소우주라는 인체 내부에서도 기혈(氣血)을 따라서

 

다기(茶氣)가 흐르고, 장기에서 흡수된 정갈한 찻물이 흐른다(水流).

이로 인하여 정신은 맑아지고, 새로운 창작열 또는 선정(禪定)의

 

희열을 느끼게 한다(花開).

 그래서 묘용시 수류화개(妙用時 水流花開)이다.

 

  대부분 훈고학적인 학문의 방편에 젖어 있던 사람들이나,

대일항쟁기(일제강점기의 정식명칭이 근자에 국회에서 수정결의됨)나

 

그 이후의 정형화된 일본식 다도를 접하고 배운 사람들은 체(體)와 용(用)을

정형화시키려 서로 구구한 설명을 하고 있다.

 

  앞련의 다반향초(茶半香初)에서 체는 차(茶)와 향(香)이고, 용(用)은 반(半)과

초(初)이다. 이 반과 초를 놓고서 차를 반쯤 마실때 향이 시작된다느니

 

차례의 반은 향례에서 시작한다느니 등등의 해석을 하고 있다.

한심하다. 추사가 분명히 다음 련에서 묘용시(妙用時)라고 큰 글씨로 분명하게

 

써놓았는 데에도 이를 무시한 해석들이 많았다.  그때그때 천후(天候)나, 찻자리의 성격,

찻손님의 인격과 품위, 찻자리의 규모 등등에 따라서 적절하게 차와 향을 사용하라는

 

것이 묘용시(妙用時)의 본 뜻이다. 우리 한국다례의 특징은 정형화된 것이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알맞게 무한한 변용이 가능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북방 유목민들에서 기원된 노마드 정신이다.

 

 

                                 20130929   다 종 삼가 씀.........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 계심헌인 솜씨

계심헌인 | 조회 67 |추천 0 | 2015.05.28. 05:35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


묘하고 또 묘하다.

때에 어떻게 그렇게 이뤄지는지!

 

차시를 만들다 문귀가 떠오르지 않아  교장선생님께 차에 관한 4자성어를 부탁드렸습니다.

메일로 온 문귀 중에 다반향초가 있어서 검색해 보고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2015.05.28 | 카페 > Daum카페  cafe.daum.net/nakjukjang





Re:(365-57층탑석) 정좌처 다반향초| 해월 스님의 이야기 방
원효 | 조회 52 |추천 0 | 2016.03.01. 06:59

<특별기고> ‘다반향초’의 진짜 뜻

기사승인 [0호] 2011.11.21  14:02:00


김백영 변호사
kimby8711@hanmail.net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기(知己)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유쾌한 일이다. 대화 중에 평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상대방의 언동에 크게 유쾌함을 느끼고, 글을 읽어가는 도중에 글 속에서 평소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바를 발견할 때도 그렇다.

   그래서 옛 선구(禪句)에 상대방이 “시인이 아니면 시를 말하지 말고, 검객이 아니면 검을 보이지 말라”고 했다.
중국 북송시대 황정견(1045~1105)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완당(阮堂)의 서예작품으로 유명해진 “靜坐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라는 시에 대해 최근 기존의 해석과 다른 정민 교수의 해석을 접하고 그런 통쾌함을 맛보았다.

   기존 해석으로 유홍준 교수는 “고요히 앉아 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라고 했고, 임광명(부산일보 기자)은 “차는 벌써 반을 마셨으되 향은 처음 그대로다”라고 풀었으며, 최원준 시인은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따르니 향기가 피기 시작하고, 신묘한 차향을 맛보고 있으니 물 흐르고 꽃이 피도다”라고 해석했다.

   또 민병준은 “고요히 앉은 곳에 차는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과 같고 신묘한 작용이 일어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는 듯하여라”라고 풀이했고, 이귀남 전 법무장관은 “반으로 줄어들었으나 처음과 같은 향기를 머금은 차”, 도예가 한용민은 “차를 마신 지 이미 반나절이 지났으나 입 안 가득 그윽한 차향은 처음과 변함없다”고 해석했다.
모두들 이 시를 차에 관한 시로 알고, 차 맛에 중점을 두다 보니 이같은 해석이 나오게 됐다고 본다.

   그런데 정민 교수는 달랐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고 향 사르고 묘한 작용이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피네”라고 해석하고 있다.
맞다. 이 시는 깨달음에 관한 시다. 깨달음의 시는 언어도단과 심노절(心路絶)의 경지이므로 언어로서 정확하게 해설할 수가 없는 것이나 부득이 독자와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몇 마디 허물을 늘어놓고자 한다.
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을 사르니 묘한 기운이 일어 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어나네’ 라고 해석하고 싶다.

   1구의 정좌처(靜坐處)는 공간을 나타내고, 2구의 묘용시(妙用時)는 시간을 나타낸다. 1구는 정(靜)이고, 2구는 동(動)이다.
1구는 외면적 모습이고, 2구는 내면적인 상태다. 1구는 행위주체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에 불을 붙이는 유위로 시작되고, 2구는 행위주체가 사라지고 오직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무위로 끝난다. 1구는 원인이고, 2구는 결과이다.

