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의강론]하느님은 사랑이시다

2014. 3. 19. 10:56경전 이야기

제  목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글쓴이 :   
 

 

†찬미예수님

어제는 따뜻했는데, 오늘은 쌀쌀하고 춥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변덕 부리지 말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직하고 바보스럽게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사제로 살면서 정말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청주에서 근무할 때, 교우라고 밝힌 아가씨에게서

전화 한통이 왔는데 사연인즉, 16살 때 가출을 해서 10 여년 동안

술집으로 다방으로 돌아다니다 나중에는 인생의 막장이라고 하는

창녀촌까지 전전을 하게 되었답니다.

고향에서는 서울에서 직장에 착실히 다니는 줄 알고 있었기에

고향의 청년과 혼담이 오고가다가 결혼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답니다.

막상 자신의 과거를 속이고 결혼을 하려고 하니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그럽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고 싶어서

114에 대고 아무성당을 대어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많은 성당 가운데 하필

내가 있는 성당으로 연락이 온 겁니다.

그 아가씨가 말하길 “어릴 때 배운 교리지식으로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저를 위해 신부님, 기도 한 번 해주세요.”

저는 당황하여

“꽃다운 나이에 왜 죽으려고 그러느냐, 나랑 좀 만나서 이야기 하자!”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해 보았지만 그 아가씨는 냉랭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 후 우연히 지방신문을 보는데 사회면에 나온 기사제목이

‘결혼비관자살’ 이었으며 나에게 전화했던 그 아가씨의 내용이 실렸습디다.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나의 한계를 깊이 느꼈던 가슴

아픈 사연이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떠오르는 화두!

‘죄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한 영혼을 이렇게 망가뜨릴 수 있구나!’

저는 이 화두로 깊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서에서 떠오르는 복음이 오늘 나오는

‘돌아온 탕자’ 였지요.

 

‘돌아온 탕자’ 이야기 속에는 많은 보물이 묻혀 있지만

이 복음을 오늘은 좀 색다른 방향에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돌아온 탕자는 그 끝나는 시점이 똑같습니다.

‘아들이 돌아와서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돌아온 둘째 아들의 영혼이 과연 평화로울 수 있었을까!

 

분위기를 묘사하면 돌아온 둘째아들을 아버지가 기쁘게 맞이하고

가락지, 옷, 신발을 신겨주며 즐거워합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이웃을 불러 축하잔치를 해 주지만

큰아들은 이 광경이 못마땅해 투덜거리며 끝이 나지요.

 

이제 감격과 축제의 순간은 지나가고 실제적인 현실

정신적 열등감, 양심의 고발, 달콤한 육신의 향수.......

가 집요하게 작은 아들을 따라다닐 것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안의 분위기도 적응이 쉽지 않았겠지요.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든 건 아마도 형님의 싸늘한 시선이었을 겁니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둘째 아들은 이 세 가지를

극복하지 못하면 아버지의 집에 있지 못하고 다시 나갔을 겁니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고백 성사를 본다고 해도 탕자가 극복해야할 이 세 가지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하느님 앞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겁니다.

 

첫 번째, 과거에 대한 열등감

하느님의 사랑을 배반했던 죄, 방탕하고, 교만했던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자매들에게 가장 큰 죄의식은 낙태죄입니다.

남자들은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성사도 보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찌 부인만의 죄입니까?

큰 심판거리가 될 겁니다.

 

죄의식에서 해방되려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를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죄의식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고해성사를 귀중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죄사함의 보증’ 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의 입을 통하여

베드로사도에게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줄 것이다. 나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우리의 더러운 죄는 사제의 입을 통하여 성화가 되고, 정화가 됩니다.

 

죄사함을 받았어도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쫓아다니면서

그 죄의식으로부터 헤어나제 못하게 유혹합니다.

우리들이 다시 아버지의 집을 박차고 나가는 어두움은

죄의식, 견딜 수 없는 열등감 때문입니다,

 

내 죄가 진홍색처럼 붉어도 믿어야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나를 끌어안으시는 아버지시다~’

마귀는 그 생각을 못하게 합니다.

