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미 상원외교위원회 "한반도 역사 보고서 " 부록 사건

2014. 3. 20. 09:04우리 역사 바로알기

 

 

 

 

 

 

      

    어제 (20140319)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재야사학자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의

 

식민지사관 철폐를 위한 세미나가 열렸고, 아래의 내용 때문에 중국 동북공정에 적극적으로 협

 

조하는 곳이 국가예산을 쓰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이냐?라고 하는 규탄대회와 함께 추후 국민감사

 

청구를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이에 대하여 동북아역사재단 김학준 이사장은 상고사 연구인력을 2명 충원하여 상고사에 대한

 

연구활성화와 만주 동북방지역의 한국상고사 유적 발굴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언론에 보도자

 

료를 내어 놓았습니다.

 

 

     아래에 인용한 글은 다소 긴 글이지만 그간의 과정과 동북아역사연구재단에서 발간한 보고서

 

에 대한 오류가 잘 설명되어 있어서 함께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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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미 상원외교위 한반도 역사보고서 부록 사건

 :
동북아역사재단은 그 존재이유를 상실했다

 


 

    미 상원외교위원회 '한반도 역사' 관련 보고서 에 포함된 동북아역사재단의 중국 주장에 대한 반박 자료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적인 내용이다.


 

미 상원외교위원회 보고서 '한반도 역사'관련 보고서 발간 (12.31)

 

    지난해 10'고구려와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의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중국측 자료를 인용한 보고서를 미 의회조사국이 발간할 것으로 알려진 뒤 우리 정부와 역사 학계에서는 그동안 우려를 제기해왔는데요 2012년 마지막날(12/31) 이 보고서는 발간되었고 전 세계에 공개되었습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영향과 상원에 제기하는 문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총 80쪽 분량으로 14쪽의 본문과 4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부록에는 "중국의 입장을 담은 메모는 15쪽 분량으로 들어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한 동북아역사재단의 반박 내용은 20쪽 분량으로 지도와 같은 설명 자료도 같이 담겨있습니다.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요약

 

보고서 제목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상원에 제기되는 문제점

China’s impact on Korean Peninsula unification and questions for the Senate

다운로드 :  http://dok.do/JFd3iV

발간일 : 20121231

보고서 구성 : 84(14쪽의 본문과 4개의 부록)

보고서 내용 특이사항 :

- 두번 째 부록 : 미국의 동북공정 내용 담은 CRS의 메모(15)

 - 세번 째 부록 : (문제의)동북아역사재단의 반박 내용 (지도포함)

 

 



 

 

보고서 내용의 핵심 : 북한 영토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


 

    미 상원 외교위원회는 지난달 31(현지시간)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영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 영토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과 중국의 북한 내 경제적 영향력 확대는 한반도 통일을 막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통일의 단초가 남북관계 개선이든, 북한 내 격변상황이든 중국은 통일과정을 관리하거나 막으려 할 수 있다" "중국이 북한 내 자산을 지키고 한반도 북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역내 안정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중국의 북한 광산 투자는 향후 중국이 북한 내 천연자원 접근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공화)은 보고서에서 "한반도 통일을 생각할 때 보통 동서독 통일을 떠올리지만 다른 결과가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회 ", 한반도 통일 걸림돌"

| 아시아경제 2013-01-02 )

 

 


 

중국 측의 주장의 핵심이 들어있다

 

Jiang makes no bones about his position that the Gaogouli/

Koguryo Kingdom was Chinese. It was ‘‘an ancient local regime of our country whose people were mainly ethnic Han migrants,’’ he writes. He adds, ‘‘Because of geography, their economy and culture could not keep pace with the interior. Gradually, they became indigenized and the central plains dynasties came to see them as Yi and Di tribes.’’

 

   지앙(창춘 사범대학 동북아시아 연구소) 고구려가 중국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고 말한다. 그는 주로 한나라 이주민에 의해 건설된 지방정권이었다.”라고 썼다. 왜냐하면 지정학적으로 그들의 경제와 문화는 그들 내부에 의해서 발전될 수 없었다. (한나라에 의해 유입된 경제 문화로 발전했다.) 점차적으로 그들은(이주민) 토착화 되고, 동이족으로 보게 되었다.

