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복음]연중 제7주간 화요일(2/25)

2014. 2. 25. 23:06경전 이야기

글제목 : 말씀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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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7주간 화요일(2/25)







    말씀의 초대
    야고보서는 세상과 친해지면 하느님과 멀어진다고 신앙인들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가까이 가면 하느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이라고 격려하며, 두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마음을 정결히 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분께 감히 묻지도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누가 큰 사람인지에 대한 문제로 서로 다툰 것을 아시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주신다(복음).
    제1독서
    <청하여도 얻지 못한다면 잘못 청하기 때문입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4,1-10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0-37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을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열심히 사는 훌륭한 한 친구에게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조금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과 친해지면 하느님과 멀어진다는 역설적인 가르침은, 세상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선(善)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아주 다르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그 친구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도피적이고 염세적인 것 같다는 자신의 선입관을 확인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20세기의 중요한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아렌트가 인상적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근본적으로 ‘세계 경멸’(contemptus mundi)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중세가 비록 수많은 정신적 문화적 업적을 이룩하였을지라도 이러한 부정적 세계관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에 대비되는 ‘세계 사랑’(amor mundi)을 옹호합니다. 이렇게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비신자들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도 ‘그리스도교가 너무 세상의 가치를 비하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반론들은 사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현대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세계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올바른 방식의 ‘세계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에 전적으로 속해 있는 것에서 자유로워질 때 가능합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상을 더 온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있되 세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가운데 자유롭고 올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지 않고 부활 신비의 빛으로 지상의 삶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가르쳐 주소서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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