하느님은 엄하다드니, 심판의 하느님, 무자비한 하느님, 정의의 하느님,

꼬투리 잡으려고 하는 하느님, 힘들게 하는 하느님이라고 마귀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느님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을 못 믿으면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다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탕자가 육신에 속했던 옛생활의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노름꾼, 호색가, 알콜중독자가 그 유혹에서 완전히 헤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 모르고 세상 것을 우상숭배하고 살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삼구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물콧물 흘리는 찐한 성사 한 번 했다고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죽을 때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

 

탕자의 마음속 달콤했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 아버지의 집을 나갔을 겁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조차 인성을 시험해 보고 난 후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났다!’ 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여러 가지 다른 각도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래서 병자성사가 중요합니다.

 

토마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죽을 때의 마음이 영원을 지배한다’ 고 했습니다.

 

<병자성사를 통하여 이마와 양손에 기름을 도유하고,

임종경 소리를 들으면서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가톨릭의 전통입니다.

 

세 번째, 탕자는 연약한 마음을 이겨내야 합니다.

돌아온 동생을 환영 못하는 형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이 형의 입장이 되면 누구라도 화가 나겠지요.

‘뼈 빠지게 일한 나에게는 잔치 한 번 안 베풀어주고

재산탕진하고 돌아온 둘째에게 잔치를 베풀다니~‘

 

성서에 자캐오의 이야기 아시지요?

자캐오는 세리장, 지금으로 따지면 세무청장? 정도 되겠지요.

자캐오에게 돈이 있으면 뭐합니까?

그는 같은 동족에게조차 나쁜 놈, 매국노, 반역자란 소리를 들었으니까요.

친구도 없고 가슴에 찬바람이 휑휑~ 불어왔지요.

 

그러던 어느 날, 죄인을 사랑하는 예수라고 하는 선생님이 자기 동네에 오신 거예요.

세리장인 자캐오는 비단이고 뭐고 다 벗어던지고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 가의 무화과나무에 올라갔지요.

자캐오는 자신의 권위와 부를 모두 버린 겁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자캐오야, 이리 내려 오너라.”

‘저분이 어찌 내 이름을 어찌 아실까?’

자캐오의 가슴은 뛰었지요.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셨어요.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들어간 겁니다. 자캐오는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주겠습니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주님을 만나러 나왔던 자캐오는 군중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키 큰 사람, 원망 안하고 키 작은 자신을 한탄하지도 않았지요.

그냥 주님 만나러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환경을 원망치 않고. 하느님 앞에 나가면

나를 쳐다보는 싸늘한 시선도 따뜻한 시선을 바뀔 것입니다.

 

큰 아들은 싸늘한 시선만 준 채 눈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너 이 자식아, 이제 가져나갈 것도 없어. 너 내 것까지 다 가져나갔잖아~’

별별 소리를 다 하더라도 작은 아들은 ‘보속한다~’ 생각하고

끝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다 보면 그 모진 형의 마음도 언젠가는

따뜻하게 변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한 이 세 가지

첫 번째, 죄의식과 열등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를 내 뼛속깊이 믿는 것!

 

두 번째, 육에 속해 있던 향수를 끊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달콤하고 온갖 유혹이 많습니까?

 

 

세 번째, 본인 자신의 인내심을 키워야 합니다.

‘저 인간, 저것 또 기어 나갈 거야!

형만이 아니라 동네사람들도 비웃었을 겁니다.

작은 아들은 환경에 좌우되지 말고

열심히 기쁘게 살다 보면 분명히 인정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나한테 전화했던 그 아가씨는 죄의식과 열등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는 돌아온 탕자에 대한 수많은 영성신학 책을 읽어 보았지만

탕자가 돌아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돌아온 탕자의 그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묵상해 봅니다.

 

수많은 보물이 묻혀있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

하느님 앞에 나갈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세 가지의 유혹!

열등감, 육에 속한 향수를 이겨내고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것을 믿읍시다.

우리 육신이 아무리 약해도 성령이 내 안에 계시면

이 약한 육신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 믿도록 합시다.

 

또 우리가 누군가에게 모함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 심판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이 알아서 심판하시고

알아서 벌주실 거라고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인내하면서 살아간다면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님의 삶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사순절 잘 마무리 하도록 합시다. 아멘

 

 

 


 

출처 : 사즐모(댄스스포츠 사교댄스모임 - 라틴, 모던, 사교, 리듬짝)
글쓴이 : 사랑과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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