 

[코멘트] 고구려가 중국땅이라는 주장도 역시 한사군 한반도설에서 비롯된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한사군 한반도 설에 힘을 실어줄 경우에는 고구려까지 그들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입장을 대변한 동북아역사재단

 

The Northeast Asia History Foundation in Seoul greatly assisted by providing South Korea’s view of China’s historic claims. 서울의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주장에 대한 남한의 입장을 제공함으로서 크게 도움을 줬다

 

 

이 문서의 심각성은 동북아역사재단의 대한민국 입장 대변 글에 있다
 
: 중국의 북한 영토에 대한 역사적 근거 주장과 일치한 주장을 우리가 한다면 어떻게 되는 가?

 

   이 보고서는 북한의 급변 사태시(내부혼란,전쟁 등)에 중국이 개입하여 북한 영토에 쳐들어와 '북한땅은 본래 역사적으로 중국 땅이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있는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본래 중국 동북공정의 목적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언론은 '중국의 한반도 역사에 대한 주장'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우리 측을 대변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장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측 대변인 역할을 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단체의 반박자료에는 나라를 팔아먹을 수 있는 심각한 주장이 실려 있는 것입니다. 동북아재단의 중국 주장에 대한 반박 자료는 중국의 영토주장에 부합하는 중국에 이로운 자료였습니다. 부록의 세번째에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지도와 글은 중국의 동북공정을 뒷받침해주기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보고서 속의 동북아재단 주장 1]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한반도 북부에 설치했다

 <보고서 56 : 한사군(Four Han Commanderies)을 현 북한 지역에 설치했다는 내용의 동북아역사재단 측의 설명, 한사군 자막 표시와 박스 표시는 원래 없으나 표시한 것임>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자리에 사군을 설치했다는 내용만으로도 중국은 북한 영토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는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이기도합니다. 과거 한민족의 역사는 식민지의 역사였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를 차지했고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쪽을 경영했다는 논리가 일제식민사관의 프레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사군이 한반도 에 존재했다는 것은 그 어느 당대 문헌상에도 제대로 찾아볼 수 없으며 낙랑군에 속한 25개 현중 단하나의 현이라도 한반도에 똑같은 지명이 없습니다. 전부 요동,요서쪽에서 나타납니다. 일제가 조작한 낙랑 유물로만 남아있을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전세계 한국사 왜곡 교과서에 시정 요청을 할 수 없습니다.

 

 

Glencoe World History 267쪽 세계사 교과서

 

 

    이렇게 되면 전세계 교과서에 퍼져 있는 한반도를 점령한 한나라 지도는 역사적 진실이 되고 말며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해서 수정을 요청할 수가 없다 위 내용이 정말 맞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영토전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이미 패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중국이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북한을 점유하려 들테니까요.

 

중국은 북한 영토가 자기네 땅이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동북아역사재단의 지도와 글을 통해서 큰 힘을 받게 되었습니다.이런 어처구니 없고 비극적인 일이 이 땅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고서 속의 동북아재단 주장 2]
고조선의 강역을 본래보다 축소시켰다

 

: 국사 교과서의 고조선 강역과도 일치하지 않은 지도를 들이밀다.

보고서 54쪽에 들어있는 지도입니다.

 

 

    보고서 56쪽의 지도 (동북아역사재단 설명 부분)입니다. 엄연히 실제로 고조선 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다량 출토된 지역을 없애고 영토를 축소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중고등 국사교과서에 실린 고조선의 영역입니다.
(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습니다 http://dok.do/OYkkcT 홈페이지 설명글 속에 있는 고조선 지도이므로 위 지도는 그동안 동북아역사재단의 공식적인 고조선 영토로 그려놓은 지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영토 강역의 경우도 잘못된 지도이긴 합니다만 미 상원 보고서에서 설명된 자료는 이보다도 훨씬 고조선 영토를 축소하여 그려놓고 있습니다.

