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희우정 /우양 김일두

2014. 2. 26. 10:02우리 역사 바로알기

 

 

 

 

 

 

가뭄과 희우정(喜雨亭)

[현재 모습의 망원정]
 
 
 

    조선 왕조의 3대 임금인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1424년에 한강변에 합강정[合江亭]이라는 정자를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지금의 마포양화나루 서쪽에 자리한 망원정[望遠亭]이다.

 

    이듬해인 世宗 7년(1425) 가뭄이 계속되자 세종은 농민의 삶을 살피고 효령형님도 위로

코자 정자를 찾았는데 때마침 비가 내려 온 들판을 흡족하게 적시니 매우 기뻐하여

효령이 세종에게 합강정을 희우정(喜雨亭)이라 명할 것을 권하여 지어주셨다고 한다.

후에 成宗의 형인 월산대군이 소유하면서 희우정(喜雨亭)을 망원정(望遠亭)이라

이름을 바꾼 것이다.

 

 

 

 

 


[정자 안쪽으로 "喜雨亭" 현판이 보인다]
 
 
 
 

    망원정 안쪽에서 보이는 희우정(喜雨亭) 현판 글씨는 당시 서도(書道)로 이름

높던 부제학 신색[申穡]이 쓴 것으로 이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 희(喜)의 한

획이 빠져있다. 보통 특정한 글자를 피하거나 혹은 고쳐 써야 하는 경우를

일컬어 피휘라고한다.

 

 

 

 


[西安의 碑林 스케치]

 

 


   예를 들면 중국 황제의 이름이나 성현의 이름 등에는 피휘를 한다.시안

[西安]의 碑林에서 본 위그림에 보이는 비석에 당태종 李世民의 民자가

한 획이 빠져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이 날 효종괴 세종 형제의 우의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두 사람의 마음에

하늘이 감복하여 단비를 주신 것을 변계량[卞季良]이"喜雨亭 頌歌"로

아래와 같이 칭송하였다.


翼彼新亭如鳳斯騫 (익피실정여봉사건) ……… 날듯한 새 정자가 봉황새 나는 듯한데

 

誰其作之君侯之賢 (수기작지군후지현) ……… 그 누가 지었는가 어지신 군후(君侯)였었네

 

王出西郊匪遊匪전 (왕출서교비유비전) ……… 왕이 서교(西郊)에 납시셨으나 놀이함이 아니오

 

民方播種憂旱于田 (민방파종우한우전) ……… 백성이 한창 씨앗 뿌리는데 가뭄을 걱정 하심이었다

 

王在于亭時雨沛然 (왕재우정시우패연) ……… 왕이 정자(亭子)에 계시니 때 맞추어 비 쏟아지네

 

王宴君侯其鼓淵淵 (왕연군후기고연연) ……… 왕이 군후와 잔치 하시는데 저 북소리가 둥둥 울린다

 

錫之亭名榮耀無前 (석지정명영요무전) ……… 정자이름 내려 빛나는 영화가 전에 없었네

 

君侯稽首聖德如天 (군후계수성덕여천) ……… 군후가 머리 조아리시니 임금의 덕이 하늘과 같네

 

君侯稽首我后萬年 (군후계수아후만년) ……… 군후가 머리 조아리며 우리 임금 만년 수를 축원하였다

 

思我文人以永厥傳 (사아문인이영궐전) ……… 문인(文人)에게 부탁하여 그 전(傳)함을 길이 하실 새

臣拜撰辭爲多士先 (신배찬사위다사선) ……… 신이 절하고 글을 지으니 많은 선비중에 처음이었다

 

瞻彼華峯維石可鐫 (첨피화봉유석가전) ……… 저 화봉(華峯)을 바라보니 오직 돌에 새길만 하네

刊此頌章千古昭宣 (간차송장천고소선) ……… 이 기리는 글을 새겨서 천고(千古)에 밝게 알린다

 

 

    요즘 전국이 가뭄으로 시달리고 있다. 저수지 바닥이 갈라지고 농민들의

걱정이 태산 같다. 왕위를 아우에게 물려주고 野人이 되어 나라의 안녕과

왕정의 토대를 뒷바라지 한 형 효령과 선정을 베푼 아우 세종의 友義와

백성을 사랑하는 형제의 마음에 하늘이 감복하여 비를 내렸다고 하는

古事를 생각하면서 世人의 입과 언론에 오르내리는 우리의 現實을

돌아보니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은 왜인가?

 

 

 

                                                 -  티스토리 <노원장> 님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