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집 제5권 영대정잉묵 척독 <어떤 이에게 보냄> / 한국고전종합DB(번역원 자료)

2014. 2. 28. 12:40야생화, 식물 & 버섯 이야기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원문  새창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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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척독(尺牘)
어떤 이에게 보냄


나는 집이 가난하고 꾀가 모자라니, 생계를 꾸리는데 방공(龐公)을 배우고 싶지만 소계(蘇季)와 같은 한탄만 있을 뿐이지요. 허물 벗음은 이슬 마시는 매미보다 더디고 지조는 흙을 먹는 지렁이에 부끄러울 뿐이외다. 옛날에 매화 삼백예순다섯 그루를 심어 날마다 한 그루씩 보면서 세월을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나는 셋방살이 신세가 되어 고산(孤山)과 같은 동산이 있을 턱이 없으니, 장차 어찌하면 좋지요?
벼루맡의 어린 종은 손재주가 하도 교묘하므로 나 역시 때때로 그를 따라서 연전(硯田 문필로 생활함)의 겨를을 내어 절지(折枝)의 매화를 만드는데, 촛눈물은 화판(花瓣)이 되고 고라니털은 꽃술이 되고 부들의 꽃가루는 꽃술의 구슬이 되어, 이름을 윤회화(輪回花)라 했지요. 왜 ‘윤회’라 일렀냐 하면, 무릇 나무에 붙어 있는 생화(生花)가 밀랍이 될 걸 어찌 알며, 밀랍은 벌집에 있는데 그것이 꽃이 될 줄 어찌 알리요? 그러나 노전(魯錢)과 원이(猿耳)는 꽃봉오리가 천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규경(窺鏡)과 영풍(迎風)은 그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지요. 오직 땅에 박히지 않았을 뿐 바로 자연의 정취를 볼 수 있지요. 황혼의 달 아래, 비록 그윽한 향기가 풍기는 것은 없지만, 눈 가득한 산중에 고사(高士)가 누워 있는 모습을 족히 상상하고말고요.
나는 그대에게 먼저 매화 한 가지를 팔아서 그 값을 정하고 싶소. 만약 그 가지가 가지답지 못하거나, 꽃이 꽃답지 못하거나, 꽃술이 꽃술답지 못하거나, 꽃술의 구슬이 구슬답지 못하거나, 상 위에 놓아도 빛이 나지 않거나, 촛불 아래서도 성긴 그림자가 생기지 않거나, 거문고와 짝지어도 기이한 흥취를 자아내지 않거나, 시에 넣어도 운치나지 않거나, 한 가지라도 이런 것이 있다면 영원히 물리쳐 버려도 끝내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을 거요. 이만 줄이오.


 

[주C-001]어떤 이에게 보냄 : 목차에는 제목이 ‘동인에게 보냄〔與同人〕’으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어떤 이에게 윤회매를 보냄〔與人輪回梅〕’ 또는 ‘매화를 파는 편지〔鬻梅牘〕’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편지는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2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에도 실려 있다. 즉 윤회매십전 팔지첩(八之帖)에 무릉(茂陵 : 박지원) 씨가 밀랍으로 만든 매화인 윤회매를 사라고 관재(觀齋 : 서상수〈徐常修〉)에게 보낸 편지로서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으며, 또한 편지의 말미 부분은 매화를 판 뒤 관재에게 작성해 준 증서인 윤회매십전 구지권(九之券)의 일부로 되어 있다. 단 《연암집》의 원문과 자구상의 차이가 적지 않다.
[주D-001]방공(龐公)을 …… 뿐이지요 : 방공은 후한(後漢) 때의 은자(隱者)인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키고 소계(蘇季)는 전국 시대의 유세가(遊說家)인 소진(蘇秦)을 가리키는데 소진의 자가 계자(季子)이다. 소진이 연횡책(連衡策)으로 진(秦) 나라 혜왕(惠王)을 설득하다가 실패하고 실컷 고생만 하고 고향에 돌아오자, 가족들이 모두 그를 외면하였다. 이에 소진은 “아내는 나를 지아비로 여기지 않고, 형수는 나를 시동생으로 여기지 않고, 부모님은 나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구나.”라고 길게 탄식하였다고 한다. 《戰國策 秦策》
[주D-002]허물 …… 뿐이외다 : 학업에 진전이 없는 것과 남에게 신세 지고 사는 것을 반성한 말이다.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군자의 배움은 매미가 허물 벗듯이 신속하게 변한다.〔君子之學如蛻 幡然遷之〕”고 하였으니, 부단히 학습하여 구태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낡은 것을 혁신하기를 매미가 허물 벗듯이 한다.〔去故就新 若蟬之蛻也〕”는 말도 있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서 맹자는 오릉중자(於陵仲子)가 청렴을 지키기 위해 인륜마저 저버림을 비판하면서 “오릉중자의 지조를 충족시키자면 지렁이가 된 뒤라야 가능할 것이다.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지하수만을 마시고 산다.〔充仲子之操 則蚓而後可者也 夫蚓 上食槁壤 下飮黃泉〕”고 하였다.
[주D-003]옛날에 …… 없으니 : 송(宋) 나라 때의 은자(隱者)인 임포(林逋)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방학정(放鶴亭)과 소거각(巢居閣)을 짓고는 주변에 매화 360그루를 심고 소일하였다고 한다. 《欽定南巡盛典 卷86》
[주D-004]절지(折枝) : 가지가 구부러져 아래로 늘어진 모양을 말한다. 동양화에서는 매화 나무 전체를 그리지 않고 가지가 구부러져 늘어진 부분만을 그린다.
[주D-005]노전(魯錢)과 원이(猿耳) : 이덕무윤회매십전 오지화(五之花)에 꽃잎 5개가 말려 있고 꽃술이 나와 있지 않은 매화를 ‘옛 노전〔古魯錢〕’이라 하고, 꽃잎 3개는 떨어지고 남은 2개도 떨어지려 하나 꽃술만은 싱싱한 매화를 원이(猿耳)라고 한다고 하였다. 노포(魯褒)가 전신론(錢神論)을 지었기 때문에 돈을 일러 노전(魯錢)이라 한다.
[주D-006]규경(窺鏡)과 영풍(迎風) : 이덕무윤회매십전 오지화(五之花)에 꽃잎 5개가 만개한 것을 규경(窺鏡) 또는 영면(迎面)이라 한다고 하였다. 영풍은 ‘영면’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    한국고전문화번역원 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