 

묻겠습니다. 국사 교과서와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에 나온 고조선 영토 표시는 무엇인가요?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요하문명(홍산문화)을 그냥 떼어 줘버린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재단이 그냥 떼어준 저 지역은 홍산문화 지역이기도 하지만 비파형 동검 출토지역 즉 고조선 영역이 확실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의 고조선 영역지도에는 요하 서쪽지역이 없습니다. 이 지역은 최근 홍산문화지역입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속의 고조선 영역에도 포함됩니다.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현재 대한민국 역사의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분명 고조선의 영역속에 포함되는 지역을 동북아재단의 지도 속에서는 축소시켜 고조선 영역이 아닌 것처럼 해버렸습니다. 이들은 왜 이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일까요?

 

전형적인 북방문화입니다. 그것은 한반도로 해서 일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요하문명은 동북아시아의 시원문명임과 동시에 주요한 세력들은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문화 계통이라는 것입니다.”_ 우실하 교수

 

요하일대는 우리민족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 범위도 요하를 훨씬 벗어나서 요동반도와 한반도에 이르는 발해연안벨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형구 교수

 

    중국학자 '왕혜덕'이나 조선족 대련대학 '유병호' 역시 요하문명의 특징은 빗살무늬 토기와 조상 숭배 풍속이며, 대련대학 '설지강' 역시 흥륭와 문화의 특징은 빗살무늬(()자문) 토기라고 주장하였다. 중국학자 '풍운학'은 지()자문(빗살무늬) 토기는 요서 일대(요서 문명)와 흑룡강 중·하류 지역, 한반도, 일본 등지에서 발굴되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문화권이라고 주장하였다.

 

   요하 일대에서 발굴되는 빗살무늬 토기는 중국 중원의 황하 일대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북방 계통의 문화이다. 요하 문명의 주도세력들은 중원에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빗살무늬가 전파되는 길로 이동한 세력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코리안루트를 찾아서 (7) - 빗살무늬 토기문화 경향 2007 11 16> 

 

 

 

 

[동북아 재단 홈페이지 글 비판]
고조선
문헌자료 포기하고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

 

 

<동북아역사재단 홈페이지 상고사 페이지>

 

[박스 부분 글 ] “고조선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건국신화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한 문제와 영역 및 중심지에 관한 문제 등이다. 단군이 신화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역사적 실체를 신성화한 것인가가 전자의 핵심적인 쟁점이라면, 고조선의 중심지가 한반도 북부의 평양 일원인가 아니면 중국 요령성의 요하(遼河) 일대인가에 대한 논란이 후자의 주된 관심이다. 고조선에 관련된 문헌자료는 한국의 것이나 중국의 것을 막론하고 상당히 영세한 데다 체계적인 기록을 찾아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고조선에 관련된 여러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1)
교수신문(2012.9.25.) 윤내현 단국대 교수 인터뷰 내용 http://dok.do/eOkdiS
 

사료가 적다라고 말하는 것은 학자가 자기 학문을 스스로 낮게 평가하는 거다. 사료가 얼마나 있어야 풍부하단 말인가. 하나나 둘이나 있는 것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을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거기에 있는 내용을 국사책에서 어느 정도 인용하고 있는가? 단군왕검이라는 이름 말고는 전혀 인용이 없다. 어떤 국사책에서는 고조선 도읍이 왕검성이었다고 기록했다. 그것은 위만조선의 도읍이지 고조선의 도읍이 아니다.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왜 있는 사료를 놓고 그렇게 가르치나. 그러니까 사료가 없다는 게 아니라 있는 것도 안 쓰면서,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고조선의 영토는 우리 기록에는 없어도 중국기록에는 나오지 않는가. 중국과 경계를 하고 있다고. 그럼 서쪽 국경을 알 수 있다. 중국이 우릴 위해 쓴 게 아니라 자기네 국경을 알리려고 쓴 거다. 그런 식으로 사료를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고대사는 우리 역사의 뿌리에 해당한다. 역사는 지식도 키우지만 의식을 키우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제대로 교육이 안 되면 민족의식이 바로 설 수 없다.”

