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 크로니길 자유등반한 손정준 / 산들바람의 세상구경에서

2014. 2. 23. 11:47산 이야기

 

 

 

 

 

      

 

 

 

 

 

“손등 벗겨지는 아픔도 자유등반의 일부”

                                                                                  글 이영준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작년 시도했을 때에는 되겠다는 생각만 있고 실제로 동작을 풀지는 못했는데,

지난 5월 말 다시 도전했을 때, 한번만 더 해보면 확실히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습니다.”
6월 5일 설악산 적벽 크로니길 자유등반에 성공한 손정준(손정준스포츠클라이밍연구소 소장)씨는

정상에 서던 그날의 감동이 줄곧 남아있는 듯 했다.

적벽 크로니길이 크로니산악회 박영배씨 등에 의해 인공등반으로 초등된 게 1978년 8월이니,

30여년 만에 자유등반 루트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노 전대통령 영결식이 있던 5월 29일 노제에 참석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설악산에 갔었다”는 손씨는

그날 후배 김종오씨와 함께 등반하며 크럭스 구간의 몇 가지 꼬인 동작을 풀기는 했지만

추락에 대한 부담으로 끝까지 자유등반을 해내진 못하고 슬링을 잡고 말았다.

추웠던 날씨 탓에 근육이 뭉쳐 고생했지만 다음번엔 꼭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던 그는

한민규(자유등반클럽)씨와 다시 적벽으로 가 80여m에 달하는 오버행 전 구간을 오로지 자신의 몸짓만으로

오르는데 성공한 것.


    지난 2000년 적벽 독주길과 에코길을 잇는 루트를 자유등반으로 올랐던 손정준씨는

10년 만에 다시 크로니길을 자유등반했다. 등반에 걸린 시간은 1시간 30여분,

장비는 너트와 퀵드로만을 사용했으며, 등반 뒤 그가 평가한 난이도는 5.13c/d급이다.

적벽 자유등반을 시도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여러 명이 있었지만,

완등에 성공한 사람은 손씨와 지난 2006년 방한해 독주길 변형 루트를 오른 이태리 등반가

마우로 부부 볼레가 유일하다.

 


    “문득 숨어 있던 잠재의식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는 그는 이번 등반을 위해

지난 겨울부터 트레이닝을 하기는 했지만, 선수로 활동하던 전성기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다.

 1999년 이후로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그는 지금까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전공하며

스포츠클라이밍 분야에 대한 과학적 트레이닝을 연구하고 클라이밍 저변 확대를 위해

 후배들을 지도하는 등 전환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등반 이틀 전에 설악산에 비가 와서 크랙이 다소 젖어있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음을 다잡고 올랐지만 2피치에서 한 차례 추락하기도 했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확보지점에 내려와서 줄을 빼고 다시 올랐습니다.

삼각오버행을 지나며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는 포켓홀드를 넘어설 때와 마지막 3단 크랙 구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크랙에 박혀있는 하켄을 제거하고 직접 장비를 설치하며 오른다면 보다 깔끔한 등반이 될 것 같아요.”


    “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건 심리적인 부분”이라는 손정준씨는

 “독주·에코길을 등반할 땐 추락하면 반쯤 박힌 볼트가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부담이 있었고,

크로니길에서는 삼각오버행에 부딪치면 발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를 떨쳐내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밍을 할 때 손등이 까지는 아픔을 견디고,

 또 거기서 매력을 찾는 것이 바로 자유등반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적벽은 우리나라의 어떤 바위보다도 클라이머들에게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제가 인공등반으로 적벽을 다닐 때에도 한번 그곳에 올라가면 1년 내내 주변 사람들과 이야깃거리가 되었어요.

당시 클라이머들에겐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던 거죠.

어느 곳보다도 인공이 배제된 자연 그대로 오를 수 있는 아름다운 선들이 있는 곳이에요.”
“크로니길은 예전부터 적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언젠가

꼭 자유등반으로 오르고 싶었다”는 그는 초등자 박영배씨 등 개척자들의 안목이 경외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적벽에 대한 애정만큼, 요즘의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도 깊다.

“지나치게 인공장비를 많이 사용해 적벽이 무분별하게 개척되는 것이 아쉽습니다.

바위에 루트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자기 시대에 자기만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는 것에서

문제가 비롯된다고 봅니다. 우리의 등반은 길게 봐야 4~50년일 뿐이고,

결국 그 바위들은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으로, 미래에서 빌려온 것들인데

자연스런 방법으로 등반할 수 없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산에 다니는 개인마다 스포츠클라이밍, 고산등반 등 각자의 장르를 가지고 있을 테지만,

자신의 주변에 주어진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성과만을 내세우며 그 성과가 결국

 자신의 등반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손정준씨.

그는 그로부터 배출된 수많은 후배들과 요즘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한 우리 클라이밍계에도 직언을 했다.
“등반경기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에 따른 페이(pay)만 좆다보면 결국 ‘좋은’ 등반은 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산에서 하는 등반은 누구에게도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며, 어떤 보상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등반 그레이드 또한 저는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등반은 쉽다, 어렵다의 잣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등반을 한 사람 스스로의 마음이

자신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코·독주길 자유등반 후 10년이 지났는데 그 시간이면 저보다도 기량이 좋은 후배들이

충분히 크로니길도 자유등반 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초등이란 항상 불확실한 것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데에 가치가 있는 것인데,

이제 젊은 클라이머들이 보다 창의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날 국내 최초 5.14급 등반, 적벽 최초 자유등반에 이어 또 하나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손정준씨.

하지만 실상 그는 앞으로 별다른 계획이 없다.

 

   그의 말을 빌면 “느낌대로, 몸과 마음이 끌리는 곳을 찾아 오르는 스타일”이며,

최초란 그에게 궁극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블로그 <산들바람의 세상구경> 산들바람님의 글 중에서

 

 

 

 

 

 *******   - 2008년 6월 5일 적벽 크로니길 자유등반 성공 : 손정준

                                                               함께 연습등반한 대원 : 김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