   다반향초(茶半香初)에서 다반이란 찻잔에 담긴 차를 한 번에 다 마시지 않고, 나누어서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니 첫 번에 한 모금 마셨으니 찻잔에 차가 반이 남아 있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향초란 향에 처음 불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수류화개(水流花開)에서 수류란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입안에서 식도를 타고 배 속으로 내려가니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으로 1구의 다반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 모두 오행에서 수(水)를 나타낸다.
화개란 향이 타들어가면서 사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1구의 향초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향불과 꽃은 오행에서 화(火)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 시는 무심(無心)한 상태에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향을 사르니 차 기운이 퍼지고 향이 타들어 감에 따라 물아일여(物我一如), 좌망(坐忘)의 경지에 든 것을 읊은 것이다.

   이 시에는 행위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행위 주체가 없는 경지가 바로 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는 것이다.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꽃은 그냥 피는 것이다.
선도(仙道)에서는 수승(水昇)과 화강(火降)의 균형으로 깨달음을 얻은 경지를 읊은 것으로 볼 것이다. 이 시와 동일한 경지를 읊은 소동파나한찬(羅漢贊)이란 시 제9수 말구에 “빈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가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단순히 차에 관한 시가 아니다. 차에 관한 시로만 읽다보니 기존과 같은 ‘차는 반을 마셨으나 향기도 처음 그대로다’라는 해석이 생겨났고 ‘시종일관’과 동의어로 사용됐다.

   이 시를 茶禪一如의 시로 읽더라도 기존 해석과 같이 하면 다선일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차의 향과 맛에 집착해 분별한 것이 되어 벌써 선에서 십만팔천리나 멀어져 버린 것이 된다.
이 시의 키워드는 정좌(靜坐)에 있는 것이다. 정좌의 보조수단으로 차와 향이 등장한 것에 불과하다. 수류화개의 경지를 얻으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절창(絶唱)이다.

홍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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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좌처 다반향초

무영랑 2009.11.16 16:15

http://blog.daum.net/tjsdud1228m/21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차실의 주련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이 시는 필자가 좋아하는 차시(茶詩) 중의 하나이다.
한시는 해석하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나,
이 시처럼 100사람이 번역을 하면 100사람이 모두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보통 이 시를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내가 배운 바로는 중국 송(宋)나라 때 시인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의
『산곡문집』에 나와 있는 것으로 추사 선생이 즐겨 글씨로 쓰셨을 따름이다.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으로
홍주(洪州:江西省) 분녕(分寧:修水縣) 출생으로 시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았으며,
스승인 소식(蘇軾:東坡)과 나란히 송대(宋代)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의 시는 고전주의적인 작풍을 지녔으며,
학식에 의한 전고(典故)와 수련을 거듭한 조사(措辭)를 특색으로 한다.
강서파(江西派)의 시조로 꼽히며, 『예장 황선생문집(豫章黃先生文集)』30권이 있다.

반취 선생은 『소설 한국의 차문화』에서,
茶半香初는 그 뜻을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
'차는 반쯤인데 향기는 처음과 같네' 정도로 읽는 사람도 있고,
'차가 익기 시작하니 향기 피어나네' 로도 해석한다.
뒤의 해석이 제법 부드럽게 다가온다.' 라고 하며,
'고요한 자리 차 반쯤 익으니 향기 피어나네
시간도 멎은 곳에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로 번역하였다.

유홍준 교수는 『완당평전』에서
 '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라고 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측면으로 번역되고 있다.

'고요히 앉은 곳에 차는 절반인데 향은 처음 그대로다
묘하게 쓰는 때에 물은 흐르고 꽃이 핀다'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를 반 넘게 마시도록 타는 향은 처음과 같고
고요히 흐르는 시간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더라'

'고요한 좌선실에 차 맛은 반잔의 맛, 향기는 첫 향기,
묘용을 쓰는 시간에 물이 흐르고 꽃이 피나니'

필자가 배운 바로는 靜坐處는 고요히 앉아있는 곳 즉 좌선하는 것을 뜻하고,
半은 半日의 준말이다.
妙用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 씀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직역(直譯)하면,
'고요히 앉아 차 한잔 마시고 반나절이 지났는데 그 향은 처음과 같고,
묘한 마음을 쓸 때는 물 흐르듯이 꽃 피듯이 한다' 와 같고, 의역(意譯)하면
'공부 할 때는 처음과 끝이 같게 하고
깨친 사람의 일상생활은 물 흐르고 꽃 피듯 한다' 가 된다.

우리말로 된 시도 작가의 뜻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한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 차인들은 차가 기호 음료인 관계로
내가 선호하고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차가 있을 수 있으나
차가 아닌 것은 없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래서 우리는 누구 번역이 '옳다', '그르다'라고 평하기 보다
'저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구나', '저것이 더 멋스럽구나',
'저것은 새로운 시도이다' 라는 생각을 할 지언정,
자신의 생각을 미리 머리에 넣고 거기에 맞지 않는 것을 배척하는 습관을 버리고,
우리 모두 여러 사람의 번역을 많이 읽고 각자의 장점을 생각해가며
원 작자의 뜻에 가까운 것을 찾도록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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