 

 

2)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인용

 

    주류사학계는 이구동성으로 문헌 부족 타령이다. 주류 고대사학자들의 어떤 논문 어떤 책을 보아도 문헌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아닌게 아니라 고조선 사료는 상대적으로 매우 빈약하다. 따라서 이들의 이야기는 언뜻 들으면 별 얘기 아닌 상식적 사실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들의 천연덕스런 말 속에는 역사학자로서 치욕스런 파산선언과 그것을 덮기 위한 변명이자 중국 고고학의 식민지가 되기 위한 합리화가 숨어 있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170>

 

한국 사료 : 삼국유사,삼국사기,제왕운기,고려사,응제시주,세종실록지리지,동국통감,성호사설,동사강목...

중국 사료 :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진서,통전,만주원류고,요사,대명일통지,관자.산해경,수경주,여씨춘추,염철론,전국책,설원 등


보다시피 이렇게 사료가 많다
.

    내가 무엇을 알아서 이런 목록을 나열하는 게 아니다. 이 모든 사료는 신채호와 리지린과 윤내현이 자신들의 논문과 책에서 검토한 사료들이고 나는 그들의 논문과 책에 나온 그대로 이 사서들을 나열한 것 뿐이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171>
 

    내가 아는 한 역사학은 역사학이어야 한다. 문헌이 존재하지 않는 한 역사학은 네모난 동그라미 같은 자가당착이요 자기모순이다. 역사학자는 아무리 고고학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일차적으로 역사 문헌을 다루어야 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 문헌 사료들을 발굴하고 수집하고 분류하고 분석해야 한다. 역사학에 대해 나의 생각과 다른 역사학자가 있는가? 역사학에 대해 이런 나의 생각과 다른 비전문가 대중이 있는가? 바로 이것이 고조선 사료의 문제가 주류 고대사학계의 학문적 파산을 입증하는 부동의 증거가 되는 소치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171> 183
 

***문헌을 포기하다시피 한건 문헌자료를 자세히 분석하면 동북아재단에서 주장하는 고조선에 관한 공간,시간 축소로 인한 역사 왜곡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보고서 속의 동북아재단 주장 3]
고조선과 한나라의 경계인 패수를 압록강이다라는 단정하였다

 

[노란 박스 부분 글] The border between Old Chosen and Han China -> Paesu River (패수)

 

패수가 지금의 어디인가를 밝히는 것은 한국 고대사 체계를 바르게 정립하는데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 동북아재단 측은 generally considered 라는 표현을 쓰면서 중국 측에 유리한 해석을 우리 스스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선대의 유학자들이 이따금 패수는 대동강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다. 최근에 일본인 백조고길(白鳥庫吉 시라토리 구라키치) 등이 압록강 하류를 패수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같은 망발도 없을 것이다 신채호 <청소년을 위한 조선상고사>,150,엮은이 이성길

백조고길(시라토리 구라키치)강도 일본 제국주의의 관제사학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제 식민사학자의 한 사람입니다. 신채호가 그를 이 말을 망발이라고 한 것은 사료 고증에 철저한 신채호로서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
한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창조된 학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창조한 역사상이 역사의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믿고 있는 어떤 역사적 사실들을 역사가들이 만든 허상일 뿐이다. .... 패수를 압록강이라고 입증한 인물은 바로 한국 식민사학의 교주 쓰다 소우키치이다.... 이병도처럼 압록강보다 더 남쪽의 청천강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없지는 않다.... 고구려 역사재단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바꾼 것은 중국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에도 맞서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고조선에 대한 동북아역사재단의 공식 견해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주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역사의 아침 2009,23-29>

 

   패수의 위치가 현재의 압록강이나 청천강이라면 고조선과 한나라는 전쟁 자체를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 무제가 만주를 지나 한반도 내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에 사신을 보낼 필요도 없었다. ... [수경주]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통과해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렇게 동쪽으로 흐르던 패수는 후대인들에 의해 서쪽으로 흐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압록강도 서쪽으로 흐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바뀐 것은 패수의 방향이 아니라 패수라는 강 자체였다. 엉뚱한 강을 패수라고 단정한 것이다. <이덕일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역사의 아침 2009,31-32>

 

 

고대사의 쟁점 : 패수의 위치는 어디인가?

 

패수 [ 浿水] 고대 조선어의 강()을 뜻하는 보통명사. 고조선(古朝鮮) 때에는 중국과 경계를 이루던 강을 지칭했다.사기(史記)조선전(朝鮮傳)의 기록에 따르면, ()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뒤 요동(遼東) 지방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浿水)를 요동과 고조선과의 경계로 삼았다고 한다. 그 뒤 패수가 줄곧 중국 세력과의 경계선이었다는 것은 위씨정권(衛氏政權: 衛滿朝鮮) 말기에 한나라의 사신 섭하(涉河)가 우거왕(右渠王)을 만난 뒤 귀국 길에 자신을 호송하던 고조선 관리를 살해하고 달아난 장소가 다름 아닌 패수였다는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

 

 

패수에 대한 한국 사학계의 시각 : 압록강 혹은 청천강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인 패수에 대해 쓰다 소우키치의 주장대로 압록강으로 보거나 이병도의 시각대로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사이를 흐르는 청천강이라고 보는 것이 한국 사학계의 시각이다.

 

 

패수의 위치에 대한 결정적 코드 東入于海: 패수는 동쪽바다로 들어간다

    수경주(水經注)5세기 말부터 6세기 초에 활약한 북위(北魏)의 학자 역도원이, 3세기 경에 쓰여진 수경(水經)이라는 문헌에 자세한 주석을 붙여서 쓴 책이다. 강물의 흐름과 그 주변의 지리에 대해서는 고대 중국의 지리서 중 가장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원본 수경은 매우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도원은 이에 자신의 오랜 연구 경험을 통해 해석을 붙이고, 고사와 경관등을 함께 서술하여 이 수경주를 완성하였다.

   어디까지나 중국의 하천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이 한국사에서 중요해진 까닭은, 여기에 한국사의 고대국가, 특히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역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요수(遼水)와 패수(浿水)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수경 패수조에 보면 패수의 위치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구절이 있다
.
 

浿水出樂浪郡樓方縣 東方過於臨溟縣 東入于海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흘러 나와 동쪽으로 임명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중국 쪽의 물은 대개가 아니, 모두가 동쪽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왜 그런가하면 서쪽엔 바다가 없기 때문이다.

 

 

이병도의 견해 : 동우입해가 아니라 서우입해다

    이병도씨는 중국 대륙의 물을 기록하다가 한반도의 대동강 물을 기록했으므로 습관적으로 동입우해라고 실수해서 적었을 것이라고 엉뚱한 푸념을 했다. 저 이홍직의국사대사전도 대동강을 열수라 해설하고는 한무제가 보낸 수군 제독 양복이 열수를 거슬러 왕검성을 치러 왔다고 역시 영뚱한 해설을 했다.

 

정약용의 견해 : 入於海를 끊어읽어야 한다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은 그의 저서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와 대동수경(大東水經)에서, 수경 원문은 원래 아무 문제가 없으며 역도원이 공연히 의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수경 원문은 원래 다음과 같이 끊어 읽어야 한다.

浿水出樂浪郡鏤方縣, 東南過臨浿縣, 入於海.

 

해석: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의 동쪽을 지난 다음 바다로 들어간다. 딱 한글자를 붙여 읽었을 뿐인데, 뜻이 아주 달라져 버린다. 이렇게 되면 강의 흐름에 대한 묘사에서 모순이 없어진다. 대동강은 실제로 순천 인근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 내려오다가 평양의 동쪽 20km 정도에서 꺾어져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이런 관찰을 근거로, 수경의 묘사에는 잘못된 점이 없으며 이 패수는 대동강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는 수경이 쓰여진 3세기의 패수는, 고조선 당시의 패수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그는 고조선의 패수는 압록강이라고 고증했다.

 

   정약용의 설의 문제점은, 수경의 원래 문장은 "바다로 들어간다" "入於海" 가 나올 때는 반드시 "어느 방향으로 들어가는지" 가 설명되어 있는데, 東入於海을 앞에 붙여 읽으면 이 문장에서는 入於海가 동떨어져 버립니다. 물론 이렇게 읽어서 해석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경의 다른 문장()과는 구조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설문해자 浿 해석

 

 결론적으로

   수경주(水經注) 패수조와 설문해자의 浿 설명글로 보아 패수는 동쪽 바다로 흘러간다고 봐야 한다.(東入于海 or 東入海) 그러므로 한반도의 청천강이나 압록강은 말이 안되는 것이고 현재의 중국 위치에서 찾아봐야 하는 것이다.

 

[보고서 속의 동북아재단 주장 4]
한사군의 중심지 낙랑군이 410년동안 평양,대동강 유역에 있었다?
 

    앞서 낙랑군이 고조선 멸망후인 BC108년에 평양,대동강 유역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했고 이번 5번 지도에서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313년에 쫓겨났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낙랑군이라는 한나라 식민지가 평양,대동강 유역을 410년동안 지배했다는 주장이 됩니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400년 이상을 존재한 국가 자체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도 아닌 식민지라 하는 낙랑군이 400년이상을 존속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중원의 본국은 5번의 국가 변천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함으로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중국의 한나라는 AD 313년까지 한반도 북부를 지배했다는 것이 됩니다. 게다가 그 지배기간동안 중국문화가 숱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그네들의 주장이 합리화가 됩니다. 또한 중국 역사가가 주장하듯이 고구려가 한나라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정권이라는 그들의 논리도 먹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들은 우리역사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요?

 



동북공정 도와주는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일제 식민사관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수백억의 국민혈세를 들여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장구치며 그들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북아역사재단의 활동과 연구내역은 국익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재검토되어야 하며 완전한 쇄신를 하지 못하는 한 해체되어야 합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등 역사왜곡과 일본의 독도침탈을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국가 기구입니다 교육인적자원부 산하에 있는 단체로서 2006년에 출범하였으며 2004년에 출범한 고구려연구재단도 통합 흡수되었습니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연간 예산 약 200억이상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연구 결과로는 동북공정에 전혀 대응할 수가 없고 오히려 동북공정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단군조선을 신화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으며
고조선의 실체는 작은 소국에 지나지 않으며,


   위만조선으로서 고조선을 규정하며
고조선은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한나라는 고조선을 망하게 하고
그땅에 한사군을 세웠으며
그 한사군은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그 중심지인 낙랑군은 평양
,대동강 유역에 세워져
400년이 넘는 기간동안 한반도 북부를 지배했다는
일제 식민사학의 틀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
아니 벗어나려 하지 않는 연구와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재단이 어떻게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  다음 카페 <한류열풍사랑>의장  지천태 님의 글 중에서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 발대식 및 학술대회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 의장단 3분.........

 

 

 

 

 

 

 

 

 

이종찬 전 국정원장, 전 국회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인명진 갈릴리 교회 목사, 전 한나라당 인권위원장

 

 

 

 

 

 

 

 

 

 

 

 

 

 

 

허성관 전 광주과학기술원 원장, 전 장관

 

 

 

 

 

 

 

 

백암 박은식 선생님의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혈사,

희산 김승학 선생님의 한국독립사

 

 

 

 

 

 

 

박은식,신채호, 정인보 선생님들께서 韓中의 1차 사료를 분석하여 작성된 한사군 위치와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일제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잘못 비정한 한사군 위치 비교

 

 

 

 

 

 

 

 

중국 역사자료집의 자체 모순

 

   -  유주 관할 범위의 문제 ; 유주는 현 북경 근처에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 관구검이 현도로부터 나와 고구려와 싸우다가 낙랑을 거쳐 (유주로)

       퇴각했다."

           중국역사자료처럼 한사군이 황해도 평양 근처에 있었다면 현실적으로 이러한 군사작전은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원거리 행군(편도 약 1200km)이 된다.

          여기에다 요하 주변의 요동지방의 공백은 창려군, 현도군, 요동군 등을 억지 짜집기로 최근에 새로이 만들어서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사군은 유주와 가깝게 있는 만리장성 남쪽인 갈석산 남쪽에 있었던 것이 확실해진다.

 

 

 

 

 

 

 

20140319 수요일 